'뉴딜' 이름이 아깝다
"정부가 현재 위기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기업들은 당장 죽게 생겼는데요."
정부가 지난 14일 발표한 '한국판 뉴딜' 계획에 대해 한 기업인은 "이름만 뉴딜 아닌지 의문"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획기적 정책 전환으로 경제 위기의 근원적 해법을 모색했던 1930년대 미국의 오리지널 뉴딜과는 차이가 크다는 얘기다. 한국판 뉴딜은 저탄소 경제·사회로의 전환(그린 뉴딜)과 디지털 기반 확대(디지털 뉴딜)를 축으로 일자리 190만 개를 만들고 코로나발(發) 경제 위기 극복의 발판을 마련하는 게 목표다. 이와 관련해 재계에서는 "병을 고치려면 정확한 진단이 필요한데, 우리 경제 위기의 근본적 원인인 반(反)시장 규제와 제조업 경쟁력 저하에 대해 정부가 고민한 흔적이 안 보인다"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미국의 뉴딜과 비교할 때 한국판 뉴딜은 우선 기존의 시스템을 뒤엎는 새로운 판 짜기와 거리가 있다. 현행 정책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린 뉴딜의 핵심인 재생에너지 확대는 탈원전 정책을 통해 추진되어온 것으로 새로울 게 없다. 디지털 뉴딜에도 5세대 이동통신과 인공지능 융합, 디지털 교육 인프라 조성처럼 이미 진행 중인 사업을 재탕한 게 많다. 뉴딜 성공의 전제 조건인 기업 투자 활성화를 위해선 과감한 규제 완화가 선행돼야 하는데 구체적인 규제 개혁 로드맵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일자리 창출 목표가 실현될지도 미지수다. '신재생에너지 산업통계'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인 2016년 8360명이었던 태양광 산업 기업체 근로자는 2018년 7732명으로 오히려 7.5% 줄었다. 원가 경쟁력에서 중국산을 당해내지 못한 우리 기업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뉴딜로 생겨나는 일자리 수를 강조할 뿐 일자리의 질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범여권의 한 국회의원은 한국판 뉴딜의 일자리 창출 방안에 대해 "청년들은 이런 것을 '쓰레기 일자리'라 한다"고 했다. 세금 퍼붓는 단기 아르바이트 사업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재계 고위 인사는 "제조업은 국내총생산의 30%를 차지하고 전체 일자리 가운데 비중이 가장 큰 업종"이라며 "생사기로에 놓인 제조업의 경쟁력 끌어올리기 대책이 빠진 이번 뉴딜 계획은 반쪽짜리"라고 했다. 그는 "단기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이유로 제조업 혁신을 미뤘다가 제조업 기반이 붕괴하면 '그린'과 '디지털'만 갖고 경제를 끌고나가기 어렵다"고 했다.
코로나발 위기는 거창한 구호를 갖다 붙인 정책의 나열만으로 극복할 수 없다. '뉴딜(New Deal)'은 카드 게임에서 패를 새롭게 돌린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전략·전술 변화 없이 패만 바꿨다고 해서 잃은 돈을 딸 수는 없다.
-김승범 산업1부 차장, 조선일보(20-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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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번의 '정책 보고대회' 이번엔 다른가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를 갖고 향후 5년간 예산 114조원을 투입해 '디지털 1등 국가' '저탄소 경제' '포용사회'를 구현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전환 선언"이라고 했다. 발표장은 유명 기업인 프레젠테이션 등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했지만 실제 내용은 기존 정책을 재탕, 삼탕해 백화점식으로 나열한 것에 가깝다. '대전환' 선언도 3년 전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을 "한국 경제의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하던 모습과 비슷했다.
이 정부 들어 정책 보고대회는 정말 많았다. 2017년 7월 100대 국정과제 대국민 보고를 필두로 그해 8월 국정 100일 대국민 보고, 10월 일자리 5년 로드맵 발표, 2018년 3월 청년 일자리 보고대회, 5월 혁신 성장 보고대회,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대국민 보고, 2019년 1월 수소경제 전략보고대회, 2월 포용국가 사회정책 대국민 보고, 4월 시스템 반도체 비전 선포, 7월 문재인 케어 성과 보고대회 등 '대국민 보고'라고 이름을 붙인 무수한 정책 발표와 국정 홍보가 이어졌다. 하지만 실제 국민이 체감할 성과를 보여준 게 무엇이 있나.
경제는 코로나 사태 이전에 이미 저성장·고실업의 늪에 빠졌고, 최저임금 과속 인상, 문재인 케어 등 고용·복지 정책들은 국가 부채 급증, 각종 기금 조기 고갈 위기를 낳고 있다. 역대 정부가 애써 비축한 재정과 공공 기금을 한꺼번에 털어먹으며 그걸 업적으로 포장하고 있다. 누구나 한국판 뉴딜이 성공해 경제가 발전하기를 바란다. 다만 노동 개혁과 규제 개혁이 없으면 또 한 번의 이벤트이자 국민 세금 뿌리기일 뿐이다.
-조선일보(20-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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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계획' 책임자가 털어놓은 그린 뉴딜의 실상
태양광·풍력 급증해도 국내 매출·고용은 줄어… 중국·유럽 기업만 장사
제주 풍력은 과잉… 툭하면 출력 제어… 동해 풍력 전기는 또 어디로 보낼 건가
어제 정부가 신재생 24조원 등 그린 뉴딜 분야에 73조원을 투입해 일자리 66만개를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했다. 이보다 2주 앞선 지난달 30일, 한국환경한림원·환경정책평가연구원·에너지경제연구원 주최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그린 뉴딜'이라는 제목의 무(無)청중 온라인 포럼이 열렸다. 누가 귀띔해줘 유튜브 영상을 봤는데 마지막에 등장한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의 8분짜리 토론이 인상적이었다. 유 교수는 5월 8일 공개된 정부 '9차 전력수급 기본계획' 초안의 작성 책임자(워킹그룹 총괄위원장)였다. 그의 토론 내용은 정부의 '탈원전, 신재생 확충, 석탄 대신 가스'라는 그린 뉴딜 에너지 정책에 송곳을 찔러 넣는 느낌이었다.
유 교수는 우선 현 정부가 태양광·풍력을 그렇게 늘려왔어도 신재생 국내 기업의 매출·고용은 줄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유 교수 슬라이드를 보면, 태양광 신규 설치는 2016년(909㎿)에 비해 2018년 2.6배(2367㎿)가 됐다. 그러나 국내 태양광 기업 매출은 2016년 7조1000억원에서 2018년 6조4000억원으로 되레 줄었다. 태양광·풍력을 포함한 전체 신재생으로 따져도 매출은 9.3%, 고용 인원은 5.1% 감소했다. 정부의 신재생 보조금은 2016년 1조7900억원에서 2018년 2조6000억원으로 급증했는데도 이렇게 됐다.
유 교수는 "태양광이 늘수록 가격 경쟁력에서 앞서는 중국산(産) 수입은 느는 반면 우리 기업들 매출·고용은 줄고, 풍력 역시 덴마크·독일 기업 매출만 늘려왔다"고 했다. 정부 보조금이 중국·유럽 기업 지원에 쓰이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어제 그린 뉴딜을 통해 향후 5년간 태양광·풍력을 현재의 3.4배로 더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원자력·석탄을 대신할 LNG 발전소의 가스터빈은 전량 지멘스(독일), GE(미국), 미쓰비시(일본)에서 들여오고 있다.
풍력·태양광은 바람·햇빛의 변동성 때문에 전력 수급 균형을 맞추기가 어렵다. 유 교수는 제주 풍력의 경우 바람이 강할 때는 수시로 '출력 제어(curtailment)' 조치를 취하는 실정이라고 했다. (풍력발전이 과도할 경우 과부하를 막기 위해 일부러 전력 생산을 중단·감축하는 걸 말한다. 제주의 출력 제어는 2016년 6회였는데 작년엔 46회, 올 들어 6월까지는 벌써 44회에 달했다. 현 추세대로라면 2030년엔 1934회가 된다는 것이 한전 예측이다. 전력계획 워킹그룹은 '제주수급 소위원회'까지 둬야 했다.)
제주~육지는 두 해저 전력 연계선으로 연결돼 있다. 제주 전기가 모자라면 육지에서 전기를 보내주는 일방향 전력 케이블이다. 그런데 한전은 쌍방향 제3 연계선 신설을 계획하고 있다. 제주의 풍력 전기가 넘칠 경우 전남 지역으로 보내기 위해서다. 3500억원이 소요된다. 유 교수는 "문제는 전남에서도 제주 풍력 전기를 받아봐야 쓸 곳이 없을 수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전남은 강한 햇빛과 싼 땅값 때문에 2018년 기준 전국 태양광 설비의 21%가 몰려 있다.) 제주에서 받은 풍력 전기와 전남 자체 생산 태양광 전기가 남아돌 경우 그걸 수도권으로 보내는 송전탑을 추가로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제2의 밀양 사태가 생길 수도 있다"고 했다.
유 교수에 따르면 수심 깊은 동해에도 부유식(浮遊式)으로 대규모 해상 풍력이 계획되고 있다. 현재도 동해 지역의 석탄·원자력발전소 생산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한 '동해안~신가평 송전탑' 공사가 지역사회 곳곳의 반대에 부딪혀 도통 진척이 안 되고 있다. 동해의 해상 풍력 전기를 태백산맥 너머 서울·경기로 보낼 송전 설비를 어떻게 또 만드냐는 것이다.
유 교수는 "체계적 전략 없이 그린 뉴딜을 추진하면, 그린은 달성할 수 있을지 몰라도 뉴딜은 어렵다"고 했다. 그린은 환경을, 뉴딜은 일자리를 말한다. 내 생각을 덧붙이자면, 뉴딜도 어렵겠지만 그린도 이루기 힘들다. 환경부는 이미 산업부의 '9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대해 온실가스 감축 방안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퇴짜 놨다. 같은 정부 내에서도 과연 '그린'이긴 한 거냐고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탄소 제로 전력인 원자력을 배제했으니 이런 일이 벌어진다. 더구나 태양광은 부지가 원자력발전에 비해 100배 이상 필요하다. 태양광·풍력 때문에 국토 경관이 형편없이 망가지는 것을 국민 모두 목격하고 있다. 세계 최고 인구 밀도, 극도의 토지 부족 국가로선 원전 같은 고밀도 전력 생산이 친(親)환경 발전이다. 원자력발전은 수입 연료비가 발전단가의 8%에 불과한 '92% 국산(國産) 전기'이기도 하다. 일자리도 대부분 국내에 생기고 달러의 해외 유출도 거의 없다.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조선일보(20-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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