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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산] [히말라야 14좌 모두 오른 산악인들] ....

뚝섬 2024. 10. 23. 10:23

[에베레스트산]

[히말라야 14좌 모두 오른 산악인들]

['히말라야 14좌 완등자' 한왕용씨]

[오은선과 칸첸중가]

 

 

에베레스트산

 

해발고도 8848m 에베레스트산, 지금도 높아지고 있어

 

얼마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 에베레스트 등정에 나섰다가 1924년 실종된 한 산악인의 유해가 발견됐어요. 영국 산악인 앤드루 어빈으로 추정되는 유해였는데요, 산악계에선 그 근처에서 그의 카메라도 발견할 수 있을지 기대하고 있답니다. 만약 어빈이 산 정상에서 찍은 사진이 카메라에 남아 있다면, 에베레스트 최초 등반 기록이 30년 가까이 앞당겨지게 되거든요. 어빈은 정상을 약 200m 남겨둔 지점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됐어요.

 

해발 고도 8848m인 에베레스트산은 산악인들에겐 꿈과 같은 산이에요. 그런데 이 산이 매년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 알고 있었나요? 에베레스트는 지난 9만 년 동안 히말라야산맥의 다른 봉우리에 비해 유독 높아졌고, 지금도 매년 높아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나왔답니다. 오늘은 에베레스트가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이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원리로 높아지고 있는지 알아볼게요.

 

인근 강이 높은 에베레스트산 만들었어요

 

에베레스트산은 아시아 중부에 펼쳐져 있는 거대한 산맥, 히말라야에 있습니다. 히말라야는 인도와 파키스탄 경계 부근에서 시작돼 중국 서남쪽에 있는 윈난성 부근까지 이어진답니다. 산맥의 평균 해발고도가 5000m에 달해 ‘세계의 지붕’이라고 불려요.

 

히말라야엔 에베레스트 말고도 높은 산이 여럿 있습니다. 이웃한 카라코람산맥의 K2(8611m)를 비롯해 칸첸중가(8586m), 로체(8516m), 마칼루(8463m)처럼 해발고도 8000m 이상인 산만 14개죠. 이 산들을 ‘히말라야 14좌’라고 부릅니다.

 

최근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과 중국 지질대 공동 연구팀은 에베레스트가 다른 히말라야산맥 봉우리에 비해 높은 원인을 분석했어요. 연구팀에 따르면 에베레스트 주변을 흐르는 하천의 모습이 달라지면서 에베레스트의 높이에 영향을 줬다고 합니다. 

 

하천과 산 높이는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요? 연구팀은 8만9000년 전 에베레스트 동쪽에 있는 아룬강과 그 인근에 있는 코시강이 합쳐지면서 에베레스트 인근 지반의 흙과 돌을 수십억 톤 깎아냈다는 것을 밝혀냈어요. 하천과 강은 산이 있는 상류에서는 지반을 침식시켜요. 그리고 바다로 이어지는 하류 부근에 침식물을 퇴적시킨답니다. 이렇게 에베레스트 인근 지반은 침식으로 인해 가벼워졌고, 다른 지역에 비해 솟아오르기 좋은 상황이 됐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에요. 연구팀은 인근 지반의 질량 변화를 기준으로 산의 높이가 어떻게 변하는지 측정하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진행했어요. 그 결과 지반이 가벼워진 덕분에 에베레스트가 15~50m가량 더 높아질 수 있었을 거라고 봤답니다. 지반이 가벼워진 것과 높이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지구 내부 움직임이 산 밀어올려요

 

우리가 딛고 사는 땅은 아주 단단하지만 수백, 수천km 깊이 들어가면 전혀 다른 상태가 됩니다. 지구 내부로 들어갈수록 온도는 점점 높아져요. 단단한 암석도 녹아 화산이 분출할 때 흘러나오는 용암처럼 된답니다. 당연히 움직일 수도 있어요.

 

대류 현상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거예요. 뜨거운 물질은 높이 올라가려고 하고, 차갑게 식은 물질은 아래로 가라앉는 현상을 말하죠. 지구 내부에서도 대류 현상이 일어납니다. 지구 중심과 가까이에 있는 뜨거운 물질은 지표 부근으로 올라오고, 지표 부근에서 식은 물질은 지구 중심을 향해 서서히 내려가요.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단단한 지반(지각)도 이에 따라 조금씩 움직이죠. 지구 표면을 덮고 있는 지각은 몇 개의 덩어리로 나뉘어 있습니다. 이를 ‘판’이라고 부르는데요. 판은 지구 내부 움직임에 따라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나뉘기도 한답니다.

 

에베레스트산은 인도가 있는 ‘인도판’과 아시아 지역의 ‘유라시아판’ 경계에 있어요. 이 두 판은 지금도 지구 내부 움직임에 따라 부딪치고 있답니다. 인도판이 유라시아판 아래로 밀려들어 가면서 지각의 높이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겨요. 게다가 침식으로 인해 가벼워진 지반은 더 쉽게 위로 솟아오르죠. 그때문에 두 판의 경계에 있는 에베레스트산은 매년 3~5㎜ 정도씩 높아진다고 합니다.

 

반대로 지각 활동에 따라 산 높이가 낮아질 수도 있어요. 히말라야산맥은 두 판이 충돌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지진도 잦은 곳입니다. 2015년 규모 7.8의 네팔 대지진처럼 큰 지진이 나기도 하죠. 이런 큰 지진은 산 높이에 영향을 주는데요. 과학계 일부에선 큰 지진이 일어날 땐 반대로 지각이 압축되며 2.5~3cm 정도 높이가 낮아질 수도 있다고 말해요.

 

GPS로 높이 측정해요

 

에베레스트 산의 높이는 어떻게 측정하는 걸까요? 1856년 영국에서 에베레스트의 고도를 측정했을 때는 8840m였는데, 1955년에 인도에서 측정한 높이는 8848m였습니다. 1999년 미국이 측정한 높이는 얼음과 눈을 포함해 8850m였습니다. 짧은 시간에 그만큼 높아진 걸까요?

 

1856년과 1955년에는 삼각측량법을 이용했습니다. 삼각형의 한 변의 길이와 이 변 양 끝의 각도를 안다면 나머지 변의 길이를 알 수 있는 삼각형의 원리를 이용한 거죠. 하지만 수백km 떨어진 곳에서 측정하는 만큼 오차가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1999년 미국에선 GPS(위성항법장치)를 이용해 높이를 쟀어요. GPS 수신기와 위성이 신호를 주고받는 데 걸리는 시간을 이용해 높이를 계산하는 거예요.

 

가장 최근에 측정한 에베레스트 산의 높이는 8848.86m입니다. 2020년 중국과 네팔이 GPS와 삼각측량법을 조합해 쟀답니다. 그동안 기술이 발전하면서 더 정교하게 측정할 수 있게 된 거예요. 하지만 에베레스트처럼 높은 산을 측정하려면 준비와 측량에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나 또 높이가 변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오가희 과학 칼럼니스트/기획·구성=윤상진 기자, 조선일보(2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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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14좌 모두 오른 산악인들

 

산악인 김창호 대장이 지난 12일 밤 네팔 구르자히말 산에서 조난돼 숨졌어요. 그는 지난 2013년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8848m)에 오르며 한국인으로는 처음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무산소 등반했어요.

이 기록이 어떤 의미일까요? 히말라야 산맥에는 에베레스트를 포함해 해발 8000m가 넘는 봉우리가 14개 있어요. 이를 모두 오를 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에서도 많지 않아요. 높이 오를수록 공기가 희박해져 숨을 쉬기도 어렵죠. 무산소 등반은 이 봉우리들을 산소 탱크 없이 올랐다는 거예요. 모든 산악인의 존경을 살 만한 기록이죠.

그렇다면 인류 최초로 히말라야 14좌를 모두 오른 사람은 누구일까요? 1986년 이탈리아의 라인홀트 메스너(Messner)입니다. 1970년에 처음 오르기 시작했으니 꼬박 16년이 걸렸어요. 이후 수많은 산악인이 그의 뒤를 이어 14좌 완등에 도전했습니다. 

김창호(위 사진) 대장은 2013년 한국인 최초로 히말라야 봉우리 14개를 무산소 등반하는 데 성공했어요. 아래 사진 왼쪽부터 산악인 박영석·엄홍길·한왕용. /힘중 원정대 제공·연합뉴스·장련성 객원기자·이덕훈기자 

 

우리나라에서는 '한국 산악계 전설'로 불리는 고(故) 박영석이 2001년 처음으로 14개 봉우리를 모두 올랐어요. 세계에선 여덟 번째 기록이에요. 그는 7년 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8091m)를 오르다 실종됐어요. 당시 김창호 대장이 수색대로 나서 밧줄로 몸을 묶고 박영석의 시신을 찾기 위해 애썼으나 끝내 찾지 못했어요.

2001년 전 세계 아홉 번째, 한국인으로선 두 번째로 오른 사람이 엄홍길입니다. 이어 2003년 한왕용이 한국인 세 번째로 14좌를 등정했죠. 김재수, 김미곤도 14개 봉우리를 모두 오른 한국인입니다.

그렇다면 14좌를 완등한 최초의 여성은 누구일까요? 한국인 오은선으로 알려져 있어요. 하지만 그가 칸첸중가(8586m)를 오르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있죠.

오은선을 제외해도 14좌 완등자 중 한국인은 6명이나 돼요. 우리나라는 스페인과 함께 세계에서 둘째로 완등자를 많이 배출한 나라예요. 가장 많은 완등자가 있는 나라는 이탈리아로 총 7명(이중국적자 포함)이랍니다.

 

-유소연 기자, 조선일보(18-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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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14좌 완등자' 한왕용씨

 

트레킹여행사 대표가 된… '히말라야 14좌 완등자' 한왕용씨 

 

한왕용(52)씨를 만난 것은 그가 '뉴스의 인물'이어서가 아니라, 그의 인생 얘기가 혹 어떤 이들에게는 위안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그는 히말라야 8000m 고봉 14좌(座)를 완등한 산악인이다. 국내에서는 엄홍길과 고(故) 박영석, 그다음인 세 번째의 완등자다. 세상은 '넘버 3'까지 제대로 기억할 리 없다.

'한왕용 대장'으로 불리던 그는 이제 직원 한 명을 둔 트레킹 전문 여행사의 대표로 변신해 있었다. 히말라야 원정 대신 그는 고객을 이끌고 몽블랑, 돌로미테, 파타고니아, 잉카, 아이슬란드 등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지 올해로 15년이 됐습니다. 그 목표를 이루고 난 뒤 무기력증에 빠졌습니다. 자신을 바쳐 해야 할 일이 사라졌으니까요. 히말라야에 오르는 것보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더 힘들다는 말이 맞았습니다." 

 

한왕용씨는 “도전은 처음이 의미가 있지, 남들이 이뤄놓은 걸 뒤따라가면 도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세 번째 완등이라 매스컴의 주목을 못 받았지요?

"우리나라는 1등만 알아주는데…, 3등은 명함 내밀 데가 없지요. 엄홍길과 박영석 선배가 열띤 경쟁을 벌이며 14좌 완등을 한 뒤라 제가 계속 한다는 것에 심적 갈등이 있었습니다. 도전은 처음이 의미가 있지, 남들이 이뤄 놓은 것을 뒤따라가면 도전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이미 게임이 끝난 14좌 완등에 매달리는 제 모습에 '바보 아니냐'고 비웃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도 14좌 등정을 계속한 이유는요?

"그때 저는 히말라야 8개 봉우리를 등정한 상태였습니다. 솔직히 중간에 멈출 수 없었습니다. 기록보다는 저 자신을 위해 매듭은 지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엄홍길과 박영석에 비해 지명도가 낮아 대기업으로부터 원정 경비를 후원받는 것도 쉽지 않았지요?

"처음에는 엄홍길이나 박영석 원정대의 대원으로 참가했습니다. 그러다가 제 원정대를 꾸렸지요. 제가 좋아서 하는 등반인데 남에게 도움을 바라는 것이 싫었습니다. 기업의 후원과 협찬을 받으면 그만큼 자유롭지 못하니까요. 제가 이끄는 원정대는 각자 나름대로 번 돈으로 원정 경비를 부담했습니다."

가장은 바깥에서 돈을 벌어 귀가해야 하는데, 생활도 안 되고 전망도 없는 등반을 계속할 때 가족은 뭐라고 했습니까?

"간호사인 아내가 집안을 꾸렸던 셈입니다. 결혼한 지 4년이 된 2003년에는 14좌 완등을 위해 남은 봉우리가 가셔브롬2봉과 브로드피크봉이었습니다. 저는 원정을 떠나는 게 일상(日常)이었으므로 당연히 아내도 익숙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당신이 그동안 원정을 떠나 있을 때 한 번도 편히 잠을 못 잤다'는 말을 처음 꺼냈습니다. 아내에게 그런 불안을 줬다는 게 미안했어요. 그래서 성공하든 실패하든 이번으로 히말라야 등반은 끝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결과론적으로 14좌 완등을 이뤘으니, 그 마지막 등반은 성공적이었군요.

"가셔브룸2봉을 등정한 뒤 내려오다가 몸이 허공으로 떨어졌습니다. 크레바스(빙하의 갈라진 틈)를 밟은 겁니다. 항아리처럼 생긴 크레바스 속에서 제 몸이 대롱대롱 매달렸습니다. 대원들이 30분 넘게 로프를 끌어당겨 저를 살렸습니다. 이런 사고를 겪고서도 브로드피크봉으로 가 14좌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히말라야 고산 등반은 목숨을 거는 모험입니다. 그런데 당신의 얘기를 듣고 있으면 뭔가 심심해요. 매스컴의 조명을 받지 못한 데는 '넘버 3'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스토리를 강렬하게 대중에게 전달 못 해 그랬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제 등반 과정을 극적으로 포장을 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정해진 루트(route)를 따라 올라가는 방식의 히말라야 등반을 생사를 넘나드는 행위로 과장할 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죽을 고비는 많이 있었습니다. 2000년에는 K2봉을 등정하고 내려와서 죽을 뻔했습니다. 쇠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으로 쓰러졌으니까요. 응급처치를 받고 헬기로 후송됐습니다. 뇌혈관 확장 수술을 받아야 했지요. 그럼에도 노멀(normal) 루트로 올라가는 등반은 고산 등반 능력을 갖춘 전문 산악인에게는 크게 위험한 것은 아닙니다. 공식만 벗어나지 않으면 말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그때 우리는 히말라야 봉우리를 남들이 가지 않은 루트로 올라가느냐가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더 많이 오르느냐를 두고 경쟁했습니다. 이미 남이 올라갔던 길, 만들어놓았던 길. 상대적으로 쉬운 길을 골라 또 올라가는 것입니다. 소위 '등정(登頂)주의'였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여기에는 모험의 본질이 사라진 거죠."

당시에도 14좌 완등 경쟁을 '땅 따먹기 식'이라는 비판은 있었지만, 일반 사람들은 그런 등반조차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전문 산악인의 세계에서 말하는 겁니다. 고산 등반에서 가장 위험한 요소는 날씨입니다. 하지만 인공위성의 일기예보 자료를 구입할 수 있게 됐습니다. 등산 장비의 기능성도 좋아졌고요. 돈만 내면 전문산악인이 달라붙어 산소마스크를 씌운 일반 고객을 에베레스트봉까지 올려줄 수 있게 됐습니다. 공식대로 가면 어느 확률까지 안전할 수 있다는 겁니다."

―8000m 고산 자체에 항상 예기치 않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왜 당신 스스로 14좌 완등에 대해 낮게 평가하려는 겁니까?

"저는 최대치의 능력을 발휘했던 것 같습니다. 제 능력은 노멀 루트로 올라가는 것 거기까지였습니다. 당시 어떻게 올라가느냐의 과정을 중시하는 '등로(登路)주의' 바람이 불었다면 저는 산악인 축에 끼지 못했을 겁니다." 

알프스 몽블랑에서. 

 

―별말씀을. 히말라야 14좌 완등은 여전히 후배 산악인에게도 큰 목표가 아닐까요?

"제가 14좌 완등을 한 뒤 이를 우려먹기 위해 여러 이벤트를 펼쳤으면 산악계에서 욕먹었을 겁니다. 세계적인 추세가 '등로주의'로 바뀌고 있었는데, 그 시점에 제가 잘 끝낸 것 같습니다. 더 나은 등반은 후배들의 몫입니다."

그는 전주 우석대 산악부에 들어갔고, 1994년 초오유봉 등정으로 히말라야와 인연을 맺었다. 그가 14좌 완등을 하는 과정에서 단 한 명의 동료도 잃지 않았다는 것은 특기할 점이다.

당신은 체력이 고갈 난 상태에서 눈앞에 정상(頂上)이 보이면 그래도 끝까지 올라가는 쪽이었습니까, 아니면 단념하고 내려오는 쪽이었습니까?

"저는 겁이 많아 몸을 사리는 쪽이었지요. 운도 좋았습니다. 히말라야 14좌를 처음 완등한 전설적 산악인 라인홀트 매스너는 '나는 살아서 돌아왔다'는 책을 썼듯이 등반의 완성은 살아서 내려오는 데 있습니다."

정상을 눈앞에 두고 퇴각 결정은 어렵습니다. 현실적으로 원정대를 꾸리기가 쉽지 않고 철수하면 다음을 기약하기 쉽지 않지요.

"그렇지만 저는 그런 결정이 빠릅니다. 머뭇거리지 않습니다. 철수를 해야 할 시점인데, '혹 좋아질지 모르니 조금 더 기다려보자'며 머뭇거리면 시기를 놓칩니다. 더욱 위험에 빠지게 되고 결국 다음에 다시 해 볼 기회까지 없어집니다."

그런 진퇴 결정을 순전히 본인의 경험에 의해 내렸습니까?

"올라가느냐 퇴각하느냐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날씨입니다. 저는 기상 조건에 관해서는 현지인 셰르파(등반가이드)의 말을 따릅니다. 이들만큼 그쪽 날씨를 더 잘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는 등반과 트레킹을 합쳐 50회 이상 히말라야 산을 다녀 어떤 루트에서는 눈 감고도 다닐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지인 셰르파를 꼭 고용합니다. 예기치 않는 상황이 발생할 때는 특히 이들의 판단이 중요합니다. 갑을(甲乙)의 고용관계가 아니라 동등한 파트너로 대하면 이들은 제게 진심 어린 조언을 해줬습니다."

―14좌 완등을 하고 나니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제게 스스로 부과한 숙제를 마쳤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제가 완등해도 엄홍길과 박영석 선배처럼 관심을 안 가질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직장 생활에는 좀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은 있었지요. 완등하기 전 해인 2002년부터 등산 장비 업체의 홍보부장으로 들어갔으니까요."

산에만 다니다가 직장 생활을 해보니 어땠습니까?

"안정된 직장 생활이 너무 좋았습니다. 등반 경험을 살려 등산 제품 개발에도 참여하고, 제품 홍보를 위해 연예인들과 산행하는 방송 프로에도 나갔습니다. 각국의 산악인들이 히말라야에 버려놓은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 등반도 그때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7년간 근무했을 때, 사세를 확장한 그 등산 장비 업체는 더 지명도가 있는 산악인 엄홍길씨를 이사로 영입했다.

"회사에서 제게 관두라고 했습니다. 그때까지 제가 회사를 나간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너무 창피한 거예요. 내가 필요 없는 사람이라는 기분이 들었어요. 듣는 순간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을 뿐입니다."

세월이 흘렀는데도 술자리에서 그는 상처의 기억을 떠올리며 눈물지었다.

"제 마음을 정말 아프게 한 것은 잘린 뒤였습니다. 회사 관계자가 '사장님과 자리를 한번 하자'고 연락해왔습니다. 제가 어려울 때 그분이 챙겨준 것을 생각했습니다. 마음이 풀렸습니다. 약속 시간에 맞춰 회사 바로 앞에 왔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사장님이 바쁜 일이 있어 나갔다'는 겁니다."

아마 그 등산 업체 사장은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는 그 뒤로 지인의 제안으로 여행사 일에 발 을 들여놓았다가, 2012년 '한왕용의 트레킹이야기'라는 여행사를 차렸다. 앞서 말한 대로 직원은 한 명이다. 한 번 다녀간 고객의 구전(口傳)이 고객들을 끌어온다고 한다.

밥벌이는 한때 천하의 14좌 완등자에게 굴욕을 줬지만 이제 그는 세상에 풍광 좋은 곳만을 다니고 있다. 그를 보고 있으면 후반부 인생이 이렇게 펼쳐질 수도 있으니 성급할 게 없구나 싶다. 

 

-최보식 선임기자, 조선일보(18-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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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선과 칸첸중가

 

폴란드의 예지 쿠쿠츠카는 8000m 넘는 히말라야 열네 개 봉우리를 세계 두 번째로 모두 오른 뒤 기록을 의심받았다. 1981년 마칼루 등정 사진을 못 찍었기 때문이다. 등반대에 참여했던 네팔 연락장교도 그가 정상을 밟지 못했다고 보고했다. 그를 궁지에서 구해낸 이가 허영호다. 허영호는 이듬해 마칼루에 올랐다가 쿠쿠츠카가 남긴 무당벌레 모양 마스코트를 발견해 의혹을 씻어 줬다.

▶1989년 한 산악인이 한국인 최초로 초오유를 산소통 없이 올랐다고 해 정부의 상까지 받았다. 그런데 맑은 날 정상에서 찍었다는 사진에서 남쪽 에베레스트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6년 뒤 초오유 등정이 거짓이었다고 고백했다. 세계 산악계에 등정 의혹과 조작이 끊이지 않는 것은 산의 숫자와 높이에 집착하는 성과주의, 오르기만 하면 된다는 등정주의 탓이다. 


▶기미국 기자 마이클 코더스는 책 '에베레스트의 진실'에서 돈에 오염된 히말라야를 까발렸다. 베이스캠프엔 텐트 500채에 1000명이 북적인다. 음식과 술을 팔고 마약에 매춘까지 이뤄진다. 2억원을 내면 대행사가 팀 구성, 장비 운반까지 완벽하게 준비해 준다. 이렇게 해마다 500여명이 에베레스트에 오른다. 코더스는 등반이 상행위로 전락했고 에베레스트는 '인간성의 무덤'이 됐다고 개탄했다.

▶대한산악연맹이 오은선의 14좌 완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문제 됐던 칸첸중가 등정 사진 속 지형이 실제 정상엔 없는 것이라고 판정했다. 오은선의 여성 최초 14좌 완등 기록이 국제적으로도 흔들리게 됐다. 스페인 경쟁자 에두르네 파사반은 오은선보다 열하루 늦게 14좌 등정을 달성했다.

▶산악계는 오은선이 적어도 등정 사진을 확실히 남기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본다. 그가 셰르파 말만 믿고 정상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2000년까지 14좌를 모두 오른 엄홍길은 시샤팡마와 로체 등정에 시비가 일자 이듬해 두 봉우리를 다시 올랐다. 오은선은 기록에 연연하지 말고 당당하게 칸첸중가 재등정에 나서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 산악계는 산을 오르는 '태도(attitude)'보다 '높이(altitude)'를 중시하는 상업주의를 되돌아볼 일이다.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조선일보(10-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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