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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생 연합동아리, 마약 소굴이었다] [마약 사범을 변호사로.. ]

뚝섬 2024. 8. 7. 05:47

[명문대생 연합동아리, 마약 소굴이었다] 

[마약 사범을 변호사로 만든 판사의 선택]

 

 

 

명문대생 연합동아리, 마약 소굴이었다 


“우린 깐부잖아!” 유명 드라마에 나오는 친근한 대사를 홍보물에 인용하면서 이름도 ‘깐부’(오랜 친구)라고 붙인 이 동아리는 ‘친목 동아리’를 표방하며 회원들을 모집했다. ‘자차 8대 이상 보유’ ‘고급 호텔·리조트 VIP 다수 보유’ 등 광고를 앞세워 고급 사교클럽인 것처럼 학생들을 끌어들였다. 연세대를 졸업하고 KAIST 대학원에 다니다가 제적된 이 동아리 회장 A 씨는 회원을 면접하면서 외모와 집안까지 깐깐하게 따졌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이 동아리는 마약의 소굴이었다.

▷2021년 말 동아리를 만든 A 씨는 규모를 키우는 데 탁월한 수완을 발휘했다. 대학생들이 접하기 어려운 호화로운 술자리를 마련하고 호텔 풀파티에도 초대했다. SNS 등을 통해 소문이 나면서 가입자가 300명으로 늘어나 전국 2위 수준의 대학 연합동아리로 성장했다. 그런데 A 씨가 뿌린 돈의 출처는 마약 판매 자금이었다. 가상화폐로 마약 구매 대금을 딜러에게 보내고 ‘던지기’ 수법으로 받은 뒤 회원들에게 팔았다. 마약상들이 근래 자주 이용하는 방식이다.

▷A 씨는 처음에는 ‘입문 마약’이라고 불리는 대마를 회원들에게 권했다. 이후 엑스터시, LSD, 케타민, 필로폰 등 점차 강력한 마약으로 확대했다. 특히 이들이 애용한 것은 LSD였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LSD를 투약한 뒤 “갑자기 밀밭 전체가 바흐를 연주하기 시작했다”고 회고했을 만큼 환각 효과가 세다. 몇몇 회원은 유흥업소 여종업원들을 호텔로 불러 함께 투약한 뒤 집단 성관계까지 가졌다고 하니 이런 막장이 없다.

 

▷대학생들은 분위기에 휩쓸려, 혹은 재미 삼아 ‘딱 한 번만’이라는 생각으로 마약에 손을 댔을지 모른다. 하지만 “마약의 끝은 감옥이나 병원, 그것도 아니면 무덤”(양성관 ‘마약 하는 마음, 마약 파는 사회’)이라고 했다. 검찰은 A 씨 등 6명을 기소하고, 단순 투약자 8명은 치료 조건으로 기소유예했다. A 씨를 제외하면 모두 서울대 고려대 이화여대 등 수도권 주요 대학 재학생이었다. 앞날이 창창했던 젊은이들이 마약의 덫에 걸려 미래를 알 수 없게 됐다.

▷지난해 적발된 마약사범은 2만7611명으로 전년 대비 50%, 10년 전에 비해선 3배가량 늘었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마약에 빠진 청년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5년 전만 해도 전체 마약사범 중 20대 이하가 차지하는 비율이 20% 미만이었지만 지난해에는 35%를 넘어섰다. 고교생이 마약 판매에 나서고, 캠퍼스에는 마약 홍보 전단이 뿌려지고 있다. 아직 판단력이 성숙하지 않은 청년들은 마약에 빠져들기 쉽고 그 폐해는 평생을 가는 만큼 교육과 치료를 강화해 단단히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 마약의 유혹에 빠진 학생들이 바로 우리 곁에 있다는 현실이 아찔하다.

-장택동 논설위원, 동아일보(24-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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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사범을 변호사로 만든 판사의 선택

 

2005년이었다.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살던 마텔은 마약 함정 수사에 걸려들었다(be snared by a drug sting). 27세 고교 중퇴생(high-school dropout)인 그에겐 마약 파는 일 말고는 아무런 삶의 계획도 없던 시절이었다.

 

머로라는 판사를 마주하게 됐다. 자포자기했다(give himself up to despair). 구속됐다가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상태에서 다시 현행범으로 붙잡혔으니(be caught red-handed) 판사로선 화장실 물 내리듯 그냥 흘려버리면 그만이었다. 최고 20년형을 받을 수도 있었다.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give him three years’ probation). 한 번 기회를 더 주겠노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단서를 달았다(attach a condition to it). “마약이 아니라 좋은 제품을 파는 포천지(誌) 선정 500대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마텔은 최근 16년 만에 머로 판사를 다시 만났다. 그의 나이는 이미 43세, 끝내 500대 기업 CEO가 되지 못했다.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grow up with a single mother). 유혹에 무너지고 말았다(fall to temptation). 소년 법원을 들락거리다가(bounce in and out of juvenile court) 17세에 학교를 중퇴한(drop out of school) 뒤 가출했고(run away from home), 마약과 얽혔다(be intertwined with the drug).

 

집행유예 3년 동안 독학해서(study by himself) 고졸 학력 인증을 받았다. 전문대학에 지원했다. 31세 때였다. 무슨 전공을 하고 싶냐고 물었다.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자기네끼리 키득거리더니 냉난방 분야를 해보라고 했다. 뜻을 굽히지 않았다. 2년제 전문대학을 3년 만에 졸업했다.

 

4년제 대학에 지원했다. 디트로이트 머시 대학교에 수업료 전액 장학금(full tuition scholarship)을 받고 들어갔다. 천신만고 끝에(after going through hell and high water) 2014년 졸업하고, 로스쿨에 또다시 전액 장학금을 받고(win a full ride)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전과 기록(criminal record)이 문제가 됐다. 변호사 협회에 가입하려면 인물·적성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마약 거래(drug trafficking) 전과 때문에 물거품이 될(come to nothing) 위기에 처했다. 파란만장했던 과거(checkered past)를 고백하며 정상을 참작해달라고(take into consideration the circumstances) 1200쪽 넘는 소명서를 제출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때 머로 판사가 증언을 대신하고 나섰다(testify on his behalf). 지난 16년간 마텔이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일일이 열거하며 하소연했다. 최종 승인(final approval)이 나던 순간, 마텔은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sob like a baby). 그러고 며칠 뒤 두 사람은 다시 마주 서게 됐다.

 

이번엔 판사(judge)와 피고인(defendant) 신분이 아니었다. 마텔이 머로 판사 앞에서 오른손을 들고 변호사 협회 가입 선서를 하게 됐다. 머로 판사는 “내 딸을 결혼식장에 데리고 들어가는(walk my daughter down the aisle) 기분이었다”고 했다.

 

-윤희영 에디터, 조선일보(21-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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