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호원들의 활약이 빛난 순간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제임스 M 볼드윈 ‘50가지 재미있는 이야기’
“왕이시여! 제 친구 핀티아스 대신 저를 감옥에 가두시고 그가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일들을 정리하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저는 핀티아스가 약속한 대로 돌아올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한 번도 약속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 만약에 그가 제날짜에 이곳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때는 제가 그를 대신해 죽겠습니다.” -제임스 M 볼드윈 ‘50가지 재미있는 이야기’ 수록 ‘핀티아스와 다몬의 우정’ 중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구의 사저 앞에서 대국민 메시지를 전하는 동안 소주병이 날아왔다. 범인의 이상행동을 먼저 알아차린 경호원이 “기습이다” 하고 소리쳤고 재빠른 방어에 나선 덕에 큰 피해 없이 행사를 마칠 수 있었다. 지켜야 할 대상의 안전만을 생각하며 매와 같은 눈으로 한순간도 방심하지 않고 임무를 수행한 경호원들의 활약이 빛난 순간이었다.
부모님을 모두 총탄에 잃었고 자신 또한 커터 칼 테러를 당한 적 있어 본능적으로 놀라는 게 당연한데도 박 전 대통령은 소동이 벌어지는 동안 큰 동요 없이 기다렸다. 상황이 정리되자 여유 있는 웃음을 보이며 잠시 끊겼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오랜 정치 경험에서 축적된 담대함이었겠지만 경호원들에 대한 신뢰가 그만큼 크고 단단했기 때문에 가능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디오니시우스왕은 핀티아스라는 청년을 오해하고 반역의 죄를 물어 사형을 언도했다. 핀티아스는 변명하지 않았지만 고향에 가서 가족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청했다. 친구 다몬도 핀티아스를 믿는다며 만일 그가 돌아오지 않을 때는 대신 죽겠노라 약속했다. 우여곡절 끝에 핀티아스는 돌아왔고 왕은 두 사람의 우정을 부러워하며 그들 모두를 풀어주었다.
어떤 이들은 세상을 탓하고 남을 원망하느라 인생을 소모하고 사회를 어지럽힌다. 어떤 불행에도 타인의 선한 마음을 믿고 자신을 성찰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다른 사람을 구하려고 자신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다. 사회를 지키는 힘은 묵묵히 자기 몫의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그런 사람들이 있는 한 아무리 큰 위험이 닥쳐도 세상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김규나 소설가, 조선일보(22-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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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집 미팅 각본
2016년 4월 리커창 중국 총리가 서민 물가를 챙긴다며 쓰촨성의 한 시장을 방문했다. 정육점에서 "장사가 잘되느냐"고 물었더니 "평소엔 잘되는데 오늘은 한 근도 못 팔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총리 경호 때문에 손님들이 시장으로 못 들어온다는 것이다. 총리가 "그럼 제가 네 근 살게요" 하자 주인은 "팔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경호원들이 (고기 썰) 칼까지 죄다 걷어 갔다"는 하소연이었다. 리커창이 이어 찾아간 과일 가게의 앵두 가격은 1㎏에 3위안(약 500원)으로 적혀 있었다. 실제는 30위안이었지만 상인으로 가장한 공무원이 '0'을 뺐다. 이런 '시찰 쇼'의 진상은 SNS 덕분에 공개됐다.
▶한국도 1980년대까지는 별 차이가 없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 경호원을 지낸 인사는 "시장이나 농촌 시찰 전에 질문할 사람은 물론 질문 내용도 미리 정했다"고 했다. 안기부 직원을 시장 행인 등으로 꾸몄고 대통령이 어떤 말을 할 때 손뼉 치라는 것까지 각본을 짰다고 한다. 2000년대 들어선 경호실에서 대통령의 동선(動線) 정도만 사전 점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미 대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한 토크 쇼에 출연해 자신의 열두 살 적 사진이 스크린에 나오자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오!" "세상에" 등을 연발했다. 그러나 방송에 앞서 모든 질문과 형식을 파악하고 답변까지 준비했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배우 출신인 레이건 전 대통령도 "정치가 쇼 비즈니스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광화문에서 시민들과 '맥주 타임'을 가졌을 때 '편의점 알바생'이라는 배모(27)씨가 대통령과 건배했다. 애초 청와대는 "(참석자들은) 대통령이 오는 줄 모른다"고 했다. 그래야 대통령이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건배한 청년이 작년 3월 한 빨래방에서 '군무원 준비생'으로 당시 대선 후보였던 문 대통령을 만나 소주까지 마셨던 것으로 27일 확인됐다. 청와대는 "배씨만 대통령 참석을 알았다"고 말을 바꿨다.
▶청와대는 작년 8월에도 수석비서관급을 모아 놓고 '대국민 보고 대회'를 열면서 "어디서 질문이 나오고 어디서 답변이 나올지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질문과 답변의 각본이 모두 짜여 있었다. 시중에선 이번엔 탁현민 행정관이 실수했다고 한다. 멋진 쇼도 자꾸 보면 지겨워진다. 그 전에 싫은 소리를 듣고 반영하는 진짜 소통을 했으면 한다.
-안용현 논설위원, 조선일보(18-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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