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불감증이라 다행이다”]
[깡패국가 북한의 ‘핵보유국 행세’]
[미사일보다 더 위험한 전방의 구멍]
“안보불감증이라 다행이다”
이태원 참사로 온 국민이 충격에 빠져 있던 지난 2일 속초 앞바다에 북한의 탄도미사일이 떨어졌다. 울릉도에는 공습경보도 발령됐다. 6·25전쟁 이후 처음으로 북한은 북방한계선(NLL)을 넘겨 미사일을 쐈다. 하루에 25발 난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의 동요는 없었다. 정치권도 차분했다. 70여 년간 겪은 적 없던 도발에도 한국 사회는 놀랍도록 침착했다.

지난 2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북한의 동해상 탄도미사일 발사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뉴스1
북한의 최근 도발은 여러 의미에서 이전과는 다르다. 북한은 그동안 한국에 대형 사건이 발생하면 내부 분열을 부추기려는 의도로 굳이 도발을 하지 않았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도 북한은 이례적으로 조용했다. 이번엔 달랐다. 김정은은 이태원 참사 와중에도 막무가내식 도발을 감행했다. 미국의 항공모함이 동해에서 훈련을 해도, 스텔스 전투기를 비롯한 한미 공군 전투기 수백 대가 훈련을 해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기존 틀을 깬 도발로 우리 사회를 총체적으로 혼란하게 하려는 의도가 명백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심각한 안보 불감증은 북한의 이런 의도와 전혀 다른 결과를 낳았다. 북한이 노린 미사일로 인한 사회 혼란은 없었다. 사람들 사이에선 “북한의 도발은 심각해 보인다”면서도 “어쨌든 당장 피해를 입은 건 아니잖나”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국민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안보 불감증은 매한가지였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지난 일주일간 최고위원회의에서 북한의 도발을 딱 한 번 언급했다. 국민의힘은 북한 미사일을 규탄하는 메시지를 비교적 많이 냈지만 관성적 수사로만 그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야는 국회 국방위에서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의결했지만 마치 면피용 숙제를 하는 느낌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군이 보인 모습은 미덥지 못했다. 북한 도발에 맞대응해 전투기로 미사일 3발을 쐈는데, 이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해 쏘려 했던 미사일 대신 다른 것을 발사했다. 충남 보령 대천사격장에서 개최한 ‘2022년 유도탄 사격대회’에서는 대공무기인 천궁이 비행 중 폭발했다. 지난달 북한의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발사에 대응해 쏜 ‘현무-2C’ 탄도미사일은 반대로 날아가 우리 군부대를 덮쳤다. 이쯤 되니 정치권과 군에서는 “국민의 안보 불감증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자조 섞인 얘기까지 나온다.
북한이 의도한 대로 우리 국민이 불안해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북한의 의도에 말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국민의 안보 불감증을 반겨야 하는 상황은 더욱 씁쓸하다. 이태원 참사 때문에 당장 피해를 입지 않은 북한발 안보 참사는 덜 중요해 보였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북한이 또다시 연평도 포격이나 천안함 폭침 같은 도발에 나선다면 그 피해는 돌이킬 수 없다. 그때의 희생자는 전방을 지키는 우리 젊은 장병들이 될 것이다.
-양승식 기자, 조선일보(22-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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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패국가 북한의 ‘핵보유국 행세’
[오늘과 내일]
겁 없고 간 커진 김정은의 도발 몰아치기
韓美 틈새 없는 군사-외교 억제전략 짜야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감행하고 일본 열도 너머로 미사일을 쏘아 올리면서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2017년 9월 23일 밤. 미군 B1-B 폭격기 2대가 호위 전투기들과 공중급유기, 특수전기 등 10여 대를 이끌고 동해로 진입했다. 폭격기 편대는 북방한계선(NLL)을 통과한 뒤 그대로 북상해 풍계리 근처까지 동쪽 공해상을 2시간 가까이 휘젓고 다녔다. 미군의 공개 작전으론 6·25전쟁 이후 처음으로 NLL을 넘은 것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북한 쪽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폭격기 편대가 떼로 몰려와 북한 영공을 넘보는 상황이었는데도 전투기 대응 출격은커녕 레이더 조준조차 없었다. 북한 방공망이 작동하지 않았거나 그 위력에 놀라 그저 지켜만 봤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북한은 뒤늦게 사실상 ‘선전포고’라고 온갖 비난을 쏟아내면서도 이후 두 달 넘게 미사일 도발을 멈췄다.
북한은 지난주 한바탕 도발을 벌인 뒤 ‘순항미사일 2발을 울산 앞바다에 타격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미 정찰자산에 전혀 포착되지 않은 터라 상투적 기만전술이거나 시도했더라도 실패한 작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이런 주장을 내놓은 데는 눈 뜨고 당했던 5년 전의 치욕을 씻어야 한다는 북한군 수뇌부의 중압감이 작용했을 것이다.
북한의 도발 공세는 5년 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한미 연합훈련을 맹비난하면서도 정작 미군 전략자산이 전개되면 숨죽이던 과거와 달리 최근엔 ‘보복’ 운운하며 겁 없고 간 큰 도발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런 변화는 무엇보다 핵 보유의 자신감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과거 도발이 개발·시험 차원이었다면 이젠 실전에의 적용, ‘전술핵 운용’ 차원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북한은 “감히 우리를…”이라며 실제 핵보유국처럼 거침없이 행동하고 있다.
격화된 신냉전 정세도 북한의 객기를 부추겼다. 북한은 공공연히 중국 러시아와의 “전략 전술적 협동”을 들먹인다. 잇단 도발에도 대북 추가 제재는커녕 기존 제재조차 무력해지고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해도 중-러는 규탄을 할지언정 제재는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이제 굳이 핵실험 카드까지 쓸 필요가 있을지 주판알을 튕기고 있는 형국이다.
과거 북한은 긴장을 최고조로 높인 뒤 대화 국면으로 극적인 전환을 꾀하곤 했다. 그런 도발-협상 패턴에 익숙한 한미 조야의 일각에선 도발의 정점 이후를 대비하자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워싱턴에서 북한과의 군비통제 협상론이 나오는 것도 그와 무관치 않다. 비핵화는 물 건너갔고 핵보유라는 현실을 외면할 수만은 없지 않느냐는 현실론이다.
하지만 북한은 불법으로 핵무장한, 그것도 죄질이 매우 나쁜 깡패국가다.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밖에서 핵을 보유한 다른 탈법국가와 달리 핵개발을 위해 NPT에 가입했다가 불법행위가 들키자 탈퇴한 유일한 나라다. 깡패를 신사로 대접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커지는 위험을 마냥 방치할 수도 없다.
앞으로 북한을 다루는 일은 길고 고단한 여정이 될 것이다. 당장은 북한이 핵 도박을 벌이지 못하도록 군사적 억제력을 과시하면서 그 생존능력을 끊임없이 시험해 지쳐 쓰러지거나 제풀에 꺾여 대화에 나오도록 만들어야 한다. 억제(deterrence)의 두 축은 위협(threat)과 보장(assurance)이다. 군사적 경고와 함께 외교적 노력도 함께 가야 한다. 한미 간 엇박자가 없도록 공동의 대북 억제전략을 정교하게 다듬어야 하는 이유다.
-이철희 논설위원, 동아일보(22-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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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보다 더 위험한 전방의 구멍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

지난달 12일 장거리 전략순항미사일 시험 발사를 현장에서 지켜보던 김정은이 북한 간부들과 함께 박수를 치며 웃고 있다. 사진 출처 노동신문
북한이 한미 연합 공중훈련 ‘비질런트 스톰’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2일부터 나흘 동안 미사일 35발을 쐈다. 단기간에 이렇게 많은 미사일을 쏜 것도 이례적이거니와 북방한계선(NLL)을 넘겨 미사일을 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이런 북한의 반응에서 강력하게 복원된 한미 연합훈련에 절대 기죽지 않겠다는 결기가 엿보이는 것과 동시에 신경질적인 짜증마저 읽힌다.
매뉴얼대로라면 한미 연합군이 공중 훈련을 하면서 비행기를 100대 띄우면 북한도 최소 동수의 비행기가 떠 맞대응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원칙은 언제부터인가 사라졌다. 북한의 경제력으론 맞대응할 능력을 상실한 것이다. 공중 훈련뿐만 다른 훈련도 마찬가지다. 연료난도 문제지만 고물 장비들이 훈련하다가 손실되면 보충할 능력도 없다.
그러니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응은 남쪽에서 어떤 훈련을 해도 미사일이든 포든 계속 쏘는 것뿐이다. 그런데 쏘는 것도 결국 소모다. 인건비가 거의 공짜인 북한의 미사일 생산단가를 우리 식으로 계산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렇지만 구형 스커드 미사일과는 달리 명중률이 정확한 최신 미사일은 비싼 전자부품 덩어리다. 대북 제재와 코로나로 미사일에 쓰일 반도체를 매우 어렵게 구입해야 하는 북한으로선 미사일 발사도 큰 부담이다.
특히 끊임없이 지형을 대조하며 날아가는 순항미사일은 원리상 무인기라 할 수 있는데, 전자부품이 더 많이 든다. 2017년 한국에서 자주 발견됐던 북한의 조잡한 무인기를 떠올린다면 최근 몇 년 사이에 북한이 순항미사일을 개발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긴 하다. 하지만 반도체 수급 여건상 생산 수량은 극히 제한됐을 것이다. 이런 비싼 순항미사일을 2발이나 울산 앞바다로 쐈다는데 합참이 부인해버렸으니 북한은 알아주지 않아 섭섭한 생각마저 들지 모른다. 물론 과거 북한 행태로 보면 순항미사일을 쐈다는 말을 믿기도 어렵다.
어쨌든 북한 형편에서 나흘 새 미사일을 35발이나 쐈으면 엄청난 지출을 한 셈이다. 그런데 이번에 한미 훈련에 무리하게 대응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미의 강력한 공군력이 북한을 급습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1990년대부터 2000년 초반까지 평북 창성의 김정일 특각을 지켰던 전직 974부대원의 증언에 따르면 한국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이 시작되면 김정일은 늘 가족을 데리고 창성으로 들어와 지냈다고 한다. 이곳은 중국과 인접해 폭격이 어렵고, 여차하면 보트를 타고 순식간에 중국으로 도망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이 핵을 보유한 뒤로는 이런 걱정은 크게 덜었다고 볼 수 있다. 핵이 없을 때도 공격하지 않았는데, 핵이 있는 지금 굳이 공격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또 경제가 거덜 난 북한을 점령해 2000만 북한 주민을 먹여 살리겠다는 의지를 가진 정치인도 없다. 이런 사실은 김정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선제공격을 받을 두려움은 과거보다 훨씬 적을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이 최근 대규모 군사훈련과 미사일 발사를 강행한 이유는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도도 있지만 한편으론 북한도 군사력을 점검할 시점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2018년 남북이 9·19군사합의를 채택한 이후 우리도 훈련을 거의 못 했지만 북한 역시 마찬가지다. 훈련을 하지 않는 군대는 군대가 아니다. 김정은 역시 지난 4년 동안 북한군이 얼마나 해이해졌는지, 싸울 준비는 어느 정도 돼 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미사일 부대 역시 점검이 필수다. 유사시 제공권을 단시간에 빼앗길 것이 뻔하기에 북한 미사일 부대가 쏠 수 있는 미사일 수량은 극히 한정적이다. 그러니 초기 몇 발을 불량 없이 확실히 쏠 수 있을지 파악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북한이 미사일을 좀 쐈다고 도발로 단정해 겁먹을 필요는 없다. 가뜩이나 없는 미사일을 바다에 스스로 버리는데 우리도 나쁠 것은 없다. 그렇지만 다른 도발의 가능성은 여전히 대비해야 한다. 가령 2018년 비무장지대 최전방 감시초소(GP)를 철수할 때 북한은 160여 개 중에 11개를 철수했지만 우리는 60여 개 중에 11개를 철수했다. 우리의 구멍이 훨씬 더 커진 것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몇 발 쏘는지에 신경을 쓰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당장 9·19군사합의로 구멍이 뚫린 전방부터 점검하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인다.
-주성하 기자, 동아일보(22-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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