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 균등 사회가 완벽주의 신앙 낳아
학원·피트니스센터·결혼정보회사·출판사… 완벽 좇는 자들의 욕구 이용해 돈 번다
완벽주의의 함정
클라우스 베를레 지음|박규호 옮김
소담출판사|320쪽|1만5000원
대한민국 서울 강남의 '엄친아' 철수를 생각해 보자. 엄마 뱃속부터 두뇌 계발을 위해 모차르트를 듣고, 네 살 때 영어 유치원에 입학한다. 사립 초·중·고등학교에 이어 명문대학에 진학한 그는 각종 자격증 따기, 인턴십, 교환학생과 해외 봉사 등을 통해 완벽한 스펙을 쌓는다. 그리고 대기업에 입사. 초고속 승진을 위해 남보다 일찍 출근해 더 늦게 퇴근하고 '자발적으로' 주말까지 반납하며 미친 듯 일한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완벽한 짝을 만나기 위해 결혼 정보회사에도 등록하고, 장차 태어날 2세와 퇴직 후를 위해 각종 보험과 펀드 상품에도 가입한다. 인생의 노년을 멋지게 마무리할 장례를 위해 일찌감치 묏자리도 예약해둔다.
대한민국뿐이랴. 독일 저널리스트가 쓴 이 책을 보면 '완벽한 삶'에 대한 열망과 질주는 어디나 같다. 위대한 이념이 사라진 21세기의 마지막 신앙이 됐다. 더 좋은 직장, 더 많은 수입, 더 매력적인 몸, 더 멋진 집…. 모든 사람이 한가지 주문을 왼다. "완벽한 삶은 가능해. 네가 행복하지 못한 것은 다른 누구의 탓도 아닌 바로 네 탓이야.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
◇원인: 가능성이라는 이름의 독재
최근 출간된 한병철 독일 카를스루에 조형예술대학 교수의 '피로사회'(문학과 지성사)가 "현대사회는 성과사회이고 자기 착취 시대"라고 철학적으로 규정했다면, 이 책은 일상적인 사례를 통해 '완벽주의 성공신화'를 파헤친다. 어쩌다 완벽주의는 현대사회의 신앙이 됐나. 저자는 무한한 가능성이 오히려 화근이었다고 말한다. "누구나 원한다면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시장경제의 중요한 원칙이 우리를 완벽주의로 내몰고 있다." 예전엔 구두장이 아들은 좋든 싫든 구두장이를 물려받았다. 하지만 이젠 구두장이 아들도 얼마든지 빌 게이츠의 뒤를 잇는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기회가 다양해진 데는 대가가 따른다. 그만큼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커졌다. 완벽주의 노력의 이면에는 결정에 대한 압박, 부담스런 개인의 책임감이 자리 잡고 있다. 무한 가능성의 세계에서 실패란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때 스포츠용품업체 나이키가 내건 광고 문안은 '1등 지상주의'에 생사를 건 시대의 상징이었다. "(너는) 은메달을 딴 게 아니라 금메달을 놓친 거라구." 그러다 보니 동메달을 딴 선수가 은메달을 딴 선수보다 더 큰 행복을 느끼는 기이한 결과가 생기기도 한다. 2등을 한 선수는 정상에 대한 강박에 시달리지만 3등을 한 선수는 시상대에 선 것만으로도 기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터넷을 필두로 한 기술 발전은 우리 모두를 시도 때도 없이 전 세계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만든다. 예전에는 동창생이 성형외과 의사가 돼 큰돈을 벌었다는 소식을 동창회에 가서야 들었지만 이제는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수시로 접한다.
◇증상: 이득 보는 사람은 따로 있다
최고를 향한 집착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어진다. 일찍부터 잠재력을 발굴하기 위해 조기 교육에 힘쓰고, 기업이 원하는 인재가 되려고 대학에서 열심히 스펙을 쌓는다. 직장에선 더 심각하다. 이제는 쿨하지 못한 '일 중독자'는 사라지고 스스로 신나서 일하는 '익스트림 자버(extreme jobber)'가 등장했다. 둘의 결정적인 차이는 자신을 희생자라고 여기느냐에 있다. 그밖에 음식, 건강, 취미, 휴가까지 완벽의 꿈에서 자유로운 분야는 없다.
문제는 개인이 완벽을 향해 질주하는 동안 정작 이득을 챙기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는 것. 저자는 "교육, 건강, 패션 등 모든 분야에 이상형을 부여한 기업들이 완벽해지려는 개인의 욕구를 이용해 돈을 벌고 있다"고 지적한다. 조기 교육 기관, 값비싼 학원, 피트니스센터와 결혼 정보센터, 각종 실용서를 팔아치우는 출판사…. 완벽을 향한 코칭산업도 급성장했다. 돈 문제는 물론 섹스, 파트너십, 직장과 가정, 다이어트와 식사, 창의력과 소통까지 모든 영역에 코치가 존재한다. '완벽주의 산업'은 항상 사람들에게 도달 가능할 듯한 조금 더 높은 목표를 제시한다.
◇해결책: 적당히 좋은 것이 완벽보다 낫다
비극은 '남과 다르게' 완벽해지려 애썼더니 '남들처럼' 완벽한 사람이 되고 만다는 데 있다. '완벽주의의 모순'이다. 자신만 의자 위에 올라서면 남보다 돋보이겠지만 모두가 의자 위에 올라서면 다 같이 평범해지고 만다.
저자는 "적당히 좋은 것이 완벽한 것보다 나은 법이니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모든 걸 잘하려고 약점을 교정하기보단 강점을 더 키우라"고 권한다. 결론은 다소 맥빠지지만 다양한 사례 분석을 토대로 파헤친 완벽주의의 모순과 이에 대한 경고는 새겨들을 만하다.
-조선일보(12-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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