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의 용인술(用人術)]
[양박도사(兩朴道士)]
[함양 안의면의 인걸과 지령]
[조용헌 살롱]
정주영의 용인술(用人術)
기업 오너들의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 기업이야말로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 비중에 비해서 사회적 평가는 박한 편이고, 연구도 안 되어 있다고 본다. 필자의 문제의식은 기업 오너들에게 미친 ‘도사참모(道士參謀)’의 영향력 부분이다. 삼성의 이병철은 신입 사원 채용이나 공장 부지, 집터를 선정할 때 도사들을 발탁하여 활용했던 사실은 알려져 있다.

1998년 6월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 떼를 몰고 북한을 방문하고 있다./현대그룹
거기에 비해 현대 정주영의 도사참모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정주영은 ‘영발’을 하찮게 여기고 싫어했던 것일까? 찾아보면 있기는 있다. 경북 울진 출신의 L도사. 울진은 ‘격암유록’의 저자 남사고를 배출한 지령(地靈)의 동네이다. L도사는 용모도 귀공자풍의 미남으로 생겼다. 한문도 많이 안다. 어렸을 때부터 신동으로 불렸다. 20년 전쯤에 필자와 어느 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는데 갑자기 ‘조 선생 손바닥 좀 내밀어 보시요’ 하는 게 아닌가. 어떤 영감이 떠오를 때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이다.
내가 오른쪽 손바닥을 펴서 내밀자 밥상머리에서 휴대하고 다니던 검정 사인펜으로 ‘大提學出於湖南(대제학출어호남)’이라고 써 줬던 기억이 난다. L도사의 전성기는 나를 만나기 4~5년 전쯤 정주영의 소 떼 방북 시기였다. 정주영에게 소 떼를 몰고 휴전선을 넘어가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제공한 인물이 바로 L이었던 것이다. 왜 소냐? ‘휴전선에 6·25 때 죽은 귀신들이 꽉 차 있다. 특히 외국 군대 귀신들도 많이 있다. 이 귀신들의 방벽을 뚫으려면 힘이 센 소의 뿔로 돌파해야 한다. 그러니 소 떼를 몰고 휴전선을 뚫어야 한다’는 조언을 정주영에게 했다. 정주영은 1998년 6월 16일 소 떼 500마리를 몰고 판문점을 통과하여 북한으로 들어갔다. 500마리의 소뿔이 휴전선을 통과하는 장면은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는 뉴스였다.
정주영은 학벌을 크게 따지지는 않는 스타일이었지만 SKY 출신을 분야별로 배치하는 용인술이었다. 서울 공대 출신은 기술 파트에다 주로 배치하였다. 곽삼영이 서울공대이다. 이명박 정권 때 청와대 수석비서관을 지냈던 곽승준의 부친이다. 고려대는 영업 쪽이었다. 촌놈 기질이 있어서 돌파력과 친화력이 좋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명박이 이 노선을 대표한다. 연대 출신은 회계와 경리 부문에 배치하였다. 이현태, 안소승이다. 꼼꼼하다고 봤던 것이다. SKY는 사판(事判)에 배치하고 도사는 이판(理判)에 활용하는 용인술이었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컨텐츠학, 조선일보(22-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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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박도사(兩朴道士)
정치에 양김(兩金)이 있었다면 도사계에는 양박(兩朴)이 있었다. 박재완(1903~1992)과 박제현(1935~2001)이다. 테니스에 비유한다면 박재완은 정석 플레이를 하는 페더러 스타일이었고, 박제현은 많이 뛰어다니면서 드라이브를 잘 거는 나달 캐릭터였다. 12.12 사태가 나고 이틀이나 지났을까. 신군부는 대전에 살고 있었던 박재완을 헬기를 태워서 서울로 이송하였다. 이유는 자신들의 팔자를 봐 달라는 것이었다. ‘이 거사가 성공할 것인가?’였다.
사주를 보려면 만세력이 필요하였다. 급하게 헬기를 타고 오느라고 미처 만세력을 챙겨오지 못하였다. 할 수 없이 이른 아침에 서울 비원 앞에 살고 있던 제자 유충엽(역문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네 만세력 좀 준비해 놓게나!’ 조금 있다가 짚차를 탄 군인들이 와서 유충엽이 들고 있던 만세력을 낚아채 갔다. 12.12라는 총격전 직후에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 주체들도 자신들의 앞날이 과연 어떻게 될지 근심걱정을 했던 것이다. 80년대 초반 대전의 변두리였던 둔산 지역이 개발되던 시점이었다. 박재완의 제자가 권유하였다. “선생님. 둔산의 땅을 좀 사놓으시죠? 돈이 됩니다” “아니네. 내 팔자는 돈이 없는 팔자라서 갑자기 돈이 생기면 화근이 될 뿐이야”. 아무리 본인이 무재팔자라고 해도 눈 앞에 큰 돈이 어른거리는데 이를 포기하기는 어렵다. 박재완의 명리학적 내공을 엿볼수 있는 대목이었다.


함양군 서상면 출신의 박제현. 서상(西上)은 함양의 서쪽 위에 위치해서 서상면이다. 서상 위에는 육십령 고개가 있고, 육십령을 넘으면 전북 장수가 나온다. 육십령을 오고 가던 수많은 과객, 즉 풍수와 사주팔자 전문가들이 박도사 집을 들렀다. 도사가 나올 환경적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전성기때 실력으로 삼성 이병철을 상대하면서 신입사원 면접을 보았고, 절정기를 약간 지날 무렵에 포철 박태준을 만나 헬기 타고 광양제철 터를 보러 다녔다. 김이 빠진 상태에서 한보 정태수의 자문을 해줬다.
90년대 중반 서상면의 덕운정사에서 필자는 박제현과 문답을 주고 받았던 기억이 난다. “제 운세나 한번 봐 주십시오?” 뜬금 없이 이런 답변을 하였다. “벌이 창호지를 뚫고 방안에 들어와 나갈 구멍을 모르고 윙윙 거리며 돌아다니고 있구만.” 단순한 역술가인줄 알았더니만 당나라 신찬(神贊) 선사의 ‘空門不肯出(공문불긍출)’ 화두를 던지는게 아닌가! 박제현은 죽고 없지만 그가 던진 화두는 남아 있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컨텐츠학, 조선닷컴(22-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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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안의면의 인걸과 지령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라고 하였던가! 정권은 있다가 사라지는 일시적인 것이지만 산천은 큰 변화 없이 그대로 남아 있다. 정권에 너무 목숨 걸지 말고 산천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경남 함양군 안의면 주변의 산세를 자세히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안의면에서 농협 조합장을 하는 전인배(62)씨의 안내로 그 유명한 화림동 계곡의 정자들과 황석산성, 기백산의 용추폭포, 부전계곡에서 선비들이 탁족하던 와룡암, 괘관산 일대, 빨치산 대장이었던 남도부(하준수)의 생가가 있는 병곡면 도천리도 둘러보았다.
안의는 지령(地靈)이 뭉쳐 있는 명당이어서 선비들이 살만한 동네였다. 백두대간이 지나가다가 우뚝 솟은 남덕유산. 함양은 이 북쪽의 남덕유산이 배산이 되고 남쪽의 지리산이 안산이 되는 형국이다. 풍수가에서 들리는 이야기로는 뒷산보다 앞산이 더 높아 외지에서 거물이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함양의 상림을 조성한 최치원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다. 조선조 제일의 문장가인 연암 박지원도 안의에 와서 현감을 지냈고, 현감 시절에 여기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물레방아를 만들어 돌렸다.


남덕유산에서 맥이 둘로 갈라져 안의로 내려온다. 한 가닥은 거망산, 황석산을 거쳐서 안의향교 자리로 떨어졌다. 다른 한 가닥은 육십령과 괘관산, 대밭산을 거쳐 안의면사무소와 광풍루로 떨어졌다. 남덕유산의 왼팔과 오른팔 끝자락이 안의에 와서 그 기운이 뭉친 셈이다. 황석산과 괘관산은 1000미터가 넘는 험한 바위산이다. 그 험한 바위산의 부글부글 끓는 기운이 안의에 와서는 어느 정도 성질을 풀었다. 하지만 안의의 앞산이 되는 골무산(鶻舞山)도 간단치 않다. 맹금류인 솔개가 춤을 춘다는 의미다. 안의 사람 가운데 솔개 같은 기상을 타고난 사람이 많다.

정유재란 때 최고의 요새 지형인 황석산성에 올라가서 7만5000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한 사람이 약 7000명. 왜군 모리 데루모토(히로시마 성주)의 주력부대가 와해될 정도로 심각한 타격을 입힌 의병 상당수가 안의 사람이라는 게 ‘백성의 전쟁’을 쓴 향토사학자 박선호(74)의 주장이다. 안의 사람 박선호는 이걸 밝히는 데 20년 세월을 바쳤다. 근자에는 안의에서 하기락(河岐洛·1912~1997)과 이진언(李聄彦·1906~1964)이 나왔다. 하기락은 한국 아나키스트 운동의 대부였고, 이진언은 고향 후배인 하기락을 후원하고 안의 인재들을 배출한 안의중학교를 설립하였다. 인생 살면서 명산의 지령을 살펴보는 게 큰 즐거움이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컨텐츠학, 조선일보(22-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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