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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쓴 소설만 팔리면 왜 안 되죠?]

뚝섬 2021. 5. 21. 06:22

남자 소설 안 팔리는 시대 언제쯤 끝날 것 같은가” 한 男性 질문에 자문해
女소설 드물던 지난 세월 나는 왜 분노하지 않았나
 

 

“한국 소설의 페미니즘 열풍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 같아요?”

 

얼마 전 저녁 자리에서 한 남성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미투 열풍이 불붙인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출판계에선 ‘헤테로 남성이 쓴 소설은 안 팔린다’는 속설이 나돌고 있지만 이 현상이 언제 끝날지 예측하긴 어려웠다. 딱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남자가 쓴 소설이 안 팔리는 원인은 뭐라고 생각하냐”고 되물었다. 함께 있던 다른 남성이 “남자들이 소설을 안 읽고 20~40대 여성들만 사 보니 그렇다”고 답하자 질문을 던진 사람은 지그시 미소를 지으며 “제 의견이 아니라 들은 이야기를 전할 뿐이니 기분 나빠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며 입을 열었다.

 

“소설 쓰는 게 더 이상 돈벌이가 안 되면서 번듯한 직업을 가진 남편이 있는 여자들만 전업작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어요. 남자들은 생계에 대한 부담이 크니 소설 쓰기에 몰두하기가 힘들다는 거죠.” 그 말이 딱히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당장 먹여 살려줄 남편이 있으면 과감히 프리랜서가 될 수 있을까?’ 종종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남자들끼리 무슨 말을 하는지 엿볼 수 있는 기회라 흥미로웠다.

 

“기분 나쁘지 않은데요. 그럴 수도 있죠” 했더니 그는 다시 미소 짓더니 또 “기분 나빠 하지 말라”며 다음 이야기를 꺼냈다. “남자들은 집 살 돈을 모아야 하기 때문에 책값에 돈 쓸 여유가 없다는 이야기도 있죠.” 이번에도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의아해서 “술 마시고 게임할 돈은 있으면서?”라고 되물은 후 오래된 의문을 내뱉었다. “그런데 문단이 남성 작가 일변도이던 지난 수십년간은 안 그러더니만 왜 고작 몇 년 여성 작가 일색이라고 이렇게들 난리예요?” 그는 답하지 않았다.

 

미국 '진보의 아이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연합뉴스

 

국문학 교수였던 아버지의 책장에서 삼성출판사에서 나온 ‘제3세대 한국문학전집’을 빼어 읽던 중학교 1학년 때가 기억난다. 1990년대 초반이었다. 여자 작가가 쓴 책을 읽고 싶었는데 책등에 한자로 적힌 작가 이름만 보고는 짐작이 어려웠다. ‘오정희’를 뽑아보고 성공했지만 ‘김승옥’과 ‘송기숙’에서 실패했다. 이름에 ‘옥(鈺)’이나 ‘숙(淑)’이 들어가도 여자가 아니라니…. ‘박완서’가 여성이라는 것, 남자 같은 그 이름의 가운데자가 ‘아름다울 완(婉)’이란 걸 배운 것이 책을 모조리 뽑아 프로필을 확인한 후 얻은 성과였다. ‘우리시대, 한국문학의 정신’이라는 문구와 함께 이청준을 제1권으로 1983년 초판 발행된 스물네 권짜리 전집 중 단 두 권만 여성이 쓴 것이었다. ‘아, 재미없다’ 생각했지만 분노하지는 않았다. 당연하다 여겼기 때문이다. 국민학교 교실에 남학생이 더 많은 것도, 사회 요직을 차지한 이들이 대부분 남성인 것도.

 

당연했던 세상이 당연하지 않게 변하고 있다. 지난달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2021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작품이 수록된 소설가는 일곱 명 모두 여성이다. 남자들이 이 사실에 당혹해하는 걸 보면서 좀 억울했다. 나는 왜 지난 세월 동안 당혹감조차 느끼지 못했던가? ‘진보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미국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1933~2020)가 2016년 이런 말을 했다. “때로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자, 이제 여성 대법관이 세 명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에 여성 대법관이 몇 명 있어야 충분하다고 보십니까?’ 그러면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아홉 명이 될 때라고.” 그는 덧붙였다. “이렇게 대답하면 사람들이 의아해하지만 대법원이 대법관 9인 체제가 된 이후로 오랫동안 아홉 명이 모두 남성이었다. 여성 대법관이 아홉 명이 되지 말란 법이 있는가?”

 

-곽아람 기자, 조선일보(21-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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