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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의 광복회가 ‘김원웅 악몽’에서 벗어나려면] ....

뚝섬 2023. 5. 31. 07:54

[이종찬의 광복회가 ‘김원웅 악몽’에서 벗어나려면]

[‘김원웅 악몽’에 허물어진 광복회, 뼈대 완전히 갈아 끼워야]

[김원웅 광복회장의 창피한 역사 왜곡 발언]

[蘇 선전 반복한 광복회장]

[대한민국 대통령 되겠다는 이재명 지사의 대한민국 역사관]

 

 

 

이종찬의 광복회가 ‘김원웅 악몽’에서 벗어나려면

 

2 대전 등장한 독립국 중에 헌법 직접 만든 나라 거의 없어
한국은 힘으로 제헌성공해.. 광복회, 臨政 통합 정신 계승해야

 

신임 광복회장으로 당선된 이종찬 전 국정원장이 26일 서울 남산예장공원 내 이회영기념관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국가 정체성 바로 세우고 다질 것"이라며 당선 이후 계획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2023.05.26 /남강호 기자

 

아프리카 중부에 있는 콩고민주공화국은 1885년부터 1960년까지 벨기에 식민지였다. 식민지 중에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참혹한 학대를 당했다. 상아와 고무 채취 강제 노동이 특히 악명 높았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손목이 잘리고 인질로 잡혀 있던 가족이 살해당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최대 1000만명이 죽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명만 희생당한 게 아니라 교육도 받지 못했다. 독립 당시 콩고 인구 1300만명 중 대졸자가 고작 16명이었다. 34세에 초대 총리가 된 루뭄바는 중학교 졸업 후 우편기술학교에 다녔다. 이 정도가 최고 학력이었다. 막상 나라는 독립했는데 제대로 된 정부를 세울 능력이 없었다. 신생국 대부분이 그런 어려움을 겪었다. 국가의 정체성을 담는 헌법조차 스스로 제정할 능력이 없어서 자국 헌법을 외국 헌법학자들에게 부탁해 만들었다.

 

대한민국은 아니었다. 남의 빌리지 않고 우리 손으로 헌법을 만들었다. 세계는 대한민국 70년사를 기적이라 한다. 우리 손으로 헌법을 만든 것도 그 기적에 포함된다. 그 첫 단추를 채운 주역은 광복을 위해 싸운 임시정부 요인들이었다. 임시정부는 상해 시절 헌법을 만들고 이후 5차례 개정한 경험을 이미 갖고 있었다. 그런데도 광복 후 제헌 과정에 국내에 있던 두뇌들을 참여시켰다. 도쿄제대와 경성제대 등을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해 총독부에서 근무했던 이들은 친일파였지만 당대 최고 엘리트이기도 했다. 임정 요인 신익희가 그들에게 훗날 제헌 헌법의 기초가 되는 초안을 만들게 했다. 광복 후 숨죽이고 있던 총독부 출신 한인 엘리트들은 처음 신익희의 호출을 받고 “이제 죽나 보다” 했다고 한다. 그런데 건국에 보태는 것으로 지난 과오를 씻으라는 말에 감복했다. 이후 임정 산하에 행정연구회를 결성해 헌법 초안을 만들었다. 헌법학자 유진오도 참여했다.

 

지난주 선출된 이종찬 신임 광복회장이 당선 후 회원들에게 큰절하며 “힘을 합치자”고 했다. 광복회장 선거는 서울 서대문의 국립임시정부기념관에서 치러졌다. 그곳 1층 야외 광장에 조형물 ‘역사의 파도’가 있다. 수많은 물결이 합쳐져 대한민국이 탄생했다는 의미라고 한다. 이 신임 회장은 “그 물결 사이사이에 독립선언서,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헌 헌법 전문 등이 새겨져 있다”고 했다. 독립과 건국의 결실인 제헌도 민족 역량을 결집해 이룬 성과다.

 

광복회는 신익희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광복뿐 아니라 건국에 기여한 이들의 노력도 품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김원웅 회장 시절 광복회는 길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다. 이승만이 세운 나라의 정통성을 부정했다. 전쟁에서 나라를 지켜낸 구국의 영웅 백선엽 장군 묘도 현충원에서 파내자고 했다. 나라를 없애려 쳐들어온 자들과 싸운 이를 배제하고 어떻게 광복을 누릴 수 있다는 건가. 김원웅 회장의 잣대대로면 총독부 관리를 건국에 동참시킨 임정 요인들도 파묘 대상이다. 그는 “6·25는 민족 해방 전쟁이라는 북한 주장을 부인하지 못한다” “통일을 지향하는 것이 종북이면 서슴지 않고 종북을 택하겠다. 정의로운 종북이기 때문”이란 말도 했다. 광복만 하면, 이후에 들어설 나라는 대한민국이 아니어도 된다는 인식이 깔려 있지 않고선 없는 언사였다.

 

이종찬 신임 회장은 통합을 강조했지만 이런 세력까지 포용해선 안 된다. 이 신임 회장이 “‘대한민국은 태어나면 안 됐다’처럼 도를 넘는 말을 하는 이들만 아니라면”이라는 통합 단서를 단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가 내일 광복회장에 취임한다. 헌법을 만들 때 독립지사들이 보여준 통합 정신을 살리되,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이들과는 단호히 맞서는 광복회가 되기를 바란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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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웅 악몽’에 허물어진 광복회, 뼈대 완전히 갈아 끼워야

 

신임 광복회장으로 당선된 이종찬 전 국정원장이 26일 서울 남산예장공원 내 이회영기념관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국가 정체성 바로 세우고 다질 "이라며 당선 이후 계획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2023.05.26 /남강호 기자

 

25일 선출된 이종찬 신임 광복회장은 “광복회는 설립 이후 최악의 위기 상황에 있다. 특단의 각오로 운영을 쇄신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 김원웅 회장이 광복회를 이념 집단 비슷하게 만든 잘못이라며 “이 때문에 단체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고 했다.

 

독립 유공자 후손들을 주축으로 한 광복회는 문재인 정부 시절 김원웅씨가 회장으로 부임하면서 국가 정통성을 부정하고 사회 분열에 앞장서는문제 단체 전락했다. 김씨가 2년 8개월간 회장 자격으로 한 일이라고는 허무맹랑한 친일파 타령으로 나라를 난장판으로 만든 것뿐이었다. 이승만 대통령, 애국가 작곡한 안익태 선생, 백선엽 장군 등을 친일파로 매도하며 문재인 정부의 친일 몰이 선봉대 역할을 했다.

 

김씨는 이렇게 정권의 비위를 맞춰가며 광복회를 그의 사조직이자 () 금고처럼 운영했다. 그가 사용한 법인 카드 7900여 만원 중 4분의 1은 간식과 반찬 구입 등을 위해 편의점, 수퍼마켓에서 사적으로 사용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자신의 가발 미용비, 목욕비, 마사지비 등으로 쓰기도 했다. ‘독립운동가 100인 만화 출판 사업’을 하면서 자신의 모친을 김구 선생보다 140쪽 더 두꺼운 430쪽으로 제작하고 자신의 출생 장면도 7컷에 걸쳐 다뤄 “우상화 아니냐”는 비난을 받았다.

 

광복회는 김 전 회장이 사퇴 후 자리와 돈을 놓고 파벌 싸움을 하며 국민의 분노를 샀다. 후임 회장 선출 문제로 대립, 이번에 이 회장이 새로 선출되기 전까지 1년에 네 차례 회장이 바뀌며 소송전을 벌였다. 이런 지경이다 보니 조직 운영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지금도 광복회 홈페이지 화면에는 김원웅 회장의 2021 방송 인터뷰가 버젓이 올라와 있다. 부채가 늘고, 국고보조금 지급이 중단되는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일제시대 만주 벌판에서 풍찬노숙(風餐露宿)하며 조국 독립을 염원했던 선열들이 이런 광복회를 상상이나 했겠나.

 

신임 이 회장은 원칙을 바로잡아 국가 중추 원로 기구로 위상을 갖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김원웅 악몽으로 광복회 조직이 워낙 심하게 허물어진 터라 뼈대를 완전히 갈아 끼운다는 각오가 필요할 것이다.

 

-조선일보(23-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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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웅 광복회장의 창피한 역사 왜곡 발언

 

김원웅 광복회장의 편향된 역사 왜곡 발언이 도를 넘었다. 이번엔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영상 강연에서 “해방 이후 한반도에 들어온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황기철 국가보훈처장이 그제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유감을 표명했지만, 김 회장의 대응은 더욱 가관이다. 자신의 명의로 광복회 홈페이지에 ‘한국인 개무시한 맥아더 포고령을 비판해야지, 포고령 내용을 밝힌 김원웅 회장 비난, 납득 안 돼’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올린 것이다. 독립유공자와 후손 등 8300명 회원을 대표하는 사람의 말과 행동이 이 정도일까 싶다.

 

국사편찬위원회가 공개한 맥아더 사령부 포고문을 보면 “북위 38도선 이남을 오늘부터 점령한다”는 말이 나오는 건 맞다. 그러나 “조선을 해방 독립시키라는 연합국의 결심을 명심하고” “점령의 목적이 (일본) 항복문서를 이행하고 그 인간적 종교적 권리를 확보함에 있다”는 문장이 바로 이어진다. 즉, 점령’ 또는 ‘점령군’이란 표현은 일본군을 무장해제한 주체로서의 정치 군사적 용어로 봐야 한다. 이런 내용은 뺀 채 미군은 나쁜 군대, 소련군은 좋은 군대라는 식으로 말하는 건 가당치 않다.

6·25전쟁 당시 미군 사망자는 3만3686명에 이르는 등 사상자가 십수만 명이나 된다. 소련군 포고문에 “조선인의 운명은 향후 조선인들이 하기에 달렸다”는 표현이 나오지만, 김일성은 이런 소련의 승인과 지원을 등에 업고 남침을 자행했다. 그런데도 미군을 점령군으로 규정하고, 인천상륙작전으로 6·25전쟁의 전세를 뒤집은 맥아더 장군을 폄훼하는 등 반미 주장을 펴는 이유가 대체 뭔가.

 

김 회장은 애국가를 부정하고 이승만 대통령을 친일파 이완용에 빗대는가 하면 고 백선엽 장군에게는 “사형감”이라고 하는 등 편향된 역사 인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왔다. 그에 따른 광복회 내분도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 임기 2년 동안 끊임없이 분란을 일으켜온 김 회장은 즉시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동아일보(21-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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蘇 선전 반복한 광복회장

 

역사상의 1차 자료를 해석할 때는 반드시 문서의 전후 맥락과 문서 작성자의 의도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가령 2차 세계대전 때 주변국을 침략한 나치 독일이 ‘민중을 압제자에게서 해방시키기 위해 진군했다’는 포고문을 발표했다면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최근 김원웅 광복회장이 영상을 통해 한 고교 학생들에게 발언을 하고있다/유튜브

 

그런데 그런 사람이 광복회장을 맡고 있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최근 고교생 대상 강연에서, 광복 직후 미군이 남한에서 발표한 ‘맥아더 포고령’과 소련군이 북한에서 발표한 ‘치스차코프 포고문’을 비교 설명했다. 미군 포고령에선 ‘점령’이란 말을, 소련군 포고문에선 ‘해방’이란 말을 강조했다. ‘미군은 점령군이고 소련군은 해방군이었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설명이었다. 광복회는 한술 더 떠 “한국인을 개무시한 맥아더 포고령을 비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단순한 비교다. 당시 38선 남북을 각각 점령한 미군과 소련군의 역할은 ‘점령군’이라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같았다. 그러나 이것은 카이로 회담과 포츠담 선언에 따라 일본군을 무장 해제하고 한반도를 해방하기 위한 일시 점령이었다.

 

미군과 소련군의 차이는, 딱딱한 용어로 행정 문서를 작성한 미군과 달리 소련군은 정치 장교까지 두고 능숙한 선전 선동을 발휘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 대신 ‘조선 사람들이여! 기억하라! 행복은 당신 수중에 있다’거나 ‘해방된 조선 인민 만세!’ 같은 사탕발림 문구가 버젓이 들어갈 수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미·소 군정(軍政) 통치가 과연 어떻게 전개됐느냐는 것이다. 정치 활동의 자유라는 면에서 분명한 차이가 났다. 미 군정이 공산당을 포함한 모든 정당을 합법화한 반면, 소 군정은 공산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을 불허했다. 소련이야말로 점령군이었다. 분단 획책도 소련이 먼저였다. 스탈린은 1945년 9월 지령서를 통해 남북 분단을 지시했고, 1946년 2월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라는 사실상의 ‘북한 단독 정부’를 세웠다. 한 학자는 “소련군 포고문은 요즘 같으면 공정위에서 허위·과장 광고로 제재를 받았을 것”이라며 혀를 찬다.

 

미·소 포고문 일부 문장의 단순 비교는 과거 ‘좌편향 교과서’로 비판받았던 금성출판사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가 실었다가 물의를 빚었던 것이다. 2004년 학계의 강한 문제 제기 이후 교육부의 권고를 통해 2008년 수정됐고, 이후 교과서들은 두 포고문을 보여주더라도 미군 포고령에서 ‘적당한 시기에 조선을 해방 독립시키려는 연합국의 결정을 명심하고 있다’는 문장을 제시하거나 당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추가 설명을 넣었다. 그런데 대한민국 광복회장이 돌연 어린 학생들 앞에서 시계를 17년 전으로 되돌렸다. 1945년 한 소련군 정치 장교가 만들어 냈을 선전 선동이 한반도에선 76년 동안 먹혀들고 있는 셈이다.

 

-유석재 기자, 조선일보(21-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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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통령 되겠다는 이재명 지사의 대한민국 역사관

 

안동 찾은 이재명 지사

 

이재명 경기도 지사가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의 정부 수립 단계와 달라서 친일 청산을 못 하고 친일 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서 지배 체제를 그대로 유지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깨끗하게 나라가 출발되지 못했다”고 했다. 2일 경북 안동의 이육사 문학관을 방문했을 때 발언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우리 역사상 첫 자유민주 선거인 5·10 총선거에 의해 탄생했다. 투표율이 95%를 넘을 정도로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 유엔은 대한민국 정부를 대다수 한국인의 자유 의사로 선출된 유일한 정부라고 결의했다. 어떤 나라 정부보다 투명하게 민주적 절차에 따라 수립됐다. 선거를 거부한 남로당의 살인과 방화만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정말 깨끗하게 출발했을 것이다. 유엔 결의와 자유 다당제를 거부하고 김일성 세습 독재로 간 북한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대한민국 초대 정부의 이승만 대통령은 세계가 인정하는 반일 독립투사였다. 그의 반일은 지나칠 정도였다. 역사 책을 읽으면 곧 알 수 있다. 이시영 부통령은 상해 임시정부 내무총장, 이범석 총리는 광복군 참모장, 이인 법무장관은 항일 변호사, 조봉암 농림장관은 좌파 독립운동가였다. 초대 내각 대부분이 항일 인사로 채워졌다. 반면 북한은 소련에 협력하면 친일파를 장관에 기용했고 반대하면 조만식과 같은 항일 독립운동가도 숙청했다. 대한민국 초대 정부가 일부 친일 인사를 실무급 관료로 기용한 것은 사실이다. 신생 국가로서 불가피한 일이었다. 4·19 후 장면 민주당 정부에서 친일 관료 비중이 이승만 정부보다 더 높았던 것도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2차 대전 후 독일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이 우리를 일제로부터 해방시켰는데 미군이 해방군이지 어떻게 점령군인가. 미군이 일제를 패망시킨 것이 잘못된 일인가. 우리 사회 일부 세력은 해방 후 역사를 집요하게 왜곡해왔다. 그런 책 몇 권이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적어도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만은 단편적인 역사 지식으로 대한민국의 기적적 성공 역사를 폄훼하지 말았으면 한다.

 

-조선일보(21-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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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이 친일파와 美점령군 합작이라는 발언. 끝장 토론해 국민에 평가 받는 게 진짜 선진 정치 문화.

 

-팔면봉, 조선일보(21-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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