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 세계 상위 불명예 이제는 벗어나야 할 때 왔지만
현장에 산적한 과제 방치한 채 기업인만 처벌한다고 줄지 않아

평택항에서 일하다 사고로 숨진 20대 청년 고(故) 이선호 씨의 부친 이재훈 씨가 1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청 앞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아들의 얼굴이 새겨진 현수막 앞에 무릎을 꿇고 오열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달 22일 평택항에서 23살 이선호씨가 컨테이너 작업을 돕다가 300㎏ 철판에 깔려 숨졌다. 강릉원주대생이던 그는 아버지와 함께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참변을 당했다. 아버지는 아들을 사지(死地)로 내몰았다는 자책감에 흐느꼈다. “아이를 강인하게 키워보고 싶었습니다. 노동의 중요성, 돈의 소중함을 배우게 하기 위해 데리고 다녔건 건데… 아이 앞에 무릎 꿇고 절대 아버지 용서하지 말고 가라고 그랬습니다.” 아버지 휴대전화에 아들은 ‘삶의 희망’이란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었다.
이 사건을 둘러싼 과정을 보면 우리 일터에 쌓인 병폐가 자취를 드러낸다. 사고 후 119보다 회사에 먼저 보고한 직원, 유족에겐 한마디 말도 없이 대국민 사과부터 한 원청(原請)업체, 일당 10만원이면 되는 안전관리원을 두지 않은 회사, 안전 장구(안전모·안전화 등) 없이도 들어가는 작업장… 원청 업체 동방은 지난해 매출액 5921억원에 영업이익 246억원, 직원은 717명을 둔 중견 물류 기업이다.
한국은 부끄럽지만 산업재해 ‘왕국’이다. 산재 사망자 수는 관련 통계를 집계한 1975년 이후 줄곧 세계 상위권이다. 지난해에도 882명이 일하다 목숨을 잃었다. 이씨처럼 20대 사망자만 42명에 달한다. 사고사가 882명이지 병사(病死)까지 합친 전체 산재 사망자는 2062명. 근로자 10만명당 11명이다. 살인 사건(10만명당 2명)은 물론 교통사고(10만명당 6명)보다 더 심각하다. 현 정부는 임기 내 산재 사망자(사고사)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장담했지만 2016년 969명에서 4년 동안 9% 줄었을 뿐이다.
내년부터 발효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이런 비극을 획기적으로 개선해보자는 의지가 깔려 있다. 그런데 현실에선 의도가 좋다고 꼭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건 아니다. 중대재해(산재 사망자)를 일으킨 기업(경영자)에 엄벌(1년 이상 징역)을 내리겠다는 이 법은 그 자체로 과잉 입법 금지라는 법치주의 원칙을 훼손했을 뿐 아니라, 바라는 효과(사망자 감소)는 거두지 못한 채 애먼 범법자만 양산할 공산이 충분하다. 산재는 물론 척결 대상이지만 사망자가 나왔다고 해당 기업은 물론 관련 회사 경영자까지 감옥으로 보내겠다고 윽박지르는 건 정부가 대신 해주는 분풀이면서 전시 행정에 가깝다. 처벌 강도를 터무니없이 높여 놓으면 사고를 은폐하거나 무마하려는 시도만 횡행할 것이다. 이는 피해자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산재 예방 선진국인 독일, 일본, 북유럽 국가들은 산재를 감정적이 아니라 이성적이고 과학적으로 접근한다”면서 “처벌을 강화하는 게 유일한 답인 것처럼 밀어붙이면 많은 비용과 혼란은 가져오면서 정작 재해 예방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12일 오전 고(故) 이선호씨 사망 사고가 발생한 경기도 평택시 평택항 신컨테이너 터미널에서 컨테이너 철판에 경고 문구가 보이고 있다. /뉴시스
산업 안전은 법규나 규정 관리·감독에 의존하는 단계에서 개인이 자기 안전을 책임지고, 나아가 팀원들이 서로 안전을 지켜주는 단계에 이를 때 완성된다. 안전 문화를 체화할 수 있게 조직 체계를 정비하고 시설을 갖추도록 지원하고 감시하는 게 핵심이다. 산업 안전 분야 성서(聖書)로 통하는 영국 ‘로벤스 보고서’ 역시 자율적인 안전 보건 조직 구축과 운영을 강조한다.
산업계엔 안전을 위해 손질해야 할 개선 과제가 즐비하다. 감독 기관이 현장 안전 점검 갈 때 하루 전 통보하는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 질병관리청처럼 산업 안전을 전담하고 추진할 산업안전청도 필요하다. 현장에서 호소하는 부조리한 규정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처벌 강화는 이런 적폐(積弊)부터 해소하고 난 다음 들어가도 늦지 않다. 지금 중대재해처벌법은 횡단보도나 육교는 만들어 주지 않고 무단 횡단하면 처벌하겠다는 핍박이다.
-이위재 기자, 조선일보(21-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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