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자유민주주의·남침’ 빠진 교과서, 이대로 놔둘 건가]
[“동북공정은 학술 문제”라는 중국의 거짓말]
‘건국·자유민주주의·남침’ 빠진 교과서, 이대로 놔둘 건가
[朝鮮칼럼]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들의 문화 지체가 심각하다. 허동현 경희대 교수의 최근 지적대로 그들은 아직도 낡은 수정주의에 집착하고 있다. 자칭 ‘진보 세력’의 시대착오와 현실 왜곡은 뿌리가 깊다. 일례로 1980년대 후반 한국 지식계를 휩쓸었던 사회 구성체 논쟁을 꼽을 수 있다. 당시 이 논쟁은 대한민국 체제 전복과 사회주의 혁명을 지향하는 소위 ‘민중·민주 세력’이 이끌었다. ‘반미 구국’ 투쟁이 급선무라 여겼던 민족 해방(NL) 세력은 당시 대한민국이 “식민지 반(半)봉건사회”라 외쳐댔고, 인민 해방을 표방했던 민중 민주(PD) 세력은 “신식민지 국가 독점 자본주의”라 우겨댔다.
돌이켜 보면 그 논쟁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김일성 주체사상을 끼워 맞춰서 한국 현실을 왜곡한 좌파 지식인들의 관념 유희였다. 현실을 분석하는 사회과학이 아니라 가상 현실의 이념적 판타지였다. 그들 주장과는 정반대로 당시 대한민국은 전 세계로 웅비하며 과학기술 혁신에 주력하던 민간 주도의 견실한 자본주의 독립국가였다.
구소련 붕괴 이후 그 허망한 논쟁은 일단 막을 내렸는데, 지성과 양심이 방심하는 사이 ‘어제의 용사들’이 한국의 역사학계를 점령한 듯하다. 아니라면 어떻게 한국사 교과서에서 건국, 자유민주주의, 남침을 언급조차 안 하는가? 이 세 용어는 한국 현대사의 키워드다. 영어권 대학의 거의 모든 교과서는 바로 그 세 용어를 강조해서 한국 현대사를 서술한다. 반면 한국의 교과서 편찬자들은 그 중요한 핵심어 사용을 극구 꺼린다. 학계의 좌편향이 빚어낸 개념적 혼란이다.
첫째,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들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의 성립이 건국이 아니라 정부 수립일 뿐이라 강변한다. 일부는 대한민국이 1919년 상해에서 이미 건국되었다는 비역사적 궤변을 펼친다. 상해임시정부는 국민·영토·주권을 확보하지 못한 이국 소재의 망명정부였으며, 총선거로 다수 국민의 승인을 얻는 합법적 절차도 거치지 못했다. 상식적으로 그러한 망명정부 수립은 그 자체로 건국이 아니라 건국 주비(籌備)의 제1보에 불과하다.
오늘날 중국에서 건국은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사건을 이른다. 1981년 중국 공산당은 ‘건국 이래 약간의 역사 문제에 관한 결의’를 발표했는데, 이때 건국 기점은 1949년 10월 1일이다. 바로 그날 국가의 3요소를 갖춘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졌기 때문이다. 중국 학자들은 모두 1949년 10월 1일을 건국의 국경일로 인정하는데, 한국 학자들은 왜 1948년 8월 15일 건국 사실을 부정하는가? 대한민국의 건국사가 수치스러운가?
둘째,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합이다. 자유주의는 보편적 인권, 국민의 기본권, 시장경제와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한다. 민주주의는 국민적 의사의 수렴 과정과 권력 창출의 민주적 절차를 밝힌 제도다. 자유 없는 민주주의는 소수를 억압하는 다수 독재, 개인을 말살하는 전체주의로 전락할 수 있다. 그 때문에 1948년 제헌 국회는 근대 입헌주의 전통에 따라 보편 인권과 국민의 기본권을 헌법에 명기했다. 대한민국의 건국 이념은 그냥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다. 양자의 차이를 강조하지 않고선 한국의 건국 과정을 정확하게 서술할 수 없다.
셋째, 6·25전쟁은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의 밀약에 따른 공산 전체주의 세력의 남침, 곧 대남 침략 전쟁이었다. 해방 공간으로 그 기원을 소급하는 수정주의 음모설은 구소련 비밀 문서 공개로 벌써 무너졌다. 제대로 된 교과서는 최신 논의까지 반영해서 정확한 지식을 전달해야만 한다. 6·25전쟁의 역사에서 침략 주체를 명백히 밝혀 남침 사실을 기록하지 않는다면 부작위에 따른 허위 선전이 되고 만다.
급변하는 세계에서 대한민국은 놀라운 적응력을 발휘하며 진화해왔지만,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들은 수구의 진지전을 펼치고 있다. 정보 혁명의 시대, 낡은 이념에 사로잡힌 꼰대들의 교과서는 대체 누구를 위한 변명인가? 그들의 진부한 역사관은 구시대의 유물이지만, 사상투쟁 없인 쉬이 못 넘을 꽤 높은 장애물이다. 이제 열린 사상의 시장에서 깨어 있는 시민들이 진취적으로 기록 투쟁에 나설 때다. 역사는 역사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편향된 역사가는 편향된 역사밖에 쓸 수 없다. 시민들이 직접 나서서 공산 전체주의와 벌이는 대결 속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대한민국 건국 과정을 새롭게 써야 한다. 모름지기 현대사는 우리 모두의 자서전이기 때문이다.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역사학, 조선일보(22-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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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은 학술 문제”라는 중국의 거짓말
정치 논리로 고구려사 왜곡 뒤 ‘학문 영역’이라 강변하는 중국
이제는 고조선 역사마저 否定… 한국사 전체를 집어삼키려는가
중국의 고구려사(史) 왜곡으로 온 나라가 들끓던 2004년 9월, 서울에서 고구려사 국제 학술 대회가 열렸다. 참석한 중국의 동북 공정 주역 학자들 속에서 어두운 표정의 노(老)학자 한 명이 보였다. 옌볜대 발해사연구소장을 지낸 조선족 방학봉씨였다.
중국 학자들이 “고구려는 중국사의 일부다” “고구려는 중국 역사가 다민족 대가정(大家庭)을 이뤄오는 과정의 하나였다”고 소리 높여 강변할 때 그는 대체로 침묵을 지켰다. 평생 고구려와 발해 역사를 연구했던 그 역시 같은 생각인 건가? 마침내 단상에 올라 질문을 받자, 방 소장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 논문에서 고구려의 성을 도성(都城)이라고 쓴 것은 한 국가의 수도라는 의미입니다.” 무슨 뜻인지 곧 이해할 수 있었다.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 정권이 아니다’라는 것을 우회적으로 언급한 것이었지만 더 이상 말은 없었다. 이런 말조차 정치적 문제 때문에 돌려서 할 수밖에 없는 그의 존재가 마치 그 옛날 중국 땅에 남은 고구려 유민(遺民) 신세인 듯했다.

16일 중국 베이징 국가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동방길금(동방의 상서로운 금속)-한중일 고대 청동기전' 입구./연합뉴스
최근 중국 베이징 국가 박물관의 한·중·일 청동기 유물전의 한국 역사 연표에서 중국 측이 멋대로 ‘고구려’와 ‘발해’를 삭제해 물의를 빚었다. 이에 대해 중국 외교부는 “학술 문제는 학술 영역에서 전문적인 토론과 소통을 할 수 있고 정치적 조작을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중국 베이징 국가박물관의 ‘한·중·일 고대 청동기전’에 게시된 ‘한국 고대 역사 연표’. 표 왼쪽 ‘시대/왕조’ 칸 위에서부터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고조선, 신라, 백제, 가야,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라고 적혀 있고 고구려와 발해는 빠져 있다. /웨이보
과연 그런가? 중국의 동북 공정은 학자들의 ‘학술적 논의’가 아니라 그 시작부터 철저하게 정치적인 공작이었다. 1963년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압록강 서쪽이 역사 이래 중국 땅이었다는 것은 황당한 논리”라고 했듯, 중국은 1970년대까지도 고구려가 한국사의 나라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1980년대 자국 내 여러 민족의 역사도 중국사라는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이 본격화하며 달라지기 시작했다. 현재의 중국 땅에 존재했던 고구려는 중국의 역사라는 얘기다. 이 논리대로라면 현 튀르키예 영토인 타르수스에서 태어난 사도 바울은 튀르키예인이고, 현 러시아 영토인 칼리닌그라드 출신 이마누엘 칸트는 러시아 철학자인 셈이다.
2002년부터 5년 동안 공식적으로 수행된 동북 공정의 주체 변강사지연구중심은 중국 국무원 산하 사회과학원의 한 기관이었다. 분명 국책 연구였다. 2004년 한·중 정부는 고구려사 문제에 정치적으로 개입하지 않겠다는 구두 합의를 했지만, 지린성 사회과학원의 ‘동북사지’는 2017년까지 발행돼 역사 침탈을 계속했고 바이두 백과 등은 고구려가 중국사라는 ‘굳히기’ 작업에 들어갔다.
더 큰 문제는 중국의 역사 침탈이 고구려와 발해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 사회과학원이 연구서 ‘고대 중국 고구려 역사 총론’에서 백제와 신라도 중국사의 일부라고 주장했다”는 기사를 쓴 것은 2007년이었다. 당시만 해도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느냐’고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10년 뒤인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라고 했다는 시진핑 중 국가주석의 말을 전했다.
이번 연표 왜곡 사태에서 거의 주목받지 못한 부분이 있다. 연표의 원자료를 제공한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이 고조선의 건국 연대를 기원전 2333년이라고 적어 줬으나, 중국 측은 이것을 ‘고조선 연대: ?~기원전 108년’이라고 둔갑시켰다. 고조선의 전체 역사를 부정하고 자기들이 지방 정권이라고 보는 말기의 위만조선만 인정하겠다는 속셈이다.
중국은 끝내 이 연표를 수정하지 않고 떼어냈다. 트럼프가 들었다는 시진핑의 말처럼, 중국은 한국사 전체를 ‘속방(屬邦)’의 역사로 집어삼키려는 것이라고 볼 합당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유석재 기자, 조선일보(22-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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