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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버리지 못하는 사람] .... [욕망하기를 멈춘 韓∙日 청춘들]

뚝섬 2022. 9. 25. 06:02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는 사람] 

[세대 갈등, 亡國으로 가는 고속도로] 

[욕망하기를 멈춘 韓∙日 청춘들]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는 사람

 

[백영옥의 말과 글] 

 

가끔 TV 프로그램에서 쓰레기로 가득 찬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거나, 쌓아놓은 물건이 너무 많아 누울 공간 하나 없이 사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이런 사연은 극심한 악취와 오물 때문에 오래 고통받아 온 이웃의 제보로 알려진다. ‘저장 강박증’이라고도 불리는 이 병은 대개 마음의 불안에서 온다.

 

저장 강박의 시작은 ‘언젠가는 필요하겠지’라는 마음이다. 스스로도 물건이 많다는 걸 알지만 필요할 때 없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에 물건을 정리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마음은 종종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으로 변형된다. 이미 가지고 있는 물건을 잃어버릴까 봐 더 모으는 것이다. 이런 시간이 축적되면 물건의 필요 여부는 더 이상 중요치 않고, 물건을 모으기만 하고,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내게도 ‘저장 강박증’이 있다. 어느 날, 써놓은 원고 파일을 정리해보니 2만개가 넘었다. 대부분 신변잡기 잡문들이지만 숫자를 보니 놀라웠다. 소설가로 등단하기 전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무조건 많이 쓰던 습관이 굳은 것이다. 문제는 많이 써놓기만 했을 뿐, 제대로 정리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요즘도 나는 노트북에 글을 쓸 때마다 수없이 저장 버튼을 누른다. 실제 랜섬웨어에 감염된 후, 원고를 두 개의 노트북과 또 다른 외장하드 파일에 따로 저장한다. 문제는 수없이 저장을 했지만 저장한 장소를 잊거나, 저장한 내용을 잊으면 문제의 파일을 다시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당연히 정리되지 않은 정보 역시, 더 이상 정보 역할을 하지 못한다.

 

필름 카메라 시절에는 모든 사진을 간직했다. 하지만 요즘은 여행 사진을 찍으면 꼭 필요한 사진만 남기고 바로 지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무지 정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빈곤의 시대와 풍요의 시대는 가치 판단의 기준이 달라진다. 풍요의 시대에 모두를 소유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하는 것이다. 비워야 채워지는 것이다. 인생을 망치는 길 중에 하나가 때때로 비우지 못하고, 계속 채우기만 하는 것이다.

 

-백영옥 소설가, 조선일보(22-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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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갈등, 亡國으로 가는 고속도로


우리는 오늘 아침 전혀 다른 나라에서 깨어났다.'

영국의 한 일간지는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국민투표로 가결된 다음 날인 지난 24일(현지 시각) 이런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영국이 23년 전 유럽연합(EU) 출범 이전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젊은 층은 압도적으로 EU 잔류를 원했지만, 노령층은 생각이 달랐다는 말이 나온다. 영국의 한 여론조사 업체에 따르면, 18∼24세 유권자의 75%가 잔류를 지지했다. 25∼49세 중에서도 56%가 잔류에 찬성했다. 하지만 65세 이상은 불과 39%만이 잔류를 지지했다.

이민자 증가 등에 대한 거부감 못지않게 영국이 EU에 내고 있는 연간 30조원에 달하는 분담금을 복지 비용으로 돌려서 쓰자는 주장이 은퇴 세대인 노령층의 탈퇴 투표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만약 우리도 영국인들처럼 국가의 미래를 건 국민투표를 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세대 간 갈등이 온 나라를 펄펄 끓게 할 가능성이 커서 걱정스럽다. 겁이 날 지경이다. 우리 국민에게 나라 이름은 똑같이 대한민국이지만, 세대별로 따지면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태어난 나라는 식민지였다. 광복 직후에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후진국이었다.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들보다 못했다. 광복 직후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은 10억달러에도 못 미쳤다. 경제 규모가 지금의 1000분의 1도 안 된다.

아버지가 태어난 나라는 개발도상국이었다. 정부에서는 중진국이라고 했지만, 막 경제 개발이 시작되고 배고픔을 면한 정도였다. '하면 된다'는 말이 대유행이던 나라였다.

그들의 아이들은 선진국 입구에 다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다. 세계 10위권 무역 대국, 피겨 스케이팅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연아의 나라, 쇼팽의 나라 폴란드에서 쇼팽 콩쿠르 우승을 차지한 조성진의 나라다. 보릿고개에 시달렸던 노년층, 흑백TV를 보고 자랐던 중장년층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나라에서 그들은 나고 자랐다.

그런데 수출로 나라를 세우겠다며 수출 입국에 매진했던 나라가 수출 대국이 된 뒤 달라졌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살림살이가 몰라보게 나아지고 '한류'라는 문화 콘텐츠를 세계에 자랑하고 있지만 성장 박동이 약해지고, 계층 이동의 사다리는 치워졌다.

'배고픔은 사라졌지만, 희망이 없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88만원(20대 비정규직 평균 월급) 세대, 삼포 세대 등의 신조어에는 젊은 층의 깊은 체념이 웅크리고 있다. 기성세대 일부는 "요즘 젊은이들은 약해빠졌다"고 한다. 이런 지적이 맞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희망을 갖기 어려워졌는데, 희망을 갖지 않는다고 윽박지르면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하면 된다"고 윽박지르기 전에 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일자리를 갖지 못한 청년이 지금처럼 늘다간 국가의 미래도 없다.

세대 차이라는 말은 너무 약해서 쓸 수가 없을 정도로 세대 갈등은 커지고 있다. 한 나라 국민이 세대 간에 건널 수 없는 강을 두고 있어서는 나라가 발전하기 어렵다. 세대 간 의견 대립과 갈등은 위기를 증폭시켜 국가를 뒤흔들기까지 한다. 이번 브렉시트 사태가 그 위험성을 웅변하고 있다.

-이진석 경제부 차장, 조선일보(16-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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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기를 멈춘 청춘들


지난 연말 책을 한 권 선물받았다.

 

1979년생 일본인 저자는 원래 메모지 한 장도 못 버리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집안에 필요 없는 것을 잔뜩 쌓아놓고 있으면서도 늘 손에 넣지 못한 물건을 꿈꾸며, '저것만 있으면 행복해질 텐데...'하는 생각에 조바심을 내곤 했다. 그랬던 그가 우연히 '버림의 미학'을 접하게 되면서 180도로 바뀌었다. 불필요한 물건을 처분하자 마음의 여유가 찾아왔고, 소유에 대한 집착이 줄었다. 현재 옷장엔 열 벌이 채 안 되는 옷, 욕실엔 비누 하나와 수건 한 장뿐이지만 마음만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고 했다마침 새해맞이 대청소를 하면서 어마어마한 양의 불필요한 물건 더미에 놀라 자기혐오까지 느꼈던 터라 격하게 공감했다.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많아서인지 책은 최근까지 판매 순위 종합 10위권을 지켰다. 

 

그런데 얼마 전 해당 출판사 관계자에게서 색다른 해석을 들었다. 그는 "일본에서 베스트셀러라 어느 정도 흥행은 기대했지만, 예상 외로 너무 잘 나가서 우리도 의아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요즘 젊은 세대는 뭔가를 꿈꾸거나 가지려 해도 사회 구조적 한계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가지고 싶어 속을 끓이느니 욕망 자체를 끊으려는 사람이 많은데 그런 트렌드에 맞아떨어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욕망을 버리는 청춘'이라는 말에 대학을 갓 졸업하고 홍보 분야에 취업한 이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요즘 대학생들이 제일 원하는 게 뭐냐"고 물었다. 취업이나 연애 같은 답이 나오겠거니 싶었는데, 아니었다. "원하는 게 별로 없어요. 저도, 친구들도 뭘 꼭 하고 싶다거나, 반드시 뭐가 되고 싶다거나 그런 게 없었어요. 취업도 힘든데 어디든 들어가기만 하면 다행이다 싶었지 그 이상 바라지도 않았고요."

우리보다 오랜 경기 침체를 겪은 일본에선 몇 년 전부터 '사토리(깨달음) 세대'란 말이 유행이다. 성공이나 물질적 풍요 등 세속적인 면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는 젊은 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다는 한국의 청춘도 이미 '달관 세대'로 불린다. 욕심과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늙음은 추하지만, 욕망하지 않고 갈구하길 포기한 젊음도 어색하다. 갖지 못할 걸 알면서도 미련을 떨치지 못해 내달리고, 그 때문에 상처받기도 하는 게 젊음의 본질 아닐까.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가 "청춘을 청춘에 주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한 것도 바로 그렇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런데 욕망을 잃어버린 현대의 청춘을 보면서도 쇼는 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오윤희 국제부 기자, 조선일보(2016-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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