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복날의 개고기 생각]
[우리 역사에서 사라지는 보신탕]
2024년 복날의 개고기 생각
매일 개고기처럼 싸우는 여야… 개고기금지법은 일사천리 통과
토론 한번 없이 제약된 '먹을 자유'… 입법권 남용의 단면 아닌가
지난 2023년 10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개 식용 금지법 제정 촉구'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동물권 대국민연대는 공동선언문을 통해 “정부와 국회는 완전한 개식용종식을 위한 입법과 실행에 지금 당장 나서라”고 촉구했다. /뉴시스
새삼 ‘개고기’를 생각하게 된 건, 말복 무렵 국회 앞 시위대의 외침을 듣고 나서다. 아스팔트마저 녹일 것 같은 땡볕 아래서 몇몇이 절규했다. “국민 자유권 강탈하는 개식용금지법 철회하라! 니들은 맨날 여의도에서 개짓거리하면서 왜 개는 못 먹게 하느냐, 이 개만도 못한 정치인들아!”
2024년 한국 사회가 개고기를 바라보는 시선은, 게임 회사 NC를 ‘개고기 식당’이라고 놀리는 게이머들 태도에서 잘 드러난다. 이 회사 대표작인 리니지 게임은 ‘외국인은 질색하고, 아저씨만 좋아하고, 청년들은 기피한다’는 이유로 온라인에서 개고기로 불린다. 이에 대해 NC 주주들이 명예훼손 소송을 검토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오늘날 개고기처럼 야만과 구태를 상징하는 단어는 없다. 아직 개를 먹는 사람들도, 조로아스터교를 능가하는 밀교 신자처럼 “혹시…너도…” 은밀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소리 없이 회동한다. “복날이니 개 먹으러 가자”고 떳떳하게 일어설 용자는 요즘 찾아보기 어렵다.
시간이 개고기 식당을 없애리라는 결말이 명확히 보이는데도 국회는 올 초 보기 드문 여야 합의로 개식용금지법을 통과시켰다. 이른바 ‘개 연정(聯政)’이다. 식용 목적으로 개를 도살하거나 사육·유통하면 3년 이하의 징역형으로 처벌 가능한 것이 이 법의 골자로, 2027년부터 본격 시행된다. 미국도 무소속으로 대선에 나오는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후보가 최근 ‘개를 먹은 적 있다’는 논란으로 홍역을 치를 만큼 개 먹는 사람을 사람 취급 안 하지만, 원주민들이 전통 의식 차원에서 개를 먹는 것은 합법이다. 한국도 실상은 ‘개저씨’ 부족만 개고기를 소비할 뿐인데, 대국민 공청회 한번 없이 먹을 자유를 징역형으로 제한하는 법이 일사천리로 생겼다.
그럴 연(然)은 ‘고기(肉)+개(犬)+불(灬)’이 결합한 한자어다. 개고기를 불에 굽는(구워 먹는) 것은 당연하다는 뜻으로, 우리가 밥 먹듯이 쓰는 자연(自然)이란 말에 개고기 냄새가 진동하고 있는 셈이다. 드릴 헌(獻) 자나 토사구팽(兎死狗烹)을 봐도, 혜경궁 홍씨 회갑연에 개고기찜(狗烝)을 별미로 올렸다는 기록과 다산 정약용이 남긴 ‘개고기 레시피’ 등을 봐도 동아시아에서 개고기는 역사의 일부였고, 앞으론 화석처럼 기억될 게 분명한 문화다. 그럼에도 국회가 육식에 관한 정밀한 토론도 없이 개식용금지법을 만든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을 반대하는 윤석열 정부가 육견 업계 보상금으로 마리당 30만원 지급을 검토하고, 밀턴 프리드먼의 저서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윤 대통령이 이 법안엔 거부권을 안 쓴 것도 아이러니다.
문재인 정부 ‘부동산 임대차법’의 실패가 보여주듯 입법은 극도로 정교하게 다뤄져야 한다. 한국 정치는 거꾸로 간다. 16대 국회에서 총 2507건이었던 법안 발의 수가 21대 국회에선 2만5858건으로 10배가량 늘었다. 개원한 지 겨우 세 달 된 이번 22대 국회도 발의된 법안이 벌써 3000건이 넘는다. 입법을 얼마나 쉽게 여기는지 보여주는 일례다. 그러다 보니 ‘표적 수사 금지법’ ‘검찰 수사 조작금지법’ 등 헌법 체계를 뒤흔드는 법안들이 뻔뻔하게 추진된다.
정작 여의도만큼 개고기 냄새가 지독한 곳이 없다. 그러니까 양두구육(羊頭狗肉). 민생이란 양고기를 다루겠다고 약속하고 표 받아간 이들이 국회 들어가선 탄핵·특검·청문회로 연일 개고기처럼 싸운다. 잘 살게 해달라고 찍어준 표인데 한도 없는 권력을 허가받은 것처럼 날뛰는 광경을 보면서 복날 폭염 속 그 절규를 떠올린다. “이 개만도 못한 정치인들아!”
-양지혜 기자, 조선일보(24-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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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에서 사라지는 보신탕
개는 인류의 오랜 동반자다. 함께한 역사가 4만년 전 수렵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다만, 거의 모든 곳에서 개는 식용이기도 했다. 선사시대 유적마다 개 요리 흔적이 발견된다. 스위스는 100~200년 전까지 개를 먹었고, 프랑스도 19세기 보불전쟁으로 식량이 부족해지자 개를 먹었다.
▶세계에서 개를 가장 많이 먹는 나라는 중국이다. ‘향이 나는 고기’라는 뜻의 향육(香肉)이라 부르며 연간 2000만 마리를 식탁에 올린다. 북한에서 개는 가축이다. 대부분 개는 이름도 없다. 중국과 북한에선 개 부위별 다양한 요리법이 개발돼 있고 통조림도 만든다. 1970년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가 방북했을 때 김일성이 환영 파티에서 내놓은 것도 다양하게 요리한 개고기였다.
▶고기가 귀하던 시절, 개는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다산 정약용은 흑산도에 유배 간 형 정약전에게 개고기 요리법을 편지로 적어 보내며 건강을 위해 먹으라고 했다. 동의보감에는 ‘오장을 편하고 튼튼하게 해주며 허리와 무릎을 따뜻하게 해 정력에도 좋다’고 소개돼 있다. 1990년대 말까지 연간 10만t 정도 먹었다. 말복이 지나야 개가 한 시름 놓는다는 우스개도 돌았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우리 사회에서 개 식용이 빠르게 퇴조하고 있다. 프랑스 배우 브리지트 바르도 같은 이가 비판해서만은 아니다. 개에 대한 우리 인식이 바뀐 것이 더 크다. 88 올림픽을 계기로 정부가 대대적인 개 식용 중단 캠페인을 벌였을 때만 해도 한국인은 사철탕, 영양탕으로 간판을 바꿔 걸고라도 보신탕을 먹었다. 그런데 1998년 6400여 곳이던 식용견 업소가 재작년 조사에선 1600곳으로 급감했다. 2006년만 해도 ‘개고기 식용 문화를 없앨 필요가 없다’는 견해가 86%였는데, 지난해 조사에선 ‘지난 1년간 개고기를 입에 안 댔고 앞으로도 먹지 않겠다’는 응답이 95%였다. 우리에게 개는 더 이상 식용이 아닌 것이다.
▶식용 개 사육과 도축, 유통을 금지하는 법이 어제 국회를 통과했다. 유모차보다 개모차가 많아지고, 애완견이란 표현도 쓰기 싫다며 개를 인간과 희로애락을 함께한다는 뜻의 반려견으로 부르는 세태를 법이 반영한 것이다. BBC와 CNN 등 외신이 일제히 브레이킹 뉴스로 관련 소식을 타전했을 만큼 국제사회도 주목했다. K팝과 한류 드라마, 첨단 반도체 생산국이란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구축한 나라가 이제는 오랜 가난의 흔적인 개 식용에서 벗어날 때도 됐다. 법 통과로 생계가 막막해진 이들에 관한 대책도 세웠으면 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4-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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