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버틴 섬진강 제방
"말이 아니지 속은, 그러나 하늘이 그런 걸 내가 뭐라고는 못 하겠고, 몸만 나왔어요." 그제 저녁 TV 뉴스에 나온 섬진강변 외이마을 노인은 범람한 강물 위에 지붕만 둥둥 뜬 동네 풍경을 가리키면서 겉보기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연에 순응하려는 어르신의 마음가짐이 찡했다. 화면엔 소들이 머리만 간신히 물 위로 내놓고 축사 안에서 버둥대는 모습이 비쳤다.
▶남원시 금지면의 섬진강 제방이 터져 일대가 물바다가 됐다. 영·호남 모두 폭우가 온 것은 같은데 낙동강·영산강은 버텼고 섬진강 제방은 무너졌다. 그러자 소셜미디어를 통해 '섬진강은 4대강 사업에서 빠져서 그런 것'이라는 주장이 퍼지고 있다. 충분히 그런 말이 나올 상황이라 생각한다. 4대강 사업은 강바닥 준설로 물그릇을 키워 가뭄에 대비하고, 제방을 보강해 홍수를 견디고, 보(洑)를 쌓은 후 수문을 달아 물 흐름을 통제하는 세 가지가 목적이다.

▶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은 4대강 사업에 포함됐지만 섬진강은 제외됐다. 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 사업 본부장을 맡은 심명필 인하대 명예교수는 "지역에선 4대강 사업에 끼워달라는 얘기가 많았지만 환경 단체 등에서 반대했고, 풍광이 훌륭한 섬진강은 있는 모습 그대로 보전하자는 의견이 많았다"고 했다.
▶문화일보가 2017년 5월 재해 연보를 분석해 4대강 완공 이전(2006~2012년)과 이후(2013~15년)의 자연재해 피해 규모를 비교해 보도한 일이 있다. 그 결과 연간 사망·실종자는 사업 이전 30.3명에서 이후 2명으로 줄었고, 이재민은 연평균 2만6000명에서 4000명으로 감소했다. 자연재해에 따른 침수(浸水) 면적은 357분의 1로 급감했다. 문화일보는 전문가를 인용해 "4대강 사업 후 피해가 준 것은 확실히 맞는다"고 했다.
▶반면 감사원은 현 정부 출범 후 시행한 역대 4번째 감사에서 4대강 사업에 든 총비용은 31조, 편익은 6조6000억원이라고 발표했다. 특기할 것은 홍수 예방 편익을 '0원'으로 잡은 점이다. '사업 완공 후 비가 적게 내려 홍수 피해가 줄었다는 증거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감사원 역사에 기록될 만큼 기가 막히게 비틀어 갖다 맞춘 설명이었다. 그때 분석을 맡았던 전문가들도 최근 10여 년 사이 수해 의연금 모금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는 것은 인정할 것이다. 4대강 사업에는 그늘도 있고 양지도 있다. 두 측면을 모두 보고 균형 있게 얘기해야 공정한 판단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한삼희 논설위원, 조선일보(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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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난리·집난리에 청와대는 공백, 여당은 '윤석열 뽑아내기'
50일 가까이 장마가 이어지면서 전국이 물난리 몸살을 겪고 있다. 50여명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되고 6000여명의 이재민을 내는 등 코로나 사태 와중에 덮친 물난리로 국민 시름이 깊다. '온 국민이 부동산 분노 조절 장애에 걸렸다'는 말이 나오는 가운데 부동산 정책 실패를 규탄하는 집회는 주말마다 계속되고 있다. 전세대란 속에서 전셋값 지수는 34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고, 3040세대는 "지금 집을 못 사면 영원히 무주택자가 된다"는 공포감에 쫓겨 '패닉 바잉'에 나서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전공의 파업으로 의료 현장에서는 환자 대기시간이 길어지고 일부는 헛걸음을 해야 했다. 개업의를 중심으로 한 대한의사협회 총파업도 예고돼 있다.
이런 혼란의 와중에 국정을 수습할 국정 리더십이 제대로 작동하느냐는 의문이 커지고 있다. 부동산 정책 등의 컨트롤 타워가 돼야 할 청와대는 도리어 부동산 민심에 기름을 끼얹었다. 대통령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5명이 사의 표명한 후 인터넷에선 "공직은 짧고 집값은 길다"는 식의 조롱과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작년 12월 다주택 청와대 참모들에게 "1채만 남기고 팔라"고 지시한 이후 8개월째 이어진 다주택 참모 논란을 수습하지 못해 일괄 사퇴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이런 수모까지 당한다. 다주택 처분 문제를 두고 청와대 참모들 간 언쟁이 벌어졌다는 얘기도 들린다. 지금 청와대가 자중지란 벌일 때인가.
거대 의석을 앞세워 입법 폭주를 해온 여권은 국민 화나게 하는 언행만 골라서 한다. 민주당 원내대표는 "부동산 정책을 무력화하기 위한 가짜 뉴스가 난무한다. 강력 차단하겠다"고 했다. 무슨 일만 벌어지면 남 탓, 언론 탓이다. 국회에서 "부동산 값이 올라도 문제없다. 세금만 열심히 내라"고 발언한 여권 의원은 서울 강남에만 3채를 가진 다주택자로 밝혀지자 "나는 어쩌다 다주택자가 됐다"고 했다. 국민은 고의적 투기꾼이고 자신은 '어쩌다 다주택'인가.
민주당 의원들은 "문재인 정부 성공을 위해선 윤석열 검찰총장이 뽑혀 나가야 한다" "검찰총장 해임 결의안을 준비하겠다"며 검찰총장 흔들기에 총력전이다. 추미애 법무장관의 법치 파괴식 검찰 인사에 대해선 "승진자들은 모두 검찰 내 신망이 두터운 분들"이라고 두둔한다. 민주당 전당대회 출마자들이 폭우 피해가 예고된 지역에서 잇달아 술자리를 가진 사실도 드러났다. 지금 정권 안에서 누가 나랏일을 걱정하고 국정을 챙기는지, 지켜보는 국민은 조마조마하다.
-조선일보(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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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던져놓고 문제 생기면 땜질, 나라가 실험장인가
정부·여당이 16조원 규모의 '뉴딜 펀드'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원금 보장'을 내세웠다가 논란을 빚자 이틀 만에 철회했다. 국민 세금으로 펀드 손실을 메워주느냐는 등의 비판이 제기되자 원금 보장은 아니라면서 물러섰다. 투자 상품의 손실 보전을 금지한 자본시장법에 위반되기 때문에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되지도 않을 정책을 덜컥 내놓았다가 망신당했다.
임대사업자 세제 혜택을 줄이기로 한 조치는 한 달도 안 돼 수정에 들어갔다. 정부를 믿고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다주택자들이 반발하자 양도소득세 중과 제외 대상을 넓히는 등의 보완책을 부랴부랴 내놨다. 전·월세 상한 규제로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는 부작용이 시작되자 전·월세 전환율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한다. 부실 대책과 땜질 보완이 반복되면서 이제 부동산 정책은 냉소와 조롱의 대상이 됐다. 인터넷에선 "월세를 전세로 돌려 보증금을 '뉴딜 펀드'에 넣자"는 등의 비아냥이 등장하고 있다.
최저임금을 무리하게 올려놓고는 저소득층 일자리가 사라지고 자영업 서민경제가 무너진 뒤에야 '속도 조절'을 하겠다고 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주 52시간 근무제를 강행하더니 기업 현장에서 비명이 터져나오자 그제야 보완책 마련에 나섰다. 부처 간 조율도 거치지 않고 '그린벨트 해제 검토' 방침을 내놓았다가 비판이 쏟아지자 없던 일로 하기도 했다. 잘못 설계된 정책을 밀어붙였다가 문제가 터진 뒤에야 땜질하는 악순환이 국정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민주당은 연 24% 수준인 법정 최고 이자율을 연 10%로 낮추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저소득층 이자 부담을 줄여주자는 취지엔 누구나 동의하지만 이것 역시 뻔한 부작용이 예상되는 부실 대책에 지나지 않는다. 이자는 대출이라는 상품의 가격이다. 연 19%에 달하는 저축은행의 대출금리는 고금리라도 쓰겠다는 급전(急錢) 수요와, 돈 떼일 위험성이 큰 점이 반영된 시장 가격이다. 이를 강제로 연 10% 밑으로 낮추면 신용 취약 계층은 제도권 금융에서 밀려나 사채시장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일단 던져놓고 보자'는 막무가내 정책이 경제적 약자와 서민층부터 타격 입히고 있다.
-조선일보(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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