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DJ 동교동 사저]
[권력자의 사저(私邸)]
사라지는 DJ 동교동 사저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속주인 달마티아의 작은 마을에서 해방 노예의 아들로 태어났다. 나이 들어 은퇴한 그는 고향에 7m 높이 성벽으로 둘러싼 요새 같은 사저(私邸)를 지었다. 후임 황제가 “로마로 돌아와 도와달라”고 했지만 “양배추를 심고 돌봐야 한다”며 거절했다. 그가 죽고 300년 후 야만족 침공 때 주민들이 사저로 피신해 목숨을 구했다. 이후 주변에 건물이 잇따라 들어섰고 크로아티아 제2의 도시 스플리트가 됐다.
▶미국 독립선언문을 쓴 제퍼슨 대통령은 버지니아 시골 마을에 손수 집을 지어 58년간 살았다. 회랑과 연못 등 로마 건축 양식을 딴 아름다운 사저엔 당시로선 혁신적이었던 자동 여닫이문과 날짜·요일 시계 등 최신 장치가 가득했다. ‘몬티첼로’라 불리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됐다. 먼로 대통령은 퇴임 후 생활이 곤궁해 사저를 팔았지만 독지가가 구입해 기념관으로 만들었다. 미 대통령 사저 대부분이 대통령이 쓰던 물건과 책 등을 복원해 전시하는 기념관이 돼 있다.
▶한국 대통령의 사저는 현대사의 굴곡에 시달리며 끊임없는 정치적 논란을 낳았다. 서울 종로 이화장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하야 후 한 달밖에 살지 못하고 하와이로 망명하면서 빈집이 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신당동 사저도 10·26 이후 사실상 방치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연희동 사저는 추징금 미납으로 압류당했고 가재도구까지 경매에 넘어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상도동 사저를 기부했지만, ‘김영삼 도서관’ 건립 과정의 부채 때문에 압류 위기까지 갔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논현동·삼성동 사저도 공매에 넘어가 기업인이 인수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동교동 사저는 김영삼의 상도동 사저와 함께 민주화의 상징이었다. 부인 이희호 여사는 “사저는 기념관으로, 노벨평화상 상금은 기념 사업에 쓰라”고 유언했다. 하지만 3남 김홍걸 전 의원은 사저를 개인 소유화했다. 형인 김홍업 전 의원과 소유권 분쟁이 벌어지자 뒤늦게 유언을 따르겠다고 했다.
▶그는 이달 초 동교동 사저를 100억원에 매각했다. “거액의 상속세 때문으로 어디까지나 사적인 일”이라고 했다. 매입자가 사저 일부에 DJ 유품을 전시하기로 했다고 했다. 유언을 어기고 유품 관리까지 남에게 맡긴 것이다. 그는 과거 거액의 코인 거래가 드러나자 “상속세를 충당하려고 한 것”이라고 변명했다. 사저 접견실 등 집안 곳곳엔 DJ와 한국 정치사의 흔적과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런 소중한 역사까지 모두 없어질 판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배성규 논설위원, 조선일보(24-08-01)-
_____________
권력자의 사저(私邸)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 이후 머물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 사저 부지 전경. 가운데 보이는 갈색 지붕 주택이 향후 문 대통령 사저로 새로 지어질 예정이다. 왼쪽에 보이는 붉은색 지붕 주택은 경호동으로 사용된다./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로마 2대 황제 티베리우스는 재위 12년째 돌연 로마를 떠나 카프리섬의 별장에 은거했다. 334m 해안 절벽에 세워진 대저택 ‘빌라 요비스(제우스의 빌라)’였다. 7000㎡ 넓이의 사저(私邸)엔 황제의 거주지와 연회장, 홀, 목욕탕, 등대, 천문관측탑 등 모든 게 완비돼 있었다. 수직 절벽엔 ‘티베리우스의 도약대’라는 낙하 처형장도 있었다. 원로원과 시민들은 호화 별장에 틀어박혀 간접 통치하는 황제를 욕했다. 그래도 포도주와 연회를 즐기며 10년 넘게 살다 죽었다.
미국 대통령의 사저는 대개 고향집이나 취임 전 살던 집이다. 트루먼 대통령은 물려받은 미주리의 대저택으로 들어갔다. 닉슨의 사저는 캘리포니아의 방 9개, 욕실 14개짜리 저택이었다. 레이건은 LA의 방 3개짜리 집이었다. 오바마는 자녀 학업 때문에 워싱턴에 방 9개짜리 고급 월셋집을 얻었다. 그래도 호화·특혜 논란은 없었다. 트럼프는 예외다. 플로리다 마러라고 리조트로 옮겼지만, 주민들은 “당신과 이웃이 되기 싫다”고 반발했다. 트럼프가 리조트 구입 때 ‘누구도 7일 연속 체류 불가’에 합의했다는 근거까지 댔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연희동 사저는 ‘연희궁’으로 불렸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외환 위기 중 상도동 사저를 신축했다가 된서리를 맞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엘리베이터와 실내 정원이 있는 동교동 사저로 ‘호화’ 논란에 휩싸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 사저는 면적이 4262㎡에 달해 야당이 ‘아방궁’이라 불렀다. 특히 임야가 대지로 변경되면서 공시지가가 1년 만에 49배 올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내곡동 사저 터를 아들 시형씨와 공동 매입했다가 편법 증여로 특검 수사까지 받았다. MB 경호처장은 사저 땅값은 싸게, 경호 시설 땅값은 높게 매겨 MB 일가에게 부당 이득을 준 혐의로 처벌받았다. 당시 ‘나꼼수’는 찬송가 ‘내 주를 가까이’ 가사를 바꿔 부르며 MB를 희화화했다. ‘내곡동 일대를/ 사려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그린벨트.’ 문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후퇴’라고 했고, 민주당은 ‘국기 문란’ ‘탐욕’이라고 공격했다.
문 대통령의 양산 사저는 넓이가 MB 사저의 2.5배다. 문 대통령은 이 땅을 사며 ‘영농 경력 11년’이라고 썼다. 그런데 9개월 만에 농지가 대지로 변경됐다. 당연히 땅값은 오르게 마련이다. 사저는 개인 재산이니 나중에 팔 수도 있다. 일반인이라면 가능했을까. 문 대통령은 “좀스럽다”고 화를 냈다. 하지만 본인들이 전직 대통령에게 어떤 잣대를 댔는지 돌아볼 일이다.
-배성규 논설위원, 조선일보(21-03-16)-
==========================
'[세상돌아가는 이야기.. ] > [國內-이런저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폐차 후 대중교통, 광역시 노인도 어렵다] ['가장 나종'까지 지키고.. ] (0) | 2024.08.05 |
---|---|
[게임의 법칙] [국민 감동 줬던 장미란에도 모욕 악플 공격.. ] .... (0) | 2024.08.04 |
[닻 내림 효과] (0) | 2024.07.28 |
[태풍] [허리케인? 태풍? 사이클론?.. 뭐가 다를까] (0) | 2024.07.25 |
[아기를 낳고 나라를 구하라!] [ .. 한국인이 중매를 찾는 이유] (6) | 2024.0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