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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뚜'는 없다, 서초동 로맨스] .... [아듀 司試]

뚝섬 2026. 4. 30. 09:58

['마담뚜'는 없다, 서초동 로맨스] 

[변시 5번 떨어진 ‘오탈자’ 2000명 시대]

[아듀 司試]

 

 

 

'마담뚜'는 없다, 서초동 로맨스 

 

매일 서초동 법조타운으로 출근하는 어쏘 변호사(법무법인에 고용되어 월급을 받는 변호사) 5인방의 희로애락을 그린 드라마 '서초동' /스포츠조선

 

“얼굴이 맘에 들어서 골랐어요.” 후배 변호사의 청첩 모임에 초대를 받았다. 예비 신랑의 어디가 마음에 들었냐고 물었더니, 끝내주게 명쾌한 답이 돌아온다. 직업은 같은 변호사? 검사? 판사? 어느 쪽도 아니다. 프리랜서 골프 코치라고 한다. 솔직히 돈은 못 벌지만, 피지컬과 비주얼이 보기만 해도 흐뭇하단다. “제가 능력 있으니까 평생 먹여 살릴 수 있어요. 남자 친구가 요리도 살림도 잘해요.”

 

넘치는 자신감이 보기 좋았다. 남들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자신이 원하는 형태의 삶을, 원하는 방식으로 설계해 나가는, 당당한 MZ세대다운 모습이었다.

 

시대가 변하면서, 법조인들의 결혼문화도 변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만 해도, 소위 ‘마담뚜’들이 웃돈을 주고 졸업앨범을 사 간다는 소문이 돌았다. 졸업앨범을 펴놓고 중매 상대를 고른다는 것이다. 검찰에 임관하고 나서는 이들의 치맛바람이 더 극성스럽게 불었다. 어떤 남자 검사는 대뜸 모르는 번호로 전화를 받았는데, “재벌가 사위로 만들어주겠다”며 몸만 오라고 권유했단다. “저 결혼할 여자친구가 있는데요”라고 얘기했더니, “식장 들어가기 전에는 모르는 거다, 일단 선은 한번 보라”며 강권했다나 뭐라나.

 

과거 법조인들의 연애 루트는 뻔했다. 같은 대학 선후배나 동기, 연수원 선후배나 동기, 아니면 같은 전문직이나 대기업 사원. 학력과 경제적 기반이 어느 정도 갖춰진 상대를 만나 안정된 가정을 꾸리는 것을 추구했다. 특히 법조인들은 같은 직역에서 결혼 상대를 찾는 경우가 많은데, 조건 문제도 그렇지만 서로 소통하기가 편한 부분도 크다. 2년마다 불시에 지방 발령을 받아 이사를 다녀야 하는 검사 일이나, 새벽 3시에 의뢰인 전화를 받고 유치장으로 달려가야 하는 변호사 일, 갑자기 포털 메인에 실명이 떡하니 뜨거나 기자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오는 판사 일을 누가 전적으로 이해하고 포용해줄까? 같은 직업이 수월하다.

 

그러나 요즘은 다르다. 법조계 초년생들은 더는 마담뚜를 찾지 않는다. 결혼 의사가 있으면 결혼정보회사를 찾기도 한다. 비혼을 염두에 두고 연애를 즐기는 경우도 많은데, 러닝 크루나 독서 모임 활동을 하거나, 솔로 파티에 나가거나, SNS에서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직접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몇 년 전 처음으로 유명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변호사가 나왔을 때는 법조인들 사이에서 큰 화제였다. 무슨 변호사가 저렇게 잘생겼냐부터 시작해 로펌 이미지에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 품위 문제가 있냐 없냐 등 시끄러웠는데, 지금은 그런 얘기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각종 프로그램에서 변호사 출연자가 의사 출연자만큼이나 흔해졌기 때문이다.

 

사법고시, 임관, 뒷바라지, 인생 역전, 열쇠 세 개. 이런 표현들은 고리타분해졌다. MZ세대가 주축이 된 서초동 로맨스는 그보다 훨씬 인간적이고, 다채로우며, 또 능동적이다. 이들은 더 이상 결혼을 ‘가문의 결합’, ‘신분 인수·합병’으로 여기지 않는다. 나와 같은 시선과 가치관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갈 파트너십으로 해석한다. 가문이나 연봉뿐만 아니라 외모, 성격, 취미, 자기관리, 자녀 계획 등을 고려해 파트너를 선택한다. 자신의 행복을 최우선에 둔다. 10년 전, ‘어떻게 집도 한 채 못 받고 시집 가느냐’라는 면박을 들어본 사람으로서, 이러한 변화를 두 손 들어 환영한다. 서초동의 봄은 아름답지만 짧다. 부디 찬란하게 누리기를.

 

-서아람 변호사·前 검사, 조선일보(26-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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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시 5번 떨어진 ‘오탈자’ 2000명 시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졸업생에게 주어진 변호사시험 응시 기회는 최대 5차례다. 예외는 없다. 이 시험에서 모두 탈락한 이들은 ‘오탈자(五脫者)’로 불린다. 올해 변시 결과가 나오면 로스쿨 도입 이후 오탈자 수는 총 2000명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변호사 자격을 얻을 방법은 없다. 변호사가 되려고 로스쿨 3년에 변시 준비 5년을 합쳐 8년을 써버린 터라 다른 직장을 찾는 것도 여의치 않다. 이들은 ‘변시 낭인’으로 불린다.

전국 25개 로스쿨 중에는 법철학 같은 기본 법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아예 한 명도 없는 곳도 있다. 변시에 출제되지 않는 과목은 강의를 개설하더라도 수강생이 없고 괜히 ‘왜 이런 과목을 들어야 하느냐’는 불만을 사기 십상이다. 반면 변시와 직결되는 형사소송법연습 같은 과목은 수강생이 넘쳐난다. 로스쿨 교수들 사이에선 “학교가 변시 학원이 됐다”는 푸념마저 나온다. 변시 합격률이 낮아지면서 이런 현상이 더 심해졌다고 한다. 2012년 1회 시험에서 87.2%였던 변시 합격률은 2016년 이후에는 50% 안팎 수준으로 떨어졌다.

▷로스쿨이 처음 문을 연 2009년에 비해 지금 변호사 숫자는 3배 이상으로 늘었다. 그만큼 시민들이 법률서비스에 접근하기 쉬워졌고 변호사 비용은 낮아졌다는 점이 로스쿨 제도의 대표적 성과다. 하지만 로스쿨 제도가 사법시험에 매달리던 시절의 낭비를 막고, 시험 위주의 법학 교육을 정상화시켰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이 문제의 원인과 해법을 바라보는 로스쿨 측과 변호사 업계의 시각은 전혀 다르다.

 

▷로스쿨 측에선 변시 합격률을 80% 선으로 높이면 해결될 문제라고 본다. 그러면 변시 낭인이 줄고, 다양한 법학 교육이 가능해지며, 합격률이 90% 이상인 의사 국가시험 등과의 형평성도 맞게 된다는 것이다. 더 늘어나는 변호사는 기업이나 공공기관 등에서 흡수할 수 있다는 게 로스쿨 측의 주장이다. 반면 변호사 업계에선 로스쿨 정원을 축소하고 변시 합격자를 더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법률서비스 시장이 이미 포화 상태인 데다 인공지능(AI)이 저연차 변호사들의 업무를 빠르게 대체하는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변호사 숫자가 더 늘어나면 경쟁 과열로 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고 업계에선 우려한다.

▷적정한 변호사 규모와 변시 합격률을 둘러싼 논쟁은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로스쿨 측과 변호사 업계는 각자의 입장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으며 평행선을 달릴 뿐이다. 양측이 밥그릇 싸움에서 벗어나 17년 전 왜 로스쿨을 도입했는지 초심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로스쿨법에 적힌 것처럼 “국민의 다양한 기대와 요청에 부응하는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목표는 없다.


-장택동 논설위원, 동아일보(26-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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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司試

 

유치장의 문재인에게 경찰서장이 소주파티 열어준 사연

 

누구에게나 인생의 전기(轉機)가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겐 1975년 사시 합격이 그랬다. 그해 고시계 7월호에 합격기를 직접 썼다. '고교 졸업 후 마을 산기슭에 토담집 짓고 공부했다… 법률 서적 살 돈이 없어 공사장에서 막노동하다 이빨 3개가 부러졌다.' 그랬으니 합격 소식 들은 날 얼마나 기뻤을까. 부인 권양숙 여사는 남편 무릎에 얼굴 파묻고 엉엉 울었다고 한다. 둘이 연애결혼해 막 2년이 지났을 때였다. 권 여사는 "인생에서 가장 기쁜 날이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생 바꿀 기회로 택한 것도 사시였다. 1978년 제대했지만 학생운동하다 구속됐던 전력 탓에 복학도 취직도 되지 않을 때 부친이 세상을 떠났다. 그때 '늦게나마 잘되는 모습 보여 드리고 싶어 사시 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전남 해남 대흥사로 들어갔다. 복학한 뒤 1980년 시위에 나섰다 체포돼 경찰서 유치장에서 합격 소식을 들었다. 경찰서장은 면회 온 학생처장과 법대 동창회장을 유치장 안으로 들여보내 조촐한 소주 파티를 열게 해줬다. 그때 사시 합격자는 그런 대우를 받았다.

▶사시는 그야말로 용이 되는 문(登龍門) 같았다. 시골에서 사시 합격자가 나오면 돼지 잡아 잔치했고, 지역 기관장들은 부모에게 인사를 왔다. 사법연수원 들어가면 '마담뚜'들의 타깃이 됐다. 집안이 가난한 이들이 특히 공략 대상이었다. 마담뚜들이 '개룡'(개천에서 난 용)들에게 신부 지참금으로 빌딩 한 채 또는 현금 10억원을 제의했다는 소문이 돌 때도 있었다. 2001년 사시 합격자 '1000명 시대'가 열리면서 인기가 좀 시들해졌지만 그래도 사시 합격의 무게는 여전하다.

▶여러 화제 인물도 낳았다. 1996년 막노동하며 서울대 인문계 수석으로 들어가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란 책을 펴낸 장승수씨는 2003년 사시에 합격했다. 사람들은 그를 '대한민국 마지막 개룡'이라고 했다. 2008년엔 음성으로 변환한 법전으로 공부한 최영씨가 시각장애인으론 처음 합격했다. 3년 전엔 수퍼 모델 출신 이진영씨가 합격했다.

▶사시는 성공의 사다리 역할도 했지만 '고시 낭인'을 양산하는 문제도 낳았다. 결국 2007년 로스쿨 도입이 결정돼 올해를 끝으로 폐지된다. 21일 마지막 사시 2차 시험이 연세대에서 치러졌다. 1950년 고등고시 사법과를 출발로 보면 67년 만이다. 어제 한 신문엔 시험장 앞에 쪼그려 앉아 마흔두 살 아들의 시험장을 바라보는 칠순 어머니 사진이 실렸다. 아들은 어머니 식당 일 도우며 어렵게 공부했다고 한다. 그가 마지막 사다리를 탔으면 한다.

-최원규 논설위원, 조선일보(17-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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