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종 수난사]
[“예술만 하는 예술가는 키우지 않는다”]
[‘K클래식’ 열풍 이끈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콩쿠르 강국의 이면]
[영재 많은 K클래식… ‘조기발굴→다양한 경연’ 시스템의 힘]
한예종 수난사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는 짧은 역사에 비해 유난히 괴담이 많다. 노크 귀신, 음지못 시신, 물고문 소리 등 온라인에 떠도는 캠퍼스 괴담만 열 가지 정도다. 서울 석관동 캠퍼스가 과거 안기부 자리였던 탓이라고 한다. 이 터에 들어설 때까지 한예종은 3년 동안 예술의전당, 국립극장 빈 공간에서 얹혀 살았다. 김대진 전 총장은 “비만 오면 복도에 물이 새 양동이로 받아서 내다버리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했다. 터를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한예종은 1993년 개교 후 오랫동안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았다. 기존 대학의 반대와 견제가 심했기 때문이다. 1991년 한예종 설치안을 밀어붙인 이어령 당시 문화부 장관이 아니었으면 개교조차 어려웠을 것이다. 한예종은 여전히 법적으로 대학이 아니다. 외국인학교, 대안학교처럼 ‘각종학교’로 분류된다. 학사만 인정될 뿐 석·박사 과정은 안 된다. 캠퍼스도 둘로 나뉘어 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의릉을 복원하면 언젠가 안기부 터에서도 떠나야 한다.
▶그런데 많은 이가 이 학교에 못 들어가 안달이다. 작년 경쟁률이 24.8 대 1이었다. 대학 재학 중, 혹은 졸업하고 들어오는 경우도 많아 N수생 출신이 가장 많은 학교로 유명하다. 배우 박정민은 고려대 입학 후 2년을 더 공부해 한예종에 들어갔다. 반대로 열네 살 학생도 들어온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열일곱에 입학했다. 학과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인재를 뽑는 자율성이 한예종을 세계적인 학교로 만들었다.
▶한예종 출신이 국내외 대회에서 수상한 게 작년까지 4151번이라고 한다. 1위만 1361번이다. 1995년 바이올리니스트 민유경의 메뉴인 콩쿠르 3위를 시작으로 세계 클래식 콩쿠르를 휩쓸었다. 한국 음악사는 한예종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정도다. 수많은 명배우와 영화, 연극, 무용, 국악인도 배출했다. 한예종처럼 인재를 뽑을 수만 있으면 국내 대학 전체가 세계적으로 도약할 것이란 얘기도 있다.
▶이런 학교가 다시 수난 위기에 몰리고 있다. 광주 지역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한예종을 광주로 이전하는 법안을 발의했다고 한다. 한국을 먹여 살릴 반도체 클러스터를 전북 새만금으로 옮기자고 해 빈축을 사더니 이제 한예종까지 가져가겠다고 한다. 권력을 잡았다고 별일을 다 한다. 뉴욕의 줄리아드스쿨처럼 예술학교는 당연히 공연과 전시의 중심지에 있어야 한다. 기적적으로 도약하는 예술학교를 한국 정치처럼 순식간에 삼류로 끌어내리려 하고 있다.
-선우정 논설위원, 조선일보(26-04-30)-
______________
“예술만 하는 예술가는 키우지 않는다”
[朝鮮칼럼]
인문학 못 갖춘 예술가 현대사회에선 AI일 뿐
단테와 카뮈 읽는 임윤찬 박재홍 보며
개교 30주년 한예종의 새로운 예술가像 확인
예술가와 학위 논란 있지만 석·박사 학위 수여 허용을
피아노 연주로는 내가 최고라는 자부심으로 미국 유학을 떠났던 한국 청년이 있다. 1986년의 미국 뉴욕 줄리아드. 그는 내친김에 박사 학위까지 도전했다. 줄리아드의 젊은 총장은 패기만만한 한국 청년에게 면접 시험을 추가하겠다고 선언했다. 명색이 박사 학위인데 실기만으로 뽑을 수는 없다면서. 첫 질문은 편안했다. “요즘 무슨 곡을 치고 있나.” “베토벤의 협주곡 5번 ‘황제’입니다.” 다음 질문이 이어졌다. “오, 좋아. 그렇다면 베토벤이 ‘황제’를 작곡할 때 어떤 사상의 영향을 받았는지 말해 줄 수 있겠나.” 홍안의 청년은 얼굴이 더 붉어졌다. 생각해 본 적 없던 질문. 연주만 잘하면 최고라고 오판했던 청년은 고개를 숙였고, 이후 그는 피아노뿐 아니라 나폴레옹과 프랑스 혁명까지 섭렵한다. 인문학을 동반한 피아니스트. 줄리아드는 그에게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4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때의 스승은 은퇴했고, 제자는 대학 총장이 됐다. 각각 32년간 장기 집권하며 줄리아드를 세계 최고 신전으로 이끈 조셉 폴리시(74)와 ‘연주하는 대학 총장’이라는 별칭의 한국예술종합학교 김대진(60) 총장이다. 올해 개교 30주년인 한예종의 숙원은 대학원 설치 및 석·박사 학위 수여. 임윤찬을 비롯해 전 세계 클래식 콩쿠르를 휩쓸고 있는 이 학교 출신들의 놀라운 성과를 떠올린다면, 아직 이 학교에 그럴 자격과 권리가 없다는 데 많은 사람이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법령상 한예종은 대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훌륭한 커리큘럼과 최고 교수진을 갖추고도, 30년 전 고등교육법상 ‘각종 학교’로 시작했기 때문에 대학원 설립도 석·박사 학위 수여도 불가능하다.
창작하는 예술가에게 과연 학위가 필요하냐는 근본적 질문이 있을 수 있다. 나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예술은 개념이고 이상이지만, 예술가는 인간이고 현실이니까. 하지만 전제가 있다. 인문학을 갖춘 예술가. 이 대목에서 줄리아드의 폴리시 총장으로 돌아온다. 1984년 그가 취임했을 때만 해도, 줄리아드는 아직 세계 최고가 아니었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학생들의 커리큘럼에 인문학을 도입했고, 지역사회 봉사 프로그램을 신설했으며, 학생들에게는 ‘연주 기계’를 넘어설 것을 요구했다. 예술만 하는 예술가는 기르지 않겠다, 예술이 전부가 아닌 예술가가 교육의 목표였던 것이다.
김대진 총장의 한예종에서 그 가능성을 보고 있다. 이 학생들은 혹시 연주 기계가 아닐까 품었던 의심을 날려버린 순간을 기억한다. 역대 최연소인 18세로 반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임윤찬이 귀국 기자회견에서 단테를 인용했을 때다. 리스트의 피아노 연작 중 ‘단테 소나타’를 이해하고 싶어서, 국내에 출간된 ‘신곡’을 모두 찾아 읽었다는 청년. 또 있다. 한예종 기악과 4학년으로 지난해 부소니 콩쿠르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박재홍. 그는 ‘황량함’이라는 뉘앙스를 피아노로 표현하기 위해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반복해 읽었다고 한다. 다양한 예술과 학문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자신만의 해석과 개성을 보여줄 수 있는 연주자. 그런 노력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단순히 기계 학습만을 반복하는 AI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한예종의 대학원 설치에 대한 다른 대학들의 근심을 알고 있다. 실기 인재 양성을 내세운 학교가 왜 학술과 이론을 연구하는 석·박사과정을 하려느냐는 비판도 있고, 한예종 독점이 더 심해질 거라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시야를 확장해야 할 때다. 오랫동안 대학에서 문예 창작을 가르친 노벨 문학상 작가 토니 모리슨(1931~2019)의 말을 기억한다. 창작가를 만난 적도 없는 학생들이 예술 분야 학위를 받는 건 끔찍한 일이라고. 창작과 실기 위주의 학생들이 왜 학위가 필요하냐고 물을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이론과 학술 중심의 예술 대학은 왜 창작을 등한시하느냐고 반문해야 한다. 하나 더. 나는 예술과 예술 교육 분야에서도 우리가 선진국에 들어설 수 있고, 일부 들어섰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한예종의 뛰어난 교수진과 학생, 그리고 K컬처의 역동성에 반해 유학 오려던 외국 학생들이 학위 인증이 어렵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을 접었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었다. ‘해외에서 유학 오고 싶어 하는 학교’는 허망한 레토릭이 아니다. 좁은 땅의 독점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지금은 전 세계에서 유학 오고 싶어 하는 한국 예술대학의 순위를 두고 서로 겨룰 때가 아니겠는가.
-어수웅 문화부장, 조선일보(22-11-25)-
______________
‘K클래식’ 열풍 이끈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美 줄리아드 등 해외와 경쟁하려면 대학원 설치해 인력 유출 막아야”
한 학생 연주에 모든 교수 달라붙어 의견 적은 평가서 책 한권 분량…

2022년 9월 21일 서울 성북구 석관동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실에서 김대진 총장이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지호 기자
지난 21일 서울 석관동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캠퍼스 곳곳에는 개교 30주년을 알리는 플래카드와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예술이, 다!’라는 짧은 문장 사이에 쉼표가 들어간 개교 자축 슬로건이 조금은 독특했다. 피아니스트 김대진(60) 한예종 총장은 “전 교직원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모를 통해서 선정한 문구”라며 “‘예술은 모든 것’과 ‘모든 학생과 교정(校庭)이 예술이자 무대’라는 중의적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한예종은 학교 직제가 확정된 1992년 10월 30일을 개교 기념일로 삼고 있다.
자부심 넘치는 이 슬로건처럼 예술 전문 교육기관을 표방하는 한예종은 지난 30년간 한국 문화 예술계에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당장 올해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 기록을 작성한 피아니스트 임윤찬(18)도 현재 이 학교 2학년생이다. 김 총장은 개교 직후인 1994년 이 학교 교수로 부임한 뒤 한예종의 역사를 직접 만들고 지켜보았던 ‘산증인’이다.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는 개교 30주년 준비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했다.
-개교 30주년을 앞두고 학교에서 준비 중인 일은.
“우선 석관동 캠퍼스에서 교수와 학생들이 무대에 서는 공연장의 이름을 지난 2월 별세한 이어령(1934~2022) 초대 문화부 장관의 이름을 따서 ‘이어령 예술극장’으로 명명하기로 했다. 현재 서초동 캠퍼스의 공연장은 초대 총장을 지내신 음악학자 이강숙(1936~2020) 선생님의 이름을 따서 ‘이강숙홀’로 부르고 있다. 꼭 우리 학교가 아니더라도 전 세계 공연장에는 예술가들의 혼이 어려 있다고 믿는다. 두 예술 선각자의 정신이 우리 학교에 살아 숨 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어령 장관과 한예종의 인연은.
“한예종 설립을 위한 설치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던 1991년 12월 19일 당시 주무 장관이 이어령 선생님이셨다. 이날 개각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15분간 논의됐던 안건이 바로 한예종 설립안이었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설치령을 심의·의결하면서 학교 설립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다. 그래서 생전에 이 장관께서는 한예종 학생들을 ‘15분의 아이들’이라고 부르셨다.”
-개교 당시부터 예술 전문 교육기관을 표방했는데 처음부터 순항했나.
“천만의 소리다. 처음엔 더부살이 신세라서 공간을 전전하기 바빴다. 이듬해 문을 열었던 한예종 음악원은 별도 건물이 없어서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5층과 음악당 2층에 강의실과 연습실을 만들었고 교수실은 지하 구석 귀퉁이에 있었다. 비만 오면 복도에서 물이 새는 바람에 양동이로 받아서 내다 버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연극원도 장충동 국립극장 별관에 더부살이했다.”

서울 석관동 한국예술종합학교 캠퍼스에는 지난 2월 타계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이름을 딴 ‘이어령 예술극장’이 들어선다. /김지호 기자
-빗물 내다 버리는 것도 직접 했나.
“어쩔 수 없었다. 내 방이 양동이 바로 앞에 있어서(웃음).”
-처음부터 한예종 교수로 들어올 생각이었나.
“지금 와서 솔직히 말하면 아니었다. 미 뉴욕 맨해튼 음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국내 대학에 두 번 지원했는데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낙담하던 참에 이강숙 총장님을 만났는데 그 자리에서 영입 제안을 받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당장 마음을 정하라’고 강하게 몰아붙이시길래 두려움 반, 설렘 반 심정으로 고민 끝에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한예종만의 독특한 교육 방식이 있었다면.
“정명화(첼로), 김남윤(바이올린), 강충모(피아노)처럼 개교 초기부터 합류한 스타 교수들의 열정도 놀라웠지만, 현실적으로도 신생 학교이기 때문에 절박한 마음이 컸다. 당장 택시를 타도, 출국 심사를 받을 때도 한예종은 아무도 몰랐으니까. 우리 내부에서도 학교인지, 학원인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적지 않았다. 의문과 혼돈의 시기가 꽤 오랫동안 있었던 셈이다. 이 때문에 학기 말 실기 시험이나 국내외 콩쿠르 등 중요한 일정이나 행사가 있으면 모든 교수님이 달라붙어서 학생들의 연주를 함께 듣고 평가하는 풍토가 일찍부터 마련됐다.”
-사제(師弟) 계보를 엄격하게 따지는 예술 교육에서는 파격적인데.
“학기가 끝날 때마다 교수들이 모든 학생의 연주를 일일이 듣고서 의견을 적은 평가서들이 책 한 권 두께가 될 만큼 쌓였다. 피아노 전공 교수들은 매년 담당 학생들을 바꿔가며 가르치기도 했다. 예술적 정체성이 확립되기 이전의 어린 학생들에게 자칫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일대일 전담 수업 방식으로 돌아가기는 했지만, 그만큼 파격과 혁신적인 교육법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한예종 이름이 널리 알려진 계기가 있다면.
“피아니스트 손열음(36)이 2000년 독일 에틀링겐 청소년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중국 피아니스트 랑랑이 1994년 우승한 대회로 유명하다. 한예종이 세계 무대에서 거둔 첫 번째 성과였던 것 같다.”
-손열음뿐 아니라 피아니스트 김선욱·문지영·박재홍까지 제자들을 연이어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시킨 스승으로 유명한데.
“그 아이들은 설령 내가 아니었더라도 원래 크게 될 인물들이었다. 그만큼 모두 어릴 적부터 음악적 재주가 넘쳤고 개성이 분명했다. 스승이 제자들을 고른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스승을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지나친 겸양 아닐까.
“오히려 콩쿠르나 독주회, 협연 같은 굵직한 무대에 서기 전에 학교에서 충분히 ‘평가전’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교수님들이 모두 참관하는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야말로 한예종의 성장 비결이 아닐까 싶다. 음악·무용·연기 등 예술가들은 언제나 무대나 카메라 앞에 서야 하는 존재들이다. 평소 가지고 있던 끼와 재능을 맘껏 발휘하려면, 크든 작든 꾸준하게 무대에 서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개교 30주년을 맞아서 학교의 변화나 발전을 실감하는가.
“흔히 30년을 한 세대라고 부르는데, 한예종에서 공부했던 학교 출신들이 다시 교수로 부임해서 후배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볼 때 세대 변화를 느낀다. 임윤찬의 스승인 피아니스트 손민수뿐 아니라 배우 오만석, 극작가 배삼식, 현대무용가 신창호와 발레리나 조주현 같은 교수들이 모두 한예종 출신이다. 한예종 2세대 교수들이 이제부터 성과를 낼 것으로 본다.”
-한예종의 향후 과제는.
“현재 연극원·영상원·미술원·전통예술원은 서울 강북의 석관동 캠퍼스, 음악원·무용원은 강남 서초동 캠퍼스로 ‘두 집 살이’를 하고 있다. ‘장르 사이 칸막이와 경계를 없애고 예술의 작은 왕국을 만들라’고 당부하셨던 이어령 장관의 생전 말씀에 비춰 보면 중장기적으로는 통합 학교 부지가 절실하다. 음악원 학생들이 영상원의 단편영화에서 자연스럽게 작곡과 연주를 맡고, 연기·무용·미술이 어우러지는 종합 예술극을 만드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예종 개교 초기에 합류한 ‘원년 멤버’이자 총장으로서 꿈이 있다면.
“생전에 이강숙 초대 총장께서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던 것이 ‘해외 유학 갈 필요가 없는 학교’였다. 이 말씀을 이어받아서 ‘해외에서 유학을 오는 학교’를 만드는 것이 마지막 꿈이다. 현재 공연 예술 부문 세계 대학 평가에서 한예종은 40위권이다. 이 순위를 끌어올려서 미국 뉴욕 줄리아드나 영국 왕립음악학교, 오스트리아 빈 음대와 견줄 수 있는 명문 학교로 만들고 싶다.”
-지나치게 원대한 포부는 아닐까.
“30년 전 한예종이 문을 열었을 때 해외 유학 경험 없는 10~20대 국내파 학생들이 세계 유수 대회에서 정상에 오를 것이라고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다. 흔히 삶에서 중요한 건 속도보다 방향이라고 하는데, 학교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현재 한예종은 학사 과정은 정식 학위를 인정받고 있지만, 고등교육법상 대학원 석·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수한 학생들을 받아서 4년간 가르쳐 놓고도 이들이 학업을 계속하려면 해외 유학을 가거나 국내 다른 대학에 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다른 대학에서는 한예종의 독식(獨食) 현상이 가속화할 것이라고 우려하는데
“학생 숫자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인문학이나 예술 분야의 위기감 고조에 대해서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 우리 학교 역시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우선 지역 소재 국공립 대학들과 학점 교류·교환 학생 제도를 도입하고 장기적으로는 협동 과정 운영, 교수와 강사 교류도 추진해야 한다. 예술 교육이 위기라면 모든 학교가 공동 대응해야지 각개격파당해서는 안 된다.”
☞김대진
1962년 서울 출생. 대학 입학 이전인 1979년부터 국내 콩쿠르를 석권하면서 일찍부터 영재 피아니스트로 주목받았다. 1981년 입학한 서울대 음대 동기가 소프라노 조수미·작곡가 진은숙이다. 대학 재학 중에 도미(渡美), 미 줄리아드 음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 맨해튼 음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1994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부임했다. 손열음(차이콥스키·반 클라이번 콩쿠르 2위), 김선욱(리즈 콩쿠르 1위), 문지영·박재홍(부조니 콩쿠르 1위) 등 수많은 스타 피아니스트를 길러냈다. 별명은 ‘콩쿠르 우승 제조기’ ‘피아노의 명조련사’ ‘악마 쌤(선생님)’.
-김성현 기자, 조선일보(22-10-03)-
______________
콩쿠르 강국의 이면
한국은 보릿고개로 배곯을 때도 국제 콩쿠르 정상을 꿈꾸던 나라다. 전흔이 채 가시지 않은 1954년 당시 배재중학교 학생이던 13세 소년 피아니스트 한동일도 큰 꿈을 품고 미국 줄리아드 유학길에 올랐다. 11년 뒤 레벤트리트 콩쿠르 정상에 오르며 한국인 첫 국제 콩쿠르 우승자가 됐다. 1974년엔 피아니스트 정명훈이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를 차지했다. 우승이나 다름없는 쾌거에 온 나라가 들썩였다. 공항에서 서울시청까지 카퍼레이드가 펼쳐졌고, 수만명이 쏟아져나와 태극기를 흔들었다.

▶두 사람은 해외 유학파다. 한국에는 따를 거장도, 체계적인 교육도 없던 시절이니 유학밖에 선택할 길이 없었다. 신수정·강충모·김대진 등이 유학에서 돌아와 후진을 양성하며 변화가 시작됐다. 국내파 김선욱이 2006년 영국 리즈 콩쿠르 정상에 섰다. 2015년 부조니 콩쿠르 우승자 문지영도 유학 경험 없는 국내파다.
▶세계 음악인들은 이들을 탄생시킨 한국식 엘리트 발굴·육성 시스템을 주목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음악 신동을 찾아내고 금호영재콘서트는 해마다 청소년 수십명을 무대에 올려 공연 경험을 쌓게 한다. 이후 한화 교향악 축제나 서울시향, 코리안심포니 등을 통해 협연자로 데뷔시킨다. 개인의 노력과 재능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클래식 선진국들과 다른 방식이다. 세계적인 콩쿠르 결선에 한국 출신이 미국·러시아 출신을 앞지르면서 ‘K클래식 전성시대’라는 말도 나온다.
▶한예종 재학생인 임윤찬이 그제 미국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한국식 영재교육의 경쟁력을 다시금 입증한 쾌거란 반응이다. 하지만 수상 소식을 전하는 기사에 이런 댓글도 붙었다. ‘콩쿠르에서 입상한 많은 연주자가 왜 30대 후반 40대 넘어가면서 무대에서 사라지는가’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한 젊은 연주자들이 잠시 반짝하곤 점점 보고 들을 수 없어 안타깝다.’
▶손흥민이 영국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 됐다고 한국 축구도 프리미어급(級)이 되는 것은 아니다. 축구팬이 축구장 찾듯, 연주회를 찾아가는 음악 향유층이 두꺼워야 전업 연주자가 실력을 연마하고 무대에 설 힘도 얻는다. 국제 콩쿠르 출신 신예 일부는 본업인 피아노를 밀쳐두고 부업에 내몰리기도 한다. 세계 정상급 악단이 일본에선 한 달씩 머무는데 한국을 외면하는 이유도 우리 시장이 작기 때문이라 한다. 클래식 공연 기획사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지만 선진국 수준에는 여전히 못 미친다. 임윤찬의 수상을 축하하며, 한국 클래식이 더 풍성해지길 기대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2-06-21)-
_______________
영재 많은 K클래식… ‘조기발굴→다양한 경연’ 시스템의 힘
세계 콩쿠르계 한국인 열풍 왜?
올해 세계 주요 음악 콩쿠르, 한국인들이 우승 퍼레이드
동아음악콩쿠르 등 경연 통해 큰 무대에 강한 실전 경험 쌓아
기업들이 스타배출 지원 앞장… 벨기에 방송 등 다큐영화 제작
《“제16회 밴 클라이번 콩쿠르 금메달은 임윤찬에게 돌아갔습니다.” 18일(현지 시간)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의 베이스 공연장. 심사위원장 겸 결선 반주 지휘자 마린 올솝의 선언에 청중 전원은 순간 일제히 일어나 힘찬 환호를 보냈다. 5월 29일 핀란드 헬싱키 시벨리우스 콩쿠르, 이달 5일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우승자는 모두 한국인이었다. 시벨리우스 콩쿠르 1위는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에게,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은 첼리스트 최하영에게 돌아갔다. 세계 음악계에서 한국인의 콩쿠르 정복 소식은 이제 놀랍지 않다. 지난해 5월 피아니스트 김수연이 캐나다 몬트리올 국제콩쿠르 1위에 올랐고, 체코 프라하의 봄 국제콩쿠르에서는 현악4중주단 아레테 콰르텟과 피아니스트 이동하가 해당 부문 정상에 올랐다.》

6월에는 바리톤 김기훈이 BBC 카디프 싱어 오브 더 월드에서 대상에 해당하는 아리아 부문 우승을 차지했다. 9월 이탈리아 볼차노에서 열린 부소니 국제 피아노콩쿠르에서는 박재홍과 김도현이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다. 12월에는 피아니스트 이혁과 서형민이 각각 프랑스 아니마토 국제콩쿠르와 독일 본 베토벤 국제콩쿠르의 정상에 올랐다.
○ “연이은 한국인 우승자, 비결은?”
2005년 폴란드 쇼팽 콩쿠르에서 임동민, 동혁 형제가 공동 3위를 차지한 데 이어 2015년 조성진의 우승은 ‘클래식 한류’의 본격적 물결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같은 해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바이올린 부문에서는 임지영이 우승을 차지했다. 이에 앞서 러시아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에서는 2011년 여자 성악 부문 서선영, 남자 성악 부문 박종민이 나란히 우승했다.
이런 한국 음악도들의 맹활약은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돼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세계 영화 팬과 음악 팬의 뇌리에 각인됐다. 벨기에 공영방송 RTBF의 음악 저널리스트 티에리 로로가 감독을 맡은 2012년 다큐멘터리 ‘세계가 놀란 한국 음악 영재들’과 2021년 제작된 ‘K클래식 세대’는 음악 영재를 조기 발굴해 혹독한 조련으로 키워내는 한국의 시스템에 주목했다. 두 다큐멘터리는 연주자들과 가족 등 주변 인물들을 통해 한국의 음악 영재들이 얼마나 성취에 열성을 다하는지 그려냈다.
○ 영재를 조기 발굴하는 사회적 시스템
로로 감독이 각종 콩쿠르에서 한국인이 거둔 성과의 비밀로 꼽은 ‘시스템’은 무엇일까. 음악계 관계자들은 한국의 치열한 영재 검증 및 발굴 시스템과 풍부한 무대 경험 기회를 비결로 꼽는다. 2018년 동아음악콩쿠르 경연 현장을 방문한 플로리안 림 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 사무총장(당시 통영국제음악재단 대표)은 “동아음악콩쿠르로 대표되는 한국의 다양하고 발달된 경연 시스템을 거치면서 준비된 예술 영재들이 탄생한다”고 말했다.
금호문화재단의 영재 육성 프로그램도 한국인 콩쿠르 스타 배출의 중요한 밑거름으로 꼽힌다. 최근 유수의 국제콩쿠르를 정복한 임윤찬, 양인모, 최하영, 박재홍, 김수연 등 기악 연주자들은 예외 없이 금호영재 출신이다.
금호문화재단은 1998년부터 14세 이하의 음악 영재에게 무대를 제공하는 금호영재 콘서트를, 1999년부터는 15∼25세 음악가를 위한 금호영아티스트 콘서트 시리즈를 열고 있다. 이를 통해 음악 영재들은 큰 무대에서 흔들리지 않는 실전 경험을 쌓는다. 어려서 발굴된 음악 영재 중 많은 수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원이나 예원학교, 서울예고, 한국예술종합학교 본교로 이어지는 정예 코스를 밟는다. 해외 음악가들도 음악원에서 기량을 닦지만 한국의 경우 소수 학교에 영재들이 집중되기에 경쟁의 긴장도는 한층 치열하다. 재능 있는 영재들이 스스로를 더 강하게 담금질하는 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해외 콩쿠르를 노리는 연주가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늘어나야 한다는 진단도 나온다. 중국은 중앙정부와 성(省) 차원에서 국제콩쿠르 진출자에 대한 지원을 펼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경우 대기업을 중심으로 관련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현대자동차 정몽구재단은 2011년부터 문화예술 인재에게 장학금과 해외 진출 등을 지원하는 ‘온드림 문화예술 인재’ 사업을 실시하고 있으며 국제콩쿠르 지원자에게 연 1회 250만 원 한도의 경비를 지원한다. 올해 밴 클라이번 금메달리스트 임윤찬과 지난해 에네스쿠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한 첼리스트 한재민이 이 재단 장학생 출신이다.
한국메세나협회도 올해부터 국제음악콩쿠르 출전 지원 사업을 펼친다. 매년 5명 이내의 연주자에게 1인당 300만 원의 콩쿠르 출전 비용을 지원한다. 밴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인디애나폴리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및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 퀸 엘리자베스 국제콩쿠르의 피아노·바이올린 본선 진출자가 대상이다.
LG는 ‘K클래식의 수도’ 서울에서 열리는 유일한 국제음악콩쿠르인 ‘LG와 함께하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를 2007년부터 협찬해 오고 있다. 한국인으로는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2009년), 테너 김범진(2013년), 피아니스트 한지호(2014년), 바리톤 김기훈(2016년), 피아니스트 신창용(2017년), 바이올리니스트 김동현(2018년) 등 국내외에서 맹활약 중인 신예들을 세계무대에 소개해 왔다.
○ 왜 콩쿠르에 더욱 주목하나
예술가들이 기량을 겨루는 경연은 고대 그리스부터 존재했다. 근대의 대표 음악 경연으로는 연주가가 아닌 작곡가들을 대상으로 한 프랑스의 ‘로마대상’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콩쿠르는 현대의 산물이다. 가장 높은 권위를 자랑하는 쇼팽 콩쿠르가 1927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1937년,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1958년 각각 창립됐다.
이유는 오늘날 연주가들의 연주 영역과 영향 범위가 이전과 달라진 데 있다. 19세기 중후반까지 연주가들은 국가와 지역에 속한 존재였다. 전 유럽에서 명성을 떨치는 연주가들도 자신의 도시에서 명성을 쌓은 뒤 그 명성을 이용했다. 1900년대 음반 산업의 대중화와 1920년대 라디오의 보급으로 이 같은 환경은 변화를 겪었다. 연주가들은 전 세계를 다녔고 유명 연주가들의 연주는 세계인이 청취했다. 객관적 공정성을 보장하는 경연이 필요했다.
오늘날 콩쿠르는 경연을 통한 등위 산정만이 목적이 아니다. 세계의 음악 매니지먼트 매니저와 공연장 감독들이 주목할 만한 새 얼굴을 기다리는 음악 산업계 신진 발굴의 장이다. ‘LG와 함께하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의 경우 세계 유명 연주가와 음악 교수뿐 아니라 각국 주요 극장장, 알랭 랑스롱 워너클래식 사장을 비롯한 대형 음반사 최고경영자(CEO) 등이 심사위원으로 참석해 미래 유망주를 꼼꼼히 가려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동아일보(22-06-21)-
============================
'[세상돌아가는 이야기.. ] > [國內-이런저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고1 男 173cm, 女 161cm… 미국만큼 큰 키] .... (0) | 2026.05.01 |
|---|---|
| ['마담뚜'는 없다, 서초동 로맨스] .... [아듀 司試] (0) | 2026.04.30 |
| [감 놔라 배 놔라] [기막힌 우연과 놀라운 능력] (0) | 2026.04.29 |
| [구두 대신 운동화 신는 승무원] [승무원들에게 'VIP'는.. ] (1) | 2026.04.25 |
| [‘인생샷’ 찍으려다 전투기 접촉사고] .... (0) | 2026.04.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