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물어보는, 국가란 무엇인가
[朝鮮칼럼]
특정 집단에 봉사하는 파당적 국가 아니라
규범·상식·합의 통해 시장의 욕망과 공적 목표를
섬세하게 조절하는 국가… 그 진정한 역할 성찰을

서울 서초구 우면산 정상에서 바라본 서울시 전경./조선일보DB
인사청문회 정국에 불이 붙었다. “이거다” 싶은 인사부터 깊은 탄식을 자아내는 후보까지 그 면면들에 눈길을 주면서, 새삼 오래 잊고 있던 원론적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이들이 짊어지고자 하는 국가 운영의 책무란 무엇인가.
대학 시절 운동권 이념 서적을 뒤적거린 필자 또래의 이들이라면 밀리반트와 풀란차스의 국가론 논쟁을 추억처럼 기억할 것이다. 전자는 국가가 독점자본에 지배된다고 주장했고, 후자는 국가가 고유한 자율성을 지닌다고 이에 맞섰다.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이 해묵은 주제를 유시민(2011, 2017)이 다시 불러냈다. 그는 국가의 역할을 안보, 경제 발전, 민주주의, 복지로 제시하며 이를 구현하는 주체로 시민을 지목했다.
“국가의 주체는 시민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 5년을 이끈 이념적 구호였다. 언뜻 가슴 뭉클한 이 구호는 “기업의 주인은 사장, 이사회, 주주가 아니라 소비자들입니다”라는 기업 광고처럼 공허한 것이었다. 더 나아가 이제 우리는 이 구호에 위험한 정치적 편 가르기의 의도가 담겨 있었음을 안다.
돌려 말할 것 없이, 대통령제 국가에서 국가 운영의 실질적인 주체는 선거로 선출한 대통령과 그가 구성하는 정부다. 최장집(2010)은 그 역할을 정치적 국가와 행정적 국가로 구분한다. 우리가 흔히 박근혜 정권, 문재인 정권 등으로 통칭하는 정치적 주체로서의 역할이 전자, 방대한 행정부처를 관할하는 역할이 후자에 해당한다. 새 정부는 이 역할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 필자는 솔직히 회의적이다. 정부가 바뀐다고 정치적 국가 및 행정적 국가의 면모와 역량이 과연 달라질 수 있을지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우선 정치적 국가의 차원에서, 새 정부가 직면해야 할 현실은 도처가 지뢰밭인 후진적 정치 시스템이다. 민주화의 역정에도 불구하고 맹목적인 진영 정치, 지역주의, 후견주의의 폐습은 달라진 게 없다. 검찰 수사권을 완전 박탈하겠다는 여당의 입법 폭주, 자신을 성심껏 옥바라지했다고 그 인사를 대구시장 후보로 지지한 박근혜 전 대통령, 자리가 텅텅 비었던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의 국회 화상 연설···. 이 비상식과 천격에 대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행정적 국가는 또 어떤가. 그 주체는 권력의 향배에 휘둘리지만 견고한 내력을 지닌 관료 집단이다. 흔히 “철밥통”이라 불리는 무사안일, 비효율, 영역 다툼은 백년하청 같은 이 집단의 체질이다.
새 정부는 이 같은 국가의 한계를 가감 없이 인식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사회가 고도화되면서 국가의 역할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민주화의 진전은 정치 및 행정 영역 모두에서 정부의 국정 장악력, 이른바 헤게모니를 급속히 약화시켰다. 복잡한 예를 들 것 없이 전망 좋은 곳에 올라 서울의 모습을 둘러보라. 이 거대한 도시를 형성하고 돌아가게 하는 힘은 더 이상 국가가 아님을 직감할 것이다. 현 시점에 국가 주도의 경제 발전 5개년 계획을 추진한다고 가정해보라. 그런 코미디가 없을 것이다.
정리하면 AI 시대 국가의 역할은 개발 시대 국가의 역할과 같을 수 없다. 새 정부가 성공하고자 한다면, 최우선의 과제로 국가 운영의 관행 내지 경로 의존성을 벗어나 국가의 역할을 원점에서 재정립해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과 구태의연한 관으로 표상되는 정치적 및 행정적 국가의 후진성을 근본적으로 혁파해야 한다.
이 맥락에서 윤석열 당선인이 경호 문제며 이사 비용 등 반론을 무릅쓰고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공약을 지켜내는 모습은 놀랍고 반가웠다. 안철수 인수위원장의 관사 철폐 의지도 마찬가지다. 이 결연함이 이 시대가 요청하는 국가의 역할에 대한 보다 깊은 성찰과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기 바란다. 특권 집단에 봉사하는 국가, 권력에 의해 재단된 파당적 시민의 국가가 아닌, 보편적 국가 성원으로서의 국민을 섬기는 국가를 설계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인선이다. 전 정부를 반면교사 삼아, 설사 절차가 지연되더라도 부적격 인사를 배제하고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인사들로 국정의 사령탑을 구성해야 한다.
이들이 이끄는 국정의 단면이다. 선택적 정의, 독선, 진영의 자리에 규범, 상식, 협치가 들어선다. 국정 현안들에 대한 정치적 토론, 특히 야당 인사들과의 긴밀한 접촉과 설득이 대통령과 그 핵심 참모들의 일상이 된다. 이념이 아닌 사실에 기반한 정책들이 시장의 욕망과 공적 목표를 섬세하게 조절한다. 가식적으로 연출된 국민과의 대화 쇼 대신 언론과의 상시적 소통이 이루어진다.
국가란 무엇인가. 국민들은 밝은 미소로 화답할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것이지요.”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조선일보(22-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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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인수위 한 달, 뭘 한 건가
윤석열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어제 출범 한 달을 맞았다. 안철수 위원장은 “한 달 소회를 한 단어로 말하자면 ‘아쉬움’”이라면서도 “역대 어느 인수위보다 묵묵히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활동 성과만 놓고 보면 그동안 뭘 했는지 의문이 드는 건 사실이다.
이번 인수위는 10년 만에 부활했다. 근소한 차이로 5년 만에 정권교체가 이뤄진 데다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 구도인 만큼 새 정부가 어떤 비전과 전략을 갖고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건지 관심이 컸다. 무엇보다 새 정부 앞에 놓인 글로벌 안보위기와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등 외부 환경도 녹록지 않다. 그런데도 인수위가 내놓은 정책 이슈 중에 이목을 끈 것은 지방자치단체장 관사 폐지, ‘만 나이’ 도입, 코로나 피해 소상공인 대출 만기 연장 및 상환 유예 6개월 재연장, 카페·음식점 일회용 컵 규제 유예 제안 정도다. 나름대로 생활밀착형 정책이긴 하나 새 정부가 단기적, 중장기적으로 어떤 국정 과제에 집중할 것인지의 차원은 아니었다는 평가다.
인수위 활동이 각종 정무 이슈에 묻혀 존재감을 키우지 못한 측면도 있다. 윤 당선인이 인수위를 꾸려 놓고는 “청와대엔 단 하루도 안 들어간다”며 청와대 개방 날짜를 못 박고 ‘용산 이전’을 선언하면서 한동안 대통령 집무실 이슈가 블랙홀처럼 다른 이슈를 빨아들인 것이다. 물러가는 정권과의 잦은 충돌, 장관 인선 등을 둘러싼 공동정부 위기론도 인수위 활동을 위축시켰다.
그사이 일부 인수위원들은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기보다는 청와대와 내각 진출에만 목을 매는 듯한 양상도 벌어졌다. 최근 몇몇 장관 후보자들의 검증 이슈가 불거지자 인수위까지 덩달아 뒤숭숭한 분위기라고 한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어서야 국정 밑그림이 제대로 그려지겠나. 새 정부 출범은 3주밖에 남지 않았다. 조급해해선 안 되지만 더욱 긴장해야 한다. 단기 성과에 급급해하거나 6월 지방선거 등을 의식한 선심 정책을 앞세워선 안 된다. 민주당과의 협치를 감안해 긴 호흡으로 5년 국정 로드맵을 내놓는 게 국민 지지를 얻는 길이다.
-동아일보(22-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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