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때리기 나선 ‘한한령’… 오히려 경쟁력 더 키웠다]
[한중 수교 30년, 중국 앞에 우뚝 선 대한민국]
[심상찮은 시절]
한국 때리기 나선 ‘한한령’… 오히려 경쟁력 더 키웠다
[송의달 에디터의 Special Report]
한한령의 겉과 속

2016년 7월 한국 정부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발표 이후 한중(韓中) 관계는 소용돌이쳤다. 중국이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이라는 비공식적인 보복 조치와 불매운동·차별 공격을 퍼부은 탓이다.
한국 연예인이 등장한 영화·드라마·음악 등 K콘텐츠 상영·공연과 광고·양국 공동제작이 전면 금지됐고, 중국 내 한국 화장품 판매 급감과 한국 식당 폐업이 잇따랐다.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그룹은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중국 사업 완전 철수를 결정했다.

2017년 초 중국 안에서는 한국 제품과 기업을 배격하는 '한한령' 바람이 불었다. 칭다오 한국총영사관 앞에 ‘사드 반대’ ‘롯데 제재’ 등의 팻말을 든 중국인 시위대가 등장했고(왼쪽), 중국 내 롯데마트 17곳에서는 위생·안전·소방 점검이 일제히 전격 실시됐다(가운데). 현대차를 부수는 장면을 찍은 사진도 올라왔다(오른쪽)./조선일보DB
2017년 3월부터는 중국인의 한국 단체 관광까지 중단돼 한국 관광·면세점 업계와 서울 명동(明洞) 같은 상권이 휘청거렸다. 7년째 진행 중인 한한령은 중국측 의도 대로 한국에 결정적 타격을 입혔을까?
◇콘텐츠 中 수출 2.5배 늘어
당시 중국 사업으로 큰 돈을 벌던 한국 엔터테인먼트·게임 회사들의 주가(株價)는 폭락했다. ‘이제 한류(韓流)는 끝났다’는 탄식과 비관론이 들끓었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은 한한령에 따른 벼랑끝 위기를 거뜬히 이겨냈다. 중국인 취향에 억지로 맞추고 그들의 간섭을 수용하던 제작 방식을 벗어던진 게 승부수(勝負手)였다.
김윤지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한한령을 계기로 K콘텐츠는 동남아와 북미, 유럽 등으로 눈을 돌리면서 진정한 글로벌 콘텐츠로 업그레이드했다”고 말했다. 단적으로 2016년 60억달러이던 K콘텐츠 총수출액은 2021년 124억달러대로 5년 만에 배 넘게 늘었다.

'K 콘텐츠'와 'K 컬쳐'는 음악·영화·드라마·게임 등 분야에서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강력한 파워를 행사하고 있다./그래픽=백형선
중국인 멤버가 없는 방탄소년단(BTS)이 빌보드 차트 세계 1위에 올랐고,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賞) 4관왕 수상,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에미상 6개 부문 석권도 이어졌다. 신규 진출 대신 기존 상품 재판매와 홍콩·대만 등 주변부 공략에 힘쓴 결과, K콘텐츠의 대중(對中) 수출액은 2016년부터 매년 증가해 4년 만에 2.5배 늘었다. 2015년 51개국이던 K팝 수출 대상국은 2021년 말 148개국이 됐다.

아이돌 그룹 BTS(방탄소년단)가 2020년 10월 10일 전 세계의 '아미(BTS 팬)'와 화상으로 소통하며 온라인 라이브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BTS는 그해 10월 7일 미국 코리아소사이어티의 '밴플리트상' 수상 소감에서 6·25전쟁을 언급했다. 이에 대해 중국 네티즌들과 관영 매체인 환구시보가 “6·25전쟁은 미군이 침략자인데도 미국 입장에만 맞춰 발언했다”고 비판했다./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제공
중국에서 6년 넘게 사실상 쫓겨난 K콘텐츠가 대중(對中) 의존을 끊고 진일보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한령은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기폭제였다. 홍대순 글로벌전략정책연구원장은 “중국 자본·시장이라는 족쇄에서 해방한 K콘텐츠의 도약은 전형적인 소실대득(小失大得·적게 잃고 많이 얻음) 사례”라고 했다.
산업연구원(KIET)은 2017년 5월 “한한령으로 인해 한국 경제가 입는 직간접 피해 규모가 최소 5조 6000억원에서 최대 15조 2000억원에 이를 것”이라며 “상당부분은 중국 당국의 한국으로 단체여행 제한 조치에서 비롯될 것”이라고 밝혔다.
◇脫중국 속도 더 빨라져
실상은 어땠을까?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실제로 2016년 806만명에서 이듬해 417만명으로 반토막났다. 그러나 2~3년 만에 충격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중국 정부가 사드(THAAD) 배치에 대한 보복 조치로 한한령(限韓令)에 이어 2017년 3월3일 자국민들에게 한국 단체 관광을 전면 금지시킨 지 5일째인 3월 8일 중국 국적기 항공사 출국장이 극도로 한산하다./조선일보DB
2019년 중국 관광객은 602만명으로 75% 수준을 회복했고, 같은해 방한(訪韓)한 외국인 총관광객은 한한령이 터진 2017년 인원을 420만명 이상 웃돌았다.
최경은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관광정책연구실장은 “단체 여행 대신 중국인 개별 관광객 유치 노력을 꾸준히 하고 베트남·말레이시아·태국 등 동남아 관광객을 2~3배 늘리는 노력이 적중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면세점 업계는 시장 다변화로 체질(體質)을 개선했다. 일례로 2017년 초 3개국 4개이던 롯데면세점의 해외 매장은 이달 현재 6개국 13개이다. 회사 관계자는 “한한령이 터진 2016~2018년에도 회사 총매출액은 줄지 않았다”며 “동남아·호주·뉴질랜드 진출로 경쟁력이 더 강해졌다”고 했다.

2019년 3월 25일 호주 브리즈번 공항에서 열린 롯데면세점 그랜드 오픈 행사 모습. (사진 왼쪽 세번째부터 이하 당시 직책) 롯데면세점 모델 엑소 수호, 송용덕 롯데그룹 호텔&서비스 BU 부회장, 이갑 롯데면세점 대표이사, 게르트-얀 디 그라프 브리즈번 공항공사 대표이사, 윤상수 시드니 총영사, 스테판 팀스 롯데면세점 오세아니아 법인 대표이사, 엑소 카이가 테이프 커팅식을 진행하고 있다./조선일보DB
중국공산당의 말 한마디로 사업 자체가 붕괴되는 중국의 민낯을 한국 기업들이 확인한 점도 소득이다. 한국과 제조업에서 최대 경합 관계에 있는 중국은 중국 현지 진출 한국 기업에 유무형의 압박과 불이익을 가하고 있다. 김경준 전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은 “최근 침체기에도 탈(脫)중국을 단행한 업종의 한국 기업들이 선방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럿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로 돌아온 유턴 기업 126개 중 97개(77%)가 중국 진출 기업”이라며 “특히 한한령을 계기로 한국 기업의 중국 탈출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고 했다.
◇“중국의 명백한 정책적 실패”
한국은 한한령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은 반면, 중국은 ‘한국 때리기’라는 목표를 거의 달성하지 못했다. 그래서 한한령에 따른 실질적인 피해는 한국 보다 중국이 더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예로 중국내 K콘텐츠 호감도는 2016년부터 2021년까지 5년 새 80~90%포인트 상승했다. 한국 경제에 대한 타격도 일부 호들갑과 달리 ‘찻잔속 태풍’에 그쳤다.

오히려 한한령에 대한 역풍으로 사드 배치에 찬성하는 한국 국민이 한한령 이전 보다 훨씬 많아졌다. 2019년 홍콩 국가보안법 강행 통과와 신장·위구르 인권 탄압, ’늑대외교’ 공세까지 터지면서 한국인의 반중(反中) 정서가 고조됐다.
미국 조사기관 ‘퓨 리서치’는 “2015년 37%이던 한국내 반중 정서가 2017년 51%로 올랐고 2022년 80%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한국인 10명 중 8명이 중국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양국 수교 이후 30년 만의 최악 상황이다.
권기영 인천대 중국학과 교수는 “중국에 대해 한국인의 멀어진 마음을 다시 얻기 위해 중국이 지불해야 할 비용은 돈으로 환산하기 힘들 정도다. 그런 점에서 ‘한한령’은 중국의 명백한 정책적 실패”라고 말했다.
한한령을 통해 중국은 문화 교류까지 겁박·차단하는 후진국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 여파로 한국 청년 세대 사이에 혐중(嫌中) 감정이 확산하고 있다. 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는 “중국이 먼저 대국(大國) 다운 도량(度量)을 갖고 주변국 존중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좌) '반중' 정서는 2020년대 들어 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2021년 6월 5일(현지 시각) 낮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1만여명의 시민들이 ‘NO 푸단대’ ‘식민지를 만들지 말라’ 등의 반중(反中) 구호를 들고 거리 시위를 벌이고 있다./페이스북/(우) 한국인의 반중 정서는 국내 대학교에 설치돼 있는 공자학원 퇴출 요구 시위 등으로 표출되고 있다./조선일보DB
◇“제2 한한령 막으려면 中에 당당한 의지 보여야”
“‘한한령’은 한류 콘텐츠에 내재된 자유·인권·민주 DNA가 중국 대중에 확산되는 것을 경계한 측면도 있다. 따라서 한국 내 사드 철회가 이뤄지지 않는 한, 한한령은 장기간 미제(未濟)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는 “2000년 마늘 파동 보복으로 한국산 휴대폰 등 수입 규제를 시발점작으로 중국은 20년 넘게 틈만 나면 한국 정부와 지도층 ‘길들이기’를 하고 있다”며 “중국이 ‘안보 위협’이라며 한한령을 일방적으로 강행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했다.
“반도체 등 핵심 업종은 손도 못 대고, 눈에 확 띠지만 자국에는 피해가 없는 엔터테인먼트·관광·화장품 분야에서 한국을 때렸지만 생각했던 목표를 대부분 이루지 못했다.”
그는 “그러나 중국이 효과를 거둔 유일한 곳은 한국 지도층, 특히 정책 결정자들의 기세(氣勢)를 꺾고 중국에 대한 심리적 공포를 더 높인 점”이라고 했다. 그는 “앞으로 외교관 등 한국 지도층의 머릿속에 똬리틀고 있는 공중증(恐中症·중국 공포증)을 제거하고 뿌리뽑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한국은 중국이 설정한 제1도련선((島鏈線·island chain, 왼쪽 점선) 안에 자리잡고 있다. 그만큼 중국에 군사적, 전략적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지정학적 구도이다./조선일보DB
“중국은 지금 한국 만한 경제력과 군사력, 대외 영향력을 가진 나라가 공식적으로 반중(反中) 전선에 동참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양국 관계에서 더 초조하고 아쉬운 쪽은 중국이다.”
주 교수는 “2016~17년과 비교해 중국의 국제 정치·경제적 입지가 크게 약화됐다”며 “제2, 제3의 한한령을 막으려면 2019년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에 대응한 것처럼, 우리 지도층과 국민이 중국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맞서겠다는 의지(意志)를 보여주는 게 최선의 방도”라고 말했다.
-송의달 에디터, 조선일보(23-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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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수교 30년, 중국 앞에 우뚝 선 대한민국
[윤평중 칼럼]
강자의 횡포 부리는 중국 세계인의 민심 잃어.. 한국은 경제강국·매력국가
중국이 호소력 가지려면 주권국 독립자주 침해하는 지금 같은 방식으론 안 돼
윤석열 대통령은 대만을 거쳐 방한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을 만나지 않았다(8월 3~4일). 비난 여론이 컸다. 민주주의와 권위주의를 가르는 ‘가치 외교’로 ‘펠로시 패싱’을 비판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중국에 엎드린 문재인 정권을 윤 대통령이 질타한 데다 한국 사회엔 반중 정서가 거세다. 하지만 윤 대통령 선택은 현명했다. 외교는 감정이 아님을 대한민국 국가이성이 웅변하기 때문이다.

정재호 주중대사가 24일 오후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 17호각에서 열린 한중 수교 30주년 기념 리셉션에서 윤석열 대통령 축사를 대독하고 있다. /연합뉴스
펠로시 대만행은 미·중 전쟁을 부를 뻔했다. 대만 전쟁을 시진핑 중국 주석의 엄포로 여긴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을 직시해야 한다. 바로 6개월 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을 예측한 전문가는 없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미 군부도 펠로시 대만행을 반대했다. 미국 조야는 우크라이나 전쟁 중에 대만 위기를 부추긴 펠로시를 비난했다. 제국 미국은 두 개의 전쟁을 동시에 치를 여력이 없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인 대만해협에서 전쟁이 터지면 한반도가 직격탄을 맞는다. 국가이성의 냉정한 판단이다.
한·중 수교 30주년, 펠로시 사태는 ‘중국 문제’의 폭발성을 증언한다. 여기서 중국 문제는 제국 중국이 한국에 던지는 국가 존망 위기와 도전을 가리킨다. 윤 정부가 펠로시 사태를 잘 풀었는데도 중국은 8월 9일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5개 응당(應當)론’을 들고 나왔다. ‘독립 자주, 근린 우호, 개방 협력, 상호 내정 불간섭, 다자주의’로 꾸몄지만 사드 철수, 중국 겨냥 경제 동맹 불참, 대만 문제 불개입, 한미 동맹 해체를 요구했다. ‘상호 내정 불간섭’하자면서 한국 내정에 간섭한다.
한국 사회의 혐중 정서를 만든 건 중국이다. 2016년 이래 계속된 사드 보복은 한국의 ‘독립 자주’를 침해하는 국가가 중국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중국 표현대로 ‘대국 중국이 소국 한국’을 힘으로 길들이려 한다. 그러나 자유와 평등에 익숙한 한국인은 강자의 횡포를 혐오한다. 중국몽이 세계의 악몽으로 귀결되고 지구촌 곳곳에 반중 정서가 비등한 것도 중화 제국의 업보다.
‘수출 대국 한국이 중국과 결별할 수 있는지’ 묻는 이들이 있다. 요소수 대란처럼 GDP 대비 수출입 비율이 8할이 넘는 한국이 중국 보복으로 붕괴할 수 있다는 가설이다. 하지만 경제 공중증(恐中症)은 틀렸다. 국제 분업 체제에서 중국이 한국에 보복하면 중국도 치명상을 입기 때문이다. ‘21세기 산업의 쌀’ 반도체가 결정적 증거다. 세계 메모리 반도체 절대 강자(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D램 72.6%, 낸드플래시 46.4%)인 한국 없이는 중국 IT 전자 산업 전체가 마비된다. 한한령이 관광업과 화장품 등에 머문 배경이다. 중국에 주눅 들 까닭도 없고 중국과 결별할 이유도 없다는 게 한국 국가이성의 목소리다.
중국의 ‘5개 응당’ 요구는 한국인을 모욕했다. 제국 중국은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의 ‘평등한 주권국가들의 평화 공존’에 입각한 세계 질서를 부정한다. 수정주의 학자들은 1648년 이후에도 전쟁이 그치지 않았다며 베스트팔렌 이념을 꼬집는다. 하지만 베스트팔렌 조약이 국제 질서의 보편적 토대임을 부인하면 ‘만인이 만인에게 늑대가 되는’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의 참극만 남는다. 양차 세계 대전의 폐허 위에 인류가 함께 쌓은 국제연합(UN)은 베스트팔렌 질서의 현대적 성과다. 한국을 6·25전쟁 절멸(絶滅) 위기에서 구한 유엔이야말로 베스트팔렌 이념의 최대 성취라는 국가 철학이 통절하다.
국권이 민권을 억누르는 중국과 러시아의 국가이성은 반동적이다. 이와 달리 민권을 국권보다 중시하는 미국과 한국의 변증법적 국가이성은 보편사적 호소력이 있다. 민주주의·법치·인권이 없는 중국이 세계인의 민심을 잃을 때 한국의 한류는 세계를 매혹한다. 중국이 우리를 겁박할 땐 베스트팔렌 질서에 입각해 의연히 대응하면 된다. 오늘의 한국은 약소국이기는커녕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자 매력 국가다. 중국 국가 대계(大計)의 첫걸음은 한국을 동등한 주권국으로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선진국 시민인 우리는 반중 감정을 넘어서야 한다. 1992년 이래 국익에 투철했던 한·중 수교 30년이 상호 번영을 불렀다. 2022년 이후 정립될 새 한·중 관계 30년도 냉철한 국가이성이 이끌어야 한다. 지금은 대한민국이 중국 앞에 우뚝 선 반만년 역사의 첫 순간이다. 한·중 두 나라가 진정한 선린호혜(善隣互惠) 문턱에 섰다.
-윤평중 한신대 명예교수·정치철학, 조선일보(22-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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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찮은 시절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심상(尋常)이라는 단어는 옛 문헌에 자주 등장한다. 본래는 길이나 면적을 나타내는 글자 둘의 합성이다. 그 길이나 면적 등이 짧거나 좁아서 이 단어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 것’을 뜻한다. 범상(凡常), 평상(平常) 등의 단어가 같은 새김이다. 이들 단어 뒤의 ‘상’이라는 글자는 쓰임새가 많다. 바지가 달리 없던 시절 늘 입었던 치마[裙]를 가리켰다. 그 모습 등에 큰 변화가 없어 결국 ‘변치 않는 무엇’을 지칭했다는 설명이 있다. 상도(常道), 상례(常例) 등의 말로 잘 쓰인다.
큰 변화가 닥칠 때 흔히 쓰는 단어가 이상(異常), 비상(非常), 수상(殊常)이다. ‘수상’은 반공(反共)의 기운이 왕성하던 1970년대 무렵 “수상한 사람 신고하자”의 구호로 귀에 익다. ‘수상쩍다’는 말도 곧잘 쓴다. 기상(氣像)의 영역에서 큰 변화가 따르면 흔히 천재지변(天災地變)으로 적는다. 옛 사람들은 이를 재이(災異), 재앙(災殃)이라고 표현하며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즉 ‘하늘이 내린 재난’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 맥락에서 만들어진 단어가 천견(天譴)이다. 풀이하자면 ‘하늘[天]의 꾸중[譴]’이다. 하늘이 내린 벌이라고 해서 천벌(天罰), 또는 천주(天誅)라고도 적는다. 이런 재난이 닥치면 땅 위의 최고 권력자는 ‘자아 반성’을 한다. 제왕(帝王)이 내는 반성문이 ‘죄기소(罪己詔)’다. ‘스스로를[己] 책망하는[罪] 공고[詔]’의 뜻이다. 중국 역사에 자주 등장했던 최고 권력의 뉘우침이다. 심각한 문제에 대한 성찰(省察)과 점검(點檢), 개선(改善)의 의미가 담겼다.
미국과의 갈등, 경기의 하강, 지방 재정 고갈 위기에 접어든 중국에 세계적인 가뭄과 고온 현상까지 겹쳤다. 그 피해가 ‘심상’의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모양이다. 이 ‘비상’의 시기에 중국의 집권 공산당은 어떤 반성문을 쓸지 궁금하다.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조선일보(22-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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