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영접 그만 나오라"]
[‘천안문 망루’와 ‘펠로시 패싱]
"공항 영접 그만 나오라"
국가원수 공항 영접 행사의 시초는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었다. 그는 1940년대 카사블랑카·얄타 회담 등을 다녀온 뒤 공항·항구·기차역 등에서 귀국 행사를 열었다. 정부와 군 지휘부가 배웅 나오고 군악대 연주와 퍼레이드가 열렸다. 2차 세계대전 승전을 이끈 지도자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의도였다. 케네디 대통령은 1961년 소련 흐루쇼프와 정상회담을 마치고 공항에서 환영식을 가졌다. 의회 인사들도 나왔다. 귀국 연설은 TV로 중계됐다.
▶일본은 천황 순방 때 총리와 내각, 정치권이 공항에 환송 나갔다. 총리 순방 땐 야당 대표가 배웅 나오기도 했다. 프랑스 드골 대통령은 내각이 참석한 가운데 공항에서 군악대·의장대 행사를 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공항 영접 행사엔 3부 요인과 당·정·청 수뇌부가 총출동했다. 꽃다발 증정과 기자회견도 열렸다. 러시아와 중국 등 권위주의 국가의 공항 영접 행사는 훨씬 대규모였다. 지도자 개인 찬양 목적이 강했다. 북한 김정은은 2018년 트럼프 전 대통령과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평양 공항에서 환영 행사를 열었다. 많은 군중이 꽃다발을 들고 김정은을 칭송했다.
▶공항 영접은 출세의 기회였다.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닉슨 대통령 순방 때마다 공항에서 외교 성과와 현안에 대한 현장 브리핑을 했다. ‘항상 준비된 충성스러운 참모’로 자리매김했다. 애치슨 전 국무장관은 트루먼 대통령이 의회 선거 패배 후 워싱턴으로 돌아왔을 때 혼자 기차역으로 마중 나갔다. 이후 승승장구하며 4년간 안보 정책을 총지휘했다. 박정희 정부 때 유정회 의원들은 눈도장을 찍기 위해 앞다퉈 공항에 나갔다. 요직에 발탁된 이들도 있었다.
▶권력 갈등도 야기했다. 김영삼 정부 때 민자당 지도부가 대통령 귀국 영접에 나가지 않았다. 공천 갈등으로 비화하며 지도부 교체설까지 나왔다. 박근혜 정부 때도 여당 지도부의 공항 행사 불참이 불화설로 이어졌다. 김무성 전 대표는 단 3초간 대통령과 인사하기 위해 공항에 나갔다. 이명박·노무현 정부 땐 청와대와 갈등을 빚던 여당 지도부가 공항 영접을 계기로 관계 회복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G20 정상회의를 마치고 귀국하면서 국민의힘 지도부에 “수고스럽게 공항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동안 한동훈 대표가 공항 영접에 나가지 않을 때마다 불화설이 제기됐는데 더이상 소모적 논란을 벌이지 말자는 취지일 것이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들에선 공항 영접이 사라진 지 오래다. 우리도 그럴 때가 됐다.
-배성규 논설위원, 조선일보(24-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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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 망루’와 ‘펠로시 패싱
동맹 강조 尹의 뜻밖 선택.. 휴가 이유 대다 “국익 고려”
中 눈치 본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정부 외교 지향점은 어디인가
낸시 펠로시 미국 연방하원의장이 지난 3일 경기 평택시에 위치한 오산 미 공군기지를 통해 입국하고 있다. 이날 한국측에서는 아무도공항 영접을 나가지 않아 '의전 홀대' 논란이 있었다. 주한미국대사관 트위터 캡쳐
올 초 박병석 국회의장이 스리랑카를 방문했을 때 수도 콜롬보 공항에는 현직 장관 4명이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자정이 다 된 늦은 시간에 영접하러 나온 것이다. 예우하겠다는 국가 차원의 의지가 있으면 이렇게도 한다. 지난주 낸시 펠로시 미 하원 의장의 방한 때 ‘텅 빈 공항’이 논란이 되자 우리 외교부는 ‘입법부 외빈 의전은 국회가 담당하고, 행정부는 관련 없다’고 했다. 관료주의적 책임 회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의전 지침은 깨면 큰일 나는 절대 법칙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필요하다면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다. 펠로시가 대만·일본에 도착했을 때는 외교부 장·차관들이 공항 영접을 나갔다. 이 나라들은 의전을 몰라 이랬겠는가.
국회와 대통령실은 “미국 측이 공항 영접을 사양했다”며 사전 양해가 있었다고도 했다. 미 측이 한국에는 ‘안 나와도 된다’고 하고 일본·대만에는 ‘나와달라’고 했을 리는 없다. 그런데 우리만 안 나갔다. 한 전직 고위 관료는 “선물 받는 쪽에서 ‘뭘 이런 걸 다…’라고 하니, 한국만 ‘그래? 그럼 안 줄게’라고 한 상황이 벌어진 느낌”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펠로시를 만나지 않은 결정은 좀 더 짚어볼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은 최근 방한한 미국 싱크탱크 인사들을 만나려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대통령이 만나줄 ‘거물급’은 아니었다. 결국 일정이 안 맞아 성사는 안 됐지만, ‘도움만 된다면 급이 무슨 상관이냐’는 윤 대통령의 실용 스타일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윤 대통령은 취임 전에 차관보급인 성김 미 대북특사와 따로 식사하는 파격을 보인 적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휴가’라지만 서울에 머문 윤 대통령이 미 대외 정책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펠로시를 ‘패싱’한 것은 더 도드라질 수밖에 없었다. 한미 동맹 복원과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해온 윤 대통령이 펠로시를 만나는 건 튀는 행보가 아니었다. 펠로시가 방문한 유럽·아시아 모든 나라에서 정상들을 만났기 때문에 부담도 적다. 해석이 분분한데 한 외교 소식통은 “바이든 대통령도 펠로시 대만 방문을 탐탁지 않아 한다는 소식이 들리니 대통령과 참모들이 최초 판단을 잘못했던 것 같다”고 했다.
속사정이 어쨌든 ‘휴가 때문’이라고 발표를 했으면 일관성을 지켜야 했는데 그러지도 못했다. 펠로시 방한을 전후한 대통령실의 뒤섞인 메시지는 ‘여론 안 좋으니 만나는 걸 고려했다가, 다시 그건 너무 모양새가 빠지니 통화 정도로 절충’했다고 비칠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이 나중에 만남 불발에 대해 “국익을 총체적으로 고려한 결정”이라고 한 것은 참사 수준의 실언이다. ‘휴가 때문’이라는 애초 설명과 앞뒤가 안 맞을뿐더러, 거창한 전략적 고려가 있었다면 ‘중국 때문’ 말고 달리 해석하기 어렵다. 그런 뜻이 아니라고 수습하긴 했지만, 많은 사람은 과거 박근혜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 진영 지도자 중 유일하게 천안문 망루에 올라간 것을 떠올렸을 것이다.
물론 한미 관계는 이 정도 사건으로 흔들릴 만큼 허약하지 않다. 대통령 지지율 하락과 맞물려 필요 이상으로 이슈가 커진 측면도 있다. 다만 외교 결례니 의전 홀대니 같은 가십성 논란을 넘어, 이번 건은 우리 외교 안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부호를 남겼다. 컨트롤타워가 중심을 잡고 있는지, 이에 따라 일선 조직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지, 동맹국과 소통하는 데는 문제가 없는지, 무엇보다 우리 외교가 명확한 지향점과 원칙을 갖고 있는지 말이다. 펠로시가 떠난 뒤 중국은 “예의 바른 결정”이라고 했고, 미 조야에선 불편한 반응이 나왔다. 이게 의도한 결과는 아니지 않은가.
-임민혁 기자, 조선일보(22-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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