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대통령은 조롱하고, 러 제재엔 미온적” 비판받는 대한민국]
[제2의 한국을 꿈꾼 ‘코미디언 출신’ 대통령의 시련]
“우크라 대통령은 조롱하고, 러 제재엔 미온적” 비판받는 대한민국

우크라이나에서 2015년 방송된 공익광고의 한 장면. '우리도 한국처럼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유튜브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와 여당 정치인들의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 침공을 자초했다는 식의 발언이 논란을 빚고 있다. 이 후보는 TV 토론에서 “6개월 초보 정치인이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돼서, 나토 가입을 공언하고 러시아를 자극하는 바람에 충돌했다”고 말했다. 민주당 공동 선대위원장인 박용진 의원은 “잠깐 인기 얻어 대통령이 된 코미디언 출신”이라고 했고, 추미애 전 법무장관은 “대통령 잘못 뽑는 바람에 전쟁이 일어났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거주 네티즌이 영미권 커뮤니티에 “한국의 집권당 대선 후보가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를 자극해서 전쟁을 촉발시켰다’고 말했다”고 소개하자, 각국 네티즌들은 “일본의 한국 침략도 한국 탓이냐”고 이 후보 발언을 문제 삼았다.
MBC 유튜브 채널 엠빅은 “우크라이나 대통령, 위기의 리더십”이라는 영상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정치 경험이 전무한 코미디언 출신”이라며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아마추어 같은 그의 정치 행보도 비판받고 있다”고 했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우크라이나 출신 모델은 “젤렌스키를 지지하고 투표한 우크라이나 국민 72%는 바보라고 생각하느냐”며 MBC를 “오만한 언론”이라고 했다.
미 전문가들은 과거 침략의 피해자로서 대대적인 원조를 받았던 한국이 러시아 제재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 가운데 유일하게 대러 제재를 유보했다가 러시아의 전면 침공이 임박하자 동참 의사를 밝혔고, 독자 제재엔 선을 그었다. 미 국무부 핵 확산 금지 담당 부차관보를 지낸 마크 패츠패트릭은 “한국의 소심하고 미온적인 접근은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라며 “한국은 과거 침략의 대대적인 피해자로서 과거 대대적인 원조를 받았다”고 지적했다. 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 한·미 정책국장도 “한국은 진정으로 물러서지 않아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고 말했다.
국제사회는 러시아의 침공에 분노하면서, 목숨을 걸고 저항에 나선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응원과 격려를 보내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국의 피신 권유를 뿌리치고 수도 키예프에 남아 국가적 항전을 지휘하는 모습도 그의 지도력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한국의 집권 세력이 우크라이나의 비극을 야당 대선 후보를 비판하려는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이 국제사회에 어떻게 비칠 것인가. 북한의 침공을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극복해낸 한국이 우크라이나가 처한 똑같은 위협을 외면하는 태도는 또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 우크라이나 사태 속에서 대한민국의 국격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조선일보(22-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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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한국을 꿈꾼 ‘코미디언 출신’ 대통령의 시련
[천광암 칼럼]
우크라 국민 反부패 염원 한 몸에
TV스타에서 하루아침에 대통령으로
아직 못 이룬 ‘제2 한국’ 경제청사진
푸틴 침공 이겨내고 재시동 걸기를

우크라이나 남쪽의 항구 마리우폴은 러시아가 이번 침공을 시작하면서 공격 목표 중 하나로 삼은 도시다. 지금은 포성에 휩싸여 있지만, 한때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경제 청사진과 관련해 서구 세계의 이목이 쏠렸던 곳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9년 해외 기업인과 투자자들을 이곳으로 초청해서 투자포럼을 열었다. 당시 젤렌스키 대통령이 투자자들을 사로잡기 위해 내민 키워드는 ‘한국’이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던 한국은 수십 년 만에 부유한 하이테크 국가로 변모했다”면서 우크라이나를 제2의 한국으로 만들 ‘코리아 플랜’이 준비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우크라이나 경제의 이정표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리에 ‘한국’을 들고나온 것은 두 나라 사이에 비슷한 점이 많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한국과 우크라이나는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부대낀 고난의 역사, 4000만∼5000만 명대의 인구 규모 등 유사점이 적지 않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라는 쓰라린 경험을 한 것도 닮은꼴이다.
다만 IMF 구제금융 이후 양국 경제가 걸은 길은 크게 달랐다. 1997년 210억 달러를 지원받은 한국은 3년 만에 모든 빚을 갚고 IMF 체제를 성공적으로 ‘졸업’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2008년 164억 달러 지원 결정을 얻어낸 이후 지금까지 수년 단위로 추가 지원을 받거나 부채 연장을 하면서 경제를 연명하고 있다. IMF와 서구 세계의 금융지원 없는 우크라이나의 경제는 곧 파산을 의미한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2019년 당시 41세의 ‘코미디언’ 젤렌스키를 대통령으로 선택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자원부국인 우크라이나 경제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걸림돌은 ‘올리가르히’라고 불리는 소수 신흥재벌과 권력층의 부정부패다. IMF가 추가 지원을 하거나 부채상환 연장을 할 때 늘 부패 가능성에 주목한다. 이런 현실에 신물이 난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아무리 국정 경험이 없더라도 때 묻지 않은 젤렌스키가, 오염된 기득권층보다는 나을 것으로 봤다. 젤렌스키가 교사 출신 ‘아웃사이더’ 대통령으로 출연해서 기득권을 깨부수는 TV 드라마가 현실 속에서도 재연돼 주기를 우크라이나 국민은 고대했다.
젤렌스키 대통령 나름으로는 다양한 개혁 플랜을 가동했지만, 우크라이나 국민들이나 IMF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했는지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평가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주된 이유 중 하나는 ‘부패 몸통’ 중 하나로 꼽히는 ‘올리가르히’ 이호르 콜로모이스키와의 관계다. 콜로모이스키는 그를 스타로 만들어준 TV 채널의 소유주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콜로모이스키에게 부당한 이권을 제공할지 모른다’는 IMF와 서방 세계의 불안감을 말끔히 해소시키지 못해서 ‘틈’을 만들었다.
젤렌스키는 선거 운동 때 콜로모이스키의 개인 변호사인 안드리 보단을 고위 선거 참모로 썼을 뿐만 아니라, 집권 후에는 첫 비서실장으로 기용했다. 2016년부터 콜로모이스키에게 56억 달러에 이르는 회계 조작과 자금세탁 의혹 등이 제기돼 왔지만, 그를 기소하지 않았다. 이런 일들이 겹치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의 ‘클린’ 이미지에는 금이 갔다.
여기에 푸틴의 위협이 현실화하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에게는 ‘무능’이라는 프레임이 강하게 씌워졌고, 마침내 한국 대선판에까지 소환됐다. 25일 TV토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6개월 된 초보 정치인이 미숙한 외교로 러시아를 자극해 충돌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이 후보가 다음 날 바로 자신의 발언을 사과했지만, 푸틴의 침략전쟁이 젤렌스키의 과오라는 비난은 부당하다. 푸틴의 불만을 산 ‘친(親)서방 반(反)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다수 국민의 여론인 동시에 이미 이전 정부에서부터 지향해온 노선이다.
개전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이 보인 행동은 그에 대한 평가를 바꾸고 있다. 그는 해외로 대피하라는 미국 측의 권유를 마다하고 국내에서 대(對)러시아 항전을 지휘하고 있다고 한다. 국민을 버리고 해외로 꽁무니를 뺐던 아슈라프 가니 전 아프가니스탄 대통령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앞으로 젤렌스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화력의 절대적인 열세 앞에서 낙관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그가 푸틴의 침공을 이겨내고 ‘코리아 플랜’으로 우크라이나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기원하고 응원한다. 그의 실패는 4300만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목숨과 피, 눈물을 뜻하기 때문이다.
-천광암 논설실장, 동아일보(22-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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