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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세대의 ‘3요’] [‘본받을 어른이 없다’는 아이들]

뚝섬 2023. 2. 1. 10:10

[Z세대의 ‘3요’] 

[‘본받을 어른이 없다’는 아이들]

 

 

 

Z세대의 ‘3요’

 

한국 갤럽이 젊은이에 대한 주제로 설문을 했다. 기성세대인 응답자 열 중 아홉이 요즘 젊은이들이 자기 권리만 너무 주장한다고 답했다. 이기적이다(87%), 돈 계산이 과하게 정확하다(73%) 같은 부정적 응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지금의 2030세대 이야기가 아니다. 이 설문을 한 시점은 1992년, 당시 젊은이라 해봤자 1960년대생들이다. 586 세대도 한때는 이기적인 ‘요즘 젊은이’였나 보다.

 

▶직장마다 20대인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와 함께 일하는 방법을 찾느라 고민이라고 한다. 대기업 임원 사이엔 ‘3 주의보 말까지 돈다. 업무 지시에 ‘이걸요?’ ‘제가요?’ ‘왜요?’라고 되묻는 젊은 직원의 흔한 반응을 일컫는 말이다. 일본엔 비슷한 표현으로 ‘나니카…'가 있다. ‘유토리데스가, 나니카(유토리입니다만, 뭔가)…’라는 드라마를 통해 유행했다. 1987~2004년생을 유토리(여유) 세대라 하는데 힘든 일 피하고 이기적이라고 여겨진다. 이들이 많이 쓰는 말이 ‘나니카’다. 자신의 그런 행동에 뭔가 문제가 있습니까란 얄미운 뉘앙스다.

 

▶젊은이들에 대한 한탄은 뿌리가 깊다. 1982년 한 신문엔 ‘잖아요’ ‘같아요’란 말투가 무례해 참기 어렵다는 독자 투고가 실렸다. 비슷한 시기의 기사는 당시 젊은이들이 ‘웬일이니, 별일 아냐, 웃기지 마’ 등을 너무 많이 써 걱정된다고 적고 있다. 지금으로선 왜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당시엔 감정을 너무 노골적으로 표출한다고 지적을 당했다.

 

Z세대들이 꼰대라고 부르는 지금의 40대야말로 한때는 자기표현에 거침없는 젊은이였다. 당시 대기업은 개성에 집착하는 이른바 ‘X세대’를 유인한다며 경쟁적으로 튀는 채용 광고를 냈다. ‘노래방에서 서른곡을 부를 수 있는 사람’(대우), ‘트로트에서 힙합까지 쫙 꿰고 있다구’(삼성전자)란 식이었다. 이들은 입사 후 찢어진 바지 입고 출근했다가 야단맞기도 했다. X세대도 이젠 Z세대들에게 핵심라떼세력으로 찍혀 있다.

 

'요즘 애들 버릇없어/어른들은 얘기하겠지만/똑같은 얘길 들으며/그들도 자랐는걸.’ 1993년에 나온 O15B 노래 ‘요즘 애들 버릇없어’ 가사다. 100 영국 신문엔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생각이 없고 무례하며 완전히 이기적이다.’ 한때 제멋대로라던 동서고금의 ‘요즘 애들’은 결국 다 어른이 돼 ‘요즘 애들’ 흉을 봤다. 시간이 흐르면 ‘이걸요? 제가요? 왜요?’도 이상하게 들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김신영 기자, 조선일보(23-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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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받을 어른이 없다’는 아이들

 

젊은 세대가 배워야할 지식, 더 이상 부모 경험에 있지 않아
세대 간 이해 높이려면 어른이 먼저 마음 열고 다가가야

 

트로트 가수의 팬클럽에 가입했던 젊은 지인이 “활동하기 참 힘들다”고 털어놨다. 고령층 회원의 비율이 높은 그곳 팬카페에서 해당 가수의 성공 요인을 분석한 글을 올렸더니 “그런 쓸데없는 짓 할 시간이 있으면 신곡 스트리밍(음원 실시간 전송)이나 한번 더 하라”는 반응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는 “여기서까지 ‘꼰대질’을 겪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딴 거 할 시간 있으면 영어 단어 하나라도 더 외우라’는 식의 말투는 타인의 일상에 개입해 제어하려는 오만한 자세로, 이른바 ‘꼰대’들의 대표적인 발화(發話) 방식이다.

 

지역과 이념 갈등에 이어 성(性) 갈등 문제가 대두되고 있지만, 정말 심각한 것은 세대 갈등일지도 모른다. 이건 가정이나 직장에서 지지고 볶으면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서로 고개를 돌려 외면하면 세월이 지나도 그대로 균열이 남을 수 있는 갈등이다. 최근 뉴스1·타파크로스 조사에선 사회관계망서비스 등에서 산출된 올해 1분기 한국 사회 세대 갈등 지수가 2018년에 비해 5.2%p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처럼 가족을 집 안에 모이게 했을 코로나19 사태가 오히려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든 셈이다.

 

그저 같은 나라에서 생활할 뿐, 이제 노인 세대와 청년 세대는 사용 어휘는 물론 사고 방식마저 달라진 것 같다. 그러나 아침에 눈을 뜨면 새로운 디지털 용어가 출현하는 지금, 젊은 세대가 습득해야 할 지식은 더 이상 어른들의 경험이나 경륜에 있지 않다. ‘후진국 시절 조부모와 개도국 시절 부모가 선진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키운다’는 말도 나온다. 스마트폰 작동법이나 신어의 뜻을 물어보는 쪽은 대개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다.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불치하문(不恥下問)’이 아니라, 아랫사람에게 물어보지 않을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불하문(無不下問)’의 시대가 된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나이 든 세대에게 남은 권위란, 도덕성을 바탕으로 한 ‘모범’의 제시. 그것은 마을에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서슬퍼런 꾸지람과 적확한 고전 인용으로 구성원을 반성케 하고 중심을 잡아주던 대쪽 같은 백발 어르신의 모습이다. 그러나 지금 어디에 그런 ‘어르신’이 있는가? 지하철을 타 보면, 다른 빈자리를 놔두고 임산부석에 버티고 앉거나, 이어폰 없이 TV 앱을 크게 틀어 놓거나, 우렁찬 목소리로 통화하는 사람들은 청년보다 어르신의 비중이 훨씬 크다는 걸 알 수 있다. 아널드 토인비는 “세대 간 오해를 줄이려면 기성세대가 먼저 스스로 책망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들의 표정을 봐서는 도무지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

 

반면 ‘요즘 애들’ ‘MZ세대’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평가절하되기 일쑤인 청년들은 어떤가. 그들은 지독한 개인주의라는 말을 들을지언정 부당한 관습에 저항하는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고, 기존 체제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들으면서도 공정(公正)에 어긋나는 일은 그냥 넘어가지 않으며, 낭비가 심하다는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글로벌한 문화 체험에 인색하게 굴지 않는다. 보릿고개 시절에나 어울릴 만한 ‘그게 밥 먹여 주느냐’는 타박이 이들에게 먹힐 리 없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시거 역(배우 하비에르 바르뎀)

 

코언 형제의 영화 제목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예이츠의 시구에서 따온 것으로, 노인의 경험과 지혜대로 흘러가지 않는 이 세상이 예측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그러나 세상이 이미 변했는데도 새로운 세대를 이해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면, 광화문 집회에 청년층이 좀처럼 유입되지 않는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원하는 세상은 향후 젊은 세대에 의해 실현되기 어렵고, 끝내는 이렇게 말하게 될 것이다. 노인이 원하는 나라는 없다’.

 

-조선일보(22-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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