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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국가’의 굴레를 넘어서] [文·盧정권이 퍼뜨린 ‘나라 탓’ ‘나라 만능’.. ]

뚝섬 2021. 8. 9. 06:10

[‘강한 국가’의 굴레를 넘어서] 

[文·盧정권이 퍼뜨린 ‘나라 탓’ ‘나라 만능’ 바이러스]

 

 

 

강한 국가’의 굴레를 넘어서

 

[朝鮮칼럼]

상품·서비스·문화 모두 민간이 혁신 주도하는데
규제·통제·관치 위주 ‘강한 국가’ 사고방식 여전
사회 잠재 역량 극대화 위해 국가 기구 조직과 역할 재설정 고민할 때 됐다

 

각 정당의 대선 경선이 본격화되면서 후보들이 많은 말을 쏟아내고 있지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오만과 무능에 지친 이들이 많다고 해도, 어차피 새 정부가 들어서면 현 정부는 극복하거나 벗어나야 할 과거가 될 것이다. 지금 국민이 듣고 싶은 건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잘못했다는 걸 다시 확인받고 싶은 게 아니라. 그래서 뭘 새롭게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제껏 이뤄진 논의에서는, 대중의 주목을 끌기 위한 자극적인 언술 말고, 우리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찾아보기 어렵다.

 

총 길이가 3.6㎞에 달하는 정부세종청사. 세종청사 옥상공원은 가장 큰 옥상정원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조선일보DB

 

무엇보다 국가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얼마 전 국민의 힘 이준석 대표가 여성가족부와 통일부 폐지론을 제기했지만, 일을 제대로 못해 없애야 한다면 부동산을 이 꼴로 만든 국토부부터 폐지해야 할 터이다. 이제는 보다 본질적으로 국가의 역할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 되었다.

 

이런 지적을 하면 으레 나오는 말이 ‘큰 정부, 작은 정부’에 대한 것이다. 진보는 큰 정부, 보수는 작은 정부를 선호한다는 식이다. 그러나 이런 이분법은 의미가 없다. 그동안 우리나라에는 언제나 ‘강한 국가’만이 존재했다. 해방 후 남겨놓은 일제의 통치 구조가 폭력적이었고, 그 위에 권위주의 체제를 위한 강압적 통치 기제가 더해졌다. 공안 조직 등 강화된 억압 기구는 전쟁과 뒤이은 냉전을 거치면서 반공 이데올로기를 통해 정당화되었다. 또 국가가 경제개발을 계획하고 추진한 발전국가의 시기를 겪으면서 국가는 사회 전 영역을 압도했다. 사실 그 당시는 민간보다 공공 영역이 더 효율적이기도 했다. 군대만 하더라도 수많은 장교들이 미국으로 연수를 다녀왔고 미군의 선진 시스템이 일찍부터 우리 군에 도입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민간 영역이 국가보다 더 유능하고 효율적이 되었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우리 기업들의 각종 상품이나 서비스, 그리고 K문화 모두 민간 영역의 창의력과 노력의 산물이다. 외국에서도 신기술, 신산업 등 세상의 변화를 이끄는 혁신은 민간 영역에서 주도하고 있다. 상황은 이렇게 변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강한 국가’ 속에 살고 있다. 유연하지 않고 개방적이지도 않은 보수적 관료들이 규제 위에 올라타 있고, 고위 관료의 낙하산이나 관치 금융의 문제도 바뀌지 않았다. ‘제왕적’이라는 대통령의 그늘 속에 관료 집단은 민간 영역을 통제하고 압도하는 ‘강한 국가’로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는 민주화 이후에도 국가 우위, 국가 주도라는 ‘옛날식 발전국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집값을 ‘때려잡겠다’는 부동산 정책이야말로 규제와 강압이라는 ‘강한 국가’적 사고를 잘 드러내 보이는 사례이다. 이 정책의 참담한 실패가 보여주듯, 오늘날 국가는 전지전능하지 않고 과거만큼 유능하거나 효율적이지도 않다. 현실은 ‘때려잡을’ 수 없게 되었지만 인식은 지체된 상태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변화된 세상에 맞게 국가의 구조와 역할을 재설정해야 하는 건 우리 사회의 재도약을 위해 필수적 과제가 되었다. 예컨대 교육자치로 교육청이 해당 지역의 초·중·고 교육을 담당하게 되었고, 국가교육위원회까지 만든 상황에 교육부가 지금 그대로의 권한과 기능을 유지해야 하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감염병이 주기적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복지의 기능과 보건의 기능이 한데 묶여 있어야 하는지도 고민해 봐야 한다. 기획과 재정 기능이 한데 묶여 있어야 하는지,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절반이 몰려 있는 상황에서 국토부가 계속해서 수도권 신도시를 만들어 내야 하는지, LH 사건에서 보듯이,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은 애당초 설립되었을 때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서 기존의 틀을 그대로 둔 채 이런 국가 기구를 활용해서 무엇을 하겠다고 나서는 후보들의 공약은 오히려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그 중에는 탈원전처럼 애당초부터 실현되기 어려운 공약도 있고, 또 새로운 규제를 만들어 낼 공약도 있을 것이다. 무작정 뭘 하겠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국가가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 할 수 없는 일을 가려내고, 또 고칠 건 고치겠다고 하는 것이 설득력 있고 신뢰를 주는 약속이다. 그저 정부 부처 조직을 뜯어고치라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정부의 역할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가가 모든 걸 할 수 있다는 건 과신이고 지난 시대의 신화이다. 우리 사회의 잠재적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국가 기구의 역할과 조직을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조선일보(21-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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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盧정권이 퍼뜨린 ‘나라 탓’ ‘나라 만능’ 바이러스

 

[박제균 칼럼]

국민 불만 숙주로 번진 바이러스

코로나보다 더 질기고 달콤해
시민정신 좀먹고 국가 이성 마비

권력자엔 포퓰리즘 독재 길 터줘

 

돈은 많지 않아도 먹고살 만큼은 벌었다. 가정도 그럭저럭 꾸려 큰 걱정은 없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이 여전히 불편하다. 내 인생은 왜 이거밖에 안 됐을까. 더 큰 사람이 될 수는 없었나.

어느 날 그 소리가 들려왔다. “당신 잘못이 아니다. 나라 탓이다.” “반칙과 특권이 지배해온 이 나라가 당신을 그렇게 만들었다.” 듣고 보니 귀가 확 열리는 말이다. 나보다 잘난 거 하나 없는 인간들이 잘 먹고 잘산다. 내가 이거밖에 안 된 건 다 이 나라 탓이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 인생에 크고 작은 불만이 있다. 필자도 그렇다. 그렇다고 남 탓을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고 답도 없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가장 성공한 대통령이란 분이 정상에서 외쳤다. ‘당신은 잘못 없다. 나라가 잘못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누구보다 큰 스피커를 가진 대통령의 외침은 사람들의 불만을 숙주 삼아 코로나19 바이러스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나라 탓’ 바이러스.

 

노무현의 뒤를 이은 문재인과 운동권 좌파세력은 나라 탓 바이러스의 슈퍼전파자 노릇을 했다. 툭하면 나라 탓, ‘이명박근혜’ 탓을 우려먹었다. 세월호 나라 탓은 무려 7년간 9번이나 진상조사가 이뤄질 정도. 정점은 국정농단 사태 때 나온 ‘이게 나라냐’.

 

정권을 잡은 문 대통령은 취임사부터 나라가 다 해줄 것처럼 했다. ‘평등하고 공정하며 정의로운 나라’가 열릴 것처럼. 그 결과가 어떤가. 참담함은 이루 나열하기 어렵다. 그래서 반문(反問)한다. 툭하면 나라 탓하더니 5년이 다 되도록 만든 나라가 이거냐고.

 

어느 진보좌파 지식인의 표현대로 제대로 공부한 적 없고 돈 버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는 민주 건달들’은 국가를 운영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평생 남 탓을 하면서도 자신들이 그렇게 무능한지는 몰랐을 터. 문 정권이 남긴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걸핏하면 ‘나라 탓’을 입에 담는 정치인을 믿지 말라는 것이다.

‘나라 탓’ 바이러스가 유행하면 반드시 따라붙는 변이 바이러스가 있다. 우리가 집권하면 다 해준다는 ‘나라 만능’ 바이러스다. 그런데 국가가 어떻게 모든 걸 다 해줄 수 있나. 불가능한 목표를 입에 올리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당신의 불만이나 분노를 불쏘시개 삼아 권력을 잡거나 유지하려는 포퓰리스트 선동가들이다.

단적으로 노무현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보라. 인간 본성에 역주행하는 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사회주의 정책을 쓴다 해도 될 일이 아니다. 사회주의 중국의 부동산 빈부격차는 한국보다 심각하다. 북한에서조차 평양 아파트는 선망의 대상이다. 인간 본성과 시장 논리에 맞는 정책으로 한정된 부동산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것이 국정담당자의 실력이다.

그런데 무능한 권력일수록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는 데다 오만하다. 그러니 가장 손쉬운 ‘나랏돈 빼먹기’로 실정(失政)을 분식(粉飾)하려 든다. 그러다 10조 원이 넘는 고용보험기금을 4년 만에 거덜 내고, 북한이 두려워하는 첨단전투기 F-35A의 도입 등을 위한 국방예산까지 손대는 것이다. 이 시점에 북한 지령을 받은 간첩들이 F-35A 도입 반대 시위를 벌인 것은 과연 오비이락(烏飛梨落)인가.

 

이쯤 되면 문 정부의 무능과 실정 시리즈에 국민들이 넌더리를 낼 만도 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나라 탓’ ‘국가 만능’ 바이러스가 코로나보다 질기고, 그만큼 달콤하기 때문이다. 가깝게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고금(古今)의 포퓰리스트 정치인은 당대에 많은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40%가 넘는다는 문 대통령 지지율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번 대선에 나선 주자들도 ‘기본소득’ ‘기본주택’이니 ‘토지공개념 개헌’ ‘택지소유 상한제’ ‘반의 반값 아파트’ 같은 나라 만능 바이러스를 유포하고 나선다.

이런 바이러스는 개인의 자유 의지와 시민정신을 좀먹어 자유시민을 국가 의존형 인간으로 전락시킨다. 이 바이러스가 창궐하면 국가 이성은 마비되고, 사회적 담론은 수준 이하로 떨어진다. 작금의 쥴리 논란 등이 그 조짐이라고 본다. 무엇보다 국민이 이 바이러스에 집단 감염되면 권력자에게 국가주의, 포퓰리즘 독재의 길을 터준다. 역사상 많은 나라가 이렇게 패망했다. 대한민국이 그 기로에 섰다.

-박제균 논설주간, 동아일보(21-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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