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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유산' 소록도] [소록도 ‘작은 할매’ 잠들다]

뚝섬 2024. 7. 22. 05:44

['역사 유산' 소록도] 

[ “하늘만큼 감사합니다” 소록도 ‘작은 할매’ 잠들다]

 

 

 

'역사 유산' 소록도 

 

구약성서 레위기엔 한센병에 대한 인류의 오랜 공포와 혐오를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이 병에 걸리면 의사는 물론이고 환자조차 스스로 ‘부정한 자’라고 선포해야 한다. 세상은 그들을 사회 밖으로 내치며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게 부당한 혐의까지 덧씌웠다. 시인 서정주는 한센인들이 당한 억울한 차별과 그로 인한 울분을 시 ‘문둥이’에서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고 썼다.

 

▶우리에겐 그런 아픔의 결정체가 소록도였다. 1916년 일제가 이곳에 자혜의원을 세운 뒤 오래도록 금단의 땅이었다. 육지와의 거리가 1㎞가 채 안 되지만 발길이 끊겼다. 환자 처우 개선을 요구하다가 80여 명이 학살당한 비극의 땅이었다. 부모와 자식은 수직 감염이 안 되는데도 강제 낙태와 출생 후 강제 격리 같은 인권유린도 지속됐다. 1년에 한 번 체육대회라는 명목으로 부모 자녀가 상봉하는 날이면 섬 전체가 울음바다가 됐다.

 

▶사회에서 외면당한 것과 달리 문학과 영화에선 단골 소재였다. 극한 상황을 딛고 인간애를 표현하는 작품에 주로 쓰였다. 영화 ‘벤허’에선 주인공 벤허가 복수심을 버리자 그의 어머니와 누나가 이 병에서 벗어난다. 이청준 소설 ‘당신들의 천국’에선 사회의 냉대와 편견을 딛고 일어서려는 소록도 한센인들의 분투가 그려졌다. 1940년대 초 ‘완치 가능한 질병’이 되면서 사회적 인식에 변화가 생긴 덕분이었다.

 

▶소록도는 고귀한 인류애를 간직한 섬이다. 수많은 헌신의 사연이 있다. 그중엔 1960년대 초부터 이 섬에서 한센인을 돌본 오스트리아 출신의 두 간호사 마리안느와 마가렛도 있었다. 2000년대 중반, 노쇠해져 더는 환자를 돌볼 수 없게 되자 올 때 가져왔던 짐만 챙겨 돌아갔다. 그 사연이 최근 다큐 영화로 제작돼 감동을 선사했다. 세계보건기구는 한국을 한센병 퇴치 국가로 분류한다. 의술 발전뿐 아니라 이런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정부가 소록도를 ‘보호 지역’으로 지정해 국립공원 등으로 만드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한다. 일반인 출입이 적었던 덕분에 유지된 자연환경을 지키고, 격리·치료 시설을 역사·문화유산으로 보전하겠다는 것이다. 소록도는 무지와 가난, 그로 인한 시행착오로 얼룩진 반면교사이자 소중히 간직할 인간애의 박물관이기도 하다. 독일은 아우슈비츠 역사를 후손에게 가르칠 때 그곳에서 자행된 악행뿐 아니라 그곳에서 한 명이라도 구출하기 위해 노력한 의인의 삶을 함께 가르친다. 소록도도 그런 공간이 되길 바란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4-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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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만큼 감사합니다” 소록도 ‘작은 할매’ 잠들다

 

2005년 11월. 시작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새벽에 일어나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우유를 타서 환자들에게 나눠 줬다. 그 뒤 편지 한 장만 남긴 채 조용히 소록도를 떠났다. 20대 청춘에 처음 한국에 왔을 때처럼 70대의 노간호사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손엔 여행가방 하나씩만 들려 있었다. 9월 29일 마가렛은 그 가방마저 내려놓은 채 고향 오스트리아에서 영원한 길을 떠났다. 향년 88세. 세상에 유일하게 남긴 시신마저 의대에 기증했다.

▷마가렛은 평생의 벗 마리안느(마리아네 스퇴거·89)와 함께 40여 년간 한센인을 돌봤다. 흔히 수녀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히는 수녀가 아니라 평신도 재속회 소속이었다. 간호사를 구하는 동양의 한 가난한 나라의 요청에 응해 1959년 12월 한국에 왔다. 경북 왜관, 전북 전주 등의 한센인 정착촌에서 봉사하다 1961년 순명의 삶을 살기 위해 수녀원에 들어갔다. 건강이 나빠져 1964년 수녀원을 나왔는데 희한하게도 몸이 좋아졌다. 달리 쓰임이 있나 보다 생각하고 1966년 10월 전남 고흥군 소록도로 들어갔다.

▷폴란드계 오스트리아인인 마가렛의 본명은 마르가리타 피사레크. 가족들은 마르기트라고 불렀다. 하지만 소록도 사람들은 처음에 잘못 알아듣고 ‘마귀’라고 했다. 편하게 영어식으로 마가렛으로 부르라 했다. 백수선이란 한국 이름도 있다. 머리에 서리가 내리기 시작할 때쯤부턴 사람들이 한 살 많은 마리안느를 ‘큰 할매’, 마가렛을 ‘작은 할매’라 했다. 1970년대 초까진 또 다른 간호사 마리아 디트리히 씨까지 소록도의 ‘세마’로 불렸다. 소록도에는 이들의 공적을 기리는 ‘세마비’가 있다.

 

▷과거 ‘나병’ ‘문둥병’이라 불리던 한센병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의료진조차 방역복과 마스크, 장갑으로 완전 무장한 채 환자와 거리를 두고 진료했다. 하지만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태연하게 환자들의 짓무른 손발가락을 소독하고 피고름을 직접 짜냈다. 환자의 상처에 얼굴을 바싹 갖다대고 치료하다 보니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낸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늘 타인의 눈빛에서 전염의 공포를 보았던 한센인들은 이들의 진심에 마음의 문을 열었다.

▷유럽 내륙에서 나고 자란 마가렛은 소록도에 와서 처음으로 바다를 봤다고 했다. 오스트리아로 돌아가 설산을 보면서도 소록도의 푸른 바다를 그리워했다. 치매를 앓는 중에도 소록도의 추억은 또렷했다. ‘죽어서도 소록도에 묻히고 싶다’던 그가 한국을 떠난 건 나이가 들어 주변에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이유였다. 온전히 베푸는 삶을 살았으면서도 큰 사랑과 신뢰를 받아서 하늘만큼 감사합니다라는 편지를 남겼다. 이젠 우리가 하늘만큼의 감사와 존경을 돌려 줄 차례다. 고인의 영면을 빈다.

 

-김재영 논설위원, 동아일보(23-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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