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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김정은이 남한식 용어를 쓰는 이유] [‘징역 2년’으로.. ] ....

뚝섬 2024. 8. 15. 09:41

[北 김정은이 남한식 용어를 쓰는 이유] 

[‘징역 2년’으로 “오빠”가 없어질까] 

[보육원 K군이 ‘버디’ 치는 날]

 

 

 

北 김정은이 남한식 용어를 쓰는 이유 


최근 평안북도 의주에 대규모 홍수가 났는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례적으로 주민 앞에서 위로 연설을 하면서 한국식 표현을 여러 차례 썼다고 한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평북도의 소식통을 인용해 “김정은이 연설 서두에서 흔히 사용하던 ‘동지’ 혹은 ‘인민’이라는 말 대신 ‘주민’이라고 했고, 노인이나 늙은이를 한국식으로 ‘어르신’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김정은이 쓴 ‘병약자’, ‘험지’, ‘음료수’, ‘폄훼한다’ 등의 표현도 북한에선 거의 쓰이지 않는다고 했다. 연설을 들은 주민들이 많이 놀랐다고 한다.

▷지방 출신이 서울서 오래 살아도 여전히 사투리를 쓰는 것처럼 말할 때 즐겨 쓰는 낱말은 잘 바뀌지 않는다. 집무실 TV로 한국 예능과 드라마를 챙겨 보는 것으로 알려진 김정은이다. 얼마나 즐겨 봤으면 용어까지 바뀌었을까 싶다. 한국 드라마를 시청한 10, 20대 청년을 강력하게 처벌하는 북한이지만 탈북민들은 “북한에선 고위층일수록 노골적으로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본다”고 말한다.

▷북한은 지난해 초 남한 말투 사용을 금지하는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제정했는데, 법 조문이라기엔 표현이 저급하다. “괴뢰(남한)말은…조선어의 근본을 완전히 상실한 잡탕말로서 세상에 없는 너절하고 역스러운 쓰레기말”이라고 했다. 금지 항목도 깨알 같은데, “자녀들의 이름을 괴뢰식으로 너절하게” 지어선 안 된다. ‘오빠’라는 호칭은 소년단 시절까지는 쓸 수 있지만 청년동맹원이 된 뒤엔 써선 안 된다. 장마당 세대를 중심으로 한국 문화가 유입되는 걸 김정은이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올 6월엔 비슷한 취지로 북한 국가국어사정위원회가 ‘다듬은말참고자료’를 발행하기도 했지만 혼란이 적지 않은 것 같다. 평북도의 소식통은 RFA에 “(김정은이) 텔레비죤도 ‘TV’라는 한국식 표현을 썼다”고 했다. 그러나 이 말은 당국이 ‘다듬은말’로 사용을 권장하는 말이다. ‘조선중앙텔레비죤’이라는 명칭에서 보이듯 북한은 원래 ‘텔레비죤’을 많이 썼는데, 요즘엔 공식 매체도 ‘TV’라고 한다. ‘텔레비죤’이 ‘외국말 찌꺼기’라고 판단한 것 같은데, 실은 한국식으로 ‘TV’ 사용이 늘다가 아예 자리를 잡은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문화는 물처럼 스며드는 것이어서 막는다고 막아지는 게 아니다. 평북도의 소식통은 “주민들에게는 평양말을 사용하라고 하면서 자기는 한국말을 대놓고 쓰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말투까지 주민을 통제하는 김정은이 정작 자기 입은 통제를 못 하는 모양새다. RFA에 따르면 “텔레비죤을 ‘TV’라고 하는 사람은 수상하니 신고하라”는 내용이 과거 북한의 반(反)간첩 포스터에도 있었다고 한다. 김정은을 신고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겠지만 뭔가 수상하다고 느낀 사람은 많았을 것이다.

-조종엽 논설위원, 동아일보(24-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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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역 2년’으로 “오빠”가 없어질까 

 

북한 배경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북 주민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조선일보 DB

 

북한에 처음 상륙한 한류(韓流)는 1990년대 영화 ‘장군의 아들’ 같은 액션물이었다. 보면 바로 이해가 됐다. 고난의 행군 때는 한국 노래 ‘돈 때문에’가 유행했다. “돈이란 무엇이길래 사람을 울리나”는 가사가 북 주민을 울렸다. 단속에 나선 북 당국이 비디오·DVD 플레이어는 놔 두고 DVD(알판)만 압수했다. 맞불을 놓는다며 북 체제 선전용 DVD를 만들어 대량 유포했다. 그런데 두 DVD가 뒤섞이면서 한류 적발이 어려워졌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김정일에게 ‘대장금’ 등 드라마 DVD를 선물했다. ‘장군님도 보는 것'이라며 북 간부를 중심으로 한국 사극이 확 퍼졌다. 김정일이 만든 영상물 ‘민족과 운명’에는 박정희 대통령 앞에서 심수봉씨가 기타 치며 ‘그때 그 사람’을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북 젊은이들이 그걸 따라했다. ‘겨울연가’ 같은 연애물을 보고 남한 말투와 옷차림도 흉내 내기 시작했다. 김정일 애창곡이 ‘사랑의 미로’다. 그런데 2009년 3대 세습을 앞두고 한류를 퍼뜨렸다며 간부를 총살까지 했다. 하지만 이미 둑은 터진 뒤였다.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이민호씨 얼굴이 찍힌 중국 감자칩은 북 시장에서 웃돈을 줘야 살 수 있었다. 북 여학생들이 ‘우상’ 사진을 앞다퉈 모았기 때문이다. 이씨와 열애설이 불거진 여자 연예인을 때려주려 ‘탈북하자’는 이야기까지 했다고 한다. 한국 걸그룹 춤을 가르쳐주는 ‘사설 학원’도 등장했다. 작년 백두산 답사에 나섰던 20대 북한 군인들이 오락회에서 방탄소년단(BTS) 춤을 췄다가 문제가 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북한군이 ‘BTS 아미(팬 클럽)’가 된 셈이었다.

 

▶김정은이 작년 12월 ‘반동 사상 문화 배격법’을 제정했다. 한국 식으로 남편을 ‘오빠’라 부르면 징역 2년, 영상물을 유포하면 사형이다. 한류가 위험 수위를 넘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북한 검사가 압수한 남한 드라마를 밤새 보다가 걸려 탈북하는 지경이다. 북 배경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본 주민들은 진짜 같은 평양역과 유경호텔 등을 보고 한국 기술에 탄복한다고 한다.

 

▶북한 ‘MZ 세대’는 대량 아사 시기에 태어나거나 유년기를 보냈다. 배급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 맹목적 충성심도 약하다. 자기를 키운 건 시장(市場)이라 여긴다. 김정은은 이들의 한국 동경이 반체제로 이어질까 두려워한다. 북은 한류를 “모기장을 2중, 3중으로 쳐서 막겠다”고 했다. 그런데 한류는 모기가 아니라 바람이다. 자유와 민주의 바람이 태풍처럼 북을 휩쓸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반드시 올 것이다.

 

-안용현 논설위원, 조선일보(21-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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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원 K군이 ‘버디’ 치는 날 

 

“보육원 출신에겐 ‘보기’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거 같아요. ‘파’ 보다 뒤처진.”

 

SK텔레콤 오픈 골프 대회가 열린 지난달 중순, 골프장 곳곳에 제주 지역 ‘보호종료아동’ 27명이 진행 요원으로 배치됐다. 보호 종료 연령인 만 19세가 돼 보육원을 나간 아이들이다. 주최 측 초청으로 주말 경기 이틀간 이들에게 아르바이트 기회가 생겼다. 선수들에게 물을 건네주거나, 기록지를 갈아 끼우는 등 간단한 업무를 맡았지만, 골프장 풍경이 생경한 이들은 선수들 플레이를 즐겁게 지켜봤다. 업무에 투입되기 전 ‘버디’ ‘파’ ‘보기’ ‘페어웨이’ 같은 간단한 골프 용어도 익혔다.

 

이 대회에선 참가 선수가 버디 땐 2만원, 이글·알바트로스·홀인원 땐 5만원의 기부금을 내 보호종료아동에게 줄 장학금을 마련했다. 경기 종료까지 버디는 933개, 이글 이상은 22개 나와 총 1976만원이 모였다. “경기 땐 선수에게 방해가 안 되도록 정숙해야 해서 아무 말 못 했지만, 버디에 성공할 때마다 속으론 환호성을 질렀다”는 아이도 있었다.

 

일요일 경기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온 K(20)군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그는 “첫날에는 버디나 이글에 성공한 선수가 눈에 들어왔는데, 이튿날부턴 보기나 더블 보기를 한 선수에게 더 눈길이 갔다”고 했다. “경기를 보니 정해진 타수에 맞춰 공을 넣는 것도 무척 어렵다는 걸 알았어요. 타수를 줄여야 이기는 게임에서 보기, 더블보기가 나오면 원점인 파로 돌아가기 더 어려워지죠. 보기는 보육원 삶과 닮았어요.”

 

K군은 태어나자마자 제주도 한 교회에 버려졌고 보육원에서 쭉 자랐다. 어릴 적부터 노래를 잘해 성악가를 꿈꿨지만, 예술중·고교 학비와 레슨비가 워낙 비싸 보육원에서 성악 전공을 반대했다고 한다. 작년 2월 보호 종료와 함께 경북 한 대학에 진학했지만 만족하지 못하고 올해 초 자퇴를 결심, 현재는 평소 지망하던 대학 성악과 입시를 준비 중이다. 그는 “보육원 아이들에겐 자기 꿈이 무엇인지 고민할 여유가 없다”며 “골프공이 모래밭에 빠지고, 물속에 빠지듯 당장 눈앞에 닥친 어려움이 크다. 최선을 다했지만 보기를 한 선수들이 선두권에서 멀어지는 걸 보며 그 심정이 이해가 갔다”고 했다.

 

대회는 최종 합계 14언더파를 기록한 만 19세 신예의 우승으로 마무리됐다. 주최 측은 지난달 30일 선수들이 모은 장학 기금에 800만원을 보태 27명 아이들에게 100만원씩 장학금을 지급했다. 이날 K군과 짧게 통화했다. 돈을 어디에 쓸 건지 물으니 “레슨비에 보탤 계획”이라면서 “레슨 3~4번 받을 수 있는 돈이 생겨 기쁘다”고 했다. “성악가 꿈을 포기하지 않고 보기를 줄여나가다 보면 언젠간 파에, 어느새 버디를 하는 날도 오지 않을까요? 골프장 잔디밭에 선 선수들처럼 저도 무대에서 제 목소리로 노래하는 날을 꿈꿉니다.”

 

-박상현 기자, 조선일보(21-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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