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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 신사] [일본은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

뚝섬 2022. 11. 9. 11:40

[야스쿠니 신사]

[일본은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

 

 

 

야스쿠니 신사

 

전사자 기린다더니… 2차 대전 'A급 전범'도 포함

 

①야스쿠니 신사는 제2차 세계대전 전범(戰犯·전쟁 범죄인)들이 합사(合祀·혼령을 한곳에 모아 제사를 지냄)된 곳이에요. ②과거 ‘동경초혼사(東京招魂社)’의 모습. ③태평양전쟁을 주도한 A급 전범 도조 히데키. /위키피디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달 17일 도쿄 지요다구에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貢物)을 보냈어요. 이날 시작되는 추계 예대제(제사)를 맞아 '자민당 총재 기시다 후미오' 이름으로 '마사카키(제단에 바치는 상록수의 일종)'라고 불리는 공물을 보낸 것입니다.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전보장담당상과 아키바 겐야 부흥상은 신사를 직접 방문해 참배했대요.

참배(參拜)란 죽은 사람을 기리는 곳에서 추모의 뜻을 나타내는 것을 의미해요. 야스쿠니 신사는 제2차 세계대전 전범(戰犯·전쟁 범죄인)들이 합사(合祀·혼령을 한곳에 모아 제사를 지냄)된 곳이에요. 이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희생자가 나왔기 때문에,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일본 정부의 행동에 단호히 대응하거나 항의하곤 합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이를 종교적 행위로 간주하며 선을 긋고 있는데요. 야스쿠니 신사가 어떤 곳인지, 어떤 역사를 갖고 있는지 알아볼게요.

숙청당한 혼에 제사 지내던 곳

신사란 본래 일본 고유 민족 신앙인 신도(神道)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을 의미해요. 고대 일본인들은 자연물에 정령(精靈)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했고, 그에 따라 숭배하는 신도 매우 다양하고 그 수도 굉장히 많았어요. 이렇듯 처음에 신도는 주로 자연물을 숭배하는 신앙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선조(먼 윗대의 조상), 즉 사람을 신으로 여기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신을 숭배하기 위해 신성하다고 여긴 지역에 나무를 심고 울타리를 둘렀죠. 이것이 발전하여 신사가 됐습니다. 현재 일본에는 공식적인 집계로만 약 8만5000개 이상의 신사가 있다고 해요.

1869년 건립된 야스쿠니 신사의 원래 이름은 '동경초혼사(東京招魂社)'였어요. 여기에서 동경은 도쿄를 의미하고, 초혼은 '혼을 불러온다'는 의미예요. 신사가 만들어질 당시 일본은 에도 막부 말기 시대였어요. 이 무렵 서구 열강의 위협에 직면해 있던 일본은 개항을 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막부는 두 개의 세력으로 나뉘게 돼요. 막부를 옹호하는 개항파와 막부 타도를 외치는 존왕양이파(尊王攘夷派·양이파)로 나뉘어 대립하게 된 거예요. 이들 사이의 대립은 유혈 전쟁으로 이어질 정도였지요.

그러던 중인 1858년 개항파는 대대적인 반대파 숙청을 단행했어요. 이때 조슈번(에도 시대 큰 경제력을 갖췄던 지역)의 번사(통치자)였던 요시다 쇼인을 비롯해 8명이 처형당하고, 100여 명 양이파가 귀양길에 올랐어요. 이 사건 후 양이파 측은 희생자에 대한 명예 회복 운동을 전개했고, 그 결과 1862년 일왕은 조슈번의 요청을 받아들여 죽은 자들을 순국선열로 보아야 한다는 칙문(일왕이 내리는 문서)을 내리게 됩니다.

이에 막부는 어쩔 수 없이 연루자를 사면하고 사형당한 자들 명예를 회복시켜줬어요. 그 과정에서 최초의 초혼제(죽은 사람의 혼령을 위로하는 제사)가 실시됐고, 메이지 유신으로 막부가 무너진 이후에는 이들을 숭배하는 동경초혼사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후 초혼이라는 개념은 일본 내에서 점차 퍼져 전국 각지에 48곳에 이르는 초혼사가 세워지게 되는데요. 그중 동경초혼사는 각지에 흩어져 있는 초혼사의 중심지가 됐습니다.

일왕 위해 죽은 전사자까지 확장

1879년 동경초혼사는 야스쿠니 신사라는 명칭으로 바뀌었어요. 야스쿠니(靖國)란 용어는 본래 고대 중국의 사서인 '춘추' 좌씨전에 나오는 말로, '나라를 안정시킨다' '나라를 지킨다'는 뜻인데요. 그러면서 야스쿠니 신사는 일왕을 위해 싸우다 전쟁터에서 죽은 전사자를 "나라를 지켰다"며 신으로 섬기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야스쿠니 신사에서는 에도 막부 말기 내전뿐 아니라 일본이 벌인 청일전쟁·러일전쟁·만주사변·중일전쟁·태평양전쟁 등에서 죽은 군인 모두를 신으로 숭배하게 됐어요. 문제는 이런 일본군 전사자 중에는 일본 제국주의와 식민 지배에 대항해 일어난 각국 독립운동을 탄압했던 사람이 많다는 점이에요.

일본은 침략 전쟁을 확대해 가면서 야스쿠니 신사의 국가적인 성격을 강화했고, 국민을 결속시키는 구심점 역할로 활용했어요. 야스쿠니 신사 합사제에 일왕이 참석하면 전국에 라디오로 이 과정이 실황 중계되기도 했지요. 매년 1회 열리던 합사제는 중일전쟁 등 중국과의 전면전으로 전사자 수가 급격히 늘어나며 1938년부터 두 차례로 늘어났어요. 지금도 매년 4월과 10월 두 번 제사를 지내고 있고요.

침략 전쟁 미화한다는 비판 나와

일본은 2차 대전 패전 이후 연합군최고사령부의 통치를 받았어요. 연합군최고사령부는 전후 개혁을 추진하며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발표했어요. 그러면서 야스쿠니 신사의 제사는 국가적 성격을 상실하게 됩니다.

하지만 1951년 연합국이 일본과 맺은 평화조약인 대일강화조약(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의해 연합군최고사령부 통치가 끝나면서 일본은 주권을 회복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신도와 신사에 대한 엄격한 통제 정책도 점차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개인 혹은 민간단체가 전사자 위령제나 장례를 행할 때, 국가공무원도 배석해 조의를 표할 수 있게 됐죠.

그런데 1978년 야스쿠니 신사가 'A급 전범'을 신사에 합사하며 문제가 커졌어요. A급 전범이란 2차 대전 이후 전승국이 패전국인 일본을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에서 침략 전쟁을 주도했던 죄로 유죄 판결을 내렸던 전쟁 범죄인을 가리켜요. 그중 14명이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됐는데, 여기에는 태평양전쟁을 주도한 당시 총리 도조 히데키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합사를 찬성했던 사람들은 "'A급 전범'이라는 것은 전승국이 일방적으로 지정한 것이고, 이들 또한 전쟁의 희생자였기 때문에 범죄인이 아닌 전몰자(전장에서 싸우다 죽은 사람)로 인정해 합사한 것"이라고 주장했어요.

A급 전범 합사도 문제였지만, 이후 일본 총리들이 신사에 참배하며 국제적인 문제가 됐습니다. 1985년 8월 15일,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가 총리 자격으로는 처음으로 공식 참배를 했어요. 주변 국가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헌법에 위배되는 활동이라고 볼 수 없다"고 대응했죠.

16년이 흐른 후 2001년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2013년에는 아베 전 총리가 임기 시작과 함께 총리 자격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며 일본과 주변 국가 간의 갈등은 계속됐습니다. 전범을 참배하는 행위는 침략 전쟁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미화하기까지 하는 행위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조선인과 대만인도 합사해]

야스쿠니 신사의 또 다른 문제는 이곳에 조선인과 대만인도 합사돼 있다는 거예요. 현재 246만이 넘는 신이 모셔져 있는데, 여기에는 약 2만1000명의 한국인과 약 2만7000명의 대만인도 있어요. 야스쿠니 신사는 "당시 조선인과 대만인도 일본인으로 전쟁에 나가 희생했기 때문에 이곳에 합사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많은 유족들은 "원하지 않는 합사"라며 빼달라고 하는 중이에요.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종교적 행위에 간섭할 수 없다", 신사 측에서는 "이미 합사된 신들은 뺄 수가 없다"는 입장을 내세우며 거절하고 있습니다.

-서민영 함현고 역사 교사/기획·구성=조유미 기자, 조선일보(22-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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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

 

최승달(cho***) 2016.01.27 21:25:45

 

'일제에 강제 징용됐던 위안부 문제에 사과하고 보상하라' 라며 3년여 세월 동안 밀고 당기며 한일관계를 최악의 상황에까지 이끌어왔던 박근혜 정부는 결국 사과다운 사과, 보상다운 보상도 제대로 못 받고 오히려 다시는 이러한 요구를 하지 않겠다라는 서약서에 도장까지 찍어주는 치욕을 겪은 바 있다. 물론 이웃 나라인 일본과의 관계개선은 빠를수록 좋은 일이겠지만 이런식의 긁어 부스럼식 타결은 우리가 바라던 바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였을까? 며칠전 '일본은 왜 독일처럼 반성하지 못할까' 라는 제하의 글이 조선닷컴에 게재되어 흥미롭게 읽은 바 있다. 

 

 세계2차대전을 일으켜 수천만의 사상자를 냈고 인류의 평화를 짓밟으며 수많은 만행을 저질렀던 전범국 독일은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진정성이 보이는 반성과 더불어 피해자들에게 최대한의 보상을 해주고 있어 세계인들로부터 충분한 관용을 이끌어내고 있다. 그러나 독일과 마찬가지의 전범국이면서도 오히려 독일인 보다도 더 많은 만행을 저질렀던 일본은 아직까지도 양심에서 우러나는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한 술 더 떠서 '일본의 식민지배는 너희들에게 득이 되었다' 라는 망언조차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독일과 일본은 자타가 공인하는 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일본인들은 독일인과는 달리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반성할 줄 모를까? 그에 대한 해답이 100% 옳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일본은 왜 독일처럼 반성하지 못할까'라는 글에서 지적한 저들의 역사적 산물인 '사무라이 정신'과 '倭人 기질'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일본은 풍신수길에 의한 일본통일 이전 수천 년 간 수십 개의 봉건국가로 분할되어 각 봉건국의 영주를 중심으로 무사 계급인 사무라이들에 의해서 통치되어왔다. 사무라이들은 영주를 위해서는 기꺼이 목숨도 내놓을 정도로 충성심이 대단했으나 일반 서민에게는 생살 여탈권 마저 가질 정도로 군림하는 지배계층이었다. 사무라이는 명예나 체면을 중히 여겨 일반 백성이 그들의 명예에 손상을 입히면 길가의 개미 한 마리 죽이듯 단칼에 쳐 죽이는 만행을 스스럼없이 자행한다. 그러나, 主君 위하는 일이라면 자신 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목숨도 거침없이 내놓을 정도로 충실한 신하 됨을 명예로 알고 있고 주군을 위해서는 피비린내 진동하는 복수극도 명예로운 충성으로 여기고 또 일반 대중도 이에 갈채를 보낸다. 

 

결국 오늘날의 일본인정신 이라면 이러한 역사적 신물인 사무라이 정신과 倭人기질이 암암리에 내재해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은 그들의 조상(主君)이 저지른 죄과에 대해서 대신 사과하는 것은 불충으로 여길 것이므로 세계인의 눈을 의식해서 입에 발린 형식적인 사과는 할 지언정 진심에서 우러나는 사과는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니 진심에서 우러나는 반성 또한 있을 수 없다. 이는 주군(조상)의 명예를 욕보이는 불충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세계인들의 비난을 무릅쓰고 2차대전의 전범들의 영혼을 모시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한치도 물러섬이 없는 소이가 바로 그 때문이다. 우리는 일본인을 경멸해서 부를 때 倭人 또는 왜놈이라는 조롱 섞인 호칭을 쓴다. 일본인이 왜소한 종족이라서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고 믿는 경향이 있지만 실상 왜인의 왜 자는 키작을 왜 자인  아니라 순종한다는 의미의 따를 倭 . 다시 말해서 상사(강자)에게 순종을 잘한다는 의미의 倭人이라는 의미다.

 

물론 일본인이 倭人으로 불리우기시작한 것은 기원전 중국에 기원을 둔다고 하지만, 2000여 년 전 일본에서 편찬된 說文解字라는 책자에서도 '倭人 순종을 잘하고 멍청하고 우둔한 종족' 이라는 기록이 있다고하니 역시 일본인은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위(상관 또는 강자)에게는 굽실대며 순종을 잘하지만 아랫사람(약자)에게는 군림하기를 좋아하며 순종해 주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

 

탐험가 마르코 폴로가 쓴 동방견문록에 의하면 조선인은 자존심이 강하고 독립심이 강하여 민주주의 제도를 어렵지 않게 성취하겠지만, 일본인은 上命下服 철저하고 개인보다는 단체 또는 상관에 예속되기를 기꺼이 하므로 민주주의 제도 정착이 어려울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얼마 전 영국에서 발표한 통계를 보니 명실상부한 선진국 일본이 유독 민주주의 성취도 만은 한국에게 뒤쳐진다는 기사를 보면서 일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에 패한 일본이 미국에는 비굴할 정도로 한없이 굽실대지만 과거 그들의 통치하에 있던 대부분의 아시아 제국에는 여전히 강자로 군림하려는 태도를 보더라도 '과연 사무라이 정신을 이어 받은 倭人답다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그러한 일본인이니 약자인 우리가 아무리 '과거의 식민통치 사과해라' '위안부 문제 사과해라' 민비 시해사건 사과해라' 떠들어봤자 우이독경이다. 물론 세계의 눈이 있으니 입으로는 사과 하는 척 하겠지만 내심으로는 아마도 경멸할 것이다 '힘도 없는 것들이 주제넘게...' 라면서. 이와 같은 일본이 우리의 인접국이었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커다란 불행이었고 앞으로도 경계를 더욱 강화해야 할 대상으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이미 세계 최강그룹의 일원인 선진 강대국이고 우리는 아직 저들 국력의 1/4 수준에 머물러있 있는 처지이니 더욱 그렇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한반도를 짊어지고 일본열도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곳으로 이주를 할 수도 없을 바에는 살아남기위한 대책을 세워야한다. 어리석게도 지난 과거에는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으나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다. 지난 60~70년대 우리의 국력은 일본의 1/10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불과 반세기도 되지않아 일본과의 국력차를 1/4 수준으로 끌어 올릴 정도로 자랑해도 될만큼의 능력을 가진 국민이 있다. 

 

죽기보다 싫다는 사과와 반성만을 요구하며 소모적인 분쟁만을 지속할 게 아니라 차라리 선진국 일본이 이웃해 있다는 사실을 최대로 활용하는 지혜를 가진다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강대국을 상대로 하는 소모적이고 무모한 反日 비굴한 親日 아니라 선린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철저하게 用日 힘쓴다면 우리도 언젠가는 그들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 IQ가 세계 1~2위 수준인 통일된 한반도 국가라면 능히 그럴만한 능력이 있다고 자부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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