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좌파 집권 너무 길었다”] [슬픈 나라의 노래]

뚝섬 2021. 2. 3. 06:28

좌파 집권 너무 길었다”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 조선일보 DB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레 묻곤 했다. 프랑스 기업인, 학자를 만나면 ‘왜 프랑스의 1인당 GDP는 독일의 85% 수준에 그치는가’를 질문했다. 같은 맥락으로 ‘왜 프랑스는 땅 넓이가 절반도 안 되는 영국과 경제 규모가 비슷한가’를 물었다.

 

단연 많이 들은 응답은 “미테랑 집권기가 너무 길었다”는 것이었다. 1981년 대선에서 승리한 사회당의 프랑수아 미테랑은 7년 임기를 연임해 1995년까지 재임했다. 1958년 지금의 헌법 체제가 출범한 이후 처음 집권한 좌파가 한풀이에 들어간 시절이었다.

 

신호탄은 대대적 기업 국유화였다. 미테랑 취임 직후 한꺼번에 민간 은행 36곳을 정부 소유로 바꿀 정도로 과격했다. 근로자의 경영 참여를 제도화해 노동 단체 권력을 키웠다. 2차 대전 이후 ‘영광의 30년(Trente Glorieuses)’이 저물어 신발 끈을 다시 묶어야 할 시기에 사회주의 전환을 시도했다. 미래가 불안한 민간의 두뇌들은 외국으로 떠났다.

 

미테랑은 복지 씀씀이를 대폭 늘렸다. 그가 권력을 잡은 14년간 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 비율이 15%에서 28%로 점프했다. 이 비율이 오늘날 31%인 걸 보면 프랑스 복지는 미테랑 혼자 늘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년 1000조원 이상을 사회복지에 쏟아붓는 중이다.

 

미테랑은 ‘책상 위 이론’을 실행해 혼란을 부른 원조다. 그는 1983년 높은 실업률을 해소하겠다며 연금 수령 연령을 65세에서 60세로 갑자기 낮췄다. 장년층을 대거 퇴직시키고 젊은이들로 채우면 일자리 문제가 해결된다는 몽상(夢想)이었다. 결국 은퇴자들에게 한꺼번에 천문학적 액수의 연금을 지급하느라 나라가 휘청거리는 역습을 당했다. 당시 생긴 ‘빚의 지옥’에 프랑스는 여전히 갇혀 있다.

 

민주주의가 정착한 선진국에서 좌파 집권기는 보통 우파보다 짧다. 프랑스는 현재 헌법 선포 이후 63년 중 19년, 영국은 2차 대전 이후 76년 중 30년, 독일은 서독 정부 수립 이후 72년 중 20년이 좌파 통치기였다. 우파는 시장을 중심에 놓기에 사실 누가 집권해도 노선상 큰 차이가 없다. 반면 좌파는 주류의 방향을 틀어버리는 데 집중한다. 그래서 좌파가 집권하는 시기에 그들이 얼마나 헤집어놓느냐에 따라 나라의 미래가 좌우된다.

 

프랑스는 2차대전 종전 이후 30년간 긴 호황을 누렸다. 라이벌인 이웃 나라 독일이 동서로 갈려 있던 시기였다.

 

오늘날 독일과 영국이 프랑스보다 형편이 나은 것은 좌파 총리가 등장하더라도 미테랑 집권기 같은 시장경제 암흑기에 빠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일은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노동계 반대를 억누르며 노동 개혁을 이뤄냈고, 영국은 토니 블레어가 ‘제3의 길’을 주창하며 온건한 개혁을 추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슈뢰더·블레어보다는 미테랑에 가깝다. 문 대통령 수하에 있는 사람들이 20년은 집권하겠다고 하니 섬뜩할 따름이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조선일보(21-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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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나라의 노래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카슨 매컬러스 '슬픈 카페의 노래'.

 

라이먼과 마빈은 어밀리어의 귀중품을 몽땅 가져갔다. 카페의 테이블마다 무시무시한 욕을 새겨놓았고 사탕수수 한 통을 부엌 바닥에 온통 쏟아붓고 과일 잼이 든 병들을 다 깨뜨렸다. 그들은 증류기를 완전히 박살 내고 새로 산 커다란 응축기와 냉각기도 망가뜨린 뒤 오두막에 불을 질렀다. 그들은 생각해낼 수 있는 것은 모두 파괴해버렸다. 그런 뒤 두 사람은 함께 도망쳤다.  -카슨 매컬러스 ‘슬픈 카페의 노래’ 중에서

 

영화 ‘판도라’를 관람한 뒤 “탈원전 국가로 가야 한다”고 말했던 현 정부는 2017년, 신규 원전 건설을 백지화하며 탈핵 시대를 본격 선포했다. 태양광 사업으로 국토는 깎여나갔고 한국전력은 심각한 적자에 시달리고 있으며 수많은 인재가 일자리를 잃었다. 그렇게 세계 최고의 기술을 자랑하던 국가의 미래 사업 기반이 무너졌다. 그런데 북한에 원전 건설을 제안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문서가 발견돼 정권의 이적 행위 의혹으로 번지고 있다.

 

1951년에 출간된 미국 작가 카슨 매컬러스의 소설 ‘슬픈 카페의 노래’는 오갈 데 없던 꼽추 라이먼을 사랑한 어밀리어의 이야기다. 그녀는 라이먼을 집에 들이고 카페도 연다. 사람들은 저녁이면 들러 작은 행복을 누렸다. 하지만 라이먼은 어밀리어에게 앙심을 품고 있던 전과자 마빈과 어울리게 되고 그녀의 인생 모두를 훔치고 부수고 불을 지른 뒤 달아난다. 어밀리어는 절망에 빠지고 그녀의 카페가 사라진 마을은 다시 황량하고 쓸쓸해진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어떻게 하면 그가 웃을까, 무엇을 주면 기뻐할까 고민한다. 주머니가 비면 빚을 내서라도 선물한다. 반면 과분한 애정을 받는 쪽은 감사는커녕 더 욕심내고 윽박지르고 빼앗으며 폭력을 일삼기도 한다.

 

일부 국민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있는 정권은 이적 행위 의혹에 대해 터무니없다며 화만 내고 있다. 북한이 별별 욕설을 퍼부어도 침묵하는 그들, 자국민의 고통에는 끝없이 눈감는 정부는 주적에게 무엇을, 얼마나 더 주고 싶은 것일까? 일방적이고도 무한한 그들의 사랑이 ‘슬픈 나라의 노래’로 끝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김규나 소설가, 조선일보(21-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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