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하고 저질화하는 엘리트 집단]
[3만달러 국가 중 한국에만 있는 것]
타락하고 저질화하는 엘리트 집단
공직을 몸값 높이는 수단 삼고
직업 윤리 최저선까지 허무는
전문성 갖춘 유능한 약탈자들
군·관료·검찰·법원에서 활개

공직선거법·국가공무원법 위반 등 혐의로 체포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작년 10월 2일 서울 영등포경찰서로 압송돼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수갑 찬 이진숙의 모습은 권력 따라 칼춤 추는 무도(無道)한 공권력을 폭로하는 상징적 이미지가 있었다. 그도 수갑 찬 모습을 내보이며 부당한 공권력에 저항하는 모습을 어필하려 했다. 민주당이 그가 방송통신위원장에 취임한 당일 탄핵안을 발의하고 직무를 정지시킨 것은 다수당의 막무가내 횡포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탄핵 기각으로 위원장에 복귀한 그는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지만 사퇴하지 않았다. 새 정권의 눈엣가시였다. 국무회의에서 발언하려다 이 대통령에게 “그만 하세요”라는 모욕적인 대접을 받았다. 대통령은 그가 ‘개인 정치’를 한다고 직격했다. 국무회의에서도 배제했다. 그는 ‘자기 정치’가 아니라고 대통령에게 맞섰다. 그러자 대통령실은 “대구시장에 출마할 생각이 있다면 나가라”고 대놓고 요구했다. 정부가 방통위를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로 개편하며 끝내 그를 내쫓자 헌법소원까지 제기하며 저항했다. 그랬던 그가 헌법소원 결과가 나오기도 전, 지난달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상대의 예상에서 한 치도 어긋나지 않았다. 대통령과 민주당, 공권력 집행에 저항했던 모든 명분과 가치를 패대기치고, 대구시장 출마를 위해 ‘자기 정치’를 했다고 자백한 셈이다.
이진숙의 이런 모습을 어떻게 봐야 할까. 한국 엘리트 집단의 도덕적 붕괴를 상징하는 한 사례라고 본다. 엘리트란 단순히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압도적인 전문성과 엄격한 직업 윤리를 요구받는다. 그들이 공직(公職)과 직업적 성취를 공적 헌신이 아니라 사익(私益) 추구나 기득권 보호를 위해 활용한다면 사회의 신뢰 자산은 붕괴할 수밖에 없다. 전문성만 있고 공적 윤리가 없는 엘리트는 ‘유능한 약탈자’에 불과하다.
물론 공적 헌신과 개인의 입신(立身)을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그래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전문가 집단, 엘리트 조직에는 오랜 세월 의로운 선배들이 싸우고 희생하며 쌓아올린 가치와 성취가 있기 마련이다. 직업 윤리상 차마 넘지 못할 선을 넘으며 그런 희생을 짓밟고 성취를 허무는 자들이 있다.
검찰은 예전에도 ‘권력의 시녀’라는 비판을 받지 않은 건 아니지만, 천문학적인 비리 사건의 항소를 포기한 적은 없었다. 아무리 권력 앞에 조아려도 검찰 존재의 본질을 배반할 정도로 타락하지는 않았다. 대장동 일당 항소 포기 때는 청와대와 법무부 압력이 있었니 마니 논란이라도 있었다. 위례신도시, 서해 공무원, 송영길 전 대표 사건 항소·상고 포기 때는 그런 논란조차 없었다. 지휘 라인 간부들이 알아서 기고 엎드렸다는 것이다. 직업 윤리의 최저선(最低線)을 무너뜨린 조직에선 굴신(屈身)에 능한 사람들이 요직을 차지하는 법이다.
군은 어떤 집단보다 정치에서 독립적이어야 할 곳이다. 미국에선 장군까지 진급했다면 퇴직 후 정치에 기웃거리는 사람이 거의 없다. 현재 상원 의원 100명 중 장성 출신은 단 한 명도 없다. 하원 의원 435명 중에서도 연방 정규군 장성 출신은 2명뿐이다. 우리 군에선 정당인으로, 국회의원으로 신분을 바꾸려는 장성 출신이 줄을 섰다. 현역 의원만 5명이다. 국방장관을 지낸 사람이 방산업체의 로비스트로 볼 수밖에 없는 상근고문으로 갔으니 무슨 말을 더 하겠나. 비상계엄 때 드러난 우리 군의 참담한 모습은 오래전부터 누적된 군 엘리트들의 타락과 저질화로 예고된 일이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 그 책임을 정치와 정치인에게 쉽게 돌린다. 그러나 각 분야 시스템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엘리트 집단이 직업적 규범을 허물지 않는다면 폭주하는 정치의 방파제가 될 수 있다. 저질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관료·법원과 검찰·군·언론 등 엘리트 집단의 타락과 저질화이다.
-조중식 뉴스총괄에디터, 조선일보(26-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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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달러 국가 중 한국에만 있는 것
[양상훈 칼럼]
경제가 우등생 되면 정치, 노동도 뒤따라 성적 오르는 게 세계사의 흐름
한국만 그 예외되는 게 제2 한강의 ‘기적’ 되나

지난 2월 15일 국회 환노위 법안심사소위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노란봉투법) 심사가 진행되는 시간에 맞춰 민주노총이 국회 앞에서 노조법 2ㆍ3조 개정을 촉구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이덕훈 기자
최근 만난 원로 한 분의 말씀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세계에 정치가 엉망이고 노조가 심각한 나라가 많다. 그러나 국민소득 3만달러가 넘는 나라 중에 그런 나라는 한국밖에 없는 것 같다.” 선진국들에도 노조가 비타협적인 곳들이 있고, 민주주의 본산인 구미의 정치 분열도 심각하다. 그러나 한국 같은 나라는 없다.
국민소득 1만달러가 넘으면 국민이 ‘먹고사는 절박함’에서 벗어난다고 한다. 문화, 스포츠, 여가 활동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국가적 자존감도 커진다. 우리 경우엔 1988년 서울올림픽 후에 1만달러를 넘어섰고 OECD에 가입했다. 국민소득 2만달러가 넘으면 국민과 국가가 촌티를 벗고 글로벌한 시각을 갖게 된다. 개방이 봇물처럼 이뤄지고 해외 유학 붐을 이룬다. 기업도 세계시장으로 뻗어나가고 한국 기업 브랜드가 어딜 가든 눈에 띈다. 우리 소득이 2만달러가 되기 직전에 월드컵을 개최했고, 2만달러 돌파 직후에 G20에 가입했다.
국민소득 3만달러는 선진국 클럽에 들었다는 징표로 통한다고 한다. 세계에 소득 3만달러가 넘는 나라 중에 자원 부국과 도시 국가를 빼면 얼마 남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인구 5000만명이 넘는 나라는 7국뿐이다. 그중 하나가 한국이다. 아직 일부의 얘기이지만 G7에 한국을 더해 G8로 만들자는 의견도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한국은 ‘자유 세계의 무기고’가 되고 있다. 방위산업 수출 계약 잔액이 100조원을 넘어섰다. 수입국 중엔 유럽 국가들도 있다.
소득 3만달러가 넘으면 선진국 자의식도 생긴다. 후진국스러운 사건이 생기면 “어떻게 한국에서 저런 일이 일어나느냐”라고 개탄한다. 한국을 경험한 외국인 중에 한국을 선진국이라고 인식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경제가 정치와 노동 없이 홀로 여기까지 발전했을 수는 없다. 그런데 3만달러 고지를 넘어선 이제는 정치와 노동이 경제와 완전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경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조한 것이 아니라 30년 전보다도 못한 수준으로 추락하고 있다. 1990년대 초반에 정치부 기자를 시작해 30년 이상 온갖 정치 행태를 봐왔다. 과거에는 독재가, 민주화 후엔 지역 감정 등 국민 분열이 심각하다. 하지만 ‘저질’이란 측면만 보면 지금이 사상 최악인 것 같다.
‘양아치’라고 불러 조금도 지나치지 않을 수준의 인물들이 모여서 그중 한 명이 국회의장을 향해 일갈한 그대로 “GSGG(개XX)” 정치를 하고 있다. 공개석상에서 저질스러운 성적 표현을 하고서 ‘짤짤이’라고 거짓말하고, 오스트리아와 오스트레일리아도 구별 못 하고, 이(李)모를 친족 이모로 알고, ‘호가호위’의 뜻도 모른채 대정부 질문을 하고, 거짓말을 상습적으로 하는 대변인은 거짓말을 ‘잔기술’이라고 하고, 상스런 음모론자는 떠받들며 상식을 말하는 사람은 공격한다. 이름을 지어도 개국본, 개딸이라 한다. 위장 탈당, 가짜 출당 등 정치 사기는 끝이 없다.
존재 자체가 희미한 여당의 한 최고위원은 종교단체 하수인 같다. 야당은 대표 방탄용 맞불을 놓는다며 입만 열면 “특검” “탄핵”이다. 특검과 탄핵 같은 중대한 사안이 이미 희화화되고 있다. 이러는 목적은 오로지 ‘공천’이라고 한다. 저질스러운 싸움질은 연중무휴인데 나라 미래를 위한 고민은 눈을 씻고도 찾을 수 없다. ‘네가 하면 무조건 반대’인 국회는 연금 개혁조차 논의하는 시늉만 내고 끝냈다. 대학 진학률이 70%가 넘고 G8의 후보로 거론되는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저질 정치가 있을 수 있는지, 한국인은 아무리 소득이 높아져도 정치는 조선 시대 4색 당파 수준을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것인지 혀를 차게 된다.
세계 노조 투쟁사는 피로 얼룩져 있다. 노조 부패도 심각했다. 하지만 1900년대 전반까지 일이다. 구미에선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중산층이 두꺼워지면서 노조 투쟁은 서서히 폭력이 아닌 협상으로 변화돼 갔다. 지금 소득 3만 달러가 넘는 나라 어디에서 ‘키 180㎝ 이상, 무술 유단자 우대’와 같은 채용 공고를 내는 노조가 있나. 선진국 어디 노조에서 시너 통을 들고 분신 자살 협박을 하나. 노조가 조폭이 되고, 연봉 1억 노조원이 돈 더 달라고 파업하면서 연봉 3000만원 비노조원들을 착취한다. 노조 간부들이 평일 골프장에서 억대 뇌물 논의를 한다. 그래도 노조 회계장부는 극비라고 한다.
저질 정치와 저질 노조는 이미 연대해 한몸으로 가고 있다. 서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노란봉투법과 같은 노조 폭력 면허법을 통과시킨다는 것은 시작일 뿐이다. 그렇다면 ‘저질 정치, 저질 노조와 4만달러 경제의 공존’도 정말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한강의 기적’에 이은 또 하나의 ‘기적’일 것이다. 그러나 정치와 노조는 윤리·책임·절제·양식·신뢰·품위의 문제다. 경제가 우등생이 되면 윤리와 책임 등도 뒤따라 우등생이 되는 게 세계사의 흐름이었다. 한국만 그 예외가 되고 있다. ‘예외’는 오래가지 못한다. 언젠가 경제도 결국 발목이 잡힐 것이다.
-양상훈 주필, 조선일보(2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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