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헌(旅軒)이 바닷가에 가서 객사(客死)한 운수나 청음(淸陰)이 심양에 볼모로 잡혀간 운수나 동계(桐溪)가 할복하고 난 다음에 죽지 못하고 모리재(某里齋)에 은거한 운수나 모두 같은 운수이다'. 이 대목은 탄옹(炭翁) 권시(權ㅇ·1604~1672)의 문집에 나오는데, 병자호란(1636년) 직후에 걸어간 세 사람의 행보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문구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여헌(旅軒)은 장현광(張顯光·1554~1637)이고, 청음(淸陰)은 김상헌(金尙憲·1570~1652), 동계(桐溪)는 정온(鄭蘊·1569~1641)을 말한다. 세 사람 모두 당대의 일급 인물들이자 충신들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헌'(旅軒)이란 호의 의미는 '여인숙'이라는 뜻이다. 정말 멋진 호이다. 테레사 수녀가 죽을 때 "인생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이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하는데, 조선 중기의 도학자였던 장현광은 자신의 호를 '여헌'(여인숙)으로 삼았던 것이다. '17세기 영남학파'를 전공한 김학수(46) 선생의 이야기에 따르면 여헌은 온화한 기품으로 주변 사람들을 감화시켰다고 한다. 여헌이 방에서 이야기를 하면 그 온화한 기운이 방에 가득 퍼져서 같이 앉아 있던 사람들의 마음도 덩달아 환해지곤 하였다는 것이다. 인조의 사부 역할을 하기도 했던 여헌은 병자호란의 치욕을 겪고 포항시 죽장면 입암리의 산속으로 은거하였고, 여기에서 죽었다.
청음은 당시 척화파의 대표였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 고국 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만은…' 이라는 시를 남기고 끌려간 청음은 4년간 이국에서 감옥살이를 하여야만 하였다.
동계는 치욕을 이기지 못하고 할복을 하였으나 모진 목숨을 끊지 못하고 거창의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 산속의 동네 이름도 모리(某里)라고 지었다. '아무개 동네'라는 뜻이다. 부끄러워서 제대로 이름을 지을 수도 없고, 그냥 '아무개 동네'라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 '모리'(某里)였다.
요즘 언론에 불명예스럽게 거명되는 이상득, 최시중 그리고 임기 중도에 그만둔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생각난다. 나이 70대는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의 경지라고 했는데, 우리 사회의 70대 원로들은 충절(忠節) 때문이 아니라 돈(錢) 문제에 엮여서 인생 말년을 이런 식으로 마감하는 것은 우울한 일이다.
-조용헌살롱, 조선일보(12-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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