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의 두 번째 ‘네이션 빌딩’]
[더 행복해지려, 불행을 잊으려 축구를 본다]
카타르의 두 번째 ‘네이션 빌딩’

대항해 시대를 연 포르투갈은 16~17세기 페르시아만(灣) 일대를 150여 년 지배했다. 그런데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는 땅”이라며 정복을 포기한 곳이 있다. 지금의 카타르다. 카타르는 여름 기온이 최고 50℃까지 오른다. 습도도 문제다. 다른 사막은 낮은 습도 덕에 밤엔 견딜 만하지만, 경기도만 한 땅 거의 전체가 바다에 둘러싸인 카타르는 밤낮없이 한증막이다. 그늘에 앉아 있어도 땀이 솟는다.
▶카타르는 아랍어로 ‘국가’라는 뜻이다. 하지만 1971년 영국에서 독립할 때까지 국가라는 이름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땅이었다. 산업도 없고 농사도 못 지었다. 오래도록 진주조개잡이가 생계 수단이었다. 그마저 20세기 초 인공 진주가 등장하며 파국을 맞았다. 2만명 채 안 되는 인구가 먹고살 길을 찾아 주변 국가로 흩어졌다. 항구도시였던 수도 도하는 해적 소굴로 악명 높았다.
▶카타르 왕의 아들이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면서 개혁을 시작했다. 석유와 천연가스 적극 개발을 시작했다. 1인당 월 500만원이 넘는 기본 소득과 의료·수도·전기를 무료로 제공하는 복지 천국도 그 덕에 가능했다. 카타르 국가 재정 수입 90%가 천연자원에서 나온다. 하지만 이것밖에 없다. 경제성장률도 0%대로 정체돼 있다. ‘석유 이후’를 고민하는 이유다. 영국에서 함께 독립한 아랍에미리트에 라이벌 의식을 느끼며 경쟁하고 있다. 월드컵 유치도 그 일환이다.
▶뜨겁고 습한 카타르는 월드컵 개최지로 최악이다. 이를 극복하려고 지난 10년간 돈을 쏟아부었다. 그 상징이 냉풍구 1500여개를 갖춘 에어컨 경기장이다. 카타르 프로팀에서 뛰었던 한국 선수는 “가만히 있을 땐 겉옷을 걸쳐야 한다”고 했다. 나라 전체는 거대한 미술관으로 꾸몄다. 제프 쿤스가 선보인 ‘듀공’, 덴마크 작가 올라푸르 엘리아손이 사막 한가운데 세운 조형물 등 100점 넘는 미술품이 들어섰다. 여기에만 지난 10년간 해마다 10억달러를 쏟아부었다. 문화를 앞세워 소프트웨어 강국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 표현이다.
▶카타르 월드컵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그간의 유치 과정을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FIFA 언커버드’는 이번 월드컵이 카타르인에게 ‘국가적 목표를 성취해 나가는 원동력’ ‘국가 건설 과제의 하나’라고 설명한다. 자원 부국 이후를 대비하는 두 번째 ‘네이션 빌딩’이라는 의미다. 축구 경기가 실력 겨루기를 넘어 한 나라의 미래를 새로 여는 총력전 도구가 되는 광경을 보는 것도 이번 월드컵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2-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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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행복해지려, 불행을 잊으려 축구를 본다
[동아시론]
빠르고 공격적인 한국 축구, 역동적 사회 닮아
카타르서 대표팀의 후회 없는 경기 바랄 뿐
코로나 겪는 인류, 축구로 잠시나마 치유되길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10여 년간 나는 축구에 빠져 살았다. 월간 축구잡지 ‘World Soccer’를 사서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꼼꼼히 읽었고, 축구선수와 감독들의 인터뷰를 챙겨 보았다. ‘정의는 축구장에만 있다’ 등 축구에 대한 시를 몇 편 썼고 ‘공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축구 산문집도 펴냈다.
2011년 유럽축구기행을 떠나 지금은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한 손흥민, 이번에 국가대표팀에 발탁된 백승호 선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당시 바르셀로나 유소년 팀에서 뛰던 백승호 선수는 자신이 처음 신은 축구화의 색(초록색이었다)을 기억했고, 어떤 선수가 되고 싶냐는 나의 질문에 “패스는 사비, 움직임은 이니에스타, 드리블은 메시를 닮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백승호 선수의 책상 위에 놓인 작은 공책, 모형 축구장이 인쇄된 종이가 생각난다. 우리 편끼리 공을 주고받는 동선, 상대 수비수의 움직임까지 자세하게 기록한 메모장, 동그라미와 선들이 어떤 상황을 뜻하는지 묻는 내게 그는 진지하고 야무지게 답했다.
그리고 10여 년이 흘렀다. 카타르 월드컵 한국대표팀의 최종 명단에서 백승호 선수를 확인하고 나는 기뻤다. 아이슬란드와의 친선경기에서 백승호 선수가 찬 코너킥은 정확하고 위협적이었다. 손흥민을 전방으로 올리고 백승호에게 코너킥을 전담하게 하자. 이강인과 황희찬의 빠른 측면 돌파 뒤에 얻은 코너킥을 백승호가 차고, 그 공이 손흥민이나 황의조 선수 앞에 떨어지면 좋겠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뒤 20년이 흘렀다. 한국 사회가 얼마나 변했는지 혹은 변하지 않았는지, 국가 대항 경기를 보면 그 나라의 문화와 사회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빠르고 직접적이며 공격적인 한국 축구는 짧은 기간에 고도성장한 한국 경제, 역동적인 한국 사회와 닮은꼴이다. 벤투 감독이 4년간 한국 팀을 지도하며 후방에서부터 차근차근 패스를 돌리며 기회를 만드는 ‘빌드업(build up)’ 축구를 시도했다. 그의 축구 철학을 존중하나, 한국의 전통적인 강점인 속도를 살리지 못하면 우리보다 강한 상대를 이기기 어렵다.
한국은 도깨비 팀이다. 한 경기도 이기지 못하고 짐을 쌀 수도 있고, 4강을 넘볼 수도 있다. 우리와 만나는 우루과이와 포르투갈 그리고 가나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첫 경기가 제일 중요하다. 우루과이에 지지 않기를, 지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경기를 하기 바란다.
월드컵은 인종과 계급을 초월해 온 인류가 즐기는 축제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 기후 변화로 고통받은 인류가 축구를 통해 잠시라도 상처를 치유하고 평화가 찾아오면 좋겠다. 월드컵을 관전하기 위해 적금을 들었다는 아르헨티나의 축구 팬들, 집도 없으면서 순간의 추억을 위해 4년을 희생한 그는 행복한 사람. 행복한 사람은 더 행복해지려, 불행한 자는 불행을 잊으려 축구를 본다.
‘카타르의 피’로 얼룩진 경기장을 떠올리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카타르는 월드컵을 개최하기에 너무 작은 나라다. 개최국으로 선정되기 전에는 월드컵을 치를 만한 축구장이 하나밖에 없었다. 외신에 따르면, 갑자기 축구경기장을 여럿 건설하느라 2010년 이후 외국인 노동자 6000여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작업 환경이 열악한 데다 뜨거운 태양 아래 노동 착취가 빈번했다. 동성애를 법으로 금지하는 카타르의 월드컵 홍보대사는 독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누구든 환영한다. 그러나 우리의 규칙을 존중해 달라”고 말했다. 동성애를 ‘정신이 손상된 상태’라고 이해하는 나라에서 동성애자 선수와 팬들이 마음 편하게 경기를 즐길 수 있을까.
이번 월드컵을 취재하는 서방 언론의 관심은 이란 대표팀에 쏠리고 있다.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연행된 마흐사 아미니가 의문사를 당한 뒤 이란에서는 반정부 시위가 이어졌고, 유혈진압으로 미성년자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란 대표팀이 골을 넣은 뒤 ‘히잡 시위’를 지지하는 골 세리머니를 할까? 브라질은 2002년 이후 20년 만의 우승을 노리고, 캐나다 선수들은 월드컵에 참가한다는 것 자체로 이미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하고, 메시와 네이마르는 마지막 춤을 추려 한다.
안면 수술을 받은 손흥민 선수를 무리해서 출전시키지 않기 바란다. 손흥민 선수가 경기에 뛰지 못하더라도 벤치에 앉아 있으면, 한국 선수들의 사기가 높아지고 상대 팀도 우리를 두려워할 것이다. 우리 선수들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응원하며, 이 답답하고 슬픈 일상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기를 나는 꿈꾼다.
-최영미 시인·이미출판사 대표, 동아일보(22-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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