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백신 ‘접종권’ 미스터리
예약 때부터 전국 시스템 만들었다면 행정력 낭비시키는 접종권 필요 없어
40대 후반인 기자는 일본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조기에 접종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일본은 백신 접종이 느린 데다 기자의 순번도 후순위이기 때문이다. 의료종사자, 65세 이상 고령자,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 등을 접종한 뒤 나머지 일반인 순서가 돌아온다.
그런데 기회가 왔다. 일본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도쿄의 대규모 접종센터에 예약이 대거 미달되자 17일부터 연령제한 없이 누구나 접종할 수 있게 됐다. 기자도 당장 인터넷으로 예약을 시도했지만 ‘접종권 번호’를 입력해야 해 포기했다. 각 지자체는 백신 접종권을 만들어 우편으로 발송하는데 기자에게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다만 기자가 사는 도쿄 시나가와구는 조기 접종을 독려하기 위해 구청으로 찾아오면 접종권을 현장에서 나눠줬다. ‘운이 참 좋다’고 생각하면서 18일 오전 시나가와 구청을 찾았다. 하지만 구청 주차장을 뱀처럼 빙글빙글 둘러싼 긴 대기 줄을 보고 절망했다. 기자가 받은 접수번호는 608번. 안내하던 구청 직원은 “오늘 안에 접종권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아니, 왜 접종권이 필요할까….’ 한국의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개인 식별번호가 일본에서는 보편화돼 있지 않은 게 문제의 시작이었다. 일본에도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마이넘버’가 있지만, 일상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개인정보가 마이넘버에 집중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현재 ‘마이넘버 카드’를 소지한 일본인은 전체의 30%에 불과하다. 각 지자체는 접종 이력 관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접종권을 만들었다. 접종권 번호가 곧 마이넘버인 셈인데, 지자체는 그걸 통해 예약을 받고, 접종 이력을 관리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지자체 시스템은 서로 연동이 안 되기 때문에 정부가 전국 상황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지난해 초 지자체들로부터 코로나19 감염자 수를 팩스로 받아 집계했던 것처럼 백신 접종 현황도 그렇게 파악해야 할 판이었다.
그러자 정부는 접종기록시스템(VRS)을 개발해 4월에 공개했다. 접종권 번호, 마이넘버, 이름, 생년월일 등 개인정보를 모두 지자체에서 받아 연동시켰다. 접종 예약은 지자체별로 파악되지만 접종 완료 실적은 정부가 전국 규모로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지자체가 VRS 탑재 단말기로 일일이 접종권의 바코드를 스캔해 접종 사실을 입력해야 하는 과외 일이 생기긴 하지만.
일본 정부는 왜 예약 단계부터 전국 단위의 시스템을 만들지 않았을까. 비상 상황임을 호소해 마이넘버를 통해 인터넷 예약을 하게 했다면 정부는 예약 단계부터 전국적인 관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접종권은 필요 없기 때문에 행정력 낭비도 막을 수 있다. 백신을 담당하는 고바야시 후미아키(小林史明) 내각부 보좌관은 최근 온라인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드 저팬’과의 인터뷰에서 “1월 백신 프로젝트팀이 세워졌을 때 이미 지자체가 백신 예약 시스템을 독자적으로 만들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즉, 정부가 미리 챙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9월 1일 디지털 정책을 총괄하는 디지털청을 출범시킨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의 핵심 정책 중 하나다. 하지만 중후장대한 디지털청 신설이 아니라 당장 눈앞의 현안인 백신 접종 시스템부터 개선하는 게 우선일 것 같다. 오늘도 많은 시민들이 몇 시간씩 구청에서 줄을 서 접종권을 배포받고 있다.
-박형준 도쿄 특파원, 동아일보(21-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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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40년
세계 에이즈의 날을 맞이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여성들이 2020년 12월 거리 바닥에 에이즈 희생자의 이름을 적고 있다. /ap뉴시스
미국 뉴욕에 센트럴파크가 있다면 샌프란시스코엔 골든게이트파크가 있다. 이 공원 한쪽엔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 희생자를 추모하는 작은 숲이 있다. 샌프란시스코는 에이즈 초창기 발병자가 가장 많이 나온 지역 중 한 곳이다. 지난 5일 이곳에선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에이즈 발병 4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1981년 6월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주간 보고서에서 새로운 증상의 환자 발생을 처음 알렸다. 폐렴 증상을 보인 남성 5명에게서 면역 세포에 손상을 입은 특이 사례를 발견했으며 이 중 2명은 이미 숨졌다는 내용이었다. 에이즈의 시작이었다. 배우인 미국의 록 허드슨과 앤서니 퍼킨스, 록그룹 퀸의 프레디 머큐리, 러시아 태생의 세계적 무용가 루돌프 누레예프,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 1980년대 중반과 1990년대 초반 에이즈로 숨진 유명 인사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는 사람 몸 안으로 들어와 면역 세포를 파괴하는 바이러스다. 전문가들은 한 번의 성관계로 감염 가능성은 0.1~1% 정도로 보고 있다. 1990년대 초반까지도 에이즈는 불치의 천형(天刑)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1996년 여러 약을 동시에 쓰는 ‘칵테일 요법’이 등장하면서 인간이 승기를 잡았다. 이젠 치료제 효과가 좋아서 약만 잘 복용하면 에이즈를 당뇨나 고혈압 같은 만성 질환처럼 관리하며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 얘기다. 현재 전 세계 3700만명이 HIV와 함께 살고 있다.
▶샌프란시스코는 현재 인구의 약 80%가 1회 이상 코로나 백신을 접종받았고 68%는 접종을 완료했다. 그 결과, 최근 샌프란시스코 코로나 신규 확진은 하루 평균 10여명 수준의 소규모 감염만 나오고 있다. 샌프란시스코가 미국 최초로 코로나 집단면역에 도달하는 대도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과거 이곳이 에이즈와의 싸움에서 선봉에 선 도시였다는 사실이 보건 조치에 대한 대중의 신뢰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HIV는 같은 RNA 바이러스여서 변이가 잦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도 인류는 끈질기게 추격해 HIV는 사실상 무력화시켰고 코로나 바이러스도 약점을 포착해 공략하고 있다. 에이즈엔 ‘U=U’(Undetectable=Untransmittable) 원칙이 있다. 꾸준히 치료제를 복용해 HIV가 검출되지 않으면 감염력도 없다는 것이다. 코로나는 치료제 이전에 백신이 그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김민철 논설위원, 조선일보(21-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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