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와 파친코]
[北送 재일교포 9만3000명, 그 후 60년]
[NLL 코앞 北 해안포 도발.. ]
재일교포와 파친코
몇 해 전 일본 오사카 카지노에서 일하는 재일 교포 소설가 집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 바쁜 일 하며 소설까지 쓰는 이유를 들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카지노는 일본에서 존중받는 직업이 아니다. 자존감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소설가는 존중받는다”고 했다. 이민진 소설 ‘파친코’에 비슷한 대목이 있다. 자식을 둔 일본인 이혼녀가 파친코를 운영하는 한인과 재혼하려 하자 어머니가 말린다. “조선인과? 파친코 하는 사람과? 불쌍한 자식들에게 못할 짓을 할 만큼 하지 않았니?”

▶'파친코 하는 한인’은 냉대와 멸시를 견디며 산다. 천한 직업이란 인식 때문에 일본인은 기피하던 것을, 일제 패망 후 마땅한 일자리 없던 재일 한인들이 생계를 위해 택했다. 일본 파친코 업계의 80%를 재일교포와 그 후손이 운영하며 ‘파친코=재일 한인’ 인식이 굳어졌다. 혐한 성향의 일본인들은 ‘조선 도박’이니 ‘조선 구슬넣기’니 하며 손가락질했다.
▶일본인들 태도는 이중적이다. 파친코는 회사원들이 퇴근길에 들러 즐기는 대표적 게임이다. 전성기 땐 연간 3000만명이 출입했다. 파친코 업소 순례 유튜브도 인기다. 100만명 넘는 구독자를 거느린 곳도 있다. 스마트폰 앱이나 잡지, 게임을 보여주는 TV 프로도 있으니 일본의 국민 오락이다. 그런데 정작 업소를 운영하는 한인들을 내려다본다.
▶많은 재일 교포에게 삶의 터전인 파친코 산업이 쪼그라들고 있다는 소식이 엊그제 본지에 보도됐다. 1990년대 초만 해도 2만 곳 넘던 전국 점포 수가 지난해 8000개까지 줄었다. 여러 이유가 거론된다. 당국이 파친코의 사행성을 낮춰 대박 기회를 차단한 데다 코로나까지 겹치며 찾는 발길이 줄었다. 그러나 크게 보면, 전철과 버스에서 온갖 스마트폰 게임을 내려받아 즐기는 시대다. 파친코 시대는 저물고 있다.
▶소설 ‘파친코’는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한인의 개미지옥’으로 파친코를 그린다. 명문 와세다 졸업생도, 미국에 유학 가 금융인이 되어 돌아온 이도 다른 삶을 꿈꿨지만 종착지는 파친코였다. 일본이 지금도 그런 사회라면 파친코의 쇠락은 재일 한인에게 재앙일 것이다. 현실에선 다른 신화가 생겨나고 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아버지는 파친코로 돈 벌어 아들을 미국에 유학 보내 세계적 사업가로 키웠다. 한인은 세계 어디서든 그 나라 평균 국민 이상의 삶을 산다고 한다. 그 억척 DNA가 파친코 쇠락 시기를 맞은 재일 교포들에게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힘이 되어주리라 믿는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2-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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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送 재일교포 9만3000명, 그 후 60년
1959년부터 25년간의 북송사업, 北·日 합작 국가범죄
위안부와 징용공에 분노하면서 북송 교포 문제 왜 침묵하는가
북한 김일성이 환갑을 맞은 1972년 조총련(재일조선인총연합회)이 준비한 선물 꾸러미에는 '인간 200명'이 포함돼 있었다. 조총련 산하 조선대학교 남녀 학생 200명을 환갑 축하 대표단으로 북한에 보낸 것이다. 북한행을 원하는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교원들이 나서서 "사회주의 조국 건설의 지도자가 되라"며 등을 떠밀었다. 리스트에 올라간 200명은 '인신공양'이나 다름없었다. 재일교포들의 돈을 뜯어내고 함부로 언행을 못하도록 막기 위한 '인질'이기도 했다. 결국 아무도 되돌아오지 못했다. 누가 이들의 삶을 기억해줄까. 조선대학교에서 23년간 부(副)학장을 지낸 박용곤(92)씨가 2007년 일본 NHK방송에 출연해 폭로하면서 이들의 존재가 처음으로 알려졌다. "참회한다. 생지옥으로 제자들을 보낸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1959년 12월 14일 재일교포 975명을 태운 북송선이 일본 니가타(新潟)항을 출발하면서 시작된 북송사업. 이후 1984년까지 25년간 180차례에 걸쳐 9만3000여명이 '지상의 낙원'을 약속받고 일본을 떠났다. 대부분 남한 출신이어서 북한에는 혈연도 지인도 없었다. 이들 앞에 놓인 것은 일본에서의 민족 차별을 뛰어넘는 계급 차별과 인권침해였다. '불온 분자' '일제 간첩' 등으로 몰려 탄압을 받고 상당수는 강제수용소로 끌려가 소식이 끊겼다. 1990년대의 대기근 때는 더 혹독한 차별과 감시를 받으며 굶주림 속에서 세상을 떴다.
그로부터 60년, 재일민단 중앙본부는 지난 13일 '북송 60주년' 기념행사를 열고 "북송은 '사업'이 아니라 '사건'이며, 북한과 조총련에 의한 범죄"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일본 정부에 대해서는 납치 문제와 마찬가지로 북송 문제에도 목소리를 높여달라고 호소했다. 북송 시작 당시 북한은 6·25전쟁으로 인한 극심한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사회 최하층민인 재일교포에 대한 치안 부담과 재정 부담을 덜기 위해 서로 손을 끌고 등을 밀었다. 일본인들은 김일성의 북한이 생지옥인 줄 몰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금은 비밀 해제된 국제적십자사 문서에는 일본 정부의 거짓과 기만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일본 정부가 북송을 결정할 당시 총리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는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다. 문서에 따르면 기시 총리는 "남조선의 반발을 피하기 위해 국제적십자사의 협력이 절대로 필요하다"고 했다. '북송 사업'에 인도주의라는 포장지를 씌운 것이다. 고이즈미 전 총리의 아버지 고이즈미 준야(小泉純也) 당시 자민당 의원은 '재일조선인 귀국협력회'의 대표위원 자격으로 북송 선동의 핵심 역할을 했다. 일본의 좌파 지식인과 모든 언론이 맞장구를 쳤다. 첫 북송선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편지가 끊어지는 등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데도 일본 정부는 오히려 북한 당국에 북송 규모를 일주일에 1000명에서 1500명으로 늘려달라고 요구했다.
재일교포 북송은 냉전시대 자유 진영에서 공산 진영으로 이민족을 추방한 유일한 경우다. '인종 청소'나 다름없는 국가 범죄라는 지적도 있다. 해방 전 일본군위안부나 징용공 문제에 분노하면서, 전후에 벌어진 재일교포 9만3000명 북송에 대해선 왜 침묵하는가. 대한민국은 국가적 수치의 기억을 덮어버렸다. 일본의 과거사에 대해 반드시 따지고자 한다면 재일교포 북송에 대해 반성과 사과를 요구할 일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세계 최악의 독재자를 극진하게 모시기 위해 귀순 의사를 밝힌 탈북 청년 2명을 인신공양 하듯이 강제 송환하는 집단이 권력을 깔고 앉아 있는데, 그런 것을 기대하기란 당분간 어려울 것이다.
-정권현 논설위원, 조선일보(19-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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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 코앞 北 해안포 도발, 軍은 몰랐나 숨겼나
북한의 지난 23일 서해 NLL 인근 해안포 도발과 관련해 합참이 "당시 미상의 음원을 포착해 분석 중이었는데 25일 북 매체 보도를 보고 해안포 사격으로 평가했다"고 밝혔다. 음향 감지 장비로 발사음을 확인했지만 그게 무엇인지 파악 못 해 이틀간 발표를 못 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군 설명대로라면 적(敵)이 코앞에서 대포를 쐈는데 우리는 도발을 했는지도 제대로 모르고 있다가 적이 말해줘서 알게 됐다는 것이다. 23일은 연평도 도발 9주기였고 북이 포를 쏜 창린도는 NLL에서 북쪽으로 불과 18km 떨어진 곳이다. 당시 김정은은 창린도 부대를 방문하고 있었다. 북의 군사적 움직임에 평소보다 훨씬 촉각을 곤두세웠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도발 징후를 사전에 포착하기는커녕 사후에까지 뭔지 몰라 우왕좌왕했다면 안보에 심각한 구멍이 뚫린 것이다. 항상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며 대비해야 할 군이 '설마'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군이 북 도발을 알고도 의도적으로 축소·은폐했다면 더 심각한 문제다. 첨단 장비로 이틀 동안 분석하고도 몰랐다는 설명이 석연치 않다. 만약 숨기려 했다면 그 이유는 뻔하다. 대통령은 두 달 전 "북이 군사합의를 한 번도 위반 안 했다"고 감쌌고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평화 쇼'를 하기 위해 김정은 초청에 모든 공을 들여왔다. 그런데 김정은이 초청장은 걷어차고 정상회의 개막 직전에 직접 군사합의를 파기해버리니 이를 어떻게든 감추려 한 것 아닌가. 북이 보도하지 않았으면 어물쩍 넘어갔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 주민 2명 북송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카메라에 포착돼 알려졌고 대통령의 김정은 초청 친서도 북이 공개하기 전까지 국민은 모르고 있었다. 이런 군과 정부가 또 한 번 국민을 속이려 했다고 해도 크게 놀랍지 않다.
-조선일보(19-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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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이 코앞서 砲사격 지시하는데 낌새도 못 챈 軍. 24시간 北 감시하는 美가 동맹인데 어째 이런 일이.
○ 브룩스 전 주한미군 사령관, 北 해안포 사격에 "한·미 연합훈련 재개" 촉구. 우리 軍이 해야 할 말 아닌가?
-팔면봉, 조선일보(19-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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