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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안 든 내전(內戰)] [경찰과 경호처 유혈 충돌 때 與野는.. ] ....

뚝섬 2025. 1. 11. 06:39

[총 안 든 내전(內戰)]

[경찰과 경호처 유혈 충돌 때 與野는 사태 감당할 수 있나]

[‘백골단’ 악몽이 누구에겐 추억이었나]

 

 

 

총 안 든 내전(內戰)

 

[박정훈 칼럼]

한쪽이 다른 쪽을 죽여야 끝날 듯한

심리적 살육전이 곳곳에서 펼쳐졌다...
이 내전 같은 혼란이 어떤 결말을 맞을지
두렵기만 하다
 

 

지난 3일 공수처 수사관들이 한남동 대통령 관저 검문소에 진입해 윤석열 대통령 체포 영장을 집행하려 하자 경호처 측 55경비단 병력이 수사관들을 둘러싸 저지하고 있다./뉴스1

 

계엄 후 정국에서 지금 벌어지는 일들을 늘 있던 ‘진영 대결’이라든지 ‘여야 충돌’ 정도로 여긴다면 상황을 오판하는 것이다. 한남동 거리에서, 광화문 광장에서, 여의도 국회에서, 적의(敵意)로 가득 찬 극한 대결의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대통령 관저는 철조망 쳐진 도심 속 요새가 됐고, 유혈 충돌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타협의 실마리라곤 보이지 않는다. 한쪽이 다른 쪽을 죽여야 끝날 듯한 심리적 살육전이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2019년 조국 사태 때도 진영 대치는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권력 실세 한 사람을 둘러싼 국지적 충돌이었다. 2016년 탄핵 때는 박근혜 대통령이 수동적 자세를 취했고, 정치권도 탄핵 추진에 대체적 합의를 본 탓에 큰 충돌은 없었다. 지금은 윤석열 대통령 본인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계엄이 “반국가 세력 척결”을 위한 정당한 권한 행사였다며 지지자들에게 항전 메시지까지 보내 격렬히 저항하고 있다.

 

여야는 전면전에 돌입했다. 야당은 완장 찬 점령군 행세를 하며 국가권력을 접수하려 하고, 여당은 ‘이재명 대권 플랜’에 멍석을 깔아줄 순 없다 하고 있다. 야당 입에서 “대통령 사형” “총 쏴서 체포” 같은 섬뜩한 말이 쏟아지고, 여당은 “그래도 이재명은 안 된다”며 반격하고 있다. 광장에서 대치 중인 진영 대결은 국가 정체성을 둘러싼 가치 전쟁으로 비화됐다. 서로를 “내란 세력” “반국가·종북 세력”이라고 공존 불가능한 대상으로 규정하며 척결을 외치고 있다. 총만 안 들었을 뿐 사실상의 내전(內戰)이 펼쳐졌다.

 

내전의 본질은 무(無)정부 상태다. 지금 국정이 그 언저리를 향해 가고 있다. 대통령 체포 영장을 둘러싼 혼란은 공권력의 중심이 무너진 현실을 드러냈다. 대통령은 영장에 불응하며 사법을 진영 대결의 영역으로 밀어냈다.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이 ‘정치’를 앞세운 공수처의 무리한 법 집행이었다. 공수처는 내란죄 수사권 논란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관할인 서울중앙지법을 피해 서부지법으로 ‘영장 쇼핑’에 나섰다. 판사는 압수·수색 예외 조항의 적용을 배제한다는 월권적 내용까지 영장에 포함시켜 기름을 끼얹었다.

 

대통령 관저에서 차벽을 사이에 두고 공수처와 경호처가 대치하는 일촉즉발 사태가 벌어졌다. 공수처가 경호처 간부들을 형사 입건하자, 윤 대통령 측은 공수처·경찰 수뇌부를 맞고발했다. 공수처가 경찰에 영장 집행을 떠넘기고 경찰은 거부하는 사달까지 벌어졌다. 국가기관끼리 서로 부딪치고 충돌하며 사법행정이 엉망으로 헝클어졌다. 그 과정에서 민주당은 경찰·공수처를 사실상 지휘하며 수사를 정치로 오염시켰다.

 

헌정의 최후 보루인 헌법재판소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재명 대표 재판이 늘어지는 것과 대조적으로, 헌재는 윤 대통령 탄핵안 처리에서 ‘신속’을 ‘공정’에 앞세웠다. 주 2회씩 심리를 열겠다며 속도전을 선언했다. 헌재가 탄핵소추 사유에서 내란죄 부분을 빼겠다는 민주당 측 요구까지 받아들인다면 논란은 더욱 커질 것이다. 법치(法治)는 국가를 지탱하는 기본 뼈대인데 이조차 흔들릴 지경이 됐다. 법 해석과 집행이 진영으로 갈리고, 헌정 제도의 신뢰성마저 의문을 받고 있다.

 

지금의 내전적 상황은 윤 대통령이 격발했고 이재명의 민주당이 키웠다. 계엄과 수사 불응으로 폭탄을 던진 것이 윤 대통령이고, 대권 조급증에 ‘내란 몰이’를 치달으며 불확실성을 증폭시킨 것이 이 대표다. 윤 대통령 문제의 해결법은 상대적으로 단순하다. 헌재가 공정한 심리를 약속하고, 경찰이 내란 수사권을 회수받아 법대로 집행한다면 대통령도 거부할 명분이 없다.

 

무정부 상태도 불사하겠다는 민주당의 폭주가 훨씬 심각해 보인다. 권한대행을 맡자마자 총리를 탄핵소추하고, 온갖 곳에 ‘내란 부역자’ 딱지를 붙여대며 혼란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장관 5명을 탄핵해 국무회의를 마비시키겠다”거나 “(대통령 체포에) 관을 들고 나올 결기” 운운하며 유혈을 부추기는 발언마저 서슴지 않는다. 최상목 권한대행까지 내란 동조자로 몰아 고발했다. 이재명 대권 플랜을 위해서라면 경제가 망가져도, 위기가 찾아와도 상관없다는 그 무모함이 소름 끼친다.

 

기막힌 타이밍에 국내 개봉한 ‘시빌 워(Civil War)’는 미국에 내전이 벌어진다는 설정의 현실 고발 영화다. 2021년 의사당 점거 폭동에서 보듯, 두 쪽으로 쪼개진 미국의 분열상은 언제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까지 왔다. 그러나 미국엔 견고한 자기 방어 시스템이 존재한다. 나라의 중심을 잡는 엘리트 그룹, 이른바 ‘어른들’이 있고, 위기 앞에서 정파를 초월하는 정치인들이 있으며, 신뢰받는 사법부가 있다. 이 시스템의 힘으로 극단적 분열을 막고 충돌을 피해온 것이 미국 민주주의의 250년 역사다.

 

한국엔 ‘어른들’도 없고, 정치는 정파성만 득세하며, 사법부 신뢰는 약하다. 그래서 지금의 내전 같은 혼란상이 어떤 결말을 맞을지 더욱 두렵다.

 

-박정훈 논설실장, 조선일보(25-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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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과 경호처 유혈 충돌 때 與野는 사태 감당할 수 있나 

 

(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 공수처와 경찰의 윤석열 대통령 2차 체포영장 집행 시도가 임박한 가운데 10일 오전 차벽이 세워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정문 안에서 경호 인력이 이동하고 있다. 2025.1.10/뉴스1

 

공수처와 경찰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2차 체포영장 집행 준비에 착수했다. 경찰은 1000여 명에 달하는 인력 준비를 지시했다. 지난 3일 1차 집행 때보다 8배 늘어났다. 경찰은 1차 영장 집행을 막은 혐의로 박종준 경호처장을 소환조사했다. 자진 출석한 박 처장은 “현직 대통령 신분에 걸맞은 수사 절차가 진행돼야 한다”며 국가 기관들 간의 유혈 충돌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이 경호처장을 소환하고 경호처 관계자 26명의 신원 확인 요청을 하는 등 단계별 와해 작전에 나섰지만 대통령 관저 주변의 상황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경호처 직원 수백명이 대기 중이다. 버스 차벽과 쇠사슬로 관저 주변은 군사요새를 방불케 하고 있다. 탄핵 반대 시위대들도 모여들고 있다.

 

경찰과 경호처의 유혈 충돌 가능성이 커지고 있지만 정치권은 충돌을 부추기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은 공수처장에게 “경호처가 총을 갖고 덤비면 가슴을 열고 쏘라고 하라” “관을 들고 나오겠다는 결기를 보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이 영장 집행을 막겠다며 관저로 집결하더니, 지금은 수십 명의 원외 인사들까지 관저 주변을 지키고 있다.

 

최근 윤 대통령측은 법적 권한이 없는 공수처 조사는 거부하지만, 공수처가 구속 영장을 청구하거나 법원에 기소하면 이에는 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체포한다고 충돌할 필요 없이 구속영장을 청구해 법원 판단을 받으면 된다는 뜻이다. 또 내란특검에 대한 여야 합의가 이뤄지면 공수처 수사의 위법성 문제도 해결된다. 결국 유혈 충돌을 막을 수 있는 건 민주당과 국민의힘밖에 없다. 특검을 대선에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계산만 버리면 얼마든지 타협이 가능하다.

 

계엄과 탄핵, 영장 집행 충돌, 관저 부근 찬반 시위는 실시간으로 세계에 중계됐다. 이것만으로도 커다란 국가적 피해를 봤다. 만약 대통령 체포 시도 와중에 유혈 충돌로 사상자가 발생하는 사태가 벌어지면 국민적 갈등이 어떻게 번져나갈지 가늠하기 어렵다. 민주당이든, 국민의힘이든 이를 감당할 수 있나.

 

-조선일보(25-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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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골단’ 악몽이 누구에겐 추억이었나 

 

“백골단 10∼20명이 다가와 쓰러져 있는 우리를 U자형으로 에워싼 채 방패와 진압봉 구둣발로 구타했다. 전경의 욕설과 학생들의 비명소리가 뒤범벅됐다. 머리카락을 잡혀 꼼짝없이 끌려가는 학생도 있었다.” 1991년 5월 25일. 경찰은 노태우 정권 퇴진 시위에 나선 대학생들을 향해 다연발 최루탄을 발사했다. 서울의 한 좁은 골목에 학생들이 뒤엉켜 쓰러졌다. 숨 쉬기조차 어려운 그때 백골단의 무차별 구타가 이어졌다.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의 한 학생이 엎드려 쓰러진 채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누군가 “여학생이 죽었다”라고 외쳤다.

▷동아일보는 그해 스물다섯의 성균관대 학생 김귀정의 죽음을 이렇게 전한다. 그 한 달 전 명지대 학생 강경대가 백골단의 쇠파이프 구타에 목숨을 잃었다. 1996년 연세대 학생 노수석은 백골단의 ‘토끼몰이’ 진압 과정에서 숨을 거뒀다. 백골단은 하얀 헬멧에 청재킷 청바지를 입고 다리 보호대를 찼다. 몽둥이와 방패를 든 그들은 사과탄이라 부르는 최루탄을 던졌다. 방독면 뒤에 얼굴을 숨겼다. 1980∼1990년대 시위 진압을 위한 사복경찰 부대였던 그들은 군부 독재의 폭력적 공권력을 상징했다.

▷2000년대 들어 잊혔던 백골단 명칭이 그제 느닷없이 등장했다.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해온 40대 유튜버 김모 씨는 20∼30대 30여 명으로 구성된 백골단을 조직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들이 윤석열 대통령을 지키는 300명 민간 수비대의 핵심이자 훈련 조교라고 했다. 하얀 헬멧과 무릎보호대는 물론 ‘멸공봉’이라 부르는 붉은 경광봉을 갖췄고 방독면도 구비할 것이라고 했다. 왜 백골단이냐고 했더니 “국가비상사태에는 백골단처럼 강한 이미지도 나쁘지 않다”고 답했다고 한다. 자경단 역할을 한다고 했으니 여차하면 물리적 충돌도 불사하려 한 것이라 의심된다.

 

▷집권여당의 최고위원까지 지낸 김민전 의원은 ‘반공청년단’의 예하 부대로 활동한다는 이들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할 수 있도록 주선했다. 이들은 ‘백골(白骨)’을 연상시키는 하얀 헬멧을 쓴 채 회견장에 나타났다. 폭력적 공권력의 상징을 차용해 법을 무시하고 폭력을 써서라도 윤 대통령을 지키겠다는 일그러진 인식을 여당 국회의원이 나서서 부추긴 셈이다.

▷논란이 커지자 김 의원은 뒤늦게 “송구하다”며 기자회견을 주선한 사실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80년대 학번인 김 의원이 전두환 정권 시절 대학 캠퍼스에 수차례 진입한 백골단이 어떤 의미인지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철회 이유에 대해 백골단 명칭이 좌파에 공격 명분을 주는 표현이라는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란 취지의 변명을 하기도 했다. 끔찍했던 백골단 악몽이 김 의원에겐 추억이었나.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하는 그의 행태는 우리 사회가 맞닥뜨린 민주주의 퇴행의 쓰린 민낯이다.

 

-윤완준 논설위원, 동아일보(25-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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