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파병 요청해 놓고 ‘진주만 기습’ 꺼낸]
[이제 우리도 일본에 돈 달라는 요구 그만하자]
日 파병 요청해 놓고 ‘진주만 기습’ 꺼낸

2016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히로시마-진주만 상호 방문은 미일 동맹의 역사적 화해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하와이주 진주만에서 일본을 비난하는 대신 아베 총리 등을 두드리며 “가장 치열했던 적이 동맹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이처럼 일본 정상 앞에서 진주만 공습을 직접 거론하길 삼갔고, 동맹의 가치를 부각하는 맥락에서 간접적으로 다루곤 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달랐다.
▷발단은 19일 미 백악관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 말미에 나온 일본 기자의 질문이었다. “이란 공격을 일본 등 동맹국에 왜 안 알렸느냐. 일본인들은 혼란스러웠다”고 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기습에 대해 일본보다 잘 아는 나라가 있느냐. 그럼 왜 진주만은 미리 알려주지 않았냐”고 받아쳤다. 1941년 12월 선전포고 없이 이뤄진 일본의 기습을 농담 섞어 꼬집은 것이다. 미국 측에선 웃음이 터졌지만,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굳은 얼굴로 눈을 크게 뜬 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일본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속보로 전했다.
▷미국 내에서도 비판이 많았다. 뉴욕타임스(NYT)는 브루킹스연구소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동맹의 유대를 강조해야 할 자리에서 나온 이례적이고 충격적인 발언”이라고 썼다. 보수 진영에선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이 진주만 공습처럼 부당했다는 말이냐는 지적이 나왔다. 한편 트럼프의 발언이 호르무즈 해협에 더 기여하라는 대일 압박용 메시지였다는 시각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아베 총리를 만났을 때도 “진주만을 기억한다”며 무역 협상에서 양보를 요구한 바 있다.
▷불편한 과거사를 불쑥 꺼내 상대를 압박하는 건 트럼프 대통령의 단골 수법이다. 지난해 6월 미국을 찾은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에게는 “내일이 노르망디 상륙작전 기념일인데 당신들에겐 썩 기쁜 날은 아니잖냐”고 물었다. 메르츠 총리는 “아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나치 독재로부터 우리가 해방된 날”이라며 넘어갔다. 올 1월 다보스 포럼에선 “(2차대전 때) 미국이 없었다면 여러분은 독일어와 일본어를 쓰고 있었을 것”이라며 유럽 동맹국들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독일과 달리 과거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일본에선 아직도 ‘대동아(大東亞) 전쟁’이란 용어를 사용하며 진주만 공습과 태평양 전쟁을 정당화하는 시각이 남아 있다. 아베 총리가 진주만까지 가서 헌화를 하고도 미국에 사과를 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외교적 결례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과거사 청산이라는 문제가 아직도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장원재 논설위원, 조선일보(26-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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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도 일본에 돈 달라는 요구 그만하자
[양상훈 칼럼]
올해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민소득 韓이 日보다 높아.. 이야말로 진정한 克日
돈 요구로 덕 본 건 위안부 할머니 아닌 윤미향 일파 아니었나
일본 기업이 일제 때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 책임이 있다는 대법원 판결을 서울지방법원이 뒤집었다.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 사건을 보면서 오래전의 좋지 않은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필자가 편집국장 책임을 맡고 있을 때였다.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지낸 대법관 출신 법조인이 아내가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화제가 될 일이어서 확인시켰더니 사실이라고 했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는 도장만 찍어도 몇 천만원을 받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인데 의외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분 얘기를 편의점에서 일하는 사진과 함께 본지 6면에 보도했다. 2013년이었다.

7일 강제징용 노동자와 유족 85명이 일본제철·닛산화학·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는 각하결정을 내렸다. 이날 재판에 참석한 관계자들이 재판 후 법정 앞에서 벌인 기자회견에서 의견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기사가 나간 지 다섯 달 만에 이분이 편의점 일을 그만두고 로펌으로 옮겼다. 당초 기자와 한 인터뷰에서 “당분간 자연인으로 살며 서민으로 경제생활을 하겠다”고 했던 분이어서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그럴 사정이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분의 진의를 폄하하고 싶지 않았다.
5년 뒤 2018년 김명수 대법원이 전원합의체를 통해 일본 기업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할 의무가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잘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당연한 판결 같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1965년 한일 양국은 청구권 협정을 통해 ‘두 나라와 국민의 청구권이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데에 합의했다. 이때 일본에서 받은 돈 5억달러는 당시 일본 외환 보유액의 4분의 1에 이르는 거액이었다. 이 돈이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마중물이 됐음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일본에 대한 청구권의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해결에 따라 우리 정부는 국내 징용 피해자들에게 신고를 받고 보상금을 두 차례에 걸쳐 지급했다.
하지만 나중에 일부 피해자가 다시 일본 기업에 배상 요구 소송을 했다. 이 소송은 한국 1,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재론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이는 상식이었다. 그런데 2012년 대법원이 이를 뒤집는 ‘놀라운’ 판결을 내렸다. 그때 담당 주심이 바로 ‘편의점 대법관’이었다. 이 판결이 한일 관계 파탄의 한 시발점이 됐다. 이 판결 때문에 외교부와 대법원이 소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외국에서도 외교가 걸린 판결에선 이런 과정이 흔히 있다. 현 정권은 여기에 ‘사법 농단’이라는 모자를 씌웠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고초를 당하고 있다. 2018년 김명수 대법원의 판결은 편의점 대법관의 이 판결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와 관련한 논란이 클 때 어느 자리에서 만난 법조인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이 판결을 강력히 비판했다. 한 사람은 “퇴임을 두 달 앞둔 대법관이 정권 교체기에 다음 자리를 생각하고 내린 포퓰리즘 판결”이라고 단정하면서 5년 전 본지의 편의점 보도를 거론했다. 당시 헌법재판소장이 다른 사람으로 결정되자 몇 달 지나지 않아 그분이 편의점을 그만두고 로펌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모두가 ‘설마...’ 하며 자리를 마쳤지만 필자는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필자는 지금도 그에게 악의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나 살다 보면 우연도 경험하고 오해도 받는다. 인물평을 들어 보니 인품도 나무랄 데가 없는 분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분이 판결을 할 때 주변에 ‘건국하는 심정으로 판결문을 썼다’고 했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선 무언가 석연찮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솔직한 심정이다.
진짜 운동권 출신에 따르면 지금 정권 주변엔 ‘민주화된 다음에 민주화 운동 한 사람’이 아주 많다고 한다. ‘해방된 다음에 독립운동 하는 사람’도 정말 많다.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이다. 지금 정권에서 죽창가 부르고 ‘토착 왜구’ 운운 하는 사람 모두가 해방된 다음에 독립운동 하는 사람들이다. ‘건국하는 심정...’도 혹시 해방된 뒤에 하는 독립운동 아닌가.
위안부 문제와 달리 징용자 문제는 1965년 한일 협정에 명시돼 있다. 그래도 개인의 청구권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는 천부적 인권 차원의 원론적 얘기로 봐야 한다. 이를 근거로 외국 기업에 돈을 내라고 할 수 있겠나.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을 수 없다. 같은 논리로 일본인들이 한국에 있던 재산의 개인 청구권을 행사하겠다고 하면 감당할 수 있나. 그야말로 이불 속에서 우리끼리 만세 부르는 것이다.
대체 왜 우리가, 21세기의 대한민국이 이렇게 구차해야 하나. 1965년 한일 협정 당시 한국과 일본의 국가 GDP 격차는 29배였다. 그게 지금은 3배 차이로 좁혀졌다. 올해 IMF 통계에 따르면 구매력 기준 1인당 소득은 한국이 4만7000달러로 4만4000달러인 일본보다 많다. 이것이 극일 아니면 뭐가 극일인가. 왜 우리가 지금도 다른 나라에 돈 내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덕 본 것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아니라 윤미향 일파 아니었나.
중국은 일제에 가장 많은 피해를 본 나라지만 전쟁 배상금을 요구하지 않았다. 배상받은 나라는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돈이 없나. 이제 일본과 과거사 청산 문제에서 돈 얘기는 안 했으면 한다.
-양상훈 주필, 조선일보(21-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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