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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덤비다 사고치지 말고.. ] [살림은 아주 잘해야 80점.. ] ....

뚝섬 2022. 11. 13. 05:50

[막 덤비다 사고치지 말고 살림은 하나씩 차근차근] 

[살림은 아주 잘해야 80점 삼식이는 그걸 모른다네] 

[외할머니의 간장밥]

 

 

 

[살림하는 중년 남자]

 

막 덤비다 사고치지 말고 살림은 하나씩 차근차근

 

은퇴 준비와 관련된 기사를 보면 대부분 남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남편이 집 밖에서 일하고 아내가 집 안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럴 것이다. 부부가 은퇴 후 사이좋게 지내려면 남편이 살림을 조금씩 미리미리 배워둬야 한다고 기사들은 조언한다. 당연한 이야기다.

 

일본의 한 노후 전문가는 은퇴를 앞둔 남편들에게 사소한 집안일을 찾아서 하라며 “화장실 수납장에 휴지가 없으면 채워 넣고 조미료 통이 비어 있으면 보충하고 쓰레기를 모아서 내다 버리고 다 먹은 그릇은 설거지통에 넣으라”고 했다. 밥 먹고 난 그릇 개수대에 갖다 놓는 게 은퇴 준비라면, 우리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은퇴 준비를 시킨 셈이다. 확실히 일본은 우리보다도 더 가부장적인 것 같다.

 

평생 빈 그릇을 개수대에 넣어보지 않았을 정도의 남편에게는 휴지를 채워 넣거나 조미료 통을 보충하는 일도 함부로 덤빌 일이 아니다. 그런 허드렛일에도 다 순서와 규칙이 있는 법이다. 아무 요령 없이 작은 소금통에 큰 소금 봉지를 들어 붓다가는 와장창 쏟기 십상이다. 아내는 그럴 일이 없다. 조미료 덜 때마다 쓰는 깔때기가 어디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들은 아마도 화장실 수납장에 휴지를 채워주기보다 휴지를 쓴 뒤 주르룩 늘어뜨린 채 화장실을 나오지나 말았으면 할 것이다. 집안 쓰레기를 모아 버리는 데도 나름의 방식이 있다. 아내는 종량제 봉투 한 장이라도 아끼려면 언제쯤 쓰레기를 모아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남편이 쓰레기봉투를 헐렁하게 채워 들고 나가 버리면 아내는 고맙다고 해야 할지 그걸 왜 벌써 내다 버리느냐고 잔소리를 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아무래도 일본의 노후 전문가 역시 별로 살림을 해보지 않은 것 같다.

 

살림을 보니 샤워 부스 배수구 청소가 가장 하기 싫은 하나다. 집안일을 돕고 싶다면 이것부터 전담하는 게 낫다. 배수구 뚜껑을 열고 이중 삼중 거름망에 잔뜩 쌓인 머리카락과 이물질을 걷어내는 게 고약한 일이긴 하지만, 별로 요령이 필요 없다. 휴지로 싹 걷어내고 거름망을 세제와 솔로 박박 닦아 다시 조립하면 끝이다. 한 달에 한 번만 해도 충분하다. 이 일을 해 보면 그동안 샤워한 뒤 물이 잘 안 빠진다고 투덜댄 게 미안할 것이다.

 

샤워 부스 배수구 청소해 봤다고 싱크대 배수구 뚫기에 함부로 나서면 안 된다. 싱크대 배수구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전혀 다른 이유로 막히므로 뚫는 방법도 완전히 다르다. 이래저래 살림은 어느 날 갑자기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조선일보(22-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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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은 아주 잘해야 80점 삼식이는 그걸 모른다네

 

아내 친구 중에 깔끔 올림픽이 있다면 금메달감인 사람이 있다. 그 집에 놀러가서 밥을 먹는데, 빈 그릇이 나올 때마다 설거지를 해서 마른 행주로 닦아 찬장에 넣었다. 그러니까 그 집 그릇은 찬장에 있거나 밥상에 있거나 둘 중 하나였다. 개수대 안에 두는 적이 없었다. 나중에 한꺼번에 하시라고 했더니 그냥 놔두란다. 식탁과 싱크대 왔다 갔다 하면서도 할 얘기 다 한다며. 빈 그릇 쌓인 꼴을 못 견디느냐고 물으니 자기도 병인 줄 알지만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러므로 살림은 잘하려고 노력해 봐야 80점이다. 100점 맞는 사람은 대개 강박증 환자다. 살림의 달인들 블로그를 보면 집 안에 나와있는 물건이라곤 거의 없다. 다 어디 선반이나 서랍에 들어가 있는데 그 안에서도 크기별로, 모양별로 차곡차곡 정리돼 있다. 이런 사람은 수박도 사오자마자 정육면체로 잘라 네모 통 안에 보도블록 깔듯 넣어두고 시장에서 받아 온 비닐봉지도 호텔 가운 개듯 개 놓는다. 다릴 수 있다면 다려서 갤 것이다.

 

그렇게 태어난 사람만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그렇게 하려면 일단 회사부터 그만둬야 한다. 밥 먹고 잠자는 시간 빼고 오로지 집 안 정리만 해야 한다. 현관에는 단 한순간도 한 켤레의 신발도 있어서는 안 된다. 욕실 거울은 물론 세면대에도 물방울 하나 있을 수 없다. 이런 사람은 지갑 속 지폐들도 다 한쪽 면 방향으로 정렬돼 있다.

 

사실 살림 점수 80점도 매우 어려운 경지다. 특히 직장 생활을 한다면 거의 불가능하다. 퇴근 후 저녁 7시에 귀가한다고 치자. 된장찌개만 끓여도 아무리 빨라야 한 시간이다. 된장 풀어 감자·양파 넣고 끓이면 되는 것 아냐? 하겠지만 감자·양파는 껍질 벗고 썰어져서 기다리고 있다더냐. 게다가 고기도 넣고 버섯도 넣고 두부도 넣어야 한다. 간신히 식탁에 올리는 시각이 8시다. TV 보다가 와서 한술 뜨면서 한다는 말, 우리도 된장찌개에 건새우 좀 넣지? 확 저 조동이를 그냥. 레드페퍼 페이스트를 곁들인 스팀드 포테이토(찐 감자와 고추장)를 해줄 걸 그랬나.

 

남자가 살림을 함께 하면 속도와 효율만 좋아지는 게 아니다. 살림을 알게 되면 상대방을 이해하게 된다. 살림을 모르니 냉장고와 빨래통과 다용도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살림이란 된장국 하나 끓였을 뿐인데 왜 설거지가 산더미처럼 쌓이는지, 밥상 물리면 드러누울 사람이 밥 먹은 사람인지 밥 차린 사람인지 깨닫는 일이다. 그걸 전혀 모르고 아침부터 찌개 찾으니 삼식이 소리를 듣는 것이다.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조선일보(22-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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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의 간장밥

 

[오세혁의 극적인 순간]

 

외할머니 손에서 자란 어린 시절… 엄마 보고 싶어 일부러 심통
그때마다 혼내지 않고 등 토닥이며 비벼주시던 간장밥 ‘꿀맛’
상추따러 갔다 넘어져 돌아가신 날, 마루엔 간장밥이 놓여있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맞벌이로 대부분 혼자 있었다. 늘 미안했던 어머니는 이모네 집에서 학교를 다니게 했다. 논과 들과 산이 있는 시골이었다. 이모와 누나들과 외할머니가 있었다. 그 당시의 나는 심술 덩어리였다. 밥을 먹다가도 많이 먹으란 말을 들으면 숟가락을 놓았다. 새 옷을 사주면 냇가에 들어가서 옷이 흠뻑 젖을 정도로 놀았다. 심부름을 시키면 뒷산에 올라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집에 들어갔다. 혼날 마음을 먹고 일부러 하는 행동이었는데 아무도 나를 혼내지 않았다. 외할머니가 항상 나를 감쌌기 때문이었다.

 

나를 감싸는 이유를 알 것 같아서 더 심하게 말썽을 부려도 외할머니는 언제나 내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 토닥거림이 괜히 서러워서 자주 울었다. 어린 나는 아마도 엄마와 아빠가 보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울 때마다 외할머니는 간장과 참기름에 밥을 비벼주었다. 그저 쓱쓱 비볐을 뿐인데 언제나 꿀맛이었다. 때로는 간장밥이 먹고 싶어서 일부러 울었다. 외할머니는 장날에 다녀올 때마다 종종 나를 위해 새로 짠 참기름을 사오곤 했다. 그 참기름을 보자마자 오늘은 무슨 이유로 울어야 할지 열심히 고민했다.

 

간장밥을 먹으며 나는 나이를 먹어갔다. 새해가 오고, 설날을 거쳐, 어버이날이 다가왔다. 나는 전날 밤부터 들떠있었다. 엄마가 외할머니를 만나러 온다고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기다렸는데 엄마는 오지 않았다. 나는 또 슬슬 심통을 부리기 시작했다. 외할머니는 한숨을 내쉬며 간장과 참기름을 꺼내들었다. 뾰로통한 얼굴로 간장밥을 먹고 있는데 멀리서 차 소리가 들렸다. 나는 숟가락을 내던지고 달려나갔다. 차에서 내리는 엄마에게 뛰어들었다. 외할머니도 지팡이를 짚고 뛰어나와 막내딸을 얼싸안았다. 고기를 구워준다며 직접 기른 상추를 따오겠다고 했다. 같이 가겠다는 엄마를 호통까지 쳐가며 마루에 앉혔다.

 

엄마는 나에게 용돈을 주었고, 난 그길로 마을 수퍼로 달려갔다. 외할머니가 달리다 넘어진다고 소리쳤지만 들은 체도 안 하고 계속 달렸다. 수퍼에 도착해서 허겁지겁 과자를 골랐다. 수퍼 앞에 설치된 게임기에 동전을 쌓아놓고 신나게 게임도 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나는 양손에 과자가 가득한 비닐봉지를 들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가까워질수록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엄마와 이모들의 울음소리였다. 느낌이 이상했다.

 

나는 일부러 큰 소리로 외할머니를 부르며 대문을 열었다. 마당 평상에 외할머니가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엄마와 이모들이 그런 외할머니에게 매달려 울고 있었다. 상추를 따기 위해 밭으로 향하던 외할머니가 비탈길에 미끄러져 의식을 잃었다고 했다. 구급차가 왔고, 외할머니는 여전히 깨어나지 않은 채 실려갔다. 마루에는 외할머니가 비벼준 간장밥이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나는 자꾸만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그 밥을 먹지 않고 바라만 보았다. 외할머니가 다시 집에 돌아오면, 그 밥을 보란 듯이 맛있게 먹고 싶었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이상하게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외할머니가 어느 날 갑자기 떠나버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장례가 끝나고 나면, 또 한 번 심통을 부리면, 어디선가 간장과 참기름을 들고 나타날 것 같았다. 며칠이 지나고, 문득 배가 고파진 나는 무심결에 간장과 참기름을 밥에 넣고 비비기 시작했다. 다 비벼진 밥을 한입 떠먹은 순간, 울음이 터져나왔다. 아무리 열심히 비벼도 외할머니의 간장밥 맛이 나지 않았다. 아무리 열심히 울어도 외할머니가 나타나서 밥을 비벼주지 않았다. 그저 혼자 울고 혼자 밥을 비빌 뿐이었다. 내가 과자를 조금만 덜 골랐더라면, 게임을 한 판만 덜 했더라면, 외할머니를 따라 상추밭으로 갔었더라면, 좀 더 오랫동안 외할머니의 간장밥을 먹을 수 있었을까.

 

나는 어른이 되었다. 오래된 술버릇이 생겼다. 술 취해 집에 돌아오면 자동적으로 간장과 참기름을 집어들고 밥을 비빈다. 여전히 그때의 그 맛은 나지 않고, 이상하게도 허기는 계속 채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아마도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간장과 참기름에 밥을 비빌 것 같다.

 

-오세혁 극작가·연출가, 조선일보(22-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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