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 두 언어 ‘이상한 문재인 랜드’
文 취임, 조국·윤미향 사태 거치며… 통합 평등 공정 양심 도덕 상식 정의
말뜻 다르게 쓰는 ‘문재인 어족’ 탄생, 秋 이후 조롱거리 된 法治 ‘법의 지배’
檢言→權言유착·부동산→罪·세금→罰
지금 대한민국에는 두 개의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동거(同居)한다. 같은 단어를 전혀 다른 뜻으로 사용하는 두 어족(語族)이다. 어의(語義)의 불일치는 양심 도덕 상식 정의 법치 같은 규범 단어에서 극대화된다. 문재인 정권 전에는 없던 현상이다. 국어를 다르게 쓰는 ‘문재인 어족’의 탄생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당선 직후 대국민 메시지에서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분들도 섬기는 통합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고 다음 날 취임사에서는 “오늘은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되는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가 말하는 ‘통합 대통령’과 ‘국민통합’이란 용어가 이런 뜻일 줄은. 문 대통령이 역대 어느 정권보다 극심한 ‘국민분열’을 자초한 ‘분열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대통령의 언어는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다. 문 대통령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임명하면서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정말 엄정한 자세로 임하라’고 당부했다. 그 말을 믿고 산 권력에 손을 댄 윤 총장은 지금 어떻게 됐나. 이미 수족이 다 잘린 터에 엊그제 인사에서는 ‘정권의 충복(忠僕)들’에게 둘러싸여 말 그대로 고립무원 신세다. 대통령의 언어가 이럴진대, 우리 사회의 언어가 온전할 리 없다.
국민이 두 어족으로 갈라지는 결정적 계기는 조국 사태였다. 대통령 취임사의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은 모두 무너져 평등과 공정, 양심 도덕 상식 같은 규범어의 정의(定義)가 일대 혼돈에 빠졌다. 많은 국민이 들고 일어난 것은 조국에 대한 분노보다 우리 사회를 지켜온 상규(常規)가 무너지는 데 대한 절망감 때문이었다.
이어 터진 윤미향 사태는 이런 의문을 던졌다. 과연 이 나라에 정의(正義)는 있는가. 사태가 터진 지 석 달이 넘었다. 아직도 국회의원 윤미향에 대한 소환조사조차 못 하고 있다. 이제 정의라는 단어의 뜻을 ‘약자의 정의’와 ‘강자의 정의’로 나눠서 해석해야 하나.
정의를 담보해야 할 법치(法治)라는 말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등장과 함께 조롱거리로 전락한 느낌이다. 그런 추 장관이 지난달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금처럼 오로지 공정과 정의에만 집중하겠다”고 썼다. 한마디로 ‘졌다’. 또 3일 신임 검사들에게는 “스스로에게는 엄격하게, 상대방에게는 봄바람처럼 따스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마음에 거리낌 없이 훈시하는 그를 보고 다시 한 번 ‘졌다’.
법치의 기본원리는 ‘법의 지배(rule of law)’다. 윤석열 총장이 신임 검사들에게 법의 지배를 강조했더니, 한 여당 의원이 “과감한 발상이 매우 충격적”이라며 “일반인의 입장에서 법의 지배 같은 무서운 말들은 꽤 위험하게 들린다”고 논평했다. 혹시 법의 지배란 말을 처음 들어보고, ‘지배’란 단어의 어감 때문에 그렇게 반응한 것은 아닌가. 법의 지배는 군왕(君王)이나 독재자 같은 자의적 권력보다 법을 우위에 둠으로써 ‘법 앞에 평등’이라는 기본권을 보장한다는 의미다. 법을 세워야 할 국회의원이란 사람이 법치의 기본원리조차 모르니 할 말이 없다.
이러니 ‘검찰개혁’이라 쓰고 ‘검찰장악’이라고 읽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검찰개혁이란 말은 원래 두 가지 의미를 담는다. 정치권력으로부터의 검찰 독립과 과도한 검찰권한의 축소. 그런데 문 정권 사람들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후자보다 중요한 전자를 깡그리 무시한다. 오히려 노골적인 검찰 길들이기, 검사 줄 세우기를 하면서 입으로는 당당히 ‘검찰개혁’을 말한다. 이후 다른 정권이 본받을까 겁난다.
이제 ‘검언(檢言)유착’ 의혹마저 실체가 없고, 실상은 ‘권언(權言)유착’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부동산=죄악’ ‘세금=징벌’로 어감이 바뀐 지도 오래다. 얼마나 더 낙인을 찍고, 프레임을 짜며, 거짓 조어(造語)를 하고, 말뜻을 왜곡해 우리말을 오염시킬 건가. 국민을 ‘편 가르기’한 것도 모자라 언어마저 편 가르기 하나. 갈라진 국민은 계기가 있으면 다시 통합할 수 있지만, 말이 안 통하면 소통 자체가 불가능한 딴 나라 국민이 된다. 집권 3년여 만에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 참으로 ‘이상한 문재인 랜드’다.
-박제균 논설주간, 동아일보(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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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4' 동향 인물로 채우고 "지역 안배"라는 秋 법무 궤변
추미애 법무장관이 자신이 단행한 검찰 고위 간부 인사에 대해 비판이 쏟아지자 "인사가 만사" "출신 지역을 골고루 안배하고 원칙에 따라 이뤄진 인사"라고 했다. 검찰 조직에서 '빅 4'로 불리는 것이 서울중앙지검장, 법무부 검찰국장,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공공수사부장의 네 자리다. 여기에 누구로 앉히느냐에 따라 인사의 성격과 평가가 달라진다. 추 장관은 네 명 모두 호남 출신으로 임명했다. 지난 1월에도 그랬는데, 이번 인사에서도 되풀이했다. 인사·예산을 주무르는 검찰국장을 세 번 연속 전북 출신이 차지한 것도 초유의 일이다. 그런데도 추 장관은 '지역 안배'라 한다. 명백한 거짓말이자, 궤변이다.
정권 입맛에 맞게 무리한 수사를 지휘한 충성파들은 출세하고, 권력 연루 수사를 권력 눈치 안 보고 열심히 했던 검사는 모조리 쫓겨났다. 여권의 정치 공작 의혹이 커지고 있는 채널A 기자 사건 수사를 지휘한 검사, 윤미향의 기부금 유용 사건이나 박원순 서울시장 피소 사실 유출 사건을 뭉개버린 검사도 영전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항명한 검사도 출세했다. 채널A 기자 사건 수사에서 '육탄전 압수수색' 'KBS 오보 조작 의혹' 등으로 감찰을 받거나 고발당한 인물을 승진시켜 전국 검찰 수사를 총괄하는 자리에 앉힌 것은 기업이라면 배임(背任)에 해당할 범죄적 인사였다.
추 장관은 "아무런 줄이 없어도 묵묵히 일하는 대다수 검사들에게 희망과 격려의 메시지를 드리고자 하는 것"이라고 했다. 자기와 맞서면 한동훈 검사장처럼 수사·감찰을 받을 수 있고 자기 말을 순순히 들으면 좋은 자리에 보내준다는 메시지로 들린다. 이러다가는 채널A 기자 사건 수사에서 보듯 실체가 없는데도 무고한 사람을 엮어 구속하겠다고 덤비는 '사냥개 검사'가 속출할 것이다.
추 장관과 대립각을 세웠다가 좌천된 문찬석 광주지검장은 "채널A 수사 소동은 사법 참사"라는 말을 남기고 검찰을 떠났다. 검사 출신의 김웅 의원은 "애완용 검사들이 득세하는 세상"이라고 했다. 이렇게 노골적인 편향 인사로 검찰 조직을 길들이려 하는 정권은 거의 본 일이 없다.
-조선일보(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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