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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심원 만장일치 판결, 상급심이 함부로 뒤집지 마라”] ....

뚝섬 2024. 8. 20. 06:34

[“배심원 만장일치 판결, 상급심이 함부로 뒤집지 마라”] 

[文 비판은 유죄, 천안함 허위 괴담 유포는 ‘공익’ 무죄라는 판사들] 

[판사 전성시대]

 

 

 

“배심원 만장일치 판결, 상급심이 함부로 뒤집지 마라” 


배심제를 하는 대표적인 나라인 미국에는 배심원이 되기 어려운 직업이 있다. 의사나 법률가, 사건 관련 분야의 학자 등 전문직이 배심원에 선정되면 판사는 이런 사람들부터 돌려보낸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의 상식에 근거해 정의를 실현한다는 게 배심제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배심원 중 전문가가 섞여 있어 다른 배심원들에게 영향을 끼치면 공정한 판단이 힘들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12명의 보통 사람들로 이뤄진 미국의 배심원단은 유무죄를 직접 결정한다. 판사는 형량만 정한다. 배심원단이 무죄 평결한 사건은 검사가 상소할 수도 없다. 다만 유죄 평결은 배심원단의 만장일치로만 가능하다. 이 때문에 유죄가 강하게 의심되는 피고인들이 무죄로 풀려나는 일도 종종 있지만 수사기관이 배심원 만장일치라는 문턱을 넘기 위해 혐의 입증을 더 철저히 하게 되는 순기능이 크다.

▷우리나라 국민참여재판은 판사가 배심원 평결에 꼭 따라야 하는 건 아니지만 만장일치로 나온 결론일 땐 얘기가 다르다. 1심 재판부가 배심원들의 일치된 판단을 받아들여 내린 판결은 상급심에서 함부로 뒤집어선 안 된다. 최근 대법원은 30억 원 규모 사기 사건에서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한 2심 판결을 깨고 돌려보내면서 “배심원 만장일치 의견의 무게를 존중하지 않았다”는 사유를 들었다. 1심에서 배심원 전원이 무죄로 판단했다면 유죄로 보기에 합리적 의심이 든다는 게 분명히 확인된 것이므로 그에 명백히 반하는 중대한 사정이 없는 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판례들이 쌓이면서 ‘배심원 만장일치’와 ‘1심 법원의 수용’이란 조건이 충족되면 상급심도 판결을 뒤집는 데 신중해지는 경향이 생기긴 했다. 하지만 배심원단의 만장일치 결론도 1심 법원이 그와 반대로 판결하면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국민참여재판이 도입된 2008년부터 2021년까지 이뤄진 2800여 건 중 배심원단의 만장일치 결론과 반대로 난 판결이 109건에 달한다. 배심원들 앞에서 재판해 봐야 소용이 없다는 인식 때문인지 국민참여재판 건수는 연간 92건(2022년)에 불과하고 배심원들 출석률도 55% 수준에 그치고 있다.

▷배심원 한 명 한 명은 평범한 시민이지만 다양한 경험과 식견을 가진 이들이 만장일치로 내린 결론이라면 사법적인 무게가 실려야 한다. 법원이 이를 가볍게 뒤집어 버리면 국민참여재판이란 제도의 실효성이 흔들린다. ‘어차피 결론은 판사의 몫’이란 한계 안에선 배심원들이 책임감을 갖고 평결에 참여할 동기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배심원단에게 유무죄에 대한 최종적 결정권을 준 것도 그래야만 배심원들이 고도의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재판에 임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법원이 국민의 신뢰를 받으려면 보통 사람들의 상식과 판결이 다르지 않아야 한다.

-신광영 논설위원, 동아일보(24-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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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비판은 유죄, 천안함 허위 괴담 유포는 ‘공익’ 무죄라는 판사들 

 

븍 어뢰 공격으로 폭침된 천안함이 좌초 후 미군 함정과 충돌해 침몰했다는 음모론을 퍼트린 신상철씨. /뉴시스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윤강열)가 천안함 좌초설 등 각종 괴담을 유포한 혐의로 기소된 신상철씨에게 1심 유죄를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신씨 주장이 허위인 것은 분명하지만 비방 목적이 아니라 ‘공익 목적’이라는 것이다. 북한의 천안함 폭침으로 우리 장병 46명이 전사하고 구조 과정에서 10명이 더 희생됐다. 한국과 미국·호주·영국·스웨덴 등 5국 전문가 73명이 92일에 걸친 합숙 조사와 수많은 모의 실험 등 과학적 검증을 거쳐 만장일치로 내린 결론이 북의 어뢰 공격이다.

 

민주당 추천 민간위원이었던 신씨는 합동조사단 회의에 단 2시간 참석한 뒤 “(군이) 다 조작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며 합조단을 이탈했다. 그 후 자신이 대표로 있는 친노(親盧) 인터넷 매체와 강연, 토론회 등에서 전문가 행세를 하며 ‘미 군함 충돌설’을 퍼트리고 “정부가 천안함 침몰 원인을 조작하려고 구조를 늦췄다” “국방장관이 증거를 인멸했다”고 했다. 북 어뢰 추진체 발견으로 결정적 증거가 나왔는데도 “서해에서 발견된 어뢰에 동해에만 있는 붉은 멍게가 붙어있다”거나 “(북 어뢰의 1번 글씨는) 우리가 쓴 것 같다”는 허무맹랑한 주장까지 폈다.

 

표현의 자유는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신씨는 처음부터 진실 규명에는 관심이 없었고 아무 근거 없는 음모론으로 대중을 선동하고 대한민국과 군을 공격한 것이다. 앞서 유죄를 선고한 1심도 “악의적·경솔한 공격” “현저하게 상당성을 잃었기 때문에 비방 목적이 충분하다”고 했다. 그런데도 2심은 이 엄연한 사실들에는 눈감고 “공익 목적” “사상과 학문 영역”이라며 신씨에게 면죄부를 줬다. 2심대로라면 어떤 악의적 괴담과 선동도 처벌할 수 없을 것이다. 상식과 법리에 맞도록 대법원이 바로잡아야 하지만 지금 대법원이 그럴 리도 없다. 지금 한국은 이런 나라가 돼 있다.

 

신씨는 북이 천안함 도발 8개월 후 연평도에 포탄을 퍼부었을 때도 음모론을 멈추지 않았다. 이번 무죄 판결 직후엔 “남북 공동조사를 하자” “10년간 살인범 누명을 쓴다면 살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북한 주장 그대로다. 천안함 용사들과 유가족들에게 무릎 꿇고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 또 한번 욕을 보인 것이다. 제 가족이 당했어도 이러겠나. 인면수심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근래 억지 논리로 정권 편을 드는 판사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 대법원은 해직자 노조 가입을 금지한 노동조합법과 기존 판례를 뒤집고 전교조를 합법화했다. 선거 TV토론에서 거짓말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으면 허위사실 공표가 아니라며 이재명 경기지사의 지사직을 유지시키고 검찰이 항소장을 부실 기재했다는 지엽적 형식 논리로 은수미 성남시장에게 면죄부를 줬다. 대통령을 '형'이라고 불렀다는 정권 실세는 뇌물 4200만원을 받고도 풀려났고 교사 채용 뇌물 1억4000만원을 받은 조국 동생에겐 돈 심부름꾼들보다 낮은 형량이 선고됐다.

 

반면 대통령을 비판한 변호사에겐 정권이 바뀐 뒤 2심에서 유죄가 선고됐고, 조국 의혹을 제기한 유튜버는 법정구속됐다. 개방된 대학 구내에 대통령 비판 대자보를 붙인 청년은 ‘주거 침입죄’로 처벌받고 코로나 방역을 핑계로 국민의 정권 비판 목소리를 틀어막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법이 보장하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정권 편에만 적용되고 있다. 판사들이 정권에 아부하는 나라는 큰 위험을 맞이할 수 있다.

 

-조선일보(20-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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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전성시대

 

지난달 어느 법원에서 부장판사가 회식 도중 말다툼 끝에 16세 연하 배석판사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가 사과했다. 그러나 배석판사는 그 사과를 다시 문제 삼아 부장판사를 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결국 부장이 다시 배석판사에게 머리를 깊이 숙였고, 배석판사가 고소를 취하했다. 이전 같으면 상상할 수도 없던 일이다. 

 

▶과거에는 합의부 판사 3명이 점심을 먹으러 갈 때도 재판장 우배석 좌배석의 순서로 나란히 걸어다녔다. 이제 그런 광경은 보기 어렵다. 판사 100여 명이 검찰에 불려다닌 ‘적폐몰이’ 바람이 지나간 뒤 판사 사회에 ‘지시’라는 말이 사라졌다. ‘선후배 판사’라는 말을 없애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배석판사가 재판장에게 ‘직접 판결문을 쓰라’고 대들고, 재판장에게 알리지 않고 ‘칼퇴근’을 해도 이를 나무랄 선배가 없다.

 

▶최근 판사 채용 시험에서 최대 로펌인 ‘김앤장’ 소속 변호사 12명이 합격했다. 경력 5~7년 차로 한창 물이 오른 변호사들이다. 검사도 60명이 지원해 15명이 붙었다. 판사 전직 열풍이 불면서 ‘판시(判試)족’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판사 시험을 준비하는 변호사들은 “남 눈치 안 보고 살고 싶어서”라는 이유를 가장 많이 꼽았다. 수입은 비록 줄지만 ‘을’(乙)이 아닌 ‘갑’(甲)의 입장에 서고 싶다는 것이 이들의 솔직한 속내다. 판사가 되면 로펌 시절 달달 볶아대던 파트너(선임) 변호사가 오히려 눈치를 봐야 한다.

 

▶어느 직업 만족도 조사에서는 판사가 1위로 나왔다. 검사 37위, 변호사 74위와 비교된다. 법정에 서면 사건의 결론은 물론이고 재판 선고 날짜까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판사 3000명 각각 왕이나 다름없다. 모임 상석은 판사들 차지인 경우가 많다. 이제 판사들이 일에 찌든 모습은 보기 어렵다. ‘퇴근길에 서류 보따리를 싸들고 집에 간다’는 등의 이야기는 전설 같은 이야기다. 많은 판사가 법원 주변 헬스장에서 건강을 관리하고 저녁 술자리도 갖는다.

 

▶판결 절차에서 실수를 하거나 오심(誤審)을 해도 판사들은 문책받지 않는다. 노정희 대법관처럼 법리를 잘못 적용해 하급심에서 다시 뒤집혀도 탓할 사람은 없다. 오히려 선관위원장이 된다. 국민 참여 재판 확인 절차를 누락하는 바람에 처음부터 다시 재판을 열게 된 판사들도 징계받지 않을 것이다. 돈을 준 사람은 구속하고, 돈 받는 사람은 풀어주는 재판부도 예외는 아니다. 누릴 것은 다 누리고 책임에서는 비켜 있는 유일한 직업이 판사다. 그러니 판사 전성시대다.

 

-정권현 논설위원, 조선일보(20-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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