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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격대 아니면 나팔수만 보이는 與黨] [조선 朋黨정치 화려한 부활] [과거를 뒤집으려는 자들의 두려움]

뚝섬 2020. 10. 5. 07:09

 

돌격대 아니면 나팔수만 보이는 與黨

 

열린우리당 실패 상기하자면서 내부 의원들 입단속만 치중
금태섭 의원 징계 관철은 다른 의견 不容한다는 메시지
5공 시절보다 더한 言路 차단…권력 妄動 방기한 책임 져야

 

지난 4월 총선에서 승리한 후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당선자 전원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 내용은 2004년 열린우리당 실패의 교훈을 잊지 말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승리에 취했고 과반 의석을 과신해 겸손하지 못했다”고 했지만, 사실 강조점은 “자신의 생각보다 당과 정부, 국가와 국민의 뜻을 먼저 고려해서 말과 행동을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데 있었다. 풀어 말하면, ‘튀려고 하지 말고’ 당에서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이다. 그 후 민주당은 공수처 법안 투표에서 당론을 거스르고 기권 표를 던진 금태섭 전 의원에게 징계를 내렸다. 그 건으로 공천을 못 받아 선거에 출마도 못 한 금 전 의원에게 또다시 징계를 내린 것이다. 굳이 이렇게까지 처벌할 필요가 있었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특히 초선들에게는 이 대표가 편지를 통해 던진 경고가 결코 빈말이 아니라는 걸 실감하게 해 주는 일이었다. 이렇게 여당 의원들은 ‘군기’가 잡혔다.

 

추석 연휴를 마치고 돌아온 의원들은 지역구민들이나 친척들에게 문재인 정부 국정 운영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제대로 정당정치가 돌아간다면 그런 의견들이 당내 논의나 국회 활동을 통해 활발하게 제기되어야 하지만 이런 역할을 여당 의원들에게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동안 여당 의원들은 청와대의 나팔수나 돌격대 이외의 모습을 보여준 바 없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그동안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을 겪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여당의 이런 무기력 또한 매우 드문 일이다. ‘제왕적 당 총재’라는 비판을 받아왔던 김영삼, 김대중 정부 때에도 아들 문제로 인한 잡음이 끊이지 않자, 자식 문제라는 사안의 예민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우려를 대통령에게 제기한 건 여당 의원들이었다. 심지어 전두환 정권하에서도 여당은 지금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1985년 전두환 정권이 학원 소요 관련 학생들을 격리 수용해서 ‘선도 교육’을 하겠다는 학원안정법을 추진했을 때 여당인 민정당 내에서도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고, 반대 입장을 천명한 원내총무 이종찬은 이로 인해 경질되었다. 딴소리를 할 수 없는 지금의 여당은 김영삼, 김대중 정부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전두환 시절의 여당만큼도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는 것이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발생한 ‘노무현 탄핵’ 여파 속에서 신생 정당 열린우리당은 152석을 차지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당선자 가운데 3분의 2인 108명이 초선이었다. ‘백팔번뇌’라고 불릴 만큼 이 초선 의원들은 사안마다 문제를 일으켰고 이런 혼란 속에 당 의장의 임기는 4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더욱이 노무현 대통령이 ‘당정 분리’를 맹목적으로 지키면서 여당은 더욱더 통제되지 못했다. 노 정부가 결정한 이라크 파병에 대해 반대의 선봉에 선 것도 열린우리당 의원들이었다. 결국 당정 분리는, 노 전 대통령이 임기 말 토로한 대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경고 편지를 보내고 금 전 의원에 대해 반복해서 ‘본때를 보여준 건’ 바로 이러한 ‘열린우리당의 교훈’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그때와는 정반대로 여당에서 딴소리가 아예 나올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하지만 정당의 역할은 시민사회와 정부를 연결해 주는 것이다. 다양한 국민의 소리를 듣고 그걸 권력층에 전달하는 것이 여당의 역할이다. 당정 분리를 위해 당의 목소리를 듣지 않겠다는 노 전 대통령의 생각이 애당초부터 잘못되었던 것인 만큼이나, 여당 의원들의 입을 틀어막아 다른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도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지금의 여당은 정치적 소통의 매개체이거나 하의상달(下意上達)의 통로라기보다는, 대통령과 청와대를 홍보하고 수호하며 그 반대 의견을 억압하고 비판하는 전위대로 기능하고 있다. 현 정권의 편협함에는 이처럼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여당의 무능함도 한몫을 하고 있다.

 

정치의 세계에서 언로(言路)는 인체의 혈관과 같은 것이다. 혈관이 막혀 피가 제대로 돌지 않으면 건강에 치명적 위험이 오는 것처럼 언로가 막히면 권력은 추락할 수밖에 없다. 여당이 입을 다물면 권력 집단 내부의 조기 경보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는다. 결국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일을 가래로도 막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때는 당정 분리로 인해 언로가 막혔다면 이번에는 당 내외의 압력 속에 여당 의원들의 입에 재갈이 물려졌다. 더불어민주당은 과연 열린우리당의 실패와는 다른 길로 가고 있는 것일까.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조선일보(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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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朋黨정치 화려한 부활

 

민주당 금태섭 전 의원이 작년 9월 '조국 사태' 때 당 지도부의 방침과 달리 혼자 비판적인 입장을 밝혔을 때 민주당 안에서는 "21대 총선 공천이 어렵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럼에도 정치인에게 생명과도 같은 공천 탈락 이외에 추가로 어떤 '보복'이 있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런 예측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금 전 의원은 당내 경선에서 친문(親文) 지지자들을 등에 업은 신예 후보에게 패해 총선에 나서보지도 못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떠나가는 금 전 의원 등에 끝내 '경고'라는 징계의 칼을 꽂았다. 21대 국회 출범 닷새를 앞두고 국회 의원회관에서 방을 빼고 있을 시점이었다.

민주당 윤리심판원은 금 전 의원이 작년 12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 표결 때 '찬성' 당론(黨論)을 어기고 기권표를 던진 것을 징계 사유로 꼽았다. 진짜 징계 이유가 무엇이든 민주당 안에서조차 "의원 징계 논리로는 궁색하고 졸렬하다는 인상마저 준다"는 말이 나왔다. 당명(黨名)에서 '민주'를 사수해온 정당이 당론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의원의 국회 표결을 징계하는 것의 비(非)민주성 때문이다. "섬뜩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당 주류의 핵심 이익을 건드리면 '끝까지 응징한다'는 경고로 들린다는 것이다.

정당은 당원에게 당론을 따르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를 한다는 나라에서 양심의 자유 영역에 속하는 국회의원의 표결을, 그것도 당론과 어긋난다는 이유로 징계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민주당 주류 인사들은 '당론에 따르지 않은 의원을 징계할 수 있다'고 본 헌법재판소 판례를 거론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례가 민주당이 그토록 비민주적이라 비판했던 과거 한나라당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민주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당의 이익과 소신 사이에서 주저하던 새누리당의 비주류 의원들을 향해 "양심에 따라 자유투표를 하라"고 독려했다. 유승민 전 의원이 새누리당 주류 세력에게 '배신자'로 찍혀 어려움을 겪을 때 그를 응원한 것도 민주당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양심보다 당 기율을 내세우고 있다.

미국에서는 공화당·민주당의 온건파가 상대 당 법안에 찬성하는 크로스보팅이 일반화돼 있다. 이런 크로스보팅이 미국 정치의 극단화를 막는 완충 장치를 해왔다. 미국의 대통령이나 여당 지도자들은 전화기를 붙잡고 반대파 정치인을 설득할지언정 징계를 하지는 않는다. 반면 반대파의 싹을 잘라버리는 사화(士禍)를 반복한 조선조 정치를 '붕당(朋黨)정치'라고 한다. 정권을 잡은 붕당이 수정(修正) 실록을 써 반대파의 기록을 지우고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다시 쓰는 경우도 있었다. 민주당은 지금 조선조 붕당정치로 돌아가자는 것인가.

 

-최경운 정치부 차장, 조선일보(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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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뒤집으려는 자들의 두려움

 

무더기 과거사위 만드는 속셈은 지난 정권 '불의'로 만들려는 것

 

포퓰리즘 선거로 현재를 장악한 사람들은 미래가 아닌 과거를 독점하려 든다. 근접 과거사를 손바닥 위 공깃돌처럼 움켜쥔다. 일제강점기, 여순 반란 사건, 제주 4·3, 5·18, 세월호 사고, 한명숙 불법 정치 자금, KAL기 폭파, 백선엽과 현충원, 촛불 때 계엄사 문건, 장자연 사건….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때론 대법원의 확정 판결도, 국정원 진실위의 최종 결론도 뒤집으려 한다. 재심 청구, 진상 재조사는 기본이고, 친일 파묘(破墓)를 불사한다. 48년을 거슬러 유신 청산 특별법 제정도 시도한다. 조만간 과거 뒤집기 특별법이 여럿 탄생할 것이다. 과거사법 개정안이 지난달 국회를 통과하자 문 대통령은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6·25 민간인 학살을 재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과거 뒤집기는 주류 교체를 했다는 세력이 두려움을 느낄 때 비롯된다. B급 하류가 A급 엘리트를 몰아낸 뒤 엄습하는 두려움, 정통을 쫓아낸 이단이 갖는 두려움, 촛불 혁명을 이뤘다는 세력의 권위 부재에 대한 두려움을 닮았다. 어떤 정치평론가는 "단순 제도권 교체가 아닌, 역사적 정당성을 획득해야 권력이 계속된다고 본다"며 과거 뒤집기의 속뜻을 분석했다. 카프카는 "역사란 대개 공무(公務)에 의해 창작된다"고 했고, 흐루쇼프는 "당신들이 싫건 좋건 역사는 우리 측에 있다. 우리는 너희를 파묻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엊그제 민주당 첫 의총에서 이해찬 대표가 제일성(第一聲)으로 "현대사의 왜곡된 것들을 하나씩 바로잡아 가는 책무"를 강조할 줄은 몰랐다.

우후죽순형 과거사위를 만드는 속셈은 한풀이 군중을 앞세워 지난 정권을 불의한 것으로 만드는 데 있다. 남아공과 중남미의 경우와는 사뭇 다르다. 1984년 아르헨티나의 실종자진상규명국가위원회가 내놓은 최종 보고서 눙카마스(Nunca mas·절대로 다시는)는 민주화 이행 과정에 앞장서는 역할을 했다. 군벌의 인권범죄에는 공소시효가 없다는 전제하에 진실 규명, 책임자 처벌, 피해자 배상 같은 3대 원칙으로 정치적 중립과 화해를 지향했다. 한국형 과거사위는 정권에 따라 출렁거리며 핵심 지지층 결집용으로 쓰이기도 했고, 때론 정치 보복 그 자체가 목적이었으며, 거듭된 우려먹기가 특징이 됐다. 3차 조사는 기본이고, 5차 조사도 한다. 조사 자체를 재조사하는 무한 반복이다. 만족을 모르니 정권 부역에도 끝이 없다.

저들은 권력형 연대(連帶)도 독점했다. 정의기억연대, 참여연대, 민변만 언급해도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언필칭 솔리다리테 모임은 누가 누구랑 연대하는지 모호하다. 초(超)국경 탈(脫)경계를 지향하는 사해(四海) 연대가 아니라 닫힌 커뮤니티의 끼리끼리 결속이다. 저들은 "진영을 가른 바리케이드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폴란드의 원조 솔리다리테 운동과는 다르다. 바웬사의 자유노조는 언론 자유와 진짜 선거가 핵심 쟁취 목표였다. 소련 탱크의 캐터필러와 폭군 야루젤스키로부터 벗어나려는 연대였다. 켄 폴릿의 책 '영원의 끝'을 보면 "45년 동안 공산주의였는데도 여전히 화장실에 휴지가 없다"는 비참함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폴란드식 연대였다.

한국형 연대는 정권을 감시하는 연대도, 피압박 계층과의 연대도 아니고 어느덧 정권과 한몸인 연대가 됐다. 청와대 참모진, 장·차관, 국회의원까지 상당수가 저들 몫이다. 그러나 정권과 한 몸이 됐을 때 자신들의 세상이 온 것 같을 때 진짜 두려움은 시작된다. 과거사를 뒤집으며 타인의 묘를 파헤칠 때 머잖은 미래의 자신 모습이 어른거리고 검은 그림자 같은 두려움이 스쳐 지나가는 것이다. 저들이 노리는 검찰 개혁, 언론 개혁은 결국 내 편 만들기다. 그러나 아무리 내 편이 많아도 여전히 두려울 것이다.

 

-김광일 논설위원, 조선일보(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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