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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명 희생해 1㎢ 점령... 러시아는 전쟁을 멈춰라] ....

뚝섬 2026. 2. 26. 08:53

[156명 희생해 1㎢ 점령... 러시아는 전쟁을 멈춰라] 

[혁명의 유통기한] 

[우크라이나 전쟁을 조롱하는 이 땅의 평화주의자들] 

[난공불락 요새]

 

 

 

156명 희생해 1㎢ 점령... 러시아는 전쟁을 멈춰라 

우크라이나 군이 바흐무트 인근 최전방에서 러시아 군 진지를 향해 대공포를 발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맥주를 마셔봤는지. 목 넘김이 부드럽다. 기분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난 주말 동대문 앞 중앙아시아 음식점에서였다. 예전엔 러시아 맥주를 팔던 식당이었는데 이번에 가니 우크라이나 맥주로 교체되어 있었다. 국제사회의 대러 제재 때문일까 아니면 우크라이나를 향한 가게 주인의 응원일까. 이유가 뭐든, 요즘 두 나라 중 어느 쪽이 인기 있는지를 상징하는 것 같다.

 

지난 24일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4주년이었다. 우크라이나는 용케 잘 버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외신에 자주 인용되는 미국의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보고서에 따르면 올 1월까지 우크라이나군 최대 14만명과 러시아군 최대 32만5000명이 사망했다. 부상자까지 합치면 최대 60만명과 120만명에 이른다. 더 강하다고 평가받았던 러시아군이 두 배 더 희생된 것이다.

 

최근엔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는 주장도 있다. 영국 텔레그래프가 인터뷰한 우크라이나 일선 지휘관들은 격전지에서 1대 10, 많게는 1대 25까지 사상자 차이가 난다고 주장했다.

 

물론 전장에서 진실을 찾기는 어렵고 과장이 섞였을 수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방어선이 두터워진 것은 위성사진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유무선 드론과 지뢰, 장애물이 빽빽하게 들어차 사람이 통과하기 힘든 중간 지대, 이른바 ‘킬 존’의 너비가 20㎞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이달 중순 열린 뮌헨안보회의에서 연설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군이 킬 존 1㎢를 빼앗을 때마다 평균 156명의 희생자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지속가능한 수치가 아니다. 이런 진척율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영토 전체를 점령하려면 단순 계산으로 7500만명이 희생되어야 한다. 갓난아기 포함 러시아 전체 남성 인구보다 800만명 더 필요하다.

 

러시아가 이런 소모적 전쟁을 여지껏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고통이 사회에 균등하게 전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투는 국경 밖에서 벌어지고 병력은 주로 가난한 변방 지역에서 모집했다.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 같은 대도시의 일상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최근의 사상자 추세를 감안하면 러시아군이 곧 전국 단위의 강제 징집을 시행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텔레그래프는 전망한다. 이는 종전 협상 가능성도 약간 올라갔다는 얘기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전쟁을 멈추는 길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내가 남의 나라 일에 오지랖 부리는 것인가? 아니다. 너무 길게 지속되는 폭력은 멀리서 보는 사람들에게도 우울감과 무력감을 남긴다. 그러니 우리도 이젠 그에게 공개적으로 말했으면 좋겠다. ‘당신의 고집 때문에 지난 4년간 전 세계인의 정신이 피폐해졌다’고 말이다. 그 전쟁, 할 만큼 했다.

 

올봄엔 꼭 종전 협상이 진행되어 양국 병사들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더 이상 신문 지면에서 킬 존이니 사망자가 10만이 100만이니 하는 얘기를 하지 않아도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긴 시간 동안 자유를 위해 버텨온 이들에게 글로라도 응원과 존경의 말을 전한다. ‘부디모!’ 우크라이나의 건배사로, ‘우리 살아가자’는 의미다.

 

-조진서 외신 뉴스레터 '오호츠크 리포트' 에디터, 조선일보(26-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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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유통기한 

 

2020년 영국 런던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에 있는 카를 마르크스의 묘비가 붉은 낙서로 뒤덮여 있다. 묘비 측면에 ‘증오의 교리(Doctrine of Hate)’라는 문구가 적혔다. /로이터 연합뉴스

 

1848년 2월 26일, 나는 런던 시내를 서성인다. 이틀 전인 24일,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함께 쓴 ‘공산당 선언’이 최초로 발표됐다고 ‘회자된다.’ 인쇄소에서 23쪽 분량의 책자로 처음 발간된 것은 1848년 2월 21일 런던에서의 독일어판이었다. 바로 다음 날 프랑스 파리에서 ‘2월 혁명’이 일어났고 24일 루이 필리프 국왕이 폐위되었기에 묘한 상징적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 우연한 일치에 드라마틱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공산당 선언’의 발표일을 ‘통상’ 24일로 언급하게 된 것이다.

 

마르크스는 여러 나라에서 추방당했는데, 이 자본주의 최대의 적을 자본주의가 가장 성황이던 영국에서 받아들여준 덕에 그가 대영박물관 도서관 열람실에서 ‘자본론’을 쓸 수 있었으며 영국에서 ‘공산당 선언’의 최초본이 인쇄됐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해,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프롤레타리아와 공산주의자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문헌, 여러 반정부 정당들에 대한 공산주의자들의 입장 등으로 구성된 이 책자는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전 이미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다. 특히 소련 몰락 전까지 역사상 가장 많이 인용된 정치 문건으로서 냉전 시기 지식인층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 퍼졌다.

 

공산주의 강령을 넘어서 이른바 고전이 된 것인데, 어차피 의미 있는 책이란 권하는 이들의 바람과는 달리 인간을 밝게 만들지 못한다. 인간과 세상의 다양함과 어둠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읽고, 이겨내는(소화시키는) 것까지가 진정한 독서다. 그런 면에서 ‘공산당 선언’은 읽을 만한 사료(史料)이며 정치 선동 팸플릿으로 훌륭한 모범이다. 혁명성은 ‘불온성’이고, 이 불온함이 낭만적 에너지로 전환돼 대중을 움직인다. 한데 혁명은 ‘여름날 생선’처럼 상하기 쉽다. 불온해서 싱싱할 때 먹어 치우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정치인이 된 혁명가들은 썩은 생선 더미 속에서 제 시신(屍身)이 썩어 가는지도 모르고 산다.

 

-이응준 시인·소설가, 조선일보(26-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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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을 조롱하는 이 땅의 평화주의자들 

 

<YONHAP PHOTO-1446> 전투훈련 받는 우크라 사람들(하르키우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의 공세가 50일째 이어진 14일(현지시간) 제2 도시 하르키우(하리코프)의 우크라이나군 신병교육대에서 갓 입소한 사람들이 군사훈련을 받고 있다. 2022.04.15.

 

“젤렌스키가 국민 전쟁 내몰고<br>평화 위해 전쟁만은 안된다”는<br>국내 평화 지상주의자들의 주장<br>우크라人이 흘린 피에 대한 모독

 

청와대가 유튜브에 최근 공개한 ‘문재인 정부 5년의 기록,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의 1부 ‘오직 평화입니다’를 봤다. 서두에 나온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오직 평화”라고 천명했다. 그런데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실패,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탄도미사일 발사 등 이어진 내용은 오히려 ‘평화를 이루려면 이 정권처럼 해선 안 된다’는 타산지석으로 삼기에 적당했다.

 

평화 지상주의자들 눈에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전쟁도 어리석은 짓으로 보이나 보다. 그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반대하는데도 이를 무모하게 추진한 젤렌스키가 자국민을 전쟁에 내몰았다고 비판한다. 러시아와 서방의 완충국인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직 평화’라는 잣대로만 재면 그렇게 비난할 수 있다. 그러나 평화만이 절대 가치라면 20세기 초 국력이 일본의 일개 번(藩) 수준이었던 조선 군주 고종이 총 한 방 안 쏘고 나라를 들어 바친 것도 평화를 위한 선택이 된다. 군사력이 러시아의 20분의 1에 불과한 우크라이나도 대들지 말고 납작 엎드렸어야 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30여 년 전까지 한 나라였다. 그땐 옛 체코슬로바키아가 소련과 서유럽 사이에 놓인 완충 국가였다. 1968년 체코 공산당 서기장 둡체크는 다당제 도입, 언론·경제 자유화 등 ‘프라하의 봄’을 추진했다. 소련은 20만 대군과 전차·탱크 수백 대를 동원해 가혹하게 진압했다. 화염병 들고 탱크에 맞선 국민 600여 명이 죽거나 다쳤다. 체코는 서방에 구조 요청을 보냈지만 차갑게 외면당했다. 소련과 무력 분쟁이 우려된다는 게 이유였다. 소련은 둡체크를 모스크바로 압송했다.

 

한 나라를 지도에서 완전히 없애지 않는 한 국민 전체의 꿈을 꺾는 것은 불가능하다. 프라하의 봄은 체코 국민 모두의 꿈이었다. 둡체크는 그 꿈의 실현을 위임받았다. 소련은 탱크로 프라하를 짓밟았지만 꿈까지 짓밟지는 못했다. 체코는 1989년 벨벳혁명으로 그들의 염원을 이뤘다. 21년 전 흘린 피를 그렇게 보상받았다. ‘우크라이나의 봄’을 꿈꾸는 이들도 우크라이나 국민이다. 젤렌스키가 그들을 전선에 내몬 게 아니라 유럽행에 국가의 미래가 있다고 믿는 국민이 러시아에 맞서는 길을 택한 것이다.

 

체코가 소련의 위성국가에서 벗어나기 위한 벨벳혁명을 시작하며 내건 모토가 ‘유럽으로의 복귀’였다. 혁명을 주도한 시민 포럼은 그 이유를 행동 강령에 열거했다. 법치·자유선거·사회정의·깨끗한 환경·인민교육·번영이 그것이다. 어느 것 하나 소련이 줄 수 없는 가치들이었다. 서유럽만이 그걸 줄 수 있었다. 폴란드·헝가리·루마니아 국민도 그렇게 믿었다. 그들에게 ‘유럽’은 지리적 의미가 아니라 그들이 열망하는 삶을 담은 어휘였다. 러시아인들조차 서유럽을 방문할 때는 “서쪽에 간다”고 하지 않고 “유럽에 간다”고 했다.

 

벨벳혁명 이듬해인 1990년 5월, 혁명 성공을 자축하는 프라하의 봄 음악제가 열렸다. 40여 년 망명에서 돌아온 지휘자 라파엘 쿠벨릭은 흥분과 감격에 상기된 얼굴로 체코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스메타나 교향곡 ‘나의 조국’을 지휘했다. 지켜보던 하벨 대통령과 관객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평화를 위해 전쟁만은 안 된다는 주장은 굴종을 거부하고 참된 자유와 평화를 쟁취하기 위해 피 흘리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모독이다. 우크라이나 국가(國歌)에 ‘우크라이나의 영광과 자유는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구절이 있다. 언젠가 우크라이나가 온전히 해방을 맞고 수도 키이우의 독립광장에서 축하 음악회가 열리는 걸 보고 싶다. 그들이 목 놓아 부르는 국가를 듣고 싶다. 70년 전 세계의 도움을 받아 자유를 지키고 그들이 흘린 피 덕분에 번영을 누리는 나라에 사는 사람으로서 간절히 기원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2-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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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공불락 요새 

 

2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의 아조우스탈(아조프스탈) 제철소에서 시커먼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이날 러시아군은 마리우폴 내 우크라이나군의 항전 거점인 이 제철소에 있는 민간인이 대피할 수 있도록 전투를 일시 중단하고 인도주의 통로를 개설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양국 간 합의가 없다면서 이를 부인했다. /연합뉴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전투기와 폭격기 1200대가 사흘간 스탈린그라드(현재 볼고그라드)를 폭격했다. 도시 점령은 시간문제일 것 같았다. 그런데 소련군 야코프 파블로프 하사는 파괴된 아파트 건물을 엄폐물 삼아 단 25명의 병력으로 58일을 버텼다. 이 건물 지하실 주민들이 식수를 공급하는 등 전투를 도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나중에 발견된 독일군 작전 지도에는 이 자그마한 건물을 적의 ‘요새’로 기록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마사다 요새는 예루살렘 남쪽 사해 부근 광야에 우뚝 솟은 바위산이다. 기원후 37년 로마에 의해 이스라엘이 멸망할 때 900여 명의 유대인 저항군은 이곳에 들어가 3년간 항전했다. 빗물을 모아 저장해 식수로 이용했다. 로마군이 절벽 한쪽에 인공 경사로를 만들어 더 이상 버틸 수 없자 항복 대신 전원 자살을 택했다. 한동안 이스라엘 신병들은 훈련을 마치고 이곳에 들러 군인 정신을 다졌다.

 

▶물론 제 역할을 못한 요새도 많았다. 벨기에는 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독일군 침략을 예상하고 있었다. 프랑스로 가려면 벨기에 지역을 반드시 통과해야 했다. 벨기에는 지하에 대규모 요새를 구축하고 난공불락이라고 자부했다. 그러나 1940년 독일군 공수부대 기습에 36시간 만에 점령당했다. 사방을 다 경계했지만 공중 침투는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프랑스는 1936년 독일 접경에 350㎞ 마지노선을 구축했다. 보급 없이도 수개월 방어할 수 있어서 난공불락이라 믿었다. 그러나 독일군이 마지노선을 우회해 공격하면서 허무하게 무너졌다.

 

▶러시아가 “아조우스탈 제철소를 제외한 마리우폴 전 지역을 장악했다”며 제철소 지하에 있는 병력 2000명과 민간인 1000명에게 투항하라고 최후 통첩했다. 하지만 일주일째 항전이 이어지고 있다. 냉전 시대 소련은 핵공격 등에 견딜 수 있도록 이 제철소 지하 곳곳에 터널과 벙커를 건설했다. 깊이가 최대 30m, 길이는 20㎞가 넘는다. 우크라이나군이 구소련이 건설한 냉전 시대의 산물을 요새 삼아 버티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물 등 식량과 물자 보급이다. 지하 모습을 공개한 유튜브 동영상에는 물과 음식이 부족하다며 도움을 요청하는 여성과 아이들 모습이 나온다.

 

▶역사를 보면 난공불락의 요새는 사실상 없었다. 3중 성벽으로 20여 차례 외침을 견뎌낸 콘스탄티노플 성벽도 1453년 술탄 메메트 2세의 포격에 무너졌다. 어쩌면 외형적 방비보다 인간 정신이 더 강한 요새를 만드는지도 모른다. 아조우스탈 제철소의 전사들과 민간인들에게 햇빛이 들기를 바란다.

 

-김민철 논설위원, 조선일보(22-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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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원자재 값 치솟자, 국내 고물상이 붐비기 시작. 푸틴 덕에 체감하는 세계화의 현장.

 

-팔면봉, 조선일보(22-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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