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을 ‘세월호’ 만드는 데 꼭 필요하다는 희생자 얼굴과 이름]
[21세기 오두(五蠹·다섯 좀벌레)]
[비극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혈안이 된 사람들]
[핼러윈은 잘못이 없다]
[참사 4시간 전 “압사당할 것 같다”는 112 신고 무시한 경찰]
[젊은이들이 위험한 줄도 모르고 위험에 처한 상황]
‘이태원’을 ‘세월호’ 만드는 데 꼭 필요하다는 희생자 얼굴과 이름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10일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다시 촛불을 들고 해야겠느냐”고도 했다. 당 전략기획위원장은 민주연구원 부원장으로부터 ‘모든 수단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희생자 명단·사진·프로필을 확보해 추모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은 사진이 공개되자 “거부했다”고 했는데, 이 대표가 받아들인 것이다.
희생자 이름과 얼굴 사진은 개인 정보다. 민주당이 이를 얻기 위해 ‘모든 수단 방법을 동원’해야 하는 이유가 도대체 뭔가. 개인 정보는 유족이 동의하지 않으면 공개 자체가 심각한 인권침해다. 더구나 사망한 사람들이다. 대법원은 5·18 유공자 명단도 개인 정보란 이유로 공개하면 안 된다고 했다. 유공자 명단도 공개하면 안 되는데 참사 희생자 신상을 공개하라고 한다.
민주당은 세월호 때 희생자 명단이 공개됐다는 점을 내세운다. 당시는 해난 사고 특성상 시간이 지나면 유해를 수습해도 신원 확인이 어려웠다. 사고가 어느 정도 수습된 후에는 해경도 사망자는 성만 표기하고 실종자 명단은 비공개로 바꿨다. 이태원 참사는 이미 희생자 신원 파악이 다 됐고 장례를 끝낸 유족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희생자 사진 등을 요구하는 것은 세월호 추모 공간 같은 것을 만들려는 것이다. 참사 이후 희생자를 모욕하는 글과 영상이 퍼지는 상황에서 명단 공개는 2차 가해로 이어질 수 있다. 정의당 원내대표는 “정치권에서 영정과 명단 공개 이야기가 먼저 나오는 것은 슬픔에 빠진 유족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며 “올 2월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 때도 분향소에 영정과 위패 없이 조문했다”고 했다.
민주당은 세월호 이후 재난을 정략에 이용하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 지난 8월 집중호우 때는 대통령이 현장에 가지 않았다고 비난하고, 현장에 가자 “비 내리는데 다음에 가라”고 했다. 이태원 참사도 “청와대 이전 때문에 생긴 사고” “박원순 시장이 있었으면 없었을 일” 등 근거 없는 정략적 주장뿐이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대장동 수사에 맞불을 놓을 필요 때문에 더 도를 넘고 있다. 국회 제1당이 재난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보다 정략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 국민도 계속 속지는 않을 것이다.
-조선일보(22-11-11)-
______________
21세기 오두(五蠹·다섯 좀벌레)
[윤평중 칼럼]
최측근 간신, 어용 지식인, 혹세무민 일삼는 궤변가, 사이비 시민단체, 경제 범죄자
나라를 안에서 무너트리는 사회적 좀벌레 퇴치해야 국가 파멸 막을 수 있다
내우외환에도 리더의 영(令)이 서지 않을 때 나라는 위태롭다. ‘이태원 참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고군분투해도 민심이 요동치는 것은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날 이태원에 국가는 없었다’는 게 사실로 드러난 터에 재난과 안전 주무 부처의 장들이 정치적 책임을 피할 순 없다. 뿌리 깊은 나무는 폭풍우를 버티지만 좀먹은 나무는 작은 바람에도 넘어간다. 대통령 최측근이라는 이유로 신상필벌을 피한다면 국가라는 나무가 좀먹게 된다. 중국 전국시대 난세의 치국 원리를 밝힌 한비자(BC 280?~BC 233)는 ‘다섯 좀벌레’(五蠹·오두)가 나라를 무너트린다고 경고했다.
신음하는 국민 마음을 달래기는커녕 잇따른 망언으로 공분(公憤)을 부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대통령실 고위 인사들, 경찰 최고 지휘부는 한비자의 신랄한 표현으론 ‘환어자’(患御者·권력자의 최측근 간신)라는 ‘사회적 좀벌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땀 흘리고 희생하는 공직 윤리(汗馬之勞·한마지로)는 이들에겐 딴 나라 일이다. 민심을 아랑곳하지 않고 대통령 심기 경호와 육탄 방어로 권세와 국록을 누리는 자들이다. 동서고금, 보수·진보 정권 불문하고 간신들이 득세하는 나라엔 현군(賢君)이 없다.
한비자는 고대 인물이지만 그의 오두론은 시대와 이념을 넘어선 통찰을 보여준다. 한비자가 가장 준엄한 어조로 꾸짖는 사회적 해충의 두 부류는 ‘학자’(어용학자)와 ‘언고자’(言古者·어용 지식인과 당파적 변론가)다. 좌우 진영에 두루 퍼져 있는 학자와 언고자는 양심적 지식인이자 전문가임을 내세워 입만 열면 정의와 도덕, 역사와 국민을 외치지만 기실 사욕에 눈먼 권력 추구의 달인들이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논리를 뒤집고 혹세무민을 일삼는 궤변가들이다.
디지털 정보 혁명과 범람하는 SNS가 어용 지식인들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김어준 같은 선동가들은 정권 교체 후에도 언론 자유를 앞세워 음모론을 퍼트리고 ‘좌파 구루’로 행세하며 시민 세금으로 떼돈을 번다. 문재인 정권은 어용 언론인과 변론가들의 담론 권력에 주목해 자기들 편인 방송통신위원회와 언론·방송사의 지배권을 필사적으로 옹위했다. 가치 집단으로 위장한 사이비 학자와 지식인들의 이권 집단이 20대 대선 불복에 앞장서면서 나라를 심리적 내전 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대선 직후부터 대통령 탄핵을 부추겨온 이들이야말로 대한민국 헌정 체제를 좀먹는 오두가 아닐 수 없다.
‘대검자’(帶劍者)는 협객(俠客)인 척 정의를 외치지만 도당을 만들어 힘으로 세상을 어지럽혀 나라를 좀먹는다. 다중의 위력으로 법치주의를 무시하고 떼법으로 집단 이익을 관철하는 노조나 사이비 시민 단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재해석된다. 나아가 ‘상공지민’(商工之民)이라는 좀벌레는 권력 실세인 환어자와 결탁한 경제 범죄자들로 해석할 수 있다. 권력과 유착한 사기 행위로 서민들의 돈을 가로챈 라임펀드와 옵티머스가 전형적 사례다. 결국 간신, 어용 지식인과 궤변가, 사이비 정치 단체와 경제 범죄자들을 나라를 좀먹는 5대 해충이라고 질타한 한비자의 오두론은 촌철살인의 권력 비판이자 시대를 초월한 부패 고발장이다.
경제 위기와 전쟁의 먹구름만이 나라를 흔드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무능과 정치권의 음모를 부추겨 국가를 안에서부터 무너트리는 사회적 좀벌레들이 더욱 치명적이다. 나라를 좀먹는 해충을 퇴치하지 않고선 국가의 파멸을 피할 수 없다. 인간의 죽음을 정치 무기화해서 정적을 찌르는 흉기로 사용하려는 유혹은 사람을 정치적 야수로 만든다. 이태원 참사라는 인륜적 비극을 대통령 탄핵으로 몰고 가려는 책략가들은 국가를 좀먹는 오두들이다. 민주당과 진보 시민 단체들이 선거 승복이라는 민주주의 근본 규칙을 파괴하면서 한국 사회는 ‘만인이 만인에 대해 늑대가 되는 전쟁 상태’로 전락했다.
국정 최고 책임자인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를 당해 손이 부르트도록 애쓴 현장 실무자들만 꾸짖는 건 사리에 어긋난다. 취임 6개월을 맞은 윤 대통령은 바른 인사와 정책, 공감과 소통의 리더십으로 국민과 고통을 함께해야 한다. 이태원 참사에 아파하는 순정(純正)한 민심을 ‘21세기 오두’를 물리칠 시민 협약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일상의 실천으로 한국적 위험 사회와 싸우는 게 살아남은 자의 의무다. 절망의 바닥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건 연민과 연대, 그리고 책임 윤리다.
-윤평중 한신대 명예교수·정치철학, 조선일보(22-11-11)-
______________
비극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혈안이 된 사람들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 인근에서 촛불전환행동 주최로 열린 윤석열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제12차 촛불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조국 백서’ 저자 등이 이끄는 ‘촛불행동’이 이번 주말(5일) 이태원 참사 애도를 내건 도심 집회를 열겠다고 했다. 이 단체는 대선 직후인 올 4월 출범해 지속적으로 대통령 퇴진 등을 요구해온 단체다. 이른바 ‘조국 백서’를 집필한 김민웅 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등이 상임 대표를 맡고 있다. 비극적 참사가 발생하자 기다렸다는 듯 반정부 선동을 본격화하겠다고 나선 것이나 다름없다.
이 단체는 최근 주말마다 대통령 퇴진, 김건희 여사 특검을 요구하며 도심 집회를 벌였다. 그런데 갑자기 구호를 추모로 바꾸어 대규모 집회를 이어가겠다고 한다. 더구나 이 단체는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난달 29일 오후 5시부터 청계광장 부근에서 수만 명이 참가한 반정부 집회를 가졌다. 이런 대규모 집회로 경찰력을 분산시킨 도의적 책임도 있는 세력이기도 하다.
방송인 김어준씨는 라디오 방송에서 “이 사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하는데, 아니다. 이건 정치 문제가 맞는다”고 주장했다. 이태원 참사는 안전 문제이고 인파 관리 문제인데 어떻게 정치 문제가 우선일 수 있는가. 김씨는 “2017년인가 2018년인가 (이태원 핼러윈 축제 때) 분명히 일방통행이었다”고 했지만, 경찰과 해당 구청은 지금까지 그런 적이 없다고 한다. 김씨의 왜곡 주장 사례는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다.
이들에게, 지금은 희생자를 애도하고 차분하게 사고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을 논의할 때라고 말해 봐야 소용없을 것이다. 모든 것을 정치에 이용하려고 혈안이 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은 이들이 어떤 속성을 갖고 있는지 이제 안다. 국민을 선동하려는 시도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조선일보(22-11-02)-
______________
핼러윈은 잘못이 없다
[朝鮮칼럼]
‘서양 귀신 놀음’ 아니라 세계 청년들 즐기는 글로벌 대중문화 축제
안전을 정치에 이용하는 ‘정치의 망령’ 벗어나야 제대로 대책 마련할 수 있어

10월 29일 오후 핼러윈 데이를 앞두고 서울 용산구 이태원 거리에 나온 젊은이들이 각종 복장을 하고 축제를 즐기고 있다. /이태경 기자
‘국적 불명 서양 귀신 놀음이 그렇게 좋더냐?’ 지난 29일 발생한 이태원 핼러윈 참사,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전례를 찾기 힘든 비극 앞에 온 국민이 충격에 빠져 애도의 시간을 보내는 중, 일부 네티즌들이 내뱉은 비뚤어진 소리다.
나는 그런 발언이 핼러윈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한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날의 핼러윈은 중세 유럽 켈트족의 겨울맞이 축제 서우인, 고대 로마의 페랄리아, 심지어는 멕시코와 라틴아메리카에서 매년 10월 31일 기념하는 ‘망자의 날’과 같은 날짜지만 다른 날이다. 오늘날의 핼러윈은 특정 국가나 종교권의 전통 명절에서 벗어났다. 전 세계 청년들이 공유하는 글로벌 대중문화 축제가 되어 있다.
작년 핼러윈 시즌을 떠올려 보자.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를 통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자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오징어 게임’ 속 등장인물처럼 분장을 하고 거리에 나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지난 10월 8일 조선일보와 인터뷰한 미국의 팝아티스트 맷 곤덱이 말한 것처럼, 이제 어린이들은 성화(聖畫)가 아니라 만화(漫畫)를 보며 자란다. 오늘날의 핼러윈은 종교가 아니라 대중문화가 중심이 된 새로운 유형의 축제라고 보아야 한다.
핼러윈 참사를 두고 ‘서양 귀신’ 운운하는 게 옳지 않은 이유다. 희생자들, 현장에 운집한 이들은 대부분 20대를 전후한 청년들이었다. 이들은 8년 전 학생 신분으로 세월호 참사를 목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로 청춘을 ‘록다운’당한 세대다. 3년 만에 되찾은 거리로 뛰쳐나온 그들을 누가 손가락질할 수 있다는 말인가.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부상자의 쾌유를 빌며, 청년들을 위로하면서, 사고의 원인을 파악하여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온 힘을 쏟아야 할 일이다.
2022년 대한민국에서 이런 참사가 벌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혹자는 수많은 인파가 쏟아져 나올 것이 예상 가능했지만 경찰 등 통제 인원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현장 상황을 찍은 동영상 등을 근거로 누군가 사고 발생 당시 ‘밀어, 밀어’라고 소리치고 있었음을 지적하며, 그런 위험천만한 행동을 저지른 상식 이하의 시민의식을 원인으로 지목할 수도 있다. 정권이 바뀐 후로 매주 주말마다 서울 요지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집회와 시위 때문에 경찰력이 분산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지적하는 목소리에도 나름의 설득력이 있다.
문제는 재난과 참사에 대한 우리 사회의 논의에 정치가 과도하게 개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 발생 직후인 지난 30일, 남영희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소셜미디어에 올렸던 글만 봐도 그렇다. “백번 양보해도 이 모든 원인은 용산 국방부 대통령실로 집중된 경호 인력 탓”이며 “여전히 서초동 아크로비스타에서 출퇴근하는 희귀한 대통령 윤석열 때문”이라는 그의 게시물은, 너무도 부적절하고 황당한 나머지 민주당 지지자들에게도 비난받고 현재 내려진 상태다.
바로 저런 태도가 우리 사회를 안전과 더욱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자.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에 ‘안전’을 외치는 목소리가 부족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안전 때문에 눈물 짓는 국민이 단 한 명도 없이 만들겠습니다.” 2017년 4월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생명안전의 눈’ 조형물에 적은 다짐의 말이다. 대통령이 된 그는 행정자치부와 국민안전처를 결합해 행정안전부를 신설하기까지 했다. 문 전 대통령 스스로가 앞장서 세월호를 국민 안전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대한조선학회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나서서 설명해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현실성 없는 외부충돌설을 고수하는 중이다. 세월호 참사 음모론으로 영화를 만들어 한몫 챙긴 인터넷 언론인 김어준은 지금도 매일 아침 교통방송 마이크를 잡고 있다. 재난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재난의 정치화’를 넘어, 이제는 정치 그 자체가 재난이 되는 ‘정치의 재난화’가 벌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핼러윈은 죄가 없다. 우리 사회가 이런 비극을 겪는 원인은 ‘서양 귀신’ 탓이 아니다. ‘정치의 망령’ 때문이다. 안전을 정치 논리로 끌고 가는 일은 두 번 다시 벌어지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원인을 올바로 파악하고 장기적으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 희생자와 그 가족들께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조선일보(22-11-02)-
________________
참사 4시간 전 “압사당할 것 같다”는 112 신고 무시한 경찰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3시간 전 이태원 카페거리 인파 모습. /이태경 기자
윤희근 경찰청장이 1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사고가 발생하기 직전 현장의 심각성을 알리는 112 신고가 다수 있었던 것을 확인했다”며 “이 신고를 처리하는 현장 대응이 미흡했다”고 했다. 사고 당일인 지난 29일 오후 6시무렵부터 사고가 발생한 밤 10시 15분쯤까지 이태원 일대의 안전 문제와 관련한 112 신고가 11건 접수됐지만 ‘일반적인 불편 신고’로 판단해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고 내용엔 당시의 위급한 상황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경찰이 이날 공개한 신고 내용을 보면 오후 6시 34분 “압사당할 것 같다”는 첫 신고가 들어온 이후 “사람들이 몰려 쓰러진다” “통제가 안 된다” “아수라장이다” “대형 사고 일보 직전”이란 신고가 연이어 접수됐다. 사고 4시간 전부터 사고 위험을 알리는 신고가 들어왔는데 사실상 방치한 것이다. 10만여 명이 몰린 이날 이태원 일대엔 137명의 경찰이 있었지만 그나마 대부분 범죄 예방 활동에 집중돼 있었다. 너무 안일하게 대응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경찰에 신고된 11건 중 6건에 대해선 일선 경찰이 현장에도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사고가 임박한 밤 9시 이후 접수된 7건의 신고 중 4건도 경찰이 현장에 나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마지막 신고인 밤 10시11분에는 신고자의 목소리 뒤로 ‘아’ 하는 비명 소리도 들렸다. 경찰이 소극적으로 대응해 피해를 키웠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참사의 원인을 경찰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다. 이태원을 관할하는 서울 용산구도 이태원 축제가 ‘주최자 없는 행사’라는 이유로 별다른 안전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법 규정만을 따진 것이다. 용산구가 적극적으로 안전 대책을 세웠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참사 당일 지하철 이태원역과 인근 녹사평역 승하차 인원은 16만여 명으로 지난해 핼러윈 때보다 배 이상 많았다. 이 시간에 이태원역 지하철 무정차 통과 조치만 했어도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이태원 상인회 측은 부인하지만 경찰은 참사 사흘 전 구청, 상인회 측과 간담회를 했을 때 상인회 측이 과도한 경찰력 배치 자제를 요청했다고 말하고 있다.
대형 참사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 특정 기관을 희생양 만들듯이 비난하면 사고의 진상을 제대로 밝히기 어렵다. 윤희근 청장은 “독립적인 특별기구를 설치해 투명하고 엄정하게 사안의 진상을 밝히겠다”고 했다. 경찰만이 아니라 정부와 서울시 차원에서도 엄정하게 조사해 사회 전반의 안전 시스템을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조선일보(22-11-02)-
_______________
젊은이들이 위험한 줄도 모르고 위험에 처한 상황
[송평인 칼럼]
일반인에게도 느껴지던 이상한 조짐, 장관은 감지도 못하고 부적절 발언만
청춘들 위험 모르고 위험한 데 간 데는 경고 못한 언론 잘못도 있어 죄송할 뿐
지난주 수요일 삼청동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돌아왔다. 돌아올 때 보니 삼청동 길에 차량이 거의 서다시피 차 있고 건널목에는 보행신호 때마다 무더기로 사람들이 움직였다. 봄이나 가을에 이쪽이 붐비는 건 사실이지만 올해처럼 붐비는 건 처음 봤다. 코로나가 끝나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주말인 토요일 오전에 친구들을 만나 창덕궁을 둘러보고 인사동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온 아내로부터 ‘사람이, 사람이 넘쳐서 혼났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아무리 코로나가 끝났다고 하지만 그 정도인가 싶었다.
그날 밤 9시 반쯤 고교 동창이 카톡방에 이태원 해밀톤호텔 앞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동영상을 올렸다. 전철역을 빠져나오는 데만 20분이 걸렸다는 글도 달렸다. ‘그 나이에 웬 핼러윈’이라고만 여기고 얼마 안 지나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안전 안내 문자에 이태원 사고 소식이 수북이 쌓였다. 뉴스를 검색해 보니 압사 사고로 149명이 사망했다는 기사가 떠 있었다.
친구의 안위가 걱정돼 ‘괜찮니’라는 카톡을 보낸 것이 일요일 오전 6시 반이다. 몇 번이나 카톡을 열어봤는데도 답이 없었다. 1시간 반 만에 “난 구경하다가 밤 11시 전에 피곤해서 집에 왔다. 이런 사고가 날 줄은…”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안도하는 친구들의 글이 앞다퉈 올라왔다.
지난 한 주간 사람들이 유난히 많이 몰려다니는 것이 눈에 띄고 귀에 들리는 게 나에게도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그러나 막연히 심상치 않다는 느낌으로 끝나면 그저 일반인이다. 뭔가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큰일이 날 수도 있겠다 생각하고 움직여야 안전 전문가, 안전 책임자라고 할 수 있다.
사고 직후 예년과 비교해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인 것도 아니고, 경찰을 사전 배치했어도 사고를 막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발언은 부적절했다. 지하철 이태원역 승객으로 계산한 예년 수준은 10만 명으로 이번에는 13만 명으로 늘었다. 단순히 30%가 아니라 이미 한계치에 도달한 숫자에서 30%가 는 것으로 죽음의 밀도를 가진 30%다.
경찰을 사전 배치했어도 사고를 막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말은 일본이나 홍콩의 경찰이 핼러윈 축제에서 인파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몰랐다는 무지의 고백이나 다름없다. 그런 말을 해놓고 나니 인파가 30% 느는 데 따라 경찰도 40% 늘렸다는 다음 날의 해명은 궁지에 몰려 하는 숫자놀음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실제로도 증원된 경찰 인력은 마약이나 성범죄 단속을 위해 동원된 것으로 인파 관리와는 상관없었다.
사실 경찰력 배치를 결정하는 책임자가 이태원 핼러윈 인파가 30%가량 늘 것이라고 예상한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30%는 지하철 승객 집계로 사고 이후에야 나왔다. 사전에 예상 못한 것은 물론이고 사후까지도 인파가 예년과 비슷했다는 잘못된 판단이 나오게 한 경찰 책임자들이다. 그 현실감이 일반인이 거리를 오가며 느끼는 감만도 못했다. 자신들이 예방 계획을 잘못 짜놓고는 112신고센터의 대응 등을 철저히 조사하겠다며 책임을 아래로 돌리기 시작했다.
주최자가 있는 행사냐 아니냐를 구별하는 해명을 듣자면 화가 치민다. 이태원 핼러윈 축제는 주최자가 없어도 정례적으로 해온 것이고 인파가 예상이 됐다. 주최자가 없는 행사라도 안전을 관리하라고 경찰이 있는 것이다.
신설된 경찰국이 경찰의 독립을 위협하는 조직이 아니라 경찰을 지원하는 조직이라면 우리 사회가 접해 보지 못한 사고를 연구하고 어떻게 예방할지 참조 가능한 사례를 수집해서 일선에 전파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장관이 선동을 막는다며 부적절한 해명을 하는 걸 방치하거나 방조한 것이 고작이었다.
세월호 사고 이후 다시 자책(自責)의 시간이다. 언론은 이태원 압사 사고가 난 후 한강 야시장에 13만 명이 몰리고 한강 불꽃축제에 100만 명이 몰린 것이 전조라고 보도했지만 사고 전에는 축제의 분위기 속에서만 보도했지, 진지하게 안전의 문제를 경고하지 못했다. 젊은이들이 위험한 줄도 모르고 위험에 처한 이 기막힌 상황이 언론인의 한 사람인 나에게도 자책감을 갖게 한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청춘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송평인 논설위원, 동아일보(22-11-02)-
_______________
○ ‘이태원 참사’ 정치 이슈화와 희생자 2차 가해에 “NO” 하는 사람들. 지금은 마음속에 국화 한 송이 내려 놓을 때.
○ 與 “가짜 뉴스” 野 “무능한 정부의 人災”. 짧은 추모의 시간, 길고 길어질 정쟁의 시간.
-팔면봉, 조선일보(22-11-02)-
==========================
'[세상돌아가는 이야기.. ] > [時事-萬物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화석연료 시대 종말 앞당긴 푸틴] [..푸틴은 겨울을 기다리고 있다] (0) | 2022.11.11 |
|---|---|
| [대통령실의 감정적이고 단선적인 MBC 대응]....[대통령 회견].... (0) | 2022.11.11 |
| [한국계 美 의원 파워] [ ..‘아메리카 퍼스트’ 대비 급하다] (0) | 2022.11.11 |
| [대통령실은 민심이 안 들리는 산간벽지인가] [“웃기고 있네”].... (2) | 2022.11.11 |
| [“안보불감증이라 다행이다”] [ ..북한의 ‘핵보유국 행세’] .... (0) | 2022.1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