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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틴의 망상 부추긴 ‘푸틴의 브레인’] [ .. 최대 수혜자는 북한, 왜?] ....

뚝섬 2022. 3. 24. 06:46

[우크라 전쟁, 유라시아 제국… 푸틴의 망상 부추긴 ‘푸틴의 브레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최대 수혜자는 북한, 왜?]

[문 대통령, 탈북민들 구할 역사적 기회 아직 남아 있다]

[흥남 철수 작전의 진정한 영웅들]

 

 

 

우크라 전쟁, 유라시아 제국... 푸틴의 망상 부추긴 ‘푸틴의 브레인’

 

올해 60세 알렉산드르 두긴의 유라시아 구상: 중국은 해체돼야… 러시아의 극동 파트너는 일본 

 

러시아의 무리한 우크라이나 침공이 한달이 되면서, 애초 2014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크림반도 침공과 동부 돈바스 지역의 사실상 병합을 부추겼던 러시아의 정치사상가 알렉산드르 두긴(60)이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두긴은 1997년 600쪽에 달하는 ‘지정학의 기초: 러시아의 지정학적 미래’라는 책을 냈다. 더블린에서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르는 광활한 유라시아 제국의 건설을 꿈꾸는 두긴의 생각은 푸틴을 비롯한 러시아 정치엘리트들의 인기를 끌었다.

 

그는 이 책과 평소 지론을 통해, 영국을 유럽연합(EU)에서 떼어내야 하며, 독립국가 우크라이나는 극도로 위험하고, 독일의 러시아 자원 의존도를 심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또 미국의 인종∙종교적 분열을 부추기고 고립주의 성향을 촉진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실제로 지난 20년간 푸틴의 국제정치 ‘각본’이 됐다.

 

그래서 과장됐다는 일부의 평가에도, 두긴은 이후 ‘푸틴의 브레인’으로 불렸다. 일각에선 반대로 푸틴의 ‘라스푸틴(제정 러시아 말기의 황당한 궁정 예언가)’라고 비꼬기도 한다.

 

푸틴의 철학가, 브레인으로 불리는 알렉산드르 두긴(왼쪽). 그러나 일각에선 그를 제정 러시아 말기에 황제의 신임을 배경으로 폭정을 일삼은 황당한 예언가 그레고리 라스푸틴(오른쪽)에 빗대기도 한다./위키피디아

 

두긴의 ‘유라시아 구상’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중국과 일본의 역할이다. 러시아∙중국의 외견상 ‘밀월(蜜月)’ 관계에도 불구하고, 두긴은 중국은 러시아의 유라시아 제국을 위해 결국 ‘해체’돼야 하며, 극동 아시아에서 러시아의 주니어 파트너는 일본이라고 봤다.

 

소련 해체 후 새로운 이념 찾아

 

1991년 소련의 해체 이후, 러시아는 새로운 이념에 목말랐다. 1996년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20세기 러시아를 보면, 왕조주의∙전체주의∙페레스트로이카∙민주화를 밟았고 각 단계마다 이념이 있었는데 지금 우리에겐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이때 러시아의 연약한 모습에 실망한 일군(一群)의 학자들은 ‘러시아의 이름으로 합의’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러시아의 과거 ‘영광’을 되찾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들은 ‘강력한 중앙정부’라는 러시아 전통에서 답을 찾았다. 그러나 이를 어떻게 실현하느냐는 다른 문제였다.

 

1999년 12월31일 대통령 직무대행이 된 푸틴은 이 ‘러시아의 이름으로 합의’에 속한 학자들과 연을 맺었다. 그에겐 러시아 경제와 정치체제의 안정화라는 급선무가 있었다. 때마침 고(高)유가의 도움으로 경제는 살아났고, 2000년대말 푸틴은 옐친이 애초 찾았던 ‘러스키야 이데야(러시아의 사상)’의 문제로 눈을 돌릴 수 있었다.

 

푸틴은 러시아는 ‘유럽’과 ‘아시아’라는 기존의 틀이 아니라, 러시아 고유의 법칙과 도덕성을 통해 부활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러시아 정교회와 결탁했고, 동성애를 범죄화하고 서방의 자유주의 성향을 배격했다.

 

러시아의 이러한 보수주의는 서방의 보수주의와는 정반대였다. 국가 권력을 옹호하고 개인은 국가에 복종∙봉사해야 한다.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보수주의는 기본적으로 ‘유라시아주의(Eurasianism)’이었다. 애초 1920년대 러시아의 망명 지식인들이 불을 피웠고, 두긴이 되살린 신(新)유라시아주의와 맞아 떨어졌다.

 

볼셰비키 혁명의 망명자들이 ‘유라시아주의’ 펼쳐

 

1917년 10월 볼셰비키 혁명 이후 유럽으로 망명한 러시아 지식인들은 러시아를 ‘유럽 문명의 지진아’로 보는 서구화주의자들이나, 러시아 전체를 계급투쟁을 통해 개조하려는 볼셰비키주의자 모두 배격했다.

 

니콜라이 트루베츠코이를 비롯한 이들 지식인은 “러시아는 고유의 발전 경로와 역사적 사명을 지닌 나라로서, 유럽∙아시아 양쪽의 기질을 갖춘 새로운 문명과 권력의 핵(核)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구는 궁극적으로 몰락하며, 러시아가 세계의 대표 국가가 되는 때가 온다고 믿었다.

 

1921년 이들은 ‘동방으로의 탈출(Exodus to the East)’이라는 이념집을 냈다. 이 책에 따르면, 러시아 지배자는 영토 확보의 필요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변경의 위험한 인구∙민족은 동화시켜야 하며, 지도자는 반드시 제국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민주주의나 개방 경제, 지방 정부, 세속적 자유는 매우 위험하고 수용할 수 없었다.

 

유라시아주의자들의 모델은 징키스칸

 

따라서 이들 망명 지식인에게, 18세기 러시아 제국을 세우고도 서구화하려고 했던 표트르 대제(1672~1725)는 ‘역적’이었다. 오히려 칭키스칸 제국이 러시아에 강력하고 중앙집권적이며, 피라미드식 복종과 통제 체제라는 교훈을 제공했다.

 

이 유라시아 주의는 1990년대말 러시아의 새로운 이념을 찾는 캠페인에서 다시 부각됐다. 푸틴과 같은 ‘애국주의자’들에게 소련의 붕괴는 “20세기 최대의 지정학적 재앙”이었다.

 

두긴의 등장: 세계는 로마(러시아)와 카르타고(영국∙미국)과의 싸움

 

알렉산드르 두긴은 1991년 ‘대륙들간 전쟁‘이란 팜플렛을 내 유명세를 얻었다. 두긴에게 세계는 두 글로벌 파워의 지정학적 투쟁이었다. 한 편은 국가주의∙공동체∙이상주의∙바다 문명∙공동선(善)을 우선하는 ‘영원한 로마’이고, 다른 편은 개인주의∙무역∙물질주의에 기초한 ‘영원한 카르타고’였다.

 

영원한 로마’ 러시아와 ‘영원한 카르타고’ 미국∙영국 사이에 공존(共存)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이 싸움에 이기기 위해선, 개인의 욕구와 필요를 다수와 국가 주도 경제, 준(準)종교적 세계관에 기초한 사회 가치에 복종시키는 보수적 혁명이 러시아에서 일어나야 한다.

 

푸틴의 브레인이라 불리는 두긴이 1997년에 낸 책 '지정학적 기초'의 표지. 두긴은 이 책에서 "중국은 가능한 한 최대로 해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0년대말 그는 러시아 전체 극우 진영의 지적 지도자가 된다. 1997년 그가 낸 책 ‘지정학의 기초:러시아의 지정학적 미래’는 러시아 군부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두긴, 1920년대 유라시아주의를 흡수 발전시켜

 

고전적 유라시아주의자들처럼 두긴도 기본적으로 서구∙자유주의에 반대하며, 전체주의∙이상주의∙사회적 전통을 주창한다.

 

그러나 두긴의 신(新)유라시아주의는 고전적 유라시아주의보다 범위가 훨씬 크다. 고전적 유라시아주의는 동쪽의 만리장성에서 서쪽의 카르파티아 산맥(루마니아-폴란드)에 그쳤다. 두긴이 꿈꾸는 유라시아 제국은 구(舊)소련 국가들을 품고, 지금의 EU(유럽연합) 국가들은 이 제국의 보호령이 된다. 동쪽으로는 만주∙신장∙티베트∙몽골까지, 남서쪽으로는 인도양에 닿는다.

 

두긴의 이 세계관에서 미국은 “서로 다른 형질이 하나의 생물체에 사는 괴물(chimera) 같은 존재로, 이식(移植)된 문화를 가진 주제에 타(他)대륙에 반(反)인종적∙반(反)전통적 바벨론과 같은 모델을 강요하는” 최대 적(敵)이다.

 

푸틴의 사상적 자산으로 떠올라

 

점차 독재자로 변모해 간 푸틴에게 두긴의 사상은 적절한 역사∙지정학적 배경을 제공했다. 푸틴은 자신의 정책 목표를 위해 두긴의 생각을 차용했다. 두긴은 크렘린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아 TV에 단골로 출연하며 푸틴의 맹방이 됐다.

 

두긴은 러시아가 ‘대국’으로 재탄생하기 위해선 개인의 자유 제한, ‘전통적’ 가족 중시, 동성애 반대, 러시아 정교회의 중요성을 필수적으로 본 푸틴의 생각을 대중화했다.

 

우크라이나 침략의 이론 제공

 

두긴은 2014년 푸틴의 크림반도∙우크라이나 동부 침공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그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를 환영하고 기대하며 ‘제발 와달라’고 요청한다고 썼다. 당시엔 러시아인의 65%가 푸틴의 침공을 지지했다.

 

두긴은 또 ‘지정학의 기초’에서 “영토적 야망을 가진 독립국 우크라이나는 유라시아 전체에 막대한 위험이 된다. 우크라이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대륙 정치를 말하는 것이 의미 없다”고 썼다. 이에 앞서, 1920년대 고전적 유라시아주의를 주장한 트루베츠코이도 1927년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우크라이나인과 벨라루스인은 러시아인과 러시아정교를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고 했다.

 

2월24일 우크라이나 침공을 앞두고 푸틴이 행한, 우크라이나라는 국가와 민족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연설은 바로 이 ‘지정학의 기초’에서 온 것이었다.

 

지난 20년간 두긴의 ‘각본’대로 움직인 푸틴

 

러시아는 지난 20년간 그의 각본대로 움직였다. 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 트럼프 시대에 더욱 두드러진 미국의 인종∙종교적 갈등과 국제적 고립주의, 나토 분열, 영국 내부의 독립주의 성향 고조, 석유∙가스∙곡물을 통한 서부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 등 국제정치는 의도했든 안했든, 두긴이 주장한 대로 흘러갔다. 최소한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까지는 그랬다.

 

우크라이나 이후 푸틴의 수순은?

 

두긴의 큰 꿈은 대(大)유라시아 제국의 건설이다. 두긴은 유럽이 결국 독일과 러시아 영향력 관할(zone)로 나뉘고, 러시아 자원에 의존하는 독일보다는 러시아가 더 큰 주도권을 쥘 것으로 봤다. 영국이 해체되면서, 러시아의 유라시아 제국은 더블린에서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른다.

 

물론 ‘정상적인’ 사고로 볼 때, 이는 과대망상이다. 그러나 시진핑도 주목할 대목이 있다. 두긴에 따르면, 중국은 궁극적으로 해체돼야 한다. 러시아의 아시아 야망은 “중국의 영토적 분해, 조각내기, 정치 행정적 분할”을 요하기 때문이다. 이후 러시아의 극동 파트너는 일본이 된다.

 

워싱턴포스트는 22일 두긴의 제국주의 세계관을 재조명하면서 망상(delusion)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망상도 (푸틴 같은) 폭군들이 수용하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고 했다.

 

-이철민 선임기자, 조선닷컴(22-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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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에 구호품 하루 수만t씩 보내며 하나로 뭉치는 미국. ‘세계 10위권’ 한국은 너무 무관심한 것 아닌지.

 

-팔면봉, 조선일보(22-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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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최대 수혜자는 북한, 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launch a military invasion) 이후 그에 따른 지정학·지경학적 결과(geopolitical and geoeconomic consequences)가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경제·정치·군사적 최대 수혜자(beneficiary)가 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에 따르면, 가장 두드러지고 실질적인 이득(the most significant and tangible gains)은 경제 분야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의 극심했던 경제 위기(severe economic crisis)는 러시아가 대북 수출 원유 가격을 기존의 우호 조건에서 자본주의 시장 가격(capitalist market price)으로 전환하면서 수입량이 격감한 영향도 있었다. 그 결과, 화학비료(chemical fertilizer), 연료, 석유화학 제품(petrochemical product) 생산이 급감하면서 이른바 ‘고난의 행군(Arduous March)’이라는 극심한 기아 사태의 한 원인이 됐다(contribute to the deadly famine).

 

그런데 현재 상황(current situation)은 그때와 다른 반전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lead to a reversal). 러시아 국가 수입의 중대한 기여 요소(crucial contributors for its national income)인 원유·가스 수출이 막히면서 국제 제재를 당해오던 북한이 결과적으로(at the end of the day) 헐값에 무제한 공급을 받는 어부지리를 얻게 된(fish in troubled water) 것이다.

 

북한은 또 러시아와 중국 간 중계무역(transit trade)으로 큰 이득을 올리고 있다. 국제적 압력으로 인해 중국이 러시아와 직접 거래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중개상 노릇을 하며(act as an intermediary agent) 엄청난 이문을 얻게 됐다(gain an enormous amount of profit). 게다가 궁지에 몰린(run into the sands) 러시아가 더 이상 국제 제재를 따르지 않기로 하고(decide to no longer abide by international sanctions) 시베리아 벌목공 등의 명분으로 북한 노동자들을 수입해 북한의 숨통을 터줄 수도 있다.

 

외교 정책과 국내 정치 면에서(in terms of foreign policy and domestic politics) 김정은이 구실을 댈(concoct an excuse)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명분도 생겼다. 우크라이나가 예전처럼 핵을 보유하고 있었으면 러시아가 쉽게 침공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핵 개발에 들어간 막대한 경제적 대가를 정당화하고(justify the huge economic price paid for developing the nuclear program), 현명한 선견지명과 올바른 전략적 결정이었다는 증거 선전물로 최대한 활용할(make the best of a propaganda as proof of his wise foresight and right strategic decision)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김정은이 더 공고해진 러시아·중국 방어막 덕을 톡톡히 보면서(take full benefit) 점점 더 자기 확신과 환상에 빠져들(indulge in self-conviction and fantasy)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영문 참고자료 사이트]

☞ https://www.38north.org/2022/03/north-korea-as-a-beneficiary-of-the-russian-invasion-of-ukraine/

 

 -윤희영 에디터, 조선일보(22-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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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탈북민들 구할 역사적 기회 아직 남아 있다 

 

대통령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문재인 대통령은 전례 없이 역사적인 기회를 앞에 두고 있다. 바로 현재 중국에 억류돼 있는 수백 명의 탈북민들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문 대통령은 더 나은 삶을 위해 탈북한 무고한 어린이, 여성, 남성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

 

그 이유는 첫째, 북한의 국경이 폐쇄되어 있기 때문에 중국이 탈북민들을 북한으로 강제 송환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코로나19 대유행에 겁에 질려 먼저 국경을 폐쇄한 나라 중 하나다. 둘째, 한국은 지난달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 미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의 외교적 보이콧에 동참하지 않았다. 북으로 강제 송환되면 구타, 고문, 투옥, 심지어 사형에 처해질 탈북민들을 인도적으로 배려해달라고 다른 나라보다 한국이 더 중국에 수월하게 요청할 수 있는 이유다.

 

탈북민 송환은 북한 국경이 다시 열리면 바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중국이 인신매매 피해자인 여성 탈북민을 강제 북송하기 어렵게 되자 이 여성을 인신매매자들 손에 돌려보내는 것은 중국이 탈북민 수용소를 얼마나 줄이고 싶은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국에 억류돼 있는 북한 주민들은 탈북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에 탈출했기 때문에 더 큰 위험에 놓여 있다. 이러한 때에 탈북했다는 것은 이들이 물적·인적 자원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들은 조선노동당 엘리트 당원이거나, 이들을 북한에서 구출하기 위해 도움을 준 가족이 남한에 있다.

 

그렇다면 북한으로 송환되는 조선노동당 당원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공개 처형에 의한 죽음 아니면 정치범 수용소에서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당원이 아닌 탈북민들도 북송되면 공개 처형되거나 정치범 수용소에서 죽음을 맞는다.

 

문 대통령은 지금 세계에서 유일하게 인도주의적 제스처로 중국에 탈북민들의 한국행을 허용해 달라고 요청함으로써 탈북 어린이, 여성, 남성들을 죽음으로부터 구할 수 있는 사람이다. 더구나 김정은이 미사일 시험 발사를 강행하고 있는 데다, 중국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불쾌감을 드러내며 탈북민들의 한국행을 허용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쳐 역사적인 시기다.

 

문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한반도 운명 공동체로서 남과 북이 함께 힘을 모아가길 바란다”며 “나는 ‘상생과 협력의 한반도’를 위해 남은 임기 동안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정은이 북한의 인권을 부정하는 한 DMZ 이북에 사는 주민들의 공동 번영은 있을 수 없다. 현재 중국에 억류돼 있는 탈북민들도 문 대통령이 그들을 위해 행동해야 번영과 미래가 있을 수 있다.

 

죽음으로 이끌려가는 탈북민들을 구할 수 있는 것이기에 문 대통령 임기 중 가장 위대하고 영속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문 대통령의 가족(부모)도 피란민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 중국에 억류된 탈북민 중에 한국의 미래 대통령이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6·25전쟁 당시 미 해군과 상선 함정이 10만명에 가까운 북한 주민들을 무사히 구출해 한국으로 안전하게 이송했을 때 구조된 사람들 중에 문 대통령 가족이 있다. 그 덕분에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에서 자유와 번영의 기회를 갖게 됐고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최근 20여 명의 전직 미 정부 관료들이 문 대통령에게 중국에 억류된 탈북민들을 구해달라며 도움을 요청했다. 이들은 “5월 퇴임하기 전에 탈북 어린이들과 여성, 남성들을 안전하게 구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고 쓴 글을 통해 뜻을 전했다. 서명인들은 1970년대 이후 모든 미국 대통령(리처드 닉슨, 지미 카터, 로널드 레이건, 조지 H W 부시,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활동한 관료들이다.

 

문 대통령님, 이번은 탈북민들을 위해 행동할 역사적인 기회입니다!

 

-수잰 숄티·북한자유연합 대표, 제9회 서울평화상 수상자, 조선일보(22-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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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남 철수 작전의 진정한 영웅들 

 

로버트 J 러니는 미국 뉴욕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아버지와 가정주부 어머니 사이 삼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아버지 영향을 받은 러니는 18세에 해군에 입대해 2차대전 막바지인 1945년 태평양전쟁에 투입됐다. 1950년 6월 대학을 졸업하고 로스쿨에 진학하려던 그는 다시 전장으로 나갔다. 그해 9월 미 해군 수송선을 타고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한 것이다.

 

그가 일등항해사로 근무한 메러디스 빅토리아호는 선원 47명을 태운 화물선이었다. 승객은 12명까지 태울 수 있었고 적재량은 1만658t이었다. 1950년 12월 빅토리아호가 전투기 연료를 비롯한 보급품을 싣고 함경남도 흥남에 도착했을 때, 미군은 장진호에서 극심한 추위와 싸우며 중공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미군은 10만 병력을 흥남에서 배편으로 철수시키기로 결정했다. 빅토리아호의 임무는 미군 탱크와 트럭을 비롯한 군사 장비 철수였다.

 

그때 흥남부두에 자유를 찾아 남쪽으로 가려는 북한 피란민들이 밀어닥쳤다. 그러나 미군에는 이들을 태울 군함이 없었다. 미군은 빅토리아호의 레너드 러루 선장에게 피란민들을 화물칸에 태울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러루 선장은 즉각 군사 장비를 부두에 되부리고 피란민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빅토리아호는 흥남 부두에 남은 마지막 배였다.

 

러니가 말한 그때 풍경이다. “피란민들을 하역용 팔레트에 태우고 크레인으로 들어올려 배 밑바닥부터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화물칸은 모두 세 층이었는데, 맨 밑바닥을 채우면 그 위를 강철 덮개로 덮고 또 화물을 채웠죠. 그러나 사람을 실었기 때문에 덮개를 약간 열어뒀습니다. 그래야 빛과 공기가 통하니까요. 화물칸엔 난방도 전기도 물도 음식도 없었고 기온은 영하 30도까지 떨어졌습니다. 그 와중에 아이가 다섯이나 태어났어요. 우리는 그 아이들을 ‘김치1′ ‘김치2′ 식으로 불렀습니다.”

 

승객 정원 12명이었던 빅토리아호에 피란민이 1만4005명 탔다. 화물칸을 다 채우고 갑판도 가득 메웠다. 상선이었던 그 배엔 어뢰 탐지기도 없었고 함포도 없었다. 무기라곤 러루 선장이 허리에 찬 권총 한 자루뿐이었다. 중공군은 부두에서 불과 3~4㎞ 떨어진 곳까지 밀고 들어와 있었다. 빅토리아호는 배 한 척이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구조한 사례로 기록됐다.

 

빅토리아호는 그렇게 북한의 마지막 피란민을 태우고 부산으로 출발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러루 선장은 이렇게 회고했다. “그렇게 작은 배에 그렇게 많은 사람을 싣고 그렇게 위험한 곳에서 아무도 다치지 않고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하느님이 그날 배의 키를 잡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2001년 87세로 별세했다.

 

그해 12월 흥남에서 열흘간 선박 193척이 군인 10만명과 피란민 9만8000명을 이남으로 실어 날랐다. 그 가운데 나의 아버지도 있었다. 함남 함흥 출신인 아버지는 고교 졸업 직전 전쟁을 맞았다. 미군이 함흥에 진격한 지 얼마 안 돼 후퇴한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국방군에 자원 입대하는 것만이 남한에 갈 유일한 방법임을 알았다.

 

태어나서 처음 집을 떠난다는 생각에 약간 들뜬 아버지는 부모님께 “석 달 뒤면 전쟁 끝난대요” 하고 집을 나섰다. 할머니는 이불 홑청을 뜯어 만든 목도리를 아버지 목에 감아주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아버지는 영영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남에서 아버지는 혈혈단신에 적수공권이었다. 아버지는 차돌 같은 사람이었다. 시장 바닥에서 20대를 보냈고 스스로 벌어 대학에 다녔다. 그리고 전쟁 전 이미 남쪽에 내려와 살던 역시 함남 출신 어머니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삼형제를 낳아 키웠다. 아버지가 흥남에서 떠나지 않았다면 어머니를 만날 기회는 영원히 없었을 것이다. 나의 DNA는 흥남 철수 작전에 전적으로 빚지고 있다.

 

로버트 러니는 해군 대령으로 전역한 뒤 훗날 소장으로 명예 진급했다. 그는 한미 친선 단체인 코리아소사이어티 인터뷰에서 말했다. “모두들 저를 흥남 철수 작전의 영웅으로 추켜올리지만 진정한 영웅은 북한 피란민들입니다. 그들은 자유를 찾기 위해 조상 대대로 수백 년간 살아온 터전과 자신들의 삶을 희생했습니다. 그들이 지금의 번영한 자유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

 

러니는 지난 10일 95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먼저 가신 아버지가 아마도 반갑게 그를 맞았을 것이다. 러니의 부고를 읽으며 1950년 스물세 살이었던 러니와 열여덟 살이었던 아버지를 생각해 본다. 이 흥남 철수 작전의 영웅들이 나의 기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조선일보(22-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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