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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백신 ‘접종권’ 미스터리] [에이즈 40년]

뚝섬 2021. 6. 22. 06:38

日 백신 ‘접종권’ 미스터리

 

예약 때부터 전국 시스템 만들었다면 행정력 낭비시키는 접종권 필요 없어

 

40대 후반인 기자는 일본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조기에 접종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일본은 백신 접종이 느린 데다 기자의 순번도 후순위이기 때문이다. 의료종사자, 65세 이상 고령자,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 등을 접종한 뒤 나머지 일반인 순서가 돌아온다.

그런데 기회가 왔다. 일본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도쿄의 대규모 접종센터에 예약이 대거 미달되자 17일부터 연령제한 없이 누구나 접종할 수 있게 됐다. 기자도 당장 인터넷으로 예약을 시도했지만 ‘접종권 번호’를 입력해야 해 포기했다. 각 지자체는 백신 접종권을 만들어 우편으로 발송하는데 기자에게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다만 기자가 사는 도쿄 시나가와구는 조기 접종을 독려하기 위해 구청으로 찾아오면 접종권을 현장에서 나눠줬다. ‘운이 참 좋다’고 생각하면서 18일 오전 시나가와 구청을 찾았다. 하지만 구청 주차장을 뱀처럼 빙글빙글 둘러싼 긴 대기 줄을 보고 절망했다. 기자가 받은 접수번호는 608번. 안내하던 구청 직원은 “오늘 안에 접종권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아니, 왜 접종권이 필요할까….’ 한국의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개인 식별번호가 일본에서는 보편화돼 있지 않은 게 문제의 시작이었다. 일본에도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마이넘버’가 있지만, 일상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개인정보가 마이넘버에 집중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현재 ‘마이넘버 카드’를 소지한 일본인은 전체의 30%에 불과하다. 각 지자체는 접종 이력 관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접종권을 만들었다. 접종권 번호가 곧 마이넘버인 셈인데, 지자체는 그걸 통해 예약을 받고, 접종 이력을 관리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지자체 시스템은 서로 연동이 안 되기 때문에 정부가 전국 상황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지난해 초 지자체들로부터 코로나19 감염자 수를 팩스로 받아 집계했던 것처럼 백신 접종 현황도 그렇게 파악해야 할 판이었다.

 

그러자 정부는 접종기록시스템(VRS)을 개발해 4월에 공개했다. 접종권 번호, 마이넘버, 이름, 생년월일 등 개인정보를 모두 지자체에서 받아 연동시켰다. 접종 예약은 지자체별로 파악되지만 접종 완료 실적은 정부가 전국 규모로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지자체가 VRS 탑재 단말기로 일일이 접종권의 바코드를 스캔해 접종 사실을 입력해야 하는 과외 일이 생기긴 하지만.

 

일본 정부는 왜 예약 단계부터 전국 단위의 시스템을 만들지 않았을까. 비상 상황임을 호소해 마이넘버를 통해 인터넷 예약을 하게 했다면 정부는 예약 단계부터 전국적인 관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접종권은 필요 없기 때문에 행정력 낭비도 막을 수 있다. 백신을 담당하는 고바야시 후미아키(小林史明) 내각부 보좌관은 최근 온라인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드 저팬’과의 인터뷰에서 “1월 백신 프로젝트팀이 세워졌을 때 이미 지자체가 백신 예약 시스템을 독자적으로 만들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즉, 정부가 미리 챙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9월 1일 디지털 정책을 총괄하는 디지털청을 출범시킨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의 핵심 정책 중 하나다. 하지만 중후장대한 디지털청 신설이 아니라 당장 눈앞의 현안인 백신 접종 시스템부터 개선하는 게 우선일 것 같다. 오늘도 많은 시민들이 몇 시간씩 구청에서 줄을 서 접종권을 배포받고 있다.

-박형준 도쿄 특파원, 동아일보(21-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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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40년

 

세계 에이즈의 날을 맞이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여성들이 2020년 12월 거리 바닥에 에이즈 희생자의 이름을 적고 있다. /ap뉴시스

 

미국 뉴욕에 센트럴파크가 있다면 샌프란시스코엔 골든게이트파크가 있다. 이 공원 한쪽엔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 희생자를 추모하는 작은 숲이 있다. 샌프란시스코는 에이즈 초창기 발병자가 가장 많이 나온 지역 중 한 곳이다. 지난 5일 이곳에선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에이즈 발병 4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1981년 6월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주간 보고서에서 새로운 증상의 환자 발생을 처음 알렸다. 폐렴 증상을 보인 남성 5명에게서 면역 세포에 손상을 입은 특이 사례를 발견했으며 이 중 2명은 이미 숨졌다는 내용이었다. 에이즈의 시작이었다. 배우인 미국의 록 허드슨과 앤서니 퍼킨스, 록그룹 퀸의 프레디 머큐리, 러시아 태생의 세계적 무용가 루돌프 누레예프,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 1980년대 중반과 1990년대 초반 에이즈로 숨진 유명 인사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는 사람 몸 안으로 들어와 면역 세포를 파괴하는 바이러스다. 전문가들은 한 번의 성관계로 감염 가능성은 0.1~1% 정도로 보고 있다. 1990년대 초반까지도 에이즈는 불치의 천형(天刑)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1996년 여러 약을 동시에 쓰는 ‘칵테일 요법’이 등장하면서 인간이 승기를 잡았다. 이젠 치료제 효과가 좋아서 약만 잘 복용하면 에이즈를 당뇨나 고혈압 같은 만성 질환처럼 관리하며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 얘기다. 현재 전 세계 3700만명이 HIV와 함께 살고 있다.

 

▶샌프란시스코는 현재 인구의 약 80%가 1회 이상 코로나 백신을 접종받았고 68%는 접종을 완료했다. 그 결과, 최근 샌프란시스코 코로나 신규 확진은 하루 평균 10여명 수준의 소규모 감염만 나오고 있다. 샌프란시스코가 미국 최초로 코로나 집단면역에 도달하는 대도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과거 이곳이 에이즈와의 싸움에서 선봉에 선 도시였다는 사실이 보건 조치에 대한 대중의 신뢰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HIV는 같은 RNA 바이러스여서 변이가 잦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도 인류는 끈질기게 추격해 HIV는 사실상 무력화시켰고 코로나 바이러스도 약점을 포착해 공략하고 있다. 에이즈엔 ‘U=U’(Undetectable=Untransmittable) 원칙이 있다. 꾸준히 치료제를 복용해 HIV가 검출되지 않으면 감염력도 없다는 것이다. 코로나는 치료제 이전에 백신이 그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김민철 논설위원, 조선일보(21-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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