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식량]
[비상식량.. 수분 빼고 바짝 말린 재난용 밀키트, 25년 동안 멀쩡]
전투식량
전투식량의 발전사는 수분을 어떻게 빼느냐의 역사였다. 음식의 부패 때문이었다. 고대 로마 병사들은 유럽을 제패할 때 수분을 뺀 건빵을 들고 전투에 나섰다. 12세기 칭기즈칸의 몽골 기마병은 말린 고기 가루인 보르츠를 말 안장에 달고 싸움터로 갔다. 그러나 보르츠건 건빵이건 수분이 없는 탓에 맛은 거의 포기해야 했다. 오늘날 건빵에 별사탕이 들어 있는 것도 맛을 위해서가 아니라 침샘을 자극해 입안에 수분을 퍼지게 하는 용도라고 한다.
▶물기가 있는 근대적 전투식량의 시초는 1809년 나폴레옹이 전투식량 보존 아이디어를 전국에 공모할 때 1등으로 뽑힌 병조림이었다. 건조하지 않아 먹기 수월하고 열량이 높았지만 여전히 맛은 형편없었다. 참호전으로 치러진 1차 세계대전은 병조림을 먹으며 싸운 전쟁이었다. 병에 담긴 차가운 죽과 고기 스튜를 먹은 군인들은 ‘이틀 굶어도 먹을 수 없는 맛’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오래 보존되고 먹기 수월하면서도 맛도 좋은 전투식량 개발은 지금도 세계 각국이 심혈을 쏟는 분야다. 미국은 남북전쟁 때 인스턴트 커피를 선보였고, 스페인은 내전 당시 설탕 입힌 초콜릿을 보급했다. 이탈리아 전투식량엔 입맛을 돋우라며 식전 술까지 들어 있다. 스팸도 2차 대전 때 미군에 보급되기 시작한 전투식량이었다. 우리 군은 베트남 전쟁 전까지만 해도 전투식량이라 할 게 없었다. 6·25 때 국군은 주먹밥과 미숫가루, 말린 쌀을 먹고 싸웠다. 그러다가 베트남전에서 1967년 흰밥과 김치, 파래무침, 콩자반 등을 곁들인 ‘K레이션’이 첫선을 보였다. 그래도 통조림 형태라 맛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1980년대 이후 한국 전투식량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휴대하기 간편하고 발열팩이 들어 있어 불과 물 없이도 요리가 된다. 고기볶음밥, 마파두부밥, 닭갈비, 피자, 파스타 등 메뉴도 다양하고 맛도 좋다.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한국 전투식량에 들어 있는 햄볶음밥과 양념소시지를 먹고 아몬드케이크 후식까지 맛본 뒤 ‘엄지 척’ 하는 동영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2017~2018년 우리 군에 납품된 전투식량에서 하자가 드러나 군과 제조 업체 사이에 소송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전투식량에 포함된 참기름 등의 유통기한이 잘못된 것이 밝혀지면서다. 그 전에도 전투식량에서 고무줄이나 벌레가 나온 적이 있다. 장병이 먹는 식량은 단순한 식사를 넘어 전투력 유지의 핵심이다. 나폴레옹은 “잘 먹은 군인이 잘 싸운다”고 했다. 진리일 것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4-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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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식량
수분 빼고 바짝 말린 재난용 밀키트, 25년 동안 멀쩡
연일 폭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서울은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 사이 기온이 25도 밑으로 내려가지 않는 열대야가 30일 가까이 이어지면서 기후변화로 더욱 더워진 여름이 체감되고 있습니다. 화창하다가도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세찬 장대비가 갑자기 내리는 일도 많아졌는데요. 그럴 때면 주변이 침수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들곤 합니다.
또 이웃 나라 일본에선 난카이 해곡에서 100여 년 만에 대규모 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경보가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해당 지역 주민들은 물과 비상식량, 휴대용 변기를 사재기하는 등 혼란을 겪고 있어요. 최근 미국 한 대형마트에선 재난에 대비한 비상식량 키트를 판매해 화제가 됐습니다. 이 식량들의 유통기한이 매우 길다고 하는데요,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요?
긴 유통기한의 비결
해당 비상식량 키트는 ‘최후의 날 밀키트’ ‘지구 종말용 식사 키트’ 등의 별명으로 불리고 있어요. 해당 제품은 150인분으로 구성돼 있으며 가격은 11만원 정도입니다. 파스타와 마카로니, 데리야키 덮밥 같은 식사는 물론 푸딩과 오렌지 주스 등 디저트까지 다양한 메뉴로 구성돼 있답니다.
비상식량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메뉴가 동결 건조 상태라는 거예요. 동결 건조는 식재료에서 수분을 제거하는 방법 중 하나예요. 재료를 얼린 후 기압을 낮춰 고체 상태의 물을 기체로 승화시켜 건조하는 거예요. 그래서 동결 건조를 할 때는 우선 식재료가 담긴 용기 안의 온도를 0도 이하로 급격하게 낮춥니다. 그러면 식재료가 얼겠죠? 이후 용기 안을 0.006 기압 이하의 진공 상태로 만들면, 재료 속 얼어 있는 수분이 수증기로 바뀌는 승화 현상이 나타난답니다.
동결 건조는 원래 1890년대에 생물 조직을 연구하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추정돼요. 1900년대 들어서는 혈액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쓰이다가 1930년대부터 식품에 활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비상식량 낱개 포장지를 뜯으면 바짝 마른 상태의 재료를 볼 수 있어요. 설명서에 적힌 대로 건조된 식량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우리가 아는 음식의 형태로 돌아옵니다. 식재료에서 수분이 빠진 빈 공간에 물이 다시 들어가면서 식재료가 원래의 모습을 되찾는 거예요. 덕분에 우리는 재료 본연의 식감과 맛을 충분히 즐길 수 있어요.
이렇게 동결 건조를 하면 음식을 오래 보관할 수 있습니다. 음식을 상하게 하는 미생물이 번식하기 어렵기 때문이에요. 미생물은 크기가 0.1㎜ 이하로 작아서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생물을 말해요. 미생물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 음식을 아주 작게 분해해 흡수해요.
그런데 미생물의 생존에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수분이에요. 동결 건조된 음식이나 식재료에는 수분이 없기 때문에 미생물이 활동할 수 없고 부패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지요. 덕분에 현재 화제가 된 미국 대형마트의 비상식량 키트는 유통기한이 25년이나 된답니다.
불 없이 데우는 도시락
최근엔 찬물로도 따끈한 식사가 만들어지는 간편 식품이 인기입니다. 바로 전투식량 형태의 발열 도시락인데요. 물을 붓는 건 위에서 소개한 비상식량과 똑같은데, 이 도시락은 발열반응을 이용해 물을 끓이기 때문에 불 없이도 따뜻한 음식을 먹을 수 있어요.
발열반응은 열을 외부로 방출하는 화학반응을 말해요. 전투식량 형태의 발열 도시락을 뜯으면 음식이 들어 있는 비닐팩과 발열체 등이 있습니다. 음식이 든 비닐팩에 찬물을 넣고 지퍼를 닫습니다. 그리고 발열체를 발열 도시락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음식이 든 비닐팩을 놓아요. 이후 발열 도시락에 적정량의 물을 붓고 도시락 지퍼를 닫습니다. 그러면 발열체와 물이 만나 발열반응이 일어나게 되고, 물이 끓으면서 비닐팩 속 음식이 따뜻하게 데워집니다. 보통 발열체로는 산화칼슘 등이 사용된다고 해요. 산화칼슘은 물과 만나면 열을 발생시킨다고 합니다.
군인이 먹는 전투식량 중 즉각 취식형 역시 발열반응을 이용한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발열체 및 발열 용액이 들어 있는 발열백이 따로 있어요. 이 발열백을 작동시키면 안에 있던 발열체와 발열 용액이 반응을 일으켜 뜨거워지고, 이를 이용해 음식을 데우기에 물 없이도 따뜻한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긴급한 재난·재해에 대비하는 프레퍼족
미국의 대형마트에서 파는 비상식량 등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프레퍼(prepper)족이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요. 프레퍼족이란 재난이나 재해가 갑자기 닥쳐도 생존할 수 있도록 이에 대한 대비를 일상적으로 하는 사람들을 말해요. 기후변화와 미세 먼지, 코로나 등을 겪은 MZ세대들은 재난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를 대비하려고 한다고 해요.
실제로 프레퍼족 중에서 ‘생존 가방’을 준비하는 이들도 있다고 해요. 가방 안에 식수와 음식, 침낭, 의약품, 나침반 등이 들어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재난 대비용 생존 가방을 꾸리고, 비상식량을 사는 사람이 많지만 실제로 이것들이 쓰이는 일이 없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이윤선 과학 칼럼니스트/기획·구성=오주비 기자, 조선일보(24-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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