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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척 정치의 元祖] [가난한 척, 약자인 척하지 마라]

뚝섬 2023. 5. 19. 08:41

[가난한 정치의 元祖]

[가난한 척하지 마라, 약자인 척하지 마라]

 

 

 

가난한 정치의 元祖 

 

불법자금 黨舍 드러나자 2004 청과물시장으로
현재는 다시 300 당사.. ‘가난한 ’, 김남국서 과연 끝날까

 

200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전신인 열린우리당에 악재가 터졌다.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 재벌에게 받은 불법 자금의 일부가 여의도 당사 보증금으로 사용된 것이 검찰 수사로 드러난 것이다. 대선에서 패했던 한나라당이 ‘차떼기 정당’으로 너덜너덜해진 때였지만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서울 영등포 청과물공판장을 개조한 당시 열린우리당 당사./조선일보 DB

 

정동영 의장은 신속히 당사를 이전하기로 했다. 서민 정당 이미지를 최대화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여의도에서 멀지 않은 영등포 청과물 시장의 옛 공판장이 후보지로 떠올랐다. 시장 당사. 누구도 상상해본 없는 발상이었다. 정 의장과 간부들은 그날 밤 전등을 들고 시장을 찾았다. 노숙자 몇 명이 잠을 자고 있었다. 한 당직자가 “쥐가 나올 것 같다”고 우려할 정도였다. 그러나 노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다음 날 열린우리당은 보증금 1억원에 월 임대료 1200만원 조건으로 바로 이곳에 입주했다. 이른바 ‘청과물 시장 당사’의 시작이었다. 입주 전 쓰레기를 치웠는데, 5t 트럭 80대 분량이었다. “쓰레기장 위에 당사를 세운 것이나 다름없다”고 선전했다. 쥐가 나올까 봐 당사 전체를 소독했다.

 

언론에는 사람 못 살 곳처럼 설명했지만 영등포 청과물 시장과 그 주변은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곳이었다. 보통 사람들이 울고 웃고 돈을 벌고 잠을 자고 아이를 키웠다. 다만 집권당의 당사가 그곳에 있을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여당이 돈이 궁할 리도 없다. 그저 총선을 앞두고 서민 흉내를 내기 위한 전략이었다. 선수를 빼앗긴 한나라당은 천막 당사로 들어갔다. 가난한 시대의 원조, 발원지쯤 되겠다. 열린우리당은 “불법 자금에 대한 사과와 자기희생, 저비용·서민 정치를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 시장 당사의 강렬한 시각적 효과와 탄핵 역풍에 힘입어 열린우리당은 총선에서 압승했고 100년 정당을 공언했다.

 

영등포 당사는 예상보다 오래갔다. 청과물 시장 당사가 공식적으로 폐쇄된 것이 2013년 9월이었으니 약 9년 이어졌다. 여의도로 복귀를 결정한 당시 민주당 지도부 인사는 “10년간 당대표와 지도부가 26번이나 바뀌었고, 당명이 수시로 바뀌면서 정체성에 혼동이 있었다”고 했다. 그만하겠다는 뜻이었다. 한 당직자는 “이 당사에선 한마디로 되는 일이 없었다”며 후련해했다. 정당이 가난한 척할 필요도 없었고, 그런 쇼가 가져온 국민적 반감과 피로감이 적지 않았다. 시장 생활을 청산한 민주당은 현재 300억원대의 여의도 당사를 갖고 있다. 시장 당사는 버렸지만 한국 진보 좌파의 혈관 어디에는가난한 피가 흘렀고 끝에서 김남국 의원의 코인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김남국이 잊히고 다시 선거철이 되면 가난한 척 정치는 부활할 게 분명하다.

 

시장 당사와 관련한 기억 하나가 있다. 당시 시장 당사만 들어가면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던 기자는 당사 앞에 ‘두통 클리닉’이라는 간판을 보고 병원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하다. 책상 위에는 ‘정신과 전문의’라는 명패가 놓여 있었다. 두통이 정신 질환인가? 공포와 두려움이 몰려왔다. “직업이?” “신문기자요.” “출입처는?” “저 앞에 열린우리당입니다.” “어디 신문?” “조선일보요.”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조선일보 기자가 열린우리당을 출입하니 두통이 생긴 겁니다. 출입처를 바꾸세요라는 진단을 내렸다.

 

의사의 처방을 따르진 못했지만 며칠 후부터 두통이 조금씩 사라졌다. 정신과 의사의 일 중 하나가 환자의 말 못 할 고민을 나누는 것이라는 사실도 그때 알았다. 가난한 척 정치의 계승자 김남국 의원 때문에 낯선 코인 용어와 매일 씨름하고 있다. 두통이 재발할 것 같아 불안하다.

 

-정우상 정치부장, 조선일보(23-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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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척하지 마라, 약자인 척하지 마라

 

弱者性은 소시민 최후의 방패
대선 후보서민 코스프레말고 172 여당도 피해자인 말라
진짜 힘든 사람들은 따로 있다 

 

애독하는 작가 중에 K가 있다. 작품이 먼저였지만, 그를 좋아한 이유는 인터뷰 때문이었다. 8년 전, 역대 최연소인 32세로 이상문학상을 받았을 때다. ‘최연소’라는 수식에 느꼈을 자부와 부담을 묻자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가장 젊은 작품은 가장 오래 살아남는 작품 아니냐고. 100년 전 150년 전 고전을 읽다 보면, 이 소설을 쓴 선배는 얼마나 젊으면 100살이나 젊은 나랑 말이 통할까 신기했다고. 그런 의미에서 계속 젊은 작품을 쓰고 싶다고.

 

K의 최근 인터뷰를 한 문학 잡지에서 발견했다. 작품도 발언도 오랜만이라 반가웠는데, 드물었던 이유 중 하나를 이렇게 고백했다. 연속해서 문학상을 받으며 문단과 대중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을 그 무렵, 한 좌담에서 대학 다니던 시절의 자취방 월세를 처음 밝혔다는 것이다. 친구들이 살던 방에도 미달하는 허름한 방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물었다. 왜 나는 누구에게도 꺼내지 않던 이야기를 새삼 꺼냈는가. 그런 궁핍을 말하지 않는 게 약간은 자부이기도 했는데. 그리고 자답한다. “주변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며 갑자기 안정적인 환경이 주어졌고, 그 사실에 당황했거나 난처한 내가 나도 모르게 약자성(弱者性)을 드러내고 싶어했구나. 내가 약자성을 탐냈구나…. 그 후로 나는 혜택받은 작가이니 불평하거나 엄살 부리지 말자, 그런 단속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불평과 엄살 혹은 저항은 약자 최후의 방패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약자라고 모든 행동이 정당화될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사회적 소수나 평범한 소시민까지는 그런 방패의 활용을 공감할 때가 있다. 얼마 전 TV 드라마를 보며 웃었던 장면이 있다. 연기 못한다고 구박받는 무명 여배우가 주정을 부리자 비슷하게 취한 술집 여주인이 ‘배틀’을 신청했다. 나도 망한 걸로는 밀리는 여잔데, 누가 불쌍한가 우리 한번 붙어볼까.”

 

하지만 약자가 아닌 사회적 강자, 혹은 권력을 잡은 정치 지도자가 이런 주장을 펼치면 반대로 경멸과 조롱의 대상이 된다. 그렇게 많은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데도 현 정권에서 비슷한 ‘내로남불’이 반복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무의식이건 그렇지 않건, ‘약자성’과 ‘피해자성’을 탐내기 때문이라고무려 172석이라는 압도적 의석을 확보한 집권당인데도 여전히 주류와 기득권은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착각, ‘독재 타도 외치던 80년대 학생 운동 시절 이래로 우리는 약자이며 도덕적이라고 생각하는 오만, 따라서 약자이자 피해자인 우리는 원하는 대로 행동해도 권리를 가진다는 환상 말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젊은 세대의 웃지 못할 SNS 놀이 중에 ‘가난 인증’이란 게 있다. ‘약자 배틀’처럼, 누가 더 가난한지를 겨룬다. 외제차를 타고 다니면서도 강북 아파트에서 거주하니 가난하다고 주장하고, 강남에 아파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우스 푸어라 불행하다고 슬퍼한다. 이런 소용돌이에서 정작 말문이 막히는 이들은 진짜 가난한 사람들, 정말로 힘든 사람들이다. 박완서의 소설 제목도둑맞은 가난처럼, 마지막 방패마저 빼앗긴 셈이다.

 

거의 모두가 가난을 경험한 시대, 절대다수가 권력의 피해자였던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 이제 대한민국은 산업화·민주화 시대를 뛰어넘어 추월의 세계관이 필요한 나라. ‘서민 코스프레’하는 대선 후보들이나 여야의 정치인들은 제발 가난을, 약자성을 탐내지 마라. ‘최후의 방패’가 필요한 사람들은 따로 있다.

 

-어수웅 문화부장, 조선일보(21-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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