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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판 386’, 노론의 공작정치와 ‘쓰레빠’] ....

뚝섬 2022. 12. 8. 15:50

[‘조선판 386’, 노론의 공작정치와 ‘쓰레빠’]

[“尹·韓이 죽어도 싫다”에 올인한 ‘괴담 김의겸’]

[현대판 이임보(李林甫)]

 

 

조선판 386’, 노론의 공작정치와 ‘쓰레빠’

 

[박종인의 징비]

 

우암 송시열(1607~1689) /국립중앙박물관

 

기록은 예언 같다. 2022년 대한민국에 횡행하는 공작정치는 옛 기록에 예언돼 있다.

 

1504년 겨울, 폭군 연산군은 홍문관과 사헌부, 사간원 간부들을 하급관리인 낭청으로 강등시켰다. 삼사(三司)라 불리는 이 세 기관은 지금으로 치면 검찰이나 감사원 같은 기관이다. 이듬해 연산군은 ‘아랫것들 버릇을 고치지 않으면 권력이 이들에게 돌아가리라’라는 삼사 혁파문을 목판에 새기라고 명했다. 혁파문 필자는 서울대 총장 격인 성균관 대제학 김감이었다.

 

이후 사헌부는 고위직 비리 수사권을 박탈당하고 대궐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자들 단속, 대궐을 등지거나 쭈그려 앉은 자 체포 따위 국가원수 모독죄나 경범죄 단속 기관으로 전락했다. 대신 주요 수사권은 연산군 직속 수사기관인 의금부가 차지했다. 이는 ‘검수완박 관한 예언이다.

 

폭군을 몰아낸 사림(士林) 지금으로 치면 독재 타도를 외치던 386 운동권이다. 이 운동권은 독재를 타도하고 스스로 독재 권력으로 변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사림 가운데 서인(西人)이 권력을 차지했다. 남인 세력에게 남아 있던 권력까지 독점하기 위해 서인이 획책한 계획은 공작정치였다.

 

숙종 때인 1682년 ‘남인이 장사 300명을 동원해 세 정승과 육판서는 물론 비변사 대신들까지 찍어죽이고 나라를 깨뜨리려 한’ 역모 사건이 발각됐다. 허새라는 남인이 “주상은 덕이라고는 조금도 없고 어둡고 흐려 어질고 현명한 이로 왕을 바꾸면 태평성대가 온다”며 모의를 주도했고 다른 남인 16명이 가세했다고 했다. 전국 주요 도시에 가짜 의금부 도사를 파견해 현지 수령들을 체포하고 궁궐에는 군사 300명을 매복시켜 때를 기다린다고 했다.

 

고발된 남인들은 처형되거나 고문 도중 죽었다. 그런데 처음 고발된 허새와 허영을 제외하고는 자백을 한 자가 한 명도 없었다. 결국 모든 것이 서인인 우의정 김석주와 어영대장 김익훈이 남인 박멸을 목표로 조작한 사건임이 드러났다. 이는 권상하라는 인물이 쓴 ‘황강문답’이라는 기록에 잘 나와 있다. 권상하는 서인 총수 송시열 최측근 인사였으니 모든 일이 공작과 조작정치임을 서인 수뇌부가 모두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아니면 말고 식 공작과 조작은 공화국 시대 대한민국 대통령과 법무부장관이 대형로펌 변호사들과 술판을 벌였다는 공작과 겹친다. 그 공작에 ‘우의정, 어영대장’이라는 봉건시대 고위관리와 ‘국회의원’이라는 공화국시대 공직자가 ‘협업’을 했다는 사실도 겹친다.

 

실록이 예언한 다른 사실은 조선판 386들의 위선과 뻔뻔함이다. 소장파 서인들이 “역모를 사주한 김익훈은 본인이 역적이 된 것보다 심하다”고 반발했다. 서인인 승지 조지겸은 “시비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숙종에게 재수사를 요구했다. 이 소식을 서인 영수 우암 송시열이 들었다. 송시열은 이렇게 답했다. “공작을 한 김익훈은 비록 죽는다 해도 애석할 것이 없다.”

 

멋진 말이다. 그런데 입과 행동은 달랐다. 숙종이 주재한 회의에서 송시열이 입을 열었다. “김익훈은 내 스승 김장생의 손자다. 스승에 대한 도리로서 내가 죄인이다.” 제자들에게 송시열이 재차 말했다. “김익훈은 스승 문중 자제다. 구제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죽게 되면 나는 마땅히 내 거취를 내놓고 싸워서 살리리라.”

 

‘원칙’과 ‘대의’를 주장하던 송시열 입에서 진영 논리가 튀어나오자 젊은 서인들이 등을 돌렸다. 이들이 서인에서 분리된 소론(少論)이며 진영을 지킨 이들이 노론(老論)이다. 대의명분과 도덕주의를 기치로 내건 조선 후기 정치판은 그렇게 권력에 눈먼 공작정치로 더러워졌다.

 

공작과 조작, 위선과 후안무치한 진영논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노론이 기록한 ‘숙종실록’에 나온 조지겸에 대한 평가는 꼴불견이다. ‘인조반정 이후 서인이 국정을 담당해 50여년 조정이 편안했는데 조지겸이 몰래 흉악한 도적의 붉은 기치가 되었다.’ 역사 자체를 비틀어버린 것이다.

 

이제 2022년 공화국시대를 본다. 청담동 술집 사건을 주장한 자들은 아직도 오류나 실수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집권세력 도덕성을 공격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하지만 그들은 졸렬한 부도덕성으로 일관 중이다. 10억 원 배상 소송에 당사자는 “돈으로 입을 틀어막는 행위”라고 반발한다. ‘압수수색 당하는 심정을 알게 해 주겠다’며 집을 무단 침입하고, 공권력 행사를 거부한다. 더불어민주당 산하 ‘정치개혁 준비단 더불어민주당 권리당원 모임’이 대통령 부인이 외국 원수 앞에서 ‘쓰레빠를 신고’ ‘무례하게 다리를 꼬고’ ‘접대했다’고 조롱해놓고는 정작 틀렸음이 밝혀졌음에도 ‘조선일보에서 대표님 페북 매일 확인한다는 증거’라고 비웃는다. 법과 상식과 도덕이라는 단어를 그들은 알까.

 

그런데 이런 건달 급 반응 또한 옛 기록에 예언돼 있다. 남인 당론서인 ‘동소만록’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서인(노론) 무리들은 끓는 물이나 불 속에 들어가 죽더라도 피하지 않았다.’ 우리가 봉건 조선을 벗어나긴 하겠는가.

 

-박종인 선임기자, 조선일보(22-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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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韓이 죽어도 싫다”에 올인한 ‘괴담 김의겸’

 

[김창균 칼럼]

신빙성 희박한 청담동 의혹.. 언론인이면 기사 썼을
민주 지지층은 사실 따져.. 대통령·측근 공격하면 열광
총선서 이들 지지 업으려고 무책임한 폭로 남발하는가
 

 

10월 24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국정감사장에서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청담동 술자리' 의혹 제기에 강한 분노감을 드러냈다.

 

민주당 김의겸 의원이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한 것은 10월 24일 법무부 국정감사에서였다. 국회의원들은 누구나 앞 순서 발언을 원한다. 그래서 야당 지도부는 첫 질의 순서를 정권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소재를 발굴한 주 공격수에게 배당한다. 의원은 그날의 1 타자였다. 신문으로 치면 1 필자다.

 

기사 줄거리는 이랬다. 지난 7월 19일 그랜드 피아노가 있고 첼로를 연주하는 청담동 바에서 한동훈 법무장관이 김앤장 변호사 30명과 어울렸고, 윤석열 대통령이 합류했으며, 그 술자리가 새벽 3시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흥행성은 만점짜리였지만, 신빙성은 빵점에 가까웠다. 한 장관은 술을 한 모금도 안 한다. 그래서 검찰 회식 자리에도 불참했다. 김앤장 변호사 30명이 한자리에 불려 나오는 것도 일류 로펌 문화에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백번 양보해서 그런 일이 있었다면 경호원들까지 득실거렸을 현장 소문이 석 달 동안 잠잠했을 리가 없다.

 

결국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 최초 발설자인 첼리스트가 “그날 밤 알리바이를 추궁하는 남자 친구에게 둘러대느라 지어낸 이야기”라고 실토했다. 법무장관만 오고 대통령은 안 왔다든지, 변호사가 아니라 검사들이 참석했다는 식의 부분적 오류가 아니었다. 그런 모임이 아예 없었다는 거다.

 

의원은 1988 한겨레신문 창간 멤버다. 2017 퇴사했으니 거의 30 경력이다. 팩트 체크가 가장 철저해야 하는 사회부장을 지냈다. 2019년 1월 당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야당이 문재인 대통령 딸 의혹을 제기하자 “국회의원 지위를 이용해 아무 근거 없는 음해성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데 개탄한다”고 했다.

 

그랬던 사람이 대통령, 법무장관을 겨냥해 국회에서 한 발언이 허무맹랑한 괴담이었다. 창피해서 고개를 법한데 의원 태도는 당당하기만 했다. “그날로 돌아가도 똑같은 질문을 던질 것”이라고 했다. 1면 톱 오보 내놓고 그래도 기사 쓴 게 옳았다는 식이다. 국민이 궁금한 것을 국민을 대신해서 질문했다고 했다. 김 의원이 “제보 내용이 사실이냐”고 물었다면 그런 변명이 통할지 모른다. 김 의원은 그렇게 묻지 않았다.

 

청담동 술자리의 무대 배치와 등장인물 및 지속 시간, 윤 대통령과 한 장관이 각각 부른 노래 제목까지 상세하게 제시해 가며 한동훈 장관에게 “기억나느냐”고 물었다. 여섯 차례나 ‘기억’이라는 단어를 들먹였고 “석 달 전 술자리인데 기억도 못 하느냐”고 다그쳤다. 술자리 존재는 기정사실이고 한 장관 인정 여부가 쟁점인 것처럼 몰아붙였다.

 

김 의원이 신문사에 있었다면 청담동 술자리 기사를 다뤘을까. 후배가 기사를 쓰겠다고 했으면 사실 확인을 지시했을 것이고 하루 이틀 만에 원고가 쓰레기통을 향했을 것이다. 언론인 김의겸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 없는 일을 정치인 김의겸이 버젓이 저지른 이유는 뭘까.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는 헌법 45조의 면책특권도 김 의원의 일탈을 부추겼을 것이다. 그러나 근본 원인은 딴 데 있다.

 

김 의원과 청담동 술자리 괴담을 협업했다는 인터넷 언론 ‘더 탐사’는 채용 공고를 내면서 ·한이 때려죽어() 싫은 을 뽑겠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장관을 무조건 증오하는 사람과 함께 일하겠다는 뜻이다. 조건은 민주당 극렬 지지층 정서와 일치한다. 그들은 윤 대통령과 한 장관을 비난할 수 있는 소재면 무조건 열광한다. 사실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김 의원과 ‘더탐사’가 청담동 술자리 의혹에 집착한 것도 윤·한이 동시에 표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국정은 제쳐놓고 새벽까지 술독에 빠진 대통령, 로펌 변호사들과 부적절하게 어울리는 법무장관을 돌멩이 하나로 때릴 있다. 김 의원이 이 의혹을 꺼내자 일반 국민들은 갸우뚱했지만 ‘윤·한이 때려죽여도 싫은’ 사람들은 손뼉 치고 환호했다. 다음 총선 의원을 밀어줄 사람들도 바로 맹목적 지지층이다.

 

김 의원은 청담동 술자리 말고도 한 장관 관련 의혹을 스토킹하듯 쏟아냈지만 대부분 헛방이었다. 민주당에서 괴담 장사를 하는 다른 의원들도·한이 때려죽여도 싫다 정서에 올라타기 위해서다. 보통 사람들 눈엔 제정신이 아니지만, 지금의 민주당 생태계에서 살아남고 이름을 날리려면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다만 언론계 출신을 배경 삼아 정치권에 진출한 김의겸 의원이 상식과 사실을 저버린 괴담 좇기 선두에 나선 것은 씁쓸한 일이다. 김 의원 자신은 취재 현장에서 회사 후배와 마주칠 때 불편하지 않은지도 궁금하다.

 

-김창균 논설주간, 조선일보(22-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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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이임보(李林甫)

 

[이한우의 간신열전] 

 

당나라 간신들 중에 최악은 이임보(李林甫·?~752년)다. 아첨을 일삼으며 뛰어난 신하들을 배척해 구밀복검(口蜜腹劍)이라는 말을 낳은 장본인이다. 입으로는 달콤한 말을 하지만 뱃속에 칼을 숨기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집권 전반기 ‘개원의 치(治)’를 이룩한 현종을 후반기 혼란으로 몰아넣어 ‘천보난치(天寶亂治)’라는 역사적 비판을 받아야 했다. 당나라 쇠망이 이임보에게서 비롯되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요즘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행태를 보면서 이임보를 떠올린다. 그는 얼마 전 한 기고를 통해 같은 당에 속한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과 ‘조금박해(조응천 금태섭 박용진 김해영)’를 비판했다. 근거는 “자기 정치를 위해 정당 내부에 쓴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이는 한마디로 이재명 대표를 향한 비판을 일절 하지 말라는 겁박에 가깝다.

 

이임보는 또 장마불명(仗馬不鳴)이란 말을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두진(杜璡)이라는 간관(諫官)이 당시 정치를 비판하자 지방으로 쫓아버리고 나서 다른 간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밝으신 천자가 위에 계시니 신하들은 그 뜻을 그냥 따르면 되는 것이지 무슨 다른 할 말이 있느냐? 너희들은 의장대에 줄지어 선 말[仗馬]를 보지 못했느냐? 온종일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도 3품관의 사료를 먹고 있는데 만일 한번 소리를 지르면 그놈은 쓰지 않는다. 그다음에는 설사 울지 않는다고 해서 쓰겠는가.”

 

유시민씨 행적을 짚어보면 한순간도 () 적이 없다. 그저 자기가 속한 진영은 옳고 다른 진영은 틀렸다는 식으로 살아왔다. 이를 간(奸/姦)이라 하고 사(邪)라고 한다. 유시민씨는 역사에 관한 잡저들도 낸 것으로 아는데 역사에서 뭘 배웠길래 이런 행태를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건지. 그나마 박용진 의원 반응을 보면 민주당 장마(仗馬)들은 침묵만 하지는 않을 듯하다. 조국 사태와 이후 그분이 주장한 대로 해서 당이 잘됐나?”

 

-이한우 경제사회연구원 사회문화센터장, 조선일보(22-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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