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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부모까지 제사… 조선시대에도 명시된 적 없다”] ....

뚝섬 2023. 2. 3. 10:09

[“고조부모까지 제사… 조선시대에도 명시된 적 없다”]

[朱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거국적 동원체제의 부활]

 

 

 

“고조부모까지 제사… 조선시대에도 명시된 적 없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남자의 결혼 적령기는 16세, 여자는 14세이다. 조선시대만 해도 조혼(早婚)이 성행하고 대가족으로 모여 살았기 때문에 조혼한 부모가 낳은 아이를 기준으로 보면 인생 육십일 때 조부모뿐만 아니라 증조부모까지 함께 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사람에 따라서는 80, 90세 이상 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경우 고조부모하고도 같이 살았다는 얘기다. 그래서 넉넉잡아 기억에 남아 있을 수 있는 고조부모까지 제사를 지냈다. 그것이 4대 봉사(奉祀).

▷한국국학진흥원은 1일 ‘제례문화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라는 자료를 내고 조선시대에 4대 봉사가 원칙으로 명시된 적이 없다고 밝혔다. 1484년 성종 때 편찬된 법전인 경국대전에 따르면 “6품 이상의 관료는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3대까지 제사를 지내고, 7품 이하는 2대까지, 벼슬이 없는 평민은 부모 제사만을 지낸다”고만 명시돼 있다. 다만 이후로 ‘주자가례’를 신봉하는 주자학이 득세하면서 고조부모까지 제사를 지내는 4대 봉사가 양반집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평민이 4대 봉사를 지키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올수록 신분 질서가 무너지고 결정적으로 구한말 갑오경장에 의해 양반과 평민의 구분이 없어지자 양반의 평민화가 이뤄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평민의 양반화가 이뤄져 모두가 4대 봉사를 원칙으로 삼게 됐다. 실제 지키건 안 지키건 그랬다는 말이다. 가난한 집에 시도때도 없이 돌아오는 제삿날을 간소화한 것은 뜻밖에도 일제였다. 일제는 가정의례준칙을 둬 2대 봉사를 강제했다.

 

유교의 본산인 성균관은 광복 후 4대 봉사의 원칙을 재확인했다. 물론 그것을 엄격히 따를 수 있는 일반 가정은 얼마 되지 않았다. 많은 가정이 조부모까지만 제사를 지내거나 나중에는 그것도 어려워 부모 제사만 지내게 됐다. 성균관도 결국은 타협해 명절이나 부모 제사 때 4대까지 한꺼번에 모시는 간략한 방안을 제시했다. 그런데 이번에 국학진흥원에서 4대 봉사의 원칙 자체를 부정하고 나온 것이다.

▷국학진흥원은 “조혼 습속이 사라진 오늘날 고조부모 제사상을 차리는 건 시대착오적”이라고 강조했다. 과거에는 조혼 때문에 3대나 4대가 함께 살았지만 지금은 고령화(高齡化)로 3대가 공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수명 100세 시대가 되면 4대가 공존하는 것도 드물지 않아질 것이다. 그때의 예법은 또 어떨 것인가. 제사란 살아 있을 때 생활을 같이 하거나 따로 살아도 왕래하면서 쌓인 친밀감을 토대로 한다. 봉사는 몇 대가 맞느냐를 따지기보다는 기억에 남아 있는 조상을 추모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동아일보(23-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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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박정훈 칼럼]

중화 세계관에 빠진 朱子의 후예들
중국서도 오래전 죽어 사라진 주자가 한국 좌파 진영에선 펄펄 살아 날뛰니 기가 막힌 일이다

 

2017년 12월 중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베이징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문대통령은 3박4일간 10끼중 8끼 일정을 우리측 인사들과 가져 '혼밥' 논란을 빚었다./조선DB

 

유교의 본산 성균관이 추석 발표한 차례상 가이드 라인을 보고 배신감을 느꼈다는 사람이 많았다. 성균관은 상차림이 9가지를 넘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전도 부치지 말라고 했다. 산적·나물·포·탕에서 배·사과·대추며 송편·약과까지 5열 횡대로 상을 꽉 채워야 예의인 줄 알았던 사람들로선 “왜 이제야...” 하는 생각일 것이다. 그동안 우린 무엇 때문에 ‘조율이시’ ‘홍동백서’ ‘좌포우혜’ 같은 영문 모를 규칙에 시달려야 했나. 명절 때마다 전 부치느라 허리 휘었던 어머니들과 며느리들의 고생은 무엇이었단 말인가.

 

성균관 설명대로 유교 예서(禮書) 어디에도 차례상을 이렇게 차리라는 규정은 없다. ‘주자가례’엔 제철 과일과 술 한 잔 올리라는 것이 전부다. 간소하게 지내라는 유교 예법인데 양반들의 체면치레 과시욕에 편승해 상다리가 부러져야 직성 풀리는 한국형 허례허식으로 변질됐다. 유교 문화권에서도 사과가 동쪽이니, 배가 서쪽이니 따지는 나라는 우리뿐이다. 유독 한국에서만 유교식 교의가 합리성을 벗어나 형식적 도그마로 폭주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중문학자 김경일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가 벼락 같은 충격을 준 것이 1999년이었다. 유교 이데올로기가 망국을 부른다는 이 책은 IMF 환란의 참담한 상황 속에서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다. 신분 질서와 가부장제, 혈연·지연·학연 중시, 획일성, 여성 억압, 기득권 옹호 같은 유교적 가치가 국가 발전을 막는다는 것이었다. 중진국 함정에서 허덕이다 외환위기를 맞아야 했던 한국적 병폐에 대한 통렬한 고발이었다.

 

그러나 책의 주장엔 치명적 오류가 있었다. 동아시아 유교권 국가들이 고도성장을 이룬 사실과 모순된다는 점이었다. 한국·중국은 물론 ‘4룡’으로 불린 대만·싱가포르 등도 유교 전통을 기반으로 하는 나라다. 뜨거운 교육열과 근면·검약의 노동 윤리, 입신양명의 성취욕 같은 유교적 가치가 동아시아의 성공 토대가 됐음은 부인 못 할 사실이다.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서구 자본주의를 배태했듯이, 유교의 긍정적 효과를 주목하는 유교 자본주의론 하나의 발전 이론으로 인정받고 있다. “공자를 죽여야 한다”는 김경일의 거친 도발은 이 사실을 무시하고 있었다.

 

유교는 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실천적 학문이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로 표현되듯, 실세상에 써먹기 위한 자기 계발론이자 처세술, 정치 윤리에 가까웠다. 공자·맹자는 먹고사는 실용의 가치를 중시했다. 공자는 “먼저 백성을 부유하게 해주라” 했고, 맹자는 “물질이 있어야 마음도 생긴다”(無恒産無恒心)고 했다. 그랬던 유교가 관념론으로 흐른 것은 12세기 주자가 집대성한 성리학 때문이었다. 선불교·도교에 영향받은 주자가 우주론, 인간 본성론에 매달리면서 실천 윤리이던 유교를 형이상학적 철학 체계로 바꿔 놓았다.

 

중국에서 성리학은 유교의 분파에 불과했고, 16세기 이후엔 양명학에 밀려 퇴조했다. 그런데 조선에 전파되면서 모든 이설(異說) 말살하는 압도적인 지배 이데올로기가 됐다. 조선의 사림(士林) 정권은 성리학 극단주의에 빠져 정신 승리의 길을 치달렸다. 물적 생산을 천대하고, 실용적 변화에 문을 닫았으며, 이(理)냐 기(氣)냐의 관념 투쟁과 상복을 1년 입느냐, 3년 입느냐 같은 형식 논쟁으로 날밤을 새웠다. 중화 질서에 스스로를 종속시킨 것도 모자라 ‘소(小)중화’를 자처할 지경이었다. 성리학 원리주의가 조선을 망국으로 이끌었다. 그러니 공자가 아니라주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해야 옳았다.

 

환란 이후 한국 사회는 유교적 폐단에서 탈피하기 위한 많은 변화를 겪었다. 각 분야에서 개방화·민주화가 진전되고 가부장적 억압, 정실·연고 중시의 폐습이 확연히 줄었다. 세계에서 통하는 창의적 인재들이 속속 등장하고, 기업들은 혁신의 힘으로 약진하고 있다. ‘오징어 게임’과 BTS로 상징되는 K컬처의 성공은 한국을 유교적 획일성의 나라로 규정할 수 없음을 입증해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중국 중심의 사대적 세계관에 빠진 주자의 후예들이 있다. 중국 앞에선 한없이 작아지는 친중 좌파 집단이 그들이다.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로, 한국을 “작은 나라”로 지칭하며 중화 질서의 복원을 의미하는 ‘중국몽(夢)’에 동참하겠다던 전직 대통령이 있었다.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시진핑 발언에도 침묵하고, 현실 대신 이념의 성에 갇혀있는 자폐적 정치 세력이 지금 국회를 지배하고 있다.

 

그렇게 중국을 숭모하는 집단이 일본 얘기만 나오면토착왜구운운하며 깔보고 적개심을 감추지 않는다. 조선조 사림의 ‘소중화’ 의식과 다르지 않다. 중국에서도 죽은 지 오래인 주자가 한국의 좌파 진영에선 펄펄 살아 날뛰고 있으니 기가 막힌다.

 

-박정훈 논설실장, 조선일보(22-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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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국적 동원체제의 부활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국가 전역을 일컬을 때 요즘은 보통 전국(全國)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옛사람들의 표현은 그보다 더 다양했다. 성(城)으로 둘러싼 정치 권력의 소재지[朝]와 그 바깥 지역[野]을 통틀어 지칭했던 조야(朝野)가 우선 대표적이다.

 

경향(京鄕)이라는 말도 그렇다. 통치 권력이 자리를 튼 서울[京]과 시골[鄕]을 병렬해 ‘전국 모든 지역’을 가리킨다. 전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때론 경향각지(京鄕各地)로 적기도 했다. 대한민국 건국 주역인 이승만 대통령이 자주 썼던 말이다방방곡곡(坊坊曲曲)이라는 말도 예전에는 쓰임새가 많았다. 성 내부 민간 거주 지역 구획 단위였던 방(坊)과 그보다 외진 곳, 또는 작은 골목을 가리켰던 곡(曲)의 결합이다. ‘사람 사는 모든 곳’이라는 뜻이다.

 

거국(擧國)이라는 단어도 그와 같은 흐름이다. 앞의 거(擧)라는 글자 초기 꼴은 여러 사람의 손이 뭔가를 들어 올리는 모습이다. 그로써 ‘들다’라는 새김을 먼저 얻었지만, 여럿의 손이 모여 있어 ‘모두’라는 의미도 획득했다. 그런 맥락의 단어로는 거조(擧朝)가 있다. ‘조정(朝廷)의 모든 것’을 가리킨다. 거세(擧世)라는 말은 ‘온 세상’을 뜻한다. ‘거국이나거조 국가나 왕조의 힘을 모두 동원할 자주 쓰는 단어다. “거국적으로 대처하자”는 식으로 말이다.

 

중국 집권 공산당이 그런 ‘거국’의 수사를 다시 꺼냈다. 자신을 압박하는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신형거국체제(新型擧國體制)’라는 방침을 얼마 확정해 발표했다. 핵심 산업기술 영역에서 독자적인 기술개발에 나서겠다는 선언이다조야의 힘, 경향의 역량, 방방곡곡의 에너지를 끌어모아 미국에 총력전을 펼치겠다는 뜻이다. 미국 중심의 서방세계와 결별도 감수할 분위기다.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의 거국적 동원체제의 그늘로 회귀하는 중국의 거동(擧動)이 심상찮다.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조선일보(22-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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