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순술(讀脣術)]
[MBC가 만들어낸 이상한 나라]
[들리는 소리, 안 들리는 소리]
[들리지 않는 대통령 말을 자막으로 보도한 MBC, 근거 밝혀야]
[尹 사과 없는 “동맹 훼손” 반박… 점점 멀어지는 협치]
[내부 소통도 외교다]
[들어보면 확실치도 않은 발언 놓고 난장판 싸움, 지금 이럴 땐가]
[순방 외교 마친 尹, ‘막말’ 해명하고 심기일전 다짐해야]
독순술(讀脣術)
입을 보고 대화 내용을 파악하는 독순술(讀脣術)은 청각 장애인의 소통법이지만 범죄 수사와 첩보 수집 등에도 활용된다. 몇 해 전 직장 동료 간 폭행 사건이 벌어졌는데 가해자는 때린 사실만 인정하고 때린 이유는 함구했다. 경찰은 폭행 현장을 녹화한 승용차 블랙박스를 찾아냈다. 독순술 전문가에게 보여주고 가해자가 “누가 신고했어?”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보복 범죄로 구속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SF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할’은 우주선에 함께 탑승한 승무원들이 밀실에서 나누는 대화를 창밖에서 ‘엿보고’ 내용을 파악한다. 대화가 자신을 제거하려는 작전 모의란 사실을 알아내자 ‘할’은 승무원들을 먼저 살해한다. 영화 ‘미션임파서블3′나 엘러리 퀸의 추리소설 ‘Y의 비극’에서도 독순술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된 요소로 쓰였다.
▶독순술로 대화 전모를 파악하는 것이 현실적으론 쉽지 않다. 2006년 월드컵 때 프랑스 축구 선수 지단이 이탈리아 선수 마테라치의 가슴을 시합 중 머리로 들이받았다. 마테라치가 뭐라 했기에 지단이 폭력을 썼는지 궁금증을 풀기 위해 독순술가들이 나섰고 “마테라치가 지단의 누이를 매춘부라 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나중에 마테라치가 공개한 자초지종은 사뭇 달랐다. 몸싸움 중에 유니폼을 붙잡는 마테라치에게 지단이 “경기 끝나고 준다”고 했고 마테라치가 “옷보다 네 누이가 좋다”고 한 게 화근이었다.
▶독순술가들은 유럽 언어보다 한국어 ‘해독’이 더 어렵다고 한다. ‘ㅁ’ ‘ㅂ’ ‘ㅍ’처럼 발음할 때 입 모양이 같거나 ‘ㄱ’ ‘ㄲ’ ‘ㅋ’처럼 입안에서 발음이 만들어져 눈으로는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몇 해 전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밀담을 나눴을 때 독순술가들이 대화 내용 파악을 시도했지만 ‘핵시설’ ‘트럼프’ ‘미국’ 같은 단어를 썼다는 사실 정도만 유추할 수 있었다.
▶9일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장례식에 참석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과 오바마 전 대통령이 TV 화면에 잡혔다. 껄끄러운 사이인데도 이날은 미소 지으며 대화를 나눴다. 독순술가들이 ‘포렌식’에 나섰지만 국제협약 관련으로 추정된다는 일부 내용만 파악했을 뿐, 어떤 맥락에서 한 말인지는 알 수 없었다고 한다. ‘눈은 귀보다 정직하다’는 말이 있다. 대화 내용은 알 수 없어도 전직 대통령 장례식을 화합의 장으로 승화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이 땅의 정치인들과 너무도 다른 소통 방식이었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5-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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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가 만들어낸 이상한 나라
‘옳거니’ 하다가 걸린 MBC
천공→망사 모자→조문록→바이든
윤석열 대통령의 해외 순방 기간 국내에선 허위 정보가 끊이지 않았다. 맨 먼저 등장한 것은 ‘천공 뉴욕 도착’ 루머였다. 각종 소셜미디어에 백발에 수염 기르고 흰 한복 걸친 남자가 뉴욕 공항에 서있는 사진이 퍼졌다. 대통령이 순방 중 무속인과 만날 것이라는 암시를 담고 있었다. 하지만 촬영 시점이나 방문 목적 등 주요 정보는 숨기고 뉴욕만 부각시킨 전형적인 ‘가짜 뉴스(Fake News)’였다.
정상적인 언론은 이 소식을 다루지 않았다. 검색만 잠깐 해봐도 천공의 뉴욕 초청이 취소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사진을 누가 왜 찍었는지 등이 모두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은 아무 확인 없이 ‘옳거니’ 하면서 이를 퍼다 날랐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이른바 ‘쥴리’를 만들어냈던 유튜버들이 극성맞게 활동하는 모습도 찾아볼 수 있었다.
이뿐이 아니었다. 대통령 순방 기간 내내 ‘장례식 망사 모자는 왕족만 쓰는 것’ ‘조문록 왼쪽 기재는 망신’ 등 허위 정보가 끊임없이 등장해 ‘국격 훼손’ 논란을 일으켰다.
여기엔 지상파까지 가세했다. 지난 20일 KBS1라디오 ‘주진우 라이브’에는 탁현민 전(前)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전화 인터뷰에 나와 대통령이 조문록을 잘못 썼다면서 “통상 정상들은 오른쪽에 쓴다”고 했다. 윤 대통령과 같은 페이지에 쓴 다른 나라 정상들 사진이 수두룩한데도 ‘의전 전문가’ 행세를 하며 정치 공세를 벌인 것이다. TBS ‘뉴스공장’의 김어준은 “베일은… 장례식에서 로열 패밀리만 쓰는 것, 모르시는 것 같아 알려드린다”고 했다가 자기 발언을 다시 주워 담아야 했다.
마지막은 MBC가 장식했다. 지난 22일 뉴욕에서 대통령의 언어는 분명 부적절했다. 여기에 MBC는 자막으로 자기들 ‘해석’을 담으려 했다. 자막 중 ‘이 XX’와 ‘쪽팔려서’의 음성은 비교적 선명하다. 하지만 ‘바이든’이나 ‘(미국) 국회’ 부분은 잘 들리지도 않는다. 우리 뇌는 불충분한 정보를 메꾸기 위해 다른 감각기관으로 수용한 정보를 적극 활용한다. 이 과정에 왜곡이나 편향이 발생하기 쉽다. 이번엔 자막이 그 역할을 했다. 당장 대통령실 발표대로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 자막을 깔면 전혀 다르게 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번 잘못된 인식은 바꾸기 힘들다. 처음 노출된 정보가 닻(anchor)처럼 머리에 콱 박혀 기준이 되는 ‘기준점 편향’ 때문이다. MBC는 바로 이 기준을 차지했다. 이제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인지,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인지는 불가지론(不可知論) 영역에 들어갔다. 아무리 증거를 갖다 대고 발언 당사자가 아니라 해도 먹히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세월호 침몰 외부 충격설’ ‘천안함 좌초설’ 같은 것들이 난무하는 이 영역을 이미 알고 있다. 그곳은 불충분한 팩트나 허위 정보라도 어떤 식으로든 엮어 자신들이 원하는 현실, 이른바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사는 이상한 나라다.
-신동흔 기자, 조선일보(22-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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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는 소리, 안 들리는 소리
‘머레이의 잘생긴 백작’이란 스코틀랜드 노래에 ‘레이드 힘 온 더 그린(laid him on the green·그를 풀밭에 눕혔네)’이라는 대목이 있다. 노래를 들은 한 미국 작가는 해당 구절을 ‘레이디 몬더그린(lady Mondegreen·몬더그린 아가씨)으로 잘못 알아들었다. 작가는 훗날 귀로 듣는 것의 부정확함에 대한 글을 쓰면서 이 사례를 들었다. 그 후 특정 문장을 자신이 아는 다른 말로 잘못 듣는 현상을 ‘몬더그린(Mondegreen) 효과’라고 부른다.
▶가수 올리비아 뉴턴 존의 노래 ‘피지컬’ 가사엔 ‘렛 미 히어 유어 보디 토크(let me hear your body talk)’라는 부분이 있다. 이게 한국말로 ‘냄비 위에 밥이 타’로 들린다는 이들이 있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들린 것은 아니다. 한 개그맨이 “팝송에 우리말 가사가 있다”며 ‘냄비 위에 밥이 타’라고 말한 뒤부터다. 특정 정보에 점령된 귀가 팩트를 외면하는 속성을 이용한 것이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욕설 시비에 휘말린 적이 있다. 노 후보가 연설 도중 안상영 부산 시장을 거론하며 “아이x”라 욕설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노 후보는 “안 시장이라 말한 것”이라며 부인했다. 녹음을 반복해 틀어봤지만 발음이 불분명해 어느 쪽이 맞는지 알 수 없었다. 과거 대선을 좌우했던 김대업씨의 녹음테이프도 음질이 나빠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일부는 자기들 듣고 싶은 대로 들으려 했다.
▶인간은 눈으로 대화하는 기술을 발달시켜 왔다. 입을 보며 대화하는 ‘독순술’(讀脣術)이 대표적이다. 첨단 기술일수록 귀보다 눈을 활용하는 추세이기도 하다. 지난 2016년 구글의 딥마인드(DeepMind)는 화자의 입술 모양만으로 전체 문장을 정확하게 판독할 수 있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선보였다. 인공지능이 읽는 입 모양이 귀로 듣는 것보다 더 정확하다고 한다. 앞서 유튜브도 2009년, 동영상에 자막이 자동으로 표시되는 기술을 개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미국 뉴욕에서 회의장을 나오며 한 사적 대화를 두고 온 나라가 시끄럽다. MBC는 ‘XX’와 ‘바이든’이란 자막을 달아 해당 화면을 내보냈다. 막상 윤 대통령 말에서 또렷이 들리는 건 “쪽팔려서 어떡하나”뿐인데도 그렇게 했다. 미국 시인 아치볼드 매클리시는 “눈은 리얼리스트이지만 귀는 믿고 창조한다”고 했다. 귀보다 눈이 진실에 가깝다는 의미다. 그런데 한국에선 방송 자막조차 귀만큼이나 못 믿을 게 되고 있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2-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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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지 않는 대통령 말을 자막으로 보도한 MBC, 근거 밝혀야
MBC뉴스 유튜브 채널 '오늘 이뉴스'가 지난 9월 22일 올린 윤석열 대통령 비속어 관련 영상./MBC뉴스 유튜브 캡처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에서 회의 후 수행원들에게 한 발언을 보도한 MBC가 경찰에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됐다. 윤 대통령은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을 훼손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해당 발언은 동영상을 아무리 반복해 들어도 무슨 말인지 알기 어렵다. 불명확한 잡음 끝에 ‘쪽팔린다’는 식의 말만 들린다. 그런데 MBC는 22일 오전 윤 대통령이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는 자막까지 달아 보도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미 의회나 바이든을 언급한 게 아니라 한국이 그 회의에서 글로벌 펀드에 내기로 약속한 1억달러를 야당이 날리면 어떻게 하느냐는 취지였다고 반박했다.
특히 미국 내 문제로까지 번진 ‘바이든’이란 단어에 대해 대통령실은 ‘날리면’이라고 했다. 음성 분석 전문가들도 ‘바이든’이라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앞뒤 문맥상으로도 ‘바이든’이라고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다. 당시 MBC는 각 방송사를 대표해 이 영상을 촬영하고 송출했다. 대통령의 해당 발언을 처음 알린 것도 MBC였다고 한다. MBC는 윤 대통령의 발언 내용을 대통령실에 확인하지 않았다. 신중한 보도를 해달라는 당부도 무시했다. 첫 보도가 나오기 2시간 전부터 인터넷엔 대통령 발언 편집 동영상과 내용 글이 돌았다.
MBC는 “최대한 절제해 영상을 올렸고 어떤 해석 없이 발언 내용을 그대로 전달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잡음 없이 제대로 들리는 영상을 공개해야 한다. 그런 영상이 없다면 누가 어떤 근거로 잘 들리지 않는 말을 그렇게 자막을 달아 보도했는지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이것은 언론 자유와 관련이 없다. 취재원을 밝히란 것이 아니라 일반인에겐 안 들리는 말을 명확히 들은 것으로 보도했으니 그 경위를 설명하라는 것뿐이다.
-조선일보(22-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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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사과 없는 “동맹 훼손” 반박… 점점 멀어지는 협치
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미국 뉴욕 방문 기간 불거진 비속어 논란에 대해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을 훼손하는 것은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출근길 문답에서 “먼저 이 부분에 대한 진상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더 확실하게 밝혀져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유감 표명이나 사과 언급은 없었다. 민주당은 “진실을 은폐하고 언론을 겁박하는 적반하장식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막말 여부를 둘러싼 공방이 점점 더 확산되는 양상이다.
그간 경위를 다시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번 논란은 “국회에서 이 ××들이” “×팔려 어떡하나” 등의 발언이 카메라에 찍힌 데서 비롯됐다. MBC가 “(미국) 국회” “바이든”으로 자막을 달아 보도했다. 발언 15시간 만에 “미국이 아닌 한국 국회”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 “국익 자해행위” 등의 대통령실 반박이 나왔지만 오히려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169석 야당 의원들을 향해 ‘××’ 운운한 셈이 됐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갔으면 대통령이 직접 발언 맥락과 취지를 설명하고 깔끔하게 사과하고 털어버리는 게 상식적인 해법이다. 그게 소모적인 정쟁을 막고 향후 국정 운영에서 야당의 협조를 얻는 데도 도움이 되는 길이다. 사실과 다르다면, 뭐가 어떻게 사실과 다르다는 건지 발언 당사자가 직접 설명을 해야 국민이나 야당도 납득을 하든 말든 할 수 있지 않겠나.
MBC가 대통령실에 대한 확인 절차 없이 비하 대상을 미국 의회, 바이든 대통령으로 단정하고 자막에 넣은 경위를 밝히는 문제와 비속어 논란에 대해 사과하는 것은 별개의 사안이다. 발언의 실체에 대해선 아무런 설명 없이 “동맹 훼손”만 강조하고 나서면 논란이 꼬리에 꼬리를 물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은 반격 모드에 발을 맞추고 있다. “민주당과 MBC의 정언유착이 낳은 언론참사” 등의 강경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민주당은 외교부 장관 해임과 대통령실 외교안보라인, 홍보수석 교체를 요구하고 나섰다. 새 정부 첫 예산안, 세제개편안 등 발등에 떨어진 현안이 산적해 있지만 정치권은 협치의 길을 찾기는커녕 점점 대치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동아일보(22-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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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소통도 외교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뉴욕 한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환담하고 있다./뉴시스
외교의 내막이 대중적 인식과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윤석열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공식 정상회담을 못 한 것은 외교 참사’라는 내러티브가 아무리 대중적이라도, 사실관계를 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 줄곧 유엔총회 계기 양자 회담에 소극적이었다. 지난해 뉴욕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도 만나지 않았고, 올해도 동맹인 영국·필리핀의 신임 정상들과만 회담했다.
‘윤 대통령이 방한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을 만나지 않아 현대차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상 전기차 세제 혜택을 못 받게 됐다’는 말도 그렇다. 국내에 널리 퍼진 얘기지만 워싱턴DC 전문가들은 “IRA의 전기차 조항은 미국 국내 정치의 산물로 펠로시 방한과는 관련이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윤 정부의 외교에 종종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뭔가 께름한 그 느낌의 정체를 분명히 짚어내기 힘들었다. 외교를 잘해서가 아니라, 비판의 포인트가 사실과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 취임 140일이 되고 보니 그렇게 대중과 통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문제로 보이기 시작한다. 윤 정부가 대체 어떤 외교·안보 정책을 하려는지 선명히 전달되지 않는다. 그러니 그 메시지 부재의 공간을 불필요한 잡음들이 파고드는 것 같다.
윤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을 한 다음 날, 북한 인권 운동 관련 인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는 “김정은이 핵 사용을 법제화한 마당에 어떻게 한국 대통령이 북한 얘기를 안 할 수 있나. ‘담대한 구상’에서 대북 제재 해제를 거론하더니 도대체 뭘 하자는 건가”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한반도를 넘어 자유세계 전체에 공헌하겠다는 윤 정부 외교·안보팀의 이상(理想)은 전달되지 않고, 북한 인권 옹호와 한반도 자유 수호라는 원칙에 충실한지 의심만 받게 된 것 같았다. 대만에 다녀온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으면 어떻게 보일지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대통령실 내부 일정 계획을 우선하다가 대중 외교의 원칙을 내내 의심받게 된 것이 연상됐다.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환담이 ‘외교 참사’ 논란으로 번진 배경에도 메시지 관리 문제가 있었다. 상대가 유엔총회 사이드라인 외교에 몹시 소극적인 바이든 대통령인데, 출발 전 한미 정상회담이 있으리라 발표해 기대감을 너무 높였다. 이런 것을 보면 대통령실과 외교부, 국가안보실과 홍보수석실의 조율은 과연 잘되는지 궁금하다.
윤 정부 외교·안보팀에는 지난 보수 정부 출신 인사가 많다. 경험도 많겠지만 과거 정권을 휘청거리게 만들었던 ‘외교 문제에서 국내 여론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계속될 여지도 있다. 요즘 미국 국무부를 보면 토니 블링컨 장관부터 국내 여론과 소통을 무척 신경 쓴다. “대외 정책은 곧 국내 정책”이란다. 새겨볼 말이다.
-워싱턴=김진명 특파원, 조선일보(22-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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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보면 확실치도 않은 발언 놓고 난장판 싸움, 지금 이럴 땐가
윤석열 대통령이 21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 회의를 마치고 나오면서 박진 외교부 장관 등 참모들에게 발언하고 있다. 일부 언론이 이 발언을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는 자막을 달아 보도하면서 논란이 벌어졌다. (YTN 갈무리) ⓒ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순방 중 발언을 놓고 여야 정치권이 나흘 넘게 난장판 싸움을 벌이고 있다. 민주당은 대국민 사과와 외교 라인 경질을 요구하며 연일 공세를 취했고, 국민의힘은 “제2의 광우병 선동”이라고 맞섰다. 이번 발언은 윤 대통령이 참모들과 사적으로 나눈 대화가 우연히 카메라에 찍혀 공개됐다. 하지만 주변 소음이 심해 정확한 내용을 알아듣기 힘들다. 그런데도 여야는 온통 이 문제에 매달려 공방을 벌이고 있다.
문제 발언은 윤 대통령이 지난 21일 뉴욕 ‘글로벌 펀드’ 회의장에서 나오며 수행원들과 나눈 사적 대화였다. 해독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지만 MBC는 발언 직후 “(미국) 국회에서 이 새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는 말이었다며 자막을 달아 보도했다. 야당은 이 보도를 기정사실화한 뒤 “윤 대통령이 비속어로 파문을 일으켰다”고 공격했다. 그러나 실제로 잡음을 제거한 뒤 발언을 들어보면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기조차 힘들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새X’란 욕설이나 ‘바이든’이란 말을 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음성 분석 전문가들도 ‘바이든’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이 새X들’이 ‘이 사람들’로 들린다는 지적도 많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대통령이 국격을 깎아내리고 거짓말까지 하고 있다” “야당과 국민을 개돼지로 여긴다”고 총공세를 폈다. 일부 인사는 “국민 손에 끌려 내려와야 정신 차리겠느냐”고도 했다. 민주당은 이번 순방 전체를 폄훼하며 ‘외교 참사’라고 비난했다. MBC는 명확하지 않은 대통령의 사적 발언을 마음대로 해석하고 자막을 달아 사실인 것처럼 보도했다. 대통령실에 정확한 발언 내용을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발언이 왜곡됐다면 즉각 바로잡았어야 했다. 하지만 보도가 나간 지 13시간이 지나서야 공식 해명했다. 그러는 사이 외교적 논란이 커지고 정치적 파문으로 이어졌다. ‘이 XX’가 야당을 지칭한 것이라는 대통령실 해명도 논란을 키웠다. 윤 대통령이 야당에 이런 비속어를 썼다면 그야말로 잘못된 일이다. 윤 대통령이 입장을 밝히고 사과할 일이 있으면 신속히 하는 것이 옳았다. 그런데 소극적 대응으로 시간을 끌다가 일을 키웠다.
환율과 금리, 물가가 폭등하면서 경제 위기의 파고가 몰아닥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확전과 북핵 위협으로 안보 위기도 커지고 있다. 그런데 내용도 불확실한 대통령의 사적 발언을 놓고 이렇게 이전투구를 벌일 때인가. 윤 대통령은 잘못이 있다면 인정하고 상황을 빨리 수습해야 한다. 야당도 무조건적인 대통령 때리기와 선동 정치를 멈추고 시급한 민생·경제 현안을 해결하는 데 협조해야 한다.
-조선일보(22-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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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란 발언, MBC 첫 보도 전에 민주당 간부가 먼저 비판. 취재는 대통령실서, 보고는 野黨에?
-팔면봉, 조선일보(22-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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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방 외교 마친 尹, ‘막말’ 해명하고 심기일전 다짐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5박 7일의 영국·미국·캐나다 순방 외교를 마치고 그제 귀국했다. 말 많고 탈 많았던 순방이었다. 귀국길 기내간담회도 진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착잡한 분위기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어디서 뭐가 어떻게 잘못됐는지 되돌아보고 심기일전의 계기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윤 대통령의 “국회에서 이 ××들이” “×팔려 어떡하나” 등 막말 논란은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대통령실 해명대로 발언 대상이 미국 의회가 아닌 한국 국회라면 169석 야당을 향해 막말을 한 셈이 되는데도 대통령은 물론 참모들 입에서도 사과는커녕 유감 표명조차 나온 게 없다. 평소 야당에 대한 인식이 드러난 것으로 봐도 된다는 뜻인가.
사적으로 한 발언이라 해도 방송 카메라에 잡힌 만큼 더 이상 ‘혼잣말’ ‘사적 발언’이 아니다. 이미 정치 공방의 소재가 됐다. “외교 참사” 운운하는 야당 비판에 발끈하기 전에 발언 경위를 직접 설명하고 깔끔하게 사과하는 게 옳다. 여당 내에서도 “조작, 가짜뉴스”라며 대통령을 엄호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제라도 깨끗이 사과하고 수습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번 순방을 앞두고 국민 기대를 높였던 건 대통령실이다. “흔쾌히 합의됐다”던 한일 정상회담은 ‘저자세’ 논란만 불렀고, 한미 정상회담은 짧은 환담에 그쳤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미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 주요 현안에 대해 얼마나 깊이 있는 논의가 이뤄졌는지 의문이다. 상대와의 꼼꼼한 일정 조율, 현안 조율 없이 국내 홍보에 급급해하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 아닌가. 이번 순방의 사전 준비 단계부터 철저히 복기해 책임 소재를 가릴 필요가 있다.
귀국한 윤 대통령 앞에는 숱한 국내 현안이 쌓여 있다. 1400원을 넘은 원-달러 환율, 무역수지 적자 확대 등 국정 곳곳이 지뢰밭이다. 지난 주말 한국갤럽 조사 결과 국정 수행 지지율은 다시 28%로 내려앉았다. 막말 논란 등을 질질 끌고 있을 여유가 없다. 좀 더 겸허하고 절제된 언행과 태도로 국정 의지를 다잡고 새 출발을 하는 모습을 보일 때다.
-동아일보(22-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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