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治 파괴하는 최고의 기술자는 법률가
판사 출신 與 의원 발의 法案, 독재자 사법 장악 방식 똑같아
김명수 대법, 이미 法 흔드는데.. 법률가, 법치 파괴 선봉 서려나
판사 출신의 한 로펌 대표가 얼마 전 식사 자리에서 “판사가 법복을 벗고 곧장 정치로 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했다. 법이 정치에 오염되는 신작로를 닦는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 본성(本性)을 감안한 말이었다. 오욕칠정(五慾七情)을 가진 판사가 정치인으로서 몸담으려고 하는 특정 정당에 유리하거나 입맛에 맞는 판결을 내리려는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퇴임 직전 그런 판결을 함으로써 그 정당과 지지층에게 러브콜을 보내려는 유혹을 떨쳐낼 수 있을까. 그 판사가 법복을 벗기 직전 내린 판결의 순수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지금 여당엔 법복을 벗자마자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된 세 사람이 있다. 이탄희, 이수진, 최기상 의원이다. 셋 다 양승태 대법원을 적폐로 몬 인물이다. 이들이 국회로 가서 한 일이 있다. 약속이나 한 듯 각각 ‘법원조직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탄희 의원 발의 법안은 대법관을 현재의 14명에서 48명으로 늘리자는 것이다. 이수진 의원 법안은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법관과 비(非)법관 위원을 동수로 하는 사법행정위원회를 신설하자는 내용이다. 최기상 의원 법안은 법관인사위원회 위원을 11명에서 21명으로 늘리고, 그중 10명을 법관이 아닌 일반인으로 채우자는 것이다.
이들이 발의한 법안 내용은 섬뜩할 정도로 독재 정권이 취해온 방식을 똑같이 따르고 있다. 대법관 정원을 늘리자는 것, 법관 인사를 외부에서 관여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베네수엘라 독재자 우고 차베스는 2004년 대법관 정원을 20명에서 32명으로 늘리면서 그 자리를 정권의 충견(忠犬)들로 채웠다. 이후 2013년 차베스가 사망하기까지 베네수엘라 대법원이 내린 판결 4만5000여 건 중 정권에 반하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폴란드의 막후 독재자 야로스와프 카친스키가 이끄는 법과정의당(PiS)은 2015년 집권하자마자 ‘사법 개혁’ 기치를 들고 판사 정년을 낮추고, 판사 인사를 사실상 의회가 좌우하게 만들었다. 사법부 독립은 무너졌고 판사들은 친(親)정권 인물들로 물갈이됐다.
여당의 판사 출신 의원 3인방이 법원을 ‘개혁’하겠다고 낸 법안에도 그 나름의 취지는 있다. ‘대법관 한 사람이 처리해야 할 사건이 너무 많고, 대법관 구성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사법 행정과 법관 인사에 외부 통제와 관여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법원 개혁 논리가 현실에선 삼권분립이라는 민주 국가의 핵심 시스템을 붕괴시켰고, 사법부를 정권의 시녀로 전락시키는 결과로 나타났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김명수 대법원 체제에서 이미 법은 흔들릴 대로 흔들리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 지사, 은수미 성남 시장,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동생 등 여권 인사에 대해서는 온갖 억지 논리로 무죄를 내리거나 감형(減刑)했고, 문 대통령을 비판한 대자보를 대학 캠퍼스에 붙인 청년에 대해선 대학이 처벌을 원치 않는데도 유죄판결을 내렸다. 하버드대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에서 “독재자는 법률을 차별적으로 적용해 정적(政敵)을 차단하고 동지는 보호하는 강력한 무기를 손에 넣는다”고 했다. 독재는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법원이 정권의 적을 차단하고 동지를 보호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는 있는가.
독재 정권하에선 합법과 불법이 언제든 전도(顚倒)된다. 합법의 이름으로 폭력이 일상화된다. 그렇게 법치를 파괴한 최고 기술자들은 항상 법관과 법률가였다.
-조중식 부국장 겸 사회부장, 조선일보(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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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와 ‘법에 의한 통치’ 차이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만드는 팟캐스트 방송 ‘민주주의 엔진룸’을 종종 듣는다. 존 햄리 CSIS 소장이 지난 7월 미국 민주주의의 근간을 토론해 보자며 만든 시리즈다. 미국 정부의 전직 고위 당국자나 장성들이 출연해 ‘어떻게 시민의 사생활을 존중하면서 전자 정보를 수집할 것인가’ ‘민주주의 국가는 어떻게 전쟁을 하는가’처럼 흥미로운 주제들을 논한다.
처음엔 미국 사회를 이해하려고 이 방송을 듣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득 어떤 대목은 한국 사람들도 꼭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방송에는 변호사 출신인 수잰 스폴딩 전 국토안보부 차관이 출연해 ‘법치(Rule of law)’와 ‘법에 의한 통치(Rule by law)’의 차이를 설명했다. 스폴딩 전 차관은 “법을 통한, 법에 의한 통치는 법이 통치자에게 봉사하게 만든다. 반면 법치는 법을 앞세우는 것"이라면서 말했다. “국가 안보를 지키는 변호사로서 우리는 자주 이런 얘기를 했다. 누가 우리의 고객인가? 고객은 대통령이 아니다. 우리의 고객은 미국 국민과 헌법이다.”
두 번째 방송에는 제이미 거렐릭 전 법무부 부장관이 출연해 ‘미국의 치안과 정의’를 논했다. 햄리 소장은 “요즘 법무부 장관이 정치적이란 얘기가 많이 들린다"며 “법무부 지휘부가 정치인들에 의해 임명되는데 실제로는 어떻게 돌아가나”라고 물었다. 거렐릭 전 부장관은 “예컨대 환경보호를 더 중시한다든가, 마약 단속에 우선순위를 둔다든가 그런 법무부의 정책과 우선순위는 행정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면서 말했다. “바뀌지 않아야 할 근본적 결정은 누가 수사를 받아야 하고 누가 기소되어야 하는가다. 누가 기소돼야 하는가를 정치인이 결정해서는 안 된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홈페이지의 민주주의의 엔진룸 팟캐스트 소개 페이지
햄리 소장은 거렐릭 전 부장관에게 “의회와 대통령은 선거를 거쳐 정당성을 얻지만 사법부는 그렇지 않다. 사법부의 정당성은 어떻게 형성되는가”라고도 물었다. 거렐릭 전 부장관은 “사법부는 정치를 초월해 있는 것처럼 보임으로써 정당성을 얻는다”고 답했다. “판사들이 정당의 이익을 대리하는 것으로 인식되면, 미국인들은 사법부에 필요한 신뢰를 주지 않을 것이다. 그 신뢰가 사법부가 지닌 전부다."
미국 사회에서 이런 토론이 이뤄지는 것은 물론 미국 법무부가, 사법부가 대통령과 정치에 휘둘리고 있다는 문제 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미국에서는 ‘법치’와 ‘법에 의한 통치’가 어떻게 다른가란 토론이 이뤄지고 있다.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과 헌법’에 복무하려고 애쓰는 관료들도 찾아볼 수 있다.
요즘 한국 정부에, 법무부에, 사법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일일이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묻고 싶고, 물어야 한다. 지금 한국은 ‘법치’ 사회인가, 아니면 ‘법에 의한 통치’가 이뤄지는 사회인가. 우리 행정부와 사법부의 고객은 대통령인가, 아니면 국민과 헌법인가.
-김진명 워싱턴 특파원, 조선일보(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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