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이라 속여 북 청년 1만명 총알받이로 내몬 김정은]
[전쟁터에서 온 편지]
[우크라이나 전쟁터에서 돌아온 남편]
[서부전선 이상 있다]
훈련이라 속여 북 청년 1만명 총알받이로 내몬 김정은
우크라이나군에 붙잡힌 1999년생 북한 병사(왼쪽)와 2005년생 북한 병사./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텔레그램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쿠르스크 전장에서 20세·26세의 북한군 2명을 생포했고, 이 중 한 명은 조사에서 “전쟁 아닌 훈련을 위해 이동하는 것으로 알았다”고 진술했다고 국가정보원이 밝혔다. “러시아 도착 후에야 파병 온 것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김정은 정권이 북한 청년 1만여 명을 사지(死地)로 몰아넣으면서 참전 사실조차 숨겼다는 뜻이다. 훈련인 줄 알았는데 도착해보니 전쟁터였던 북한 병사의 심정이 어땠을지 가늠조차 어렵다. 부상당한 북한 포로들은 “4~5일간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다”고 했다. 속아서 총알받이가 된 북한군의 실상이다.
파병 북한군의 참상이 속속 전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북 군인들이 ‘인간 지뢰 제거기’로 이용된다고 영국 매체에 전했다. 지뢰밭을 일렬로 걸어가며 폭사하는 방식으로 지뢰를 제거한다는 것이다. 2차 대전 때 러시아 수법이다. 생소한 드론 공격에 우왕좌왕하다 목숨을 잃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러시아 겨울 추위도 치명적이다.
미국 언론은 ‘북한군이 포로가 되기보다 죽음을 택한다’는 내용의 우크라이나군 증언을 전했다. 생포되면 북한의 가족이 위험해진다는 협박을 받았을 것이다. 전사자의 북한 가족이 ‘어떤 말도 하지 않겠다는 강제 서약을 하고 오열했다’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자식이 죽어도 침묵해야 한다. 지옥이 따로 없다.
파병 직전 김정은의 금고는 북·중 관계 악화와 대북 제재 등으로 말라가고 있었다. 우크라이나에서 고전 중인 러시아는 참전자에게 월 2000달러 안팎을 지급하고 있다. 북한군 1만여 명이면 김정은은 연간 수억달러를 벌게 된다. 그런데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쟁터에 강제로 내보내면 아무리 북한이라도 병사 저항 등 내부 동요를 우려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파병 사실조차 속인 것이다. 김정은 주머니를 채우려고 사기극까지 동원해 20대를 인신 공양하는 것이 북한 인권 실태다.
북·러가 북한군 참전을 인정해야 생포된 북한군이 국제법상 전쟁 포로가 된다. 전쟁 포로는 본국 송환이 원칙이다. 그러나 북·러는 참전을 인정한 적이 없고, 붙잡힌 북 병사는 ‘훈련인 줄 알았다’고 진술했다. ‘불법 전투원’은 전쟁 포로가 아닐 수 있다. 정부는 생포된 북한군이 귀순을 희망할 경우 한국 송환을 추진해야 한다. 헌법상 우리 국민이다.
-조선일보(25-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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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에서 온 편지
“사랑하는 루, 드디어 우리는 짐을 꾸리고 있는 중이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도록 빌고 있소. 내일부터 며칠 동안 일어날 소식은 신문을 통해 알 것이오.” 독일군 사단장 롬멜이 1940년 5월 전장에서 아내에게 보낸 편지다. 롬멜이 아내에게 예고한 것은 프랑스 마지노선 돌파였고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롬멜전사록’에 나오는 내용이다.
▶전쟁터에서도 많은 글이 쓰여졌겠지만 그중에서도 편지는 가장 내밀한 감정이 담겨 있다. 어머니·아내 등 가까운 가족이나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일수록 애틋할 수밖에 없다. 나폴레옹은 전투가 끝나면 아내 조세핀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 서둘러 텐트로 들어갔다. 그는 생전 5만5000통의 편지를 썼다. 오스트리아 철학자 비트켄슈타인은 1914년 1차 대전이 발발하자 자원입대했다. 그는 최전방 근무를 자원해 적탄이 귓전을 스치는 관측 망루에서 “총격을 받고 있다. 총성이 날 때마다 영혼이 움찔거린다.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고 썼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실제로 이오지마 전투에서 발견한 편지를 모티프로 제작했다. 일본군 병사가 아내에게 남긴 편지엔 “갓 태어난 딸이 보고 싶다”와 같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태평양전쟁 등에 참전한 일본 병사들의 편지를 모은 책엔 ‘고향집 나무와 꽃들이 잘 있는지 궁금하다, 초밥을 먹고 싶다’ 같은 내용들이 많았다고 한다. 과달카날 전투에서 죽은 일본군 병사의 품에선 ‘어머니, 제가 내일 이 풀 향기를 맡을 수 있을까요’라고 쓴 편지가 나왔다.
▶전쟁터에서 오는 편지도 받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성석제 단편소설 ‘협죽도 그늘 아래’ 주인공은 결혼하자마자 6·25가 나서 합방도 하지 못한 채 학병으로 입대한 남편을 기다리는 70세 할머니다. 스무 살에 결혼했으니 50년째 남편 소식을 기다리는 것이다. 집으로 온 것은 남편 편지가 아니라 행방불명이라는 통보였다. 그래도 할머니는 동네 입구 협죽도 그늘 아래에 앉아 여전히 남편의 편지를 기다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파병됐다가 사망한 북한군 병사 편지가 공개됐다. “정다운 아버지 어머니의 품을 떠나 여기 로씨야 땅에서…”로 시작하는 편지는 친구 생일을 축하하려고 쓴 짧은 편지다. 내용을 보면 제대로 끝맺지도 못한 것 같다. 이 편지 하나를 남기고 눈 덮인 이역만리 땅에서 시신이 됐다. 왜 싸우는지, 왜 죽는지도 모른 채 식어간 이 병사는 마지막 순간에 누구를, 무엇을 떠올렸을까.
-김민철 논설위원, 조선일보(24-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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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파병 북한군 “무인기 만나면 한 명이 유인” 전략. 21세기 최첨단의 시대에 몸으로 싸워야 하는 독재자의 군대.
-팔면봉, 조선일보(24-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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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터에서 돌아온 남편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는 전란에 휩쓸린 백성의 고통을 많은 시로 남겼다. 그중 신혼별(新婚別)은 결혼 이튿날 남편을 전쟁터로 떠나보낸 여자의 절망과 재회의 비원을 담은 작품이다. ‘머리 올리고 부부 되었으나/ 낭군과의 잠자리 덥히지도 못했는데/ 저녁에 혼인하고 새벽에 떠나니/(중략)/ 뼈저린 마음 창자에 스민다/ 어렵게 비단치마 장만했지만/ 다시 만날 날까지 입지 않으리.’ 운 좋게 재회하더라도 비극으로 끝나는 사례도 많다. 나폴레옹 전쟁을 무대로 쓴 톨스토이 장편 ‘전쟁과 평화’에선 큰 부상을 입고 돌아온 남자가 약혼녀의 정성스러운 간호에도 끝내 세상을 떠난다.
▶이 땅의 여성들도 70년 전 큰 아픔을 겪었다. 6·25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여성이 20만명을 넘는다. 그보다 훨씬 많은 이가 불구의 몸으로 돌아온 45만 부상 장병의 삶을 책임져야 했다. 신상옥 감독의 1960년 영화 ‘이 생명 다하도록’은 6·25 때 포탄을 맞고 하반신이 마비된 군인의 실화를 담았다. 불구가 되어 돌아온 남편 대신 생계를 떠맡은 아내가 그 후 가난으로 자식마저 잃는다. 몇 해 전엔 휴전 이틀 전 전사한 남편이 보낸 마지막 편지를 평생 간직하고 산 여성 사연이 알려져 많은 이를 눈물짓게 했다. 이런 가슴 아픈 사례가 부지기수다.
▶전쟁터에서 두 팔과 두 눈을 잃고 돌아온 우크라이나 군인과 그를 안고 있는 젊은 아내 사진이 엊그제 많은 이의 시선을 붙잡았다. 아내의 표정엔 남편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 살아서 돌아와 준 것에 대한 안도의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재회한 부부의 행복을 기원하면서도 앞날을 걱정하는 반응도 많았다.
▶이라크전에 참전한 어느 미군은 얼굴에 수류탄 파편을 맞아 이전 모습을 알아볼 수 없게 돼 돌아왔다. 기다려 준 약혼녀와 결혼했고 결혼 10주년 때는 부부가 함께 활짝 웃는 기념사진도 올렸다. 반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한 우울증과 마약, 가정 폭력에 빠져 끝내 가족 해체로 이어지는 사례도 많았다.
▶전쟁 직후 가난 탓도 있었겠지만 우리는 나라가 존속하는 것은 위기에 몸바쳐 희생한 군인과 그 가족 덕분이란 사실을 한때 기피하고 외면했다. 다행히 보훈 체계가 갖춰지면서 전몰 유가족이나 전상자 가족에 대한 예우와 보상이 개선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부부가 전쟁의 아픔을 이겨내기 바란다. 다만, 부부가 지게 될 짐을 온전히 그들에게 돌려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부부가 나라를 향한 희생을 후회하지 않고 서로를 향한 사랑도 지킬 수 있도록 돕는 것도 국가의 의무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3-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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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전선 이상 있다
[김황식의 풍경이 있는 세상]
독일 출신 작가 레마르크가 1929년 발간한 소설 ‘서부전선 이상 없다(Im Westen nichts Neues)’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프랑스가 맞닿은 서부전선에 투입된 병사들의 전쟁 경험을 다룹니다. 작가 자신의 제1차 대전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전쟁의 비인간적인 모습과 인간의 무력함 등을 통해 전쟁의 비참한 본성을 솔직하고 현실적인 묘사와 간결한 문체로 그려낸 소설로서 전쟁 문학의 백미로 평가받습니다.
맹목적인 애국심을 강조하며 입대를 선동하는 선생님의 영향으로 군에 자원입대한 파울 보이머 등 스무 살이 채 안 된 학도병들이 전쟁터로 나갑니다. 그들은 죽지 않기 위해 적군을 죽일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이 살상한 적군의 시체 앞에서 고뇌하며 용서를 구하기도 하지만 차츰 살상은 일상의 일이 됩니다. 독가스로 폐가 타버려 검은 가루를 토해내거나, 포탄 파편으로 인해 구멍 뚫린 배를 붙잡고 달려가거나, 적군을 향해 진격하던 중 두개골에 직격탄을 맞아 머리가 없는 채로 몇 걸음을 내딛다가 구덩이에 빠지는, 비참한 전장의 모습들이 그려집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은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잔혹해지고 그럴수록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습니다. 무의미하게 진행되는 전쟁 속에서 함께 참전한 학우들은 차례로 다 전사하고 종전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마지막 남은 파울마저 전사합니다. 독일군 사령부는 “서부전선 이상 없음”이라는 보고를 띄웁니다. 전투와 죽음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그 보고는 사람들이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전투와 죽음을 당연한 일상의 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독일어 소설 제목을 직역하면 ‘서쪽에는 새로운 것이 없다’입니다. 새로운 것이 없다는 것은 변화가 없으며, 그래서 모든 것이 노멀(normal)한 상태라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전쟁과 죽음이 연속되는 비정상적 상황이 노멀한 상태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소설 제목은 냉소를 담은 상징적 표현입니다. 또한, 일본에서 이를 ‘서부전선 이상 없다(西部戦線異状なし)’라고 번역한 것은 독일어 제목과 같은 취지로 미국에서 번역한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서부전선, 모든 것이 고요하다)’보다 적절해 보입니다.
작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한 전쟁은 아직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개전 직후 세계는 우크라이나가 며칠도 버티지 못하고 항복하거나 붕괴할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미국 등 서방 세력의 지원을 받으며 강력한 항전 의지를 갖고 선전하고 있고, 반면 러시아는 고전하면서 전쟁이 장기화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서방세계의 우크라이나 지원이 계속되는 한 당초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입니다. 러시아로서는 명분 없고 승산 없는 전쟁을 빨리 끝내는 것이 옳은 길이지만, 장기전으로 가더라도 중국·이란 등 미국 견제 세력과 연대하며 끝까지 싸울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우크라이나도 2014년 러시아가 병합한 크림반도를 포함한 우크라이나의 모든 영토에서 러시아를 완전히 몰아내는 것은 어려워 보입니다. 그런 사이에 전쟁은 상당 기간 교착 상태로 들어가 전쟁에 내몰린 군인들과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과 각종 기반 시설 파괴로 인한 피해가 날로 커갈 것입니다.
제1차 대전 당시 참호전이 진행된 서부전선은 전쟁 내내 고작 몇백 미터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서로 얻은 것도 없이 일상적으로 진행된 그 참혹한 전쟁터, 그곳에서만 300만명 이상이 사망했습니다. 전쟁이 얼마나 어리석고 비극적인지를 함축해 보여줍니다. 이대로 가면 우크라이나 전쟁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러한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끝내려는 국제 사회의 노력도 부족합니다. 마치 “서부전선 이상 없다”라는 헛된 보고만 쌓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서부전선 이상 있음”을 되뇌어야 할 때입니다. 전쟁을 하루빨리 끝내야 합니다. 2014년 러시아에 합병된 크림반도를 제외한 점령지에서 러시아가 철수하는 방안을 중심으로 타협해야 합니다.
-김황식 전 국무총리, 조선일보(23-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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