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는 먼저 온 文 정권이었다
서울시장의 재건축·재개발 승인권 중앙정부가 갖겠다는 부동산대책
야권 서울시장 나올까 두려운가 ‘문재인 보유국’이 ‘문재인 서울시’ 될라
역시 선거의 귀재 정부다. 가덕도 신공항을 띄워 부산시장 보궐선거 판을 흔들어놨듯, 서울에선 재건축·재개발 승인권을 장악해 야권 시장 주자들을 무력화할 모양이다.
문재인 정부가 오늘 발표할 주택공급 대책에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가 들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행법상 정비구역 지정·인허가·해제 권한은 지방자치단체장이 갖고 있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2011년 당선된 지 한 달도 안 돼 처리한 것이 강남구 개포동 주공2, 4단지 재건축 보류였다.
아파트로 인한 서울시민 불만이 들끓는 지금, 국민의힘 서울시장 예비후보들은 물론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역시 재건축·재개발 신속 추진을 철석같이 약속했다. 이 권한을 중앙정부가 뺏어가겠다는 거다.
문 정권이 오로지 국민을 위해, 사업속도를 높이려고, 그것도 한시적으로 인허가권 행사를 검토한다지만 얕은수가 빤하다. 주택공급 칼자루는 정부가 쥐었으니 야권 시장 뽑아봤자 소용없다는 암수(暗數)다. 그렇게 뺏은 권력을 돌려줄 리도 없다. 이 정권의 말 뒤집기가 어디 한두 번인가.
그러고 보면 ‘박원순 서울시’는 5년 반쯤 먼저 온 문재인 정부였다. 반(反)시장적 부동산 공급 규제가 대표적이다. “뉴타운사업은 시민들을 피눈물 흘리게 하는 나쁜 정책”이라는 박원순 이념대로 2012∼2018년 393곳이 해제됐다. 한국주택학회가 서울시의회 의뢰로 2019년 “사업이 원활하게 진행됐다면 2014∼2024년 착공됐을 주택 수가 24만8893호”이고 “미착공 물량이 가격 상승의 원인이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연구 보고서를 내놨을 정도다.
뉴타운 대신 박원순이 강조한 도시재생사업이 서민들 살기 좋게 해줬다면 또 모른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서울시 산하 SH공사 사장 시절 박원순과 손잡고 ‘재생’시킨 관악구 난곡동엔 빛바랜 벽화만 남아있다. 좁은 골목길이며 불편한 화장실은 그대로다. 문 정권이 2018년 10조 원을 투입해 착수한 ‘도시재생 뉴딜’ 또한 주민들의 보다 나은 삶과 상관없이 벽화나 그려놓는 관변 단체들 배만 불려줄 공산이 크다.
그러고도 박원순이 3선을 할 수 있었던 건 2014년 세월호 참사, 2018년엔 야권 단일화 실패 덕이 크다. 2011년 보선에선 혈혈단신 무소속 후보인 척 나섰지만 고인은 공수처 설치 입법운동 등 사실상 좌파 정당 노릇을 해온 참여연대의 야전사령관이었다. 시장 당선 전에 광우병 시위세력 등 운동단체와 ‘시민참여형 민주정부’에도 합의했다. 탁현민 뺨치는 쇼통의 달인이 견제세력 없이 10년 장기 집권한 서울공화국을 들여다보면 문 정권 5년, 아니 이 정권이 꿈꾸는 ‘진보 20년 집권’의 결말을 짐작할 수 있다.
전면 무상급식, 서울시립대 반값 등록금 같은 박원순 복지는 문 정권이 선보일 문재인 케어, 아동수당 확대 등 복지폭탄의 서곡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모든 학생에게 제공되는 교육복지재정 규모는 늘었지만 저소득층 학생에게 돌아가는 복지재정은 줄었다는 연구가 적지 않다. 점진적 선별적 무상급식에 직(職)을 걸었던 당시 자유한국당 서울시장 오세훈이 옳았던 것이다.
박원순 집권 시절의 골목경제, 서울형 뉴딜일자리 등 혁신사업을 자랑한 백서를 보면 서울은 경쟁력도, 도덕성도 드높아졌어야 했다. 안타깝게도 세계적 컨설팅사인 키어니가 집계한 글로벌시티 인덱스에서 서울은 2020년 17위다. 2015년 11등에서 6계단 떨어졌다. 극단적 선택은 안타깝지만 박원순은 시민단체의 도덕성 추락만 입증한 게 아니었다. 시민단체 활동이 돈도 되고 권력도 된다는 전범을 문 정권에 보였다는 것이 ‘박원순 서울시’의 치명적 잘못이다.
서울시청 6층에서 박원순을 보위한 시민단체 출신 ‘6층 사람들’은 문 정권의 ‘운동권 청와대’와 다르지 않다. 서울시립대학까지 서울시 공무원 출신과 측근들을 밀어넣는 것도 참으로 흡사하다. 학생운동권이나 시민운동권이나 그들만의 이권 네트워크는 너무나 끈끈해서 마을공동체위원회 등 217개 위원회에 5000여 명, 2500여 개 사회적기업에 5만여 명이 등록돼 서울시민의 혈세로 먹고사는 상황이다.
운동권 정치의 큰 문제는 불평등이든 불공정이든 빈곤이든, ‘문제’가 해결되기를 원치 않는다는 데 있다. 밥줄과 권력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문재인 보유국’을 외치고 “문 대통령 지키기 선봉에 서겠다”는 집권당 서울시장이 탄생하면 서울시민은 ‘잃어버린 10년’을 회복할 길이 없다.
-김순덕 대기자, 동아일보(21-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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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오박안나박’ 지금도 ‘오박안나박’
10년 전 서울시장 보선때 나섰던 인물들 이번에 전원 재등장
세계에 이런 경우 있나.. 1류 경제에 갑질하는 4류 정치 안 바뀐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사표를 꺼내든 정치인들. 왼쪽부터 박영선, 오세훈, 나경원, 안철수. /연합뉴스
한국 정치의 얼굴은 4년마다 크게 바뀐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절반 안팎이 초선 의원일 정도다. 세계에 이런 나라가 드물 것이다. 그런데 이 새 인물들은 거의 모두가 1회용 소모품이다. 4년간 어디서 뭘 했는지도 모르게 사라진다. 이렇게 신참들이 무더기로 왔다가 무더기로 사라지는 가운데 막후의 주인공은 따로 있다. 언제나 ‘그때 그 사람’이다.
미국과 같은 대통령제를 하지만 한국 정치는 미국 문화와 달리 대통령 출마의 재수, 삼수가 가능하다. 김영삼은 재수, 김대중은 4수, 문재인은 재수로 대통령이 됐다. 이회창은 세 번 출마했고 당내 경선까지 포함하면 박근혜도 두 번 출마했다. 미국에선 대통령 출마를 평생 한 번의 기회로 생각하며 낙선을 자신에 대한 국민의 최종 평가로 받아들인다. 한국에선 대통령 출마는 긴 여정의 시작이며 낙선은 병가지상사다. 유권자들이 이를 용인하니 이제 정치권에선 대통령은 재수는 필수, 삼수는 선택이다. 아마도 1년 남은 내년 대선에도 지난 대선에 출마했던 이재명,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을 그대로 또 보게 될 것 같다.
한국이라면 결코 승복하지 않았을 패배를 당한 앨 고어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는 그토록 애석함에도 다음 대선에 출마하지 않았다. 미 국민 전체 투표에선 이기고도 주 선거인단 수에서 밀려 패한 힐러리 클린턴도 다시 출마하지 않았다. 출마하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미국 국민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국에선 대선에 어느 정도 득표한 패자들은 당연히 5년 뒤에 또 출마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본인들은 물론이고 유권자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는 한국 정치 문화의 장점도 있겠지만 정치인 인물 교체, 세대 교체는 어려워진다. 정치는 인물과 세대가 활발히 교체될 필요가 있는 분야다. 정치인은 특수상대성이론을 발견하는 물리학자가 아니다. 평균적 지식과 학식, 양식을 가진 보통 사람 중에 리더십 있는 사람을 고르는 것이다. 적임자를 뽑기 위해선 많은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질 필요가 있다. 정치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젊은 층이 활발히 참여해야 한다. 기회를 얻었던 사람들, 실패한 사람들이 물러나야 이 과정이 원활하게 작동한다. 한국 정치에선 반대로 소수의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회를 독점한다.
이런 한국 정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무대가 이번 서울시장 선거다. 2011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문제로 물러나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벌어졌다. 당시 야권에서 가장 지지율이 높던 무소속 안철수가 무소속 박원순에게 후보를 양보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당시 여당에선 나경원이, 야당에선 박영선이 당내 경선에서 승리해 후보가 됐다. 이때 야당 당내 경선에 출마했던 사람 중 한 명이 추미애다. 박원순은 박영선과 야권 후보 단일화에서 이기고 다시 본선에서 나경원에게 승리해 서울시장이 됐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뒤에 또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하게 됐다. 이번에는 박원순이 성추행으로 극단 선택을 해 선거를 하게 됐다. 10년 전 박원순에게 양보했던 안철수는 이번에도 제3의 유력 후보다. 여당 당내 경선은 이번에도 박영선이 선두라고 한다. 추미애도 또 서울시장을 노렸으나 법무장관으로 인심을 잃어 나오지 못했다. 야당 당내 경선 역시 이번에도 오세훈과 나경원이 선두권이라고 한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여야만 바뀌었을 뿐 등장인물은 박원순, 박영선, 나경원, 오세훈, 안철수 그대로다. 2년 전 2018 서울시장 선거 때도 이들은 그대로 등장했었다. 여당 경선이 박원순, 박영선 간에 치러졌고 안철수는 본선에 출마했다. 서울시장 선거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오박안나박’이다. 세계 정치에 이런 경우는 없을 것이다. 지난 10년간 한국 정치는 인물 면에선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여당도 그렇지만 바람을 일으켜야 하는 야당마저 그렇다.
정치인들은 언론이 문제라고 한다. 언론이 새 인물을 무시하고 기존 사람들 위주로 보도하니 인물 교체가 일어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일리는 있다. 그러나 노력하고 도전하는 신인들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야당이 그렇다. 이미 기회를 가졌던 사람들도 너무 물러서지 않는다. 선거 개근상을 줘야 할 정도다. 앞 물이 흘러가야 뒤 물이 자리를 채운다. 유권자들이 정당 이름만 보고 묻지마 투표를 계속하면 당내 터줏대감들이 욕심을 내려놓기 힘들다. 당 간판으로 득표가 보장되고 당내 경선은 유리한데 물러설 까닭이 없다. 10년 전 배우들이 옷만 바꿔 입고 전부 다시 재출동한 서울시장 선거는 낡고 뒤떨어진 한국 정치의 한 단면이다. 이래서 1류 경제에 갑질하는 4류 정치가 바뀔 수 있겠나.
-양상훈 주필, 조선일보(21-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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