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무게의 은 가격과 맞먹은 도자기… ]
[도자기(陶瓷器)]
[임혜숙 박준영 장관 지명 철회해야]
[장관 후보자 아내의 도자기]
같은 무게의 은 가격과 맞먹은 도자기…
징더전 도자기, 유럽서 산업 스파이 보낼 정도였다
지난 2일 국제도자협회(IAC) 총회가 중국 징더전에서 폐막했습니다. IAC는 세계 유일의 국제 도자 기구로, 2년마다 한 번씩 세계 각지에서 총회를 여는데요. 우리나라 경기도 이천에서도 2004년 총회가 열린 적이 있지요.
이번에 총회가 열린 징더전은 세계에서 유명한 도자기 도시 중 하나랍니다. 도시 별명은 ‘천년 도자 도시’예요. 중국 송나라 시기였던 1004년 황제 진종이 징더전의 도자기에 감탄해서 자신의 연호인 ‘경덕(景德)’을 하사한 게 도시 이름의 시작입니다. 징더전(景德鎭)의 우리 발음은 ‘경덕진’입니다.

징더전 황실 가마 박물관의 도자기 모습. 아래엔 도자기 파편들이 쌓여 있습니다. 징더전 장인들은 도자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차 없이 부숴버렸다고 해요. /전종현 저널리스트
징더전은 송나라에 이어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 시기에 걸쳐 전성기를 누립니다. 그 비결은 흙이었어요. 우윳빛으로 아름다우면서도 단단한 최상급 백자를 만드는 데 필요한 결정적 재료가 근처 마을에서 안정적으로 공급됐거든요. 명나라와 청나라 때에는 황실 전용 가마가 설치되기도 합니다. 징더전의 장인들은 약간의 흠만 있어도 도자기를 부쉈는데 그 파편만 2000만 점에 달했대요. 황실뿐 아니라 일반 사람들이 사용하는 도자기도 이곳에서 활발히 만들어졌어요. 19세기 징더전에는 민간 가마 9000여 개가 운영됐습니다. 도자기는 징더전 경제의 핵심이었던 겁니다.
징더전 도자기는 국내에만 유통되지 않았습니다. 중국의 주요 수출품 중 하나였어요. 원나라 때는 페르시아에서 건너온 코발트 가루를 활용해 만든 청화백자가 이슬람 세계로 팔려나갔어요. 이후 수백 년 동안 유럽에서는 징더전 도자기에 열광했습니다. 도자기를 가리켜 ‘차이나’라고 할 정도였죠. 초반에는 왕과 귀족들이 장식장에 모으는 아주 귀한 물건으로 취급을 받다가, 유럽 경제가 급성장하며 수요가 폭발한 이후로는 곳곳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렸어요. 그래서 징더전에서는 유럽 구매자가 원하는 스타일로 주문 생산을 받을 정도였답니다.
징더전 도자기는 같은 무게의 은의 가격에 이를 정도로 비쌌어요. 막대한 은을 빨아들이는 징더전 도자기의 비밀을 풀기 위해 유럽 전역에서 연구가 펼쳐졌고, 징더전에서는 산업 스파이가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1700년대 독일 마이센에서 처음으로 징더전과 비슷한 백자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후 프랑스 세브르 지역에서도 도자기가 활발히 만들어졌고, 영국에서는 ‘본차이나’라는 이름의 도자기가 생산됩니다. 이렇게 도자기는 점점 유럽, 나아가 세계의 식탁을 바꾸었습니다.
징더전 도자기의 디자인은 동서양 문화가 어우러져 발전합니다. 청나라 시기 황실에선 ‘법랑채 자기’가 인기였는데요. 징더전에서 백자를 구운 뒤 황실 공방에서 장인이 그림을 그리고, 다시 구워내는 도자기였습니다. 황실 공방의 기법은 징더전으로 넘어갔고 이는 색감이 풍부한 도자기의 대량 생산으로도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방법이 다양해진 건 유럽의 예수회 선교사를 통해 유럽식 에나멜 채색이 중국 황실 공방으로 전해진 영향입니다. 밝은 윤기가 나고 정교한 그림이 그려진 징더전 도자기는 동서양 기술이 맞물린 결과였던 겁니다.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 조선일보(2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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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중국 도자기 부러워하던 유럽, 소 뼛가루로 '본 차이나' 만들어

1815~1820년 제작된 본 차이나 컵과 받침.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
최근 한 장관 후보자의 아내가 영국에서 도자기를 대량 밀반입해 논란이 됐습니다. 도자기는 영어로 차이나(China·중국)일 정도로 동아시아 지역이 유명한 줄 알았는데, 이번 사건으로 영국 도자기가 유명하다는 사실에 궁금증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도자기는 언제 발명됐고 전 세계에 어떻게 퍼져 나갔을까요?
도자기는 진흙으로 빚어 높은 온도에서 구워 낸 그릇을 말해요. 보통 1000도 이하에서 구우면 도기, 1300도 이상 높은 온도에서 구우면 자기라고 하는데, 이를 합쳐 도자기라고 불러요. 도자기의 기원은 토기예요. 신석기시대 농경과 목축 생활을 시작하면서 식량을 저장할 그릇이 필요했고 흙을 빚어 그릇 모양을 만들었어요. 도자기는 인류 문명과 함께 동서양 양쪽에서 오랫동안 발전해왔어요. 고대 그리스의 도자기 유물도 상당히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도 도자기가 '동아시아의 발명품' 이미지가 강한 것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크게 발전했기 때문이에요.
초기 도자기는 물을 흡수해 음식을 보관하기 적합하지 않았어요. 중동과 중국에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유약을 개발했어요. 유리질 분말인 유약을 도자기 표면에 발라 고온에서 녹이면 도자기가 튼튼해지고 방수 능력이 생겨요. 특히 중국에서는 유약뿐 아니라 고령토를 이용해 고온을 견딜 수 있는 견고한 도자기를 만들어냈어요. 도자기는 고온에서 구울수록 튼튼해집니다. 도자기가 '차이나'로 붙린 것도 중국 도자기가 전 세계에 수출됐기 때문이에요. 한국 역시 고려와 조선 시대에 질 높은 도자기를 만들어냈지요.
유럽은 17세기까지만 해도 중국 도자기를 수입하기 위해 애썼어요. 그런데 18세기부터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당시 독일의 작센 선제후국 아우구스트 2세는 도자기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특히 네덜란드가 일본 도자기 무역을 독점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것을 보고 도자기를 자체 생산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아우구스트는 연금술사 요한 뵈트거에게 도자기를 만들어내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뵈트거는 다양한 실험 끝에 고령토가 중국 도자기의 비결이라는 걸 밝혀냈어요. 결국 1710년부터 작센의 마이센 지역에서 고령토로 도자기를 만들었고, 마이센 도자기는 유럽 시장을 휩쓸었어요. 중국산 도자기는 서민용으로 전락했습니다.
마이센 도자기의 비결은 유럽 곳곳에 퍼져나가 덴마크·네덜란드 등에서 우수한 도자기가 탄생했어요. 영국은 마이센 도자기의 비결이 고령토라는 것은 알았지만 구하기 쉽지 않자 대체할 물질을 찾았어요. 1748년 토머스 프라이라는 영국 도공이 소의 뼛가루를 진흙에 혼합하면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이렇게 만든 도자기를 '본(Bone·뼈) 차이나'라고 불렀죠. 결국 18세기 이후엔 유럽이 도자기의 종주국이라 불리는 중국을 뛰어넘었고, 현대사회에선 고급으로 인정받는 도자기는 대부분 유럽산입니다.
-김현철·서울 영동고 역사 교사, 조선일보(21-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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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대통령, 임혜숙 박준영 장관 지명 철회해야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와 5개 부처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청문회가 어제 끝났다. 청문회 과정에서 쏟아져 나온 각종 의혹을 보면 청와대가 검증을 하기는 했는지 의문이 든다. 특히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박준영 해양수산부·노형욱 국토교통부 후보자는 장관직에 적합한 도덕성과 공인의식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 후보자를 포함한 2, 3명에 대해서는 장관 지명을 철회하는 것이 맞다.
임 후보자의 경우 대학교수 시절 국가 지원금으로 해외 출장을 나가면서 수차례 배우자와 두 딸을 동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임 후보자는 비용 절반을 자비로 충당했다고 했지만 공적인 출장에 가족을 동반한 자체가 공사 구분을 못하는 행위다. 또 남편과 논문 공조 의혹이 불거진 ‘논문 내조’도 간단히 볼 사안이 아니다. 임 후보자가 지도하던 대학원생 논문에 배우자를 공동저자로 올린 횟수만 18차례나 된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박 후보자 배우자의 도자기 밀수 및 판매 의혹은 일부 여당 의원들까지 “문제가 있다”고 인정할 만큼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수집에 재미가 들려서 샀다고 보기에는 수량도 너무 많고, 외교관 이삿짐을 이용해 관세를 내지 않고 도자기를 들여온 것은 전형적인 공직 남용에 해당한다. 특별 공급받은 세종시 아파트에 실거주하지 않고 시세 차익을 남긴 노 후보자의 경우 세종시 이전을 장려했던 당시 상황을 감안해도 주택 정책의 주무 장관을 맡기에는 자격미달이다.
여당은 이번 청문회에서 이런 후보자들을 시종 감싸면서 “낙마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했다. 청와대도 “몰랐던 의혹이 새로 나온 것은 없다”고 했다. 청문회에서 제기된 허물이 큰 문제가 되느냐는 식인데, 이는 공직자의 도덕성이나 자질에 대한 국민의 높아진 눈높이를 무시하는 태도다. 야당의 동의 여부를 떠나 이 정도로 하자가 많은 후보자들에게 한 부처의 수장 역할을 맡길 수는 없다. 문 대통령은 지난 4년간 29차례나 야당 동의 없이 장관 후보자 임명을 강행한 전철을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이다.
-동아일보(21-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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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후보자 아내의 도자기
1976년 봄, 신안 앞바다에서 어부의 그물에 도자기가 걸려 나왔다. 800년 물속에 잠겨 있던 도자기 2만여 점이 세상 빛을 다시 보는 순간이었다. 중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가는 수출품이었다. 1000도 넘는 열을 가해 만드는 도자기는 당시 최첨단 제품이었다. 세계 모든 지역에서 고작 구운 토기를 만들 때, 중국 은나라는 토기에 유약을 발라 고온에 구워냈다. 이 기술을 중국이 1000년 넘게 독점하며 세계 시장을 지배했다. 당나라 청자가 이집트 유적지에서 출토된 적도 있다. 한반도엔 8세기 중반 안사의 난을 피해 도망온 도공이 전수했다. 임진왜란 전까지만 해도 중국과 조선은 세계 양대 도자기 기술 보유국이었다.

▶18세기 신성로마제국의 작센 지역 선제후 아우구스트는 도자기 수집광이었다. 프로이센 왕이 소유한 중국 도자기 151점이 탐나 병사 600명을 내줬을 정도다. 도자기를 직접 만들겠다며 독일 남부 마이센의 고성(古城)에 연금술사를 가두고 도자기 제조법 연구를 지시했다. 수많은 실패 끝에 마침내 1709년 고온 제조 공정을 찾아냈고, 오늘날까지 명성이 자자한 마이센 자기가 탄생했다.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도자기는 유럽에서 ‘하얀 금’이라 불렀다. 스카우트와 산업 스파이들을 통해 불과 반세기 만에 유럽 전역에 퍼졌다. 2차대전으로 동독을 점령한 소련은 마이센의 공장 설비부터 뜯어 갔다. 치열한 기술 경쟁 덕에 200년도 채 안 돼 유럽 도자기 기술은 아시아를 넘어섰다. 중국·일본에 없던 에나멜 채색과 상감 기법을 선보였고 영국 본차이나처럼 고령토 대신 소의 뼛가루를 쓰는 재료 혁신도 이뤘다. 덴마크의 로열 코펜하겐, 헝가리의 헤렌드, 영국의 웨지우드 등 수많은 명품 브랜드가 탄생했다.
▶영국 도자기 성지라는 스토크온트렌트의 최대 고객이 한국인이라고 한다. 매장 입구에 ‘환영합니다’라는 한국어 인사가 적혀 있다. 한국에서보다 70% 싸게 명품 도자기를 살 수 있어 인기다. 박준영 해수부 장관 후보자 아내가 대량 밀수한 로열 덜튼과 로열 앨버트 브랜드도 이곳에 매장을 갖고 있다.
▶도자기 기술은 지금도 최첨단 분야에 쓰인다. 우주왕복선이 대기권을 벗어나거나 재진입할 때 발생하는 수천도 열을 견디는데 도자기의 내화 타일 기술이 활용된다. 이 분야에선 미국이 가장 앞섰다. 유럽이 도자기 신기술을 쏟아내고 미국이 지구 밖으로 인류의 영역을 확장하는데 한국 고위 공직자 아내는 도자기 밀수에 열을 올렸다. 한때 세계 최고 도자기 기술 보유국이었던 나라의 씁쓸한 단면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1-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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